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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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홀로 이 책을 읽게 되었으면 어쩌나 오소소 몸을 떨었다.

 

 프롤로그부터 현실과 이야기의 경계에서 길을 잃었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하고 내 옆에서 묵혀왔던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저자의 다음 말을 재촉하듯이.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면서도 늘 내 친구의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한다리 건너서 멋쩍고 켕기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친구처럼 긴가민가하다. 진짜인거 같기도 하고 그저 믿기엔 맹랑한 뜬소문 같기도 하다. 안믿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럴 땐 사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싶은 마음으로 그런 삶도 있겠거니 넘겨 들으면 더 재미있다. 그래야 다음 장으로 넘기면서 계속 그래서요, 그래서요? 하는 맛도 있으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실패한 결혼생활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사귀어왔으면서도 결국 서로를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바라보며 깊은 공감과 절망을 느꼈다. 누군가가 나와 같은 모양의 패를 가지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같아보인다고 믿고 싶었을 뿐 다른 패를 모아온 삶이었다면. 내 짝일 것이라 믿었는데 하나같이 맞는 것이 없다면. 매번 다른 패를 내밀어보이는 그가 나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그가 살아온 삶이 그랬던 것이고 그녀와 달랐지 틀렸던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맞는 패를 가진 사람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녀가 내밀었던 패들도 그에겐 이해할 수도 없고 폭력적이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데드 마스크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구나무 서는 남자 ㄴ과 울근불근 싱그러운 살을 가진 여자 ㄷ까지 등장하면서 글쎄, 소소하달까 사실 언뜻 평범해도 묘한 위화감에 고갤 다시 한번 돌려서 보게 되는 기괴함을 안겨주는 세 사람의 짧은 동거 생활을 이야기 한다. 데드 마스크의 주인과 그 데드 마스크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녀의 입을 통해 저자가 옮겨주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쓸쓸하고 건조하다. 삭막해 가물어죽지 않으려 가슴 속에 선인장 한 그루 간신히 키워내는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읽다보니 어린 시절 선인장을 기르려다 그조차 말려 죽게만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좀 더 간절했더라면 그 선인장이 시들어 죽게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일을 하러 가는 길,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 동안 짬짬이 책을 읽었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다 앞에 빈 자리가 나면 뻣뻣해진 허리를 굽히고 가방안에 넣어온 책을 꺼내서 읽었다. 몇 정거장이고 마음을 놓고 읽다가 문득 책 안으로 너무 깊이 들어갔구나, 내가. 싶은 순간에 고개를 들어 내 옆과 앞에 앉은 사람들, 곳곳에 선 사람들의 면면을 주욱 한번, 그리고 주의깊게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제서야 내가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고 안심했다. 셋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그녀와 ㄴ과 ㄷ의 사이에서 너무나 홀로인 기분을 느끼고 책을 덮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빛이 잘 들지 않는 내 방 안에서 이 책을 한밤동안 훌쩍 읽어버렸으면 어떡할 뻔 했어, 겁이 덜컥나도록. 그럴때마다 나는 나홀로 이 책을 읽게 되었으면 어쩌나 오소소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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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는 패러디다 -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5
조현준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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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 몸-신체적 성구분, 정체성, 욕망에 대한 책이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친절하게 책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전에 독자님 '개념'부터 챙겨가시라고 마련해둔 개념 정리 파트도 있었다. 좀 더 전문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전문성이 과했을까 일반적인 내용을 틀어놓았는가 싶은 곳도 눈에 띄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의 글에 어디 모난 부분이 있다 생각하기 어렵지만, 읽기 좀 불편한. 하지만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이 같은 출판사의 같은 시리즈 전권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총서 04' "사상의 번역"이란 책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책은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요 쟁점이 되는 "젠더 트러블"의 주디스 버틀러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성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은 얼마나 심각한지 혹은 우스운지, 결정적으로 적나라한지를 떠나 일단 한번은 관심과 눈길을 끈다. 게다가 이 책 처럼 다양한 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용보다도 더 재미있었던 것은 각 파트 사이에 있는 '깊이 읽기'라는 코너였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여성성이나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용을 다룬 다양한 창작물들을 주제로 이해를 돕는다. 드랙에 관한 주제에서는 드랙퀸과 드랙킹 모두가 나왔던 작년에 본 '헤드윅'이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고, 여성의 미 혹은 여성성, 여성이라는 존재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어 고정되고 표현되어져 왔는지 새삼 인식하게 되기도 했다. 깊이 읽기 부분을 읽는 도중에 근대를 대표하는 신여성 나혜석과 최승희에 대한 언급도 있어 반가운 한편, 특히 영화에 대한 주제가 많았는데 한번쯤은 꼭 보고 싶은 흥미로운 작품들이라 좋았다.

