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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는 패러디다 -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읽기와 쓰기 ㅣ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5
조현준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 몸-신체적 성구분, 정체성, 욕망에 대한 책이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친절하게 책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전에 독자님 '개념'부터 챙겨가시라고 마련해둔 개념 정리 파트도 있었다. 좀 더 전문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전문성이 과했을까 일반적인 내용을 틀어놓았는가 싶은 곳도 눈에 띄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의 글에 어디 모난 부분이 있다 생각하기 어렵지만, 읽기 좀 불편한. 하지만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이 같은 출판사의 같은 시리즈 전권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총서 04' "사상의 번역"이란 책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책은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요 쟁점이 되는 "젠더 트러블"의 주디스 버틀러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성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은 얼마나 심각한지 혹은 우스운지, 결정적으로 적나라한지를 떠나 일단 한번은 관심과 눈길을 끈다. 게다가 이 책 처럼 다양한 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용보다도 더 재미있었던 것은 각 파트 사이에 있는 '깊이 읽기'라는 코너였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여성성이나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용을 다룬 다양한 창작물들을 주제로 이해를 돕는다. 드랙에 관한 주제에서는 드랙퀸과 드랙킹 모두가 나왔던 작년에 본 '헤드윅'이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고, 여성의 미 혹은 여성성, 여성이라는 존재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어 고정되고 표현되어져 왔는지 새삼 인식하게 되기도 했다. 깊이 읽기 부분을 읽는 도중에 근대를 대표하는 신여성 나혜석과 최승희에 대한 언급도 있어 반가운 한편, 특히 영화에 대한 주제가 많았는데 한번쯤은 꼭 보고 싶은 흥미로운 작품들이라 좋았다.
신체적 성구분, 성정체성, 욕망에 대한 학술적 접근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동성애, 마초와 페미니스트 같은 이분법으로 인식되는 일반론적 지식에서 머무르지 않는 확장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움을 틔워주는 역할도 한다. 일례로 GBTQL에 대한 언급처럼.-LGTB로 알고 있던 약자가 달라지고 Q가 등장함으로 인한 헷갈림도 있었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성애를 금기시 함으로써 동성애가 원천적인 선택지 중 하나임을 은연 중 인식하는 결과가 된다는 부분이나, 여성이 자신의 이상을 정하거나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에 시대 이념과 지배사상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성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규정 역시 마찬가지의 반영에 크게 지나지 않게 인식되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부분들이었다.
질리지 않고 끝가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과연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읽게 할 수 있을까는 문제겠지만, 초식남과 알파걸, 골드미스의 등장을 단순히 신조어의 등장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도 해석하여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꽤 강렬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