 

 신체적 성구분, 성정체성, 욕망에 대한 학술적 접근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동성애, 마초와 페미니스트 같은 이분법으로 인식되는 일반론적 지식에서 머무르지 않는 확장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움을 틔워주는 역할도 한다. 일례로 GBTQL에 대한 언급처럼.-LGTB로 알고 있던 약자가 달라지고 Q가 등장함으로 인한 헷갈림도 있었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성애를 금기시 함으로써 동성애가 원천적인 선택지 중 하나임을 은연 중 인식하는 결과가 된다는 부분이나, 여성이 자신의 이상을 정하거나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에 시대 이념과 지배사상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성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규정 역시 마찬가지의 반영에 크게 지나지 않게 인식되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부분들이었다.

 

 질리지 않고 끝가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과연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읽게 할 수 있을까는 문제겠지만, 초식남과 알파걸, 골드미스의 등장을 단순히 신조어의 등장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도 해석하여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꽤 강렬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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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번역 - 쑨거의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4
윤여일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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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이어달리기 같은 책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인물들에 대해 알아보려고 시도해봤는데, 타케우치 요시미를 알기 위해서는 루쉰이 등장하고, 그들의 관계 뒤로 쑨거가 이어진다. 단 하나 제대로 건진 정보가 있다면 타케우치 요시미가 남성이라는 것. 반대로 그만큼 배경 지식이 없는 채로 책을 들었다는 뜻도 된다. 사상과 학문이라는 것이 원래 다 이렇게 이어지고 갈라지는 것인지. 독자를 시험하는 듯한 사실은 이래도 계속 다음장으로 읽기를 계속할 것이냐고 확인하는 듯한 내용이 계속되고 있는 책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생각 이상으로 비워진 공간이 많은데 결국 마지막까지 가긴 했으니, 한보 나아가고 두보 밀려난 느낌이 든다.

 

 상대의 상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더 많은 시간과 공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어쩌면 그저 여기서 논의되는 타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에 대해서만 포커스를 잡고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다. 책의 내용 안에서도 나온다. "사상의 번역이란 힘을 다해 상대에게 다가가려고 애쓰지만 동시에 상대와 동화될 수 없다는 자각을 품고, 상대에게 동일시하기보다 상대와 결별해 자신의 환경 속에서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노정이다." 라고. 책을 마주하고 되새기자,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은 자기화 된 결과물 외에는 없을 것이란 사실을. 자기화의 범주가 더 크고 넓어지기 위해선 배경지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말이다.

 

 타케우치 요시미, 루쉰과 쑨거가 일본과 중국의 문학가이자 비평가이기 때문에 사회문화적인 내용이 나오는 부분도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특히 전후 일본에 관한 내용이 나오거나 일본과 미국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는 부분은 불편하기도 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의식을 거론한 부분 등이 특히. 그 외에도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담론도 나오기 때문에 그런 사상이 담긴 부분들은 매우 흥미롭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과 동양의 구도를 두고 어떤 시선으로 세계의 흐름을 인식해야 하는지, 근대화의 과정에서 두 문화가 충돌하며 우와 열의 위치를 형성하는 상황에 대해 어느 위치에서 문제 인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는 6장의 내용은 특히 재미있었다. 다소 생소한 쩡짜의 방향이라는 표현에 공감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지식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리뷰가 아쉬웠다. 나같은 겉핥기가 아니라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글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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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보는 조선 펼쳐 보는 우리 역사
안미연 지음, 한미경 그림, 박성이 감수 / 현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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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우선 한번 주욱 살펴보고 다시 표지로 돌아왔을 때 웃음이 나왔다. 왼쪽 상단에 '펼쳐 보는 우리 역사'라는 문구가 써 있는데 딱 문구 그대로의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표지에서 볼 수 있듯이 서울 시가지를 보여주면서 과거 조선시대의 모습과 비교하는 장면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게다가 거의 매 삽화들이 날개처럼 펼쳐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하나하나 숨겨진 장면들을 꺼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되는 책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이 보여주는 장점들이 바로 약간의 아쉬움을 동반하는 단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서울 특히 종로의 풍경들이 거의 그대로 책 안에 옮겨와 있다는 친숙함도 좋았고, 바로 그 자리가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함께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기왕 올컬러 구성이라면 그림과 함께 실제 사진 자료도 첨부되어 비교하게 할 수 있었다면 더 현장감있고 아이들이 미처 직접 가보지 못한 서울의 모습까지 전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구성 사이에는 교과서 돋보기라는 내용들이 같이 있는데 아이들 교과 과정에 맞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인 것 같다. 그런데 대상 연령이 몇 세 정도인지 정확한 안내는 없는 점이 또 살짝 아쉽다. 기왕 구성을 교과서 돋보기라고 해둘 것이라면 몇 학년 혹은 몇 세 권장이라는 간단한 안내가 있다면 선물용으로도 썩 좋을 것 같은 책이다.

 

 다만 기왕의 구성이라면 좀 더 화려한 삽화를 넣었다거나 약간의 팝업 효과를 더 가미했으면 아이들의 흥미를 끝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색감이나 그림이 다소 담백하게 느껴지는 점이 없지 않고, 책의 장면장면이 날개를 펼쳐서 보도록 되어 있는데, 거기에 팝업북처럼 약간의 장치를 더했더라면 펼쳐보는 형식의 반복에서 오는 권태로움을 상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다.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의 반복적인 평이 오가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는 것이지 그 아쉬운 점이 좋은점을 모두 뒤덮어 버린다는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책 임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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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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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 '눈알수집가'에 이은 '눈알사냥꾼'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어떤 불의의 사건과 사고들이 언젠가는 또 반복적으로 일어나리란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했다. 범인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된 것이 모든 추리소설의 결말이 될 수 없음도. 누구인가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전에 눈알수집가에 대한 주위의 반응에 대해 설명하며 리뷰를 시작했었는데, 눈알사냥꾼 역시 비슷한 에피소드를 자랑한다. 눈알사냥꾼이란 제목이 보여지는 순간 상상하는 내용보다 덜 자극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하고, 그 설명이 "그러니까 이 전작은 눈알수집가란 책이 있는데 이건 그 책의 후속작인 눈알사냥꾼이야"라는 대목에 오면 반복되는 눈알이란 단어에 상대방은 이미 질린 얼굴로 책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서문에서 이 눈알시리즈가 얼마나 더 이어지게 될지 모르겠단 작가의 언급이 있어서 대체 얼마나 많은 눈알들이 이어져야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상당히 온순한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는데, 왜냐면 전작 눈알수집가의 내용이 기억나질 않아서 였다. 다시 읽고 눈알사냥꾼을 읽을까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그러지 않은게 오히려 더 나았던 것 같다. 눈알사냥꾼을 읽다보면 대목대목에서 눈알수집가를 읽었던 내용들이 떠오르며 퍼즐처럼 기억나지 않았던 부분이 채워 맞춰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머리속 어딘가에서 번뜩이며 되살아나는 기억을 느끼는 일이 또 하나의 재미가 되어주니 혹시 눈알수집가를 읽었고, 지금 사냥꾼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복습없이 시작하길 권한다. 전작은 안 읽었던 사람이라면 가급적 읽고 사냥꾼을 시작하라 말해주고 싶고. 앞권에 있던 내용이나 상황이 이어져서 나오는데 몰라도 충분히 읽을 순 있지만 "왜"인지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덜하다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재미도 덜할 것 같다.

 

 모든 등장인물이 모두 모이게 되는 것은 책의 절반정도 읽었을 때 즈음인데 그 때부터는 읽는데 속도가 붙어 잠깐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흡입력이 높아진다. 어떤 내용을 꺼내던 다 중요한 흐름에 대한 암시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러운데 전편보다 더 재미있어진 것 같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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