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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설탕에 대해 듣다보니 사탕수수를 보다가도 설탕수수라고 말이 나오는 설탕사탕붕괴현상이 일어났다. 온통 설탕에 대한 이야기 뿐이지만 읽다보면 사람과 세상을 알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설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작은 차와 함께 한다. 차와 설탕의 관계가 뗄 수 없이 긴밀히 이어져 내려온 것을 찰스 2세와 카타리나 공주의 정략 결혼과 엮어내 읽기 쉽게 풀어내며 흥미를 잡았다. 포츠머스의 귀부인들이 카타리나 공주가 아름다운 찻잔에 담아 마신 음료의 정체를 궁금해 했던 것처럼 차 한 잔에 곁들일 설탕과 함께 책을 만나보자.
세계 제 1의 설탕 생산지로 도약한 브라질의 과거사를 읽다보면 브라질에서 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지 알게된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나온 '뽀르뚜까'라는 호칭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제제네 남매들의 피부색과 머리카락색에 대한 묘사 등이 포르투갈 이주민과 현지 원주민 사이의 혼혈 인구 구성(124)을 바탕으로 이해됐는데 역사라는 키워드가 아닌 설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뻗어나간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 좋았다.
설탕은 곧잘 금과 담배, 술로 연결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골드 러시에 대한 부분이나 미국의 목화밭, 쿠바에서 만난 캐나다 사업가와 함께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설탕에서 잠깐 주제를 벗어났나 싶다가도, 쿠바에서 피운 시가와 어울리는 술로 럼을 꼽으며 중심은 다시 단맛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벗어난 듯 느껴졌던 길에서 관타나모에 얽힌 미국, 스페인, 쿠바 간의 조약과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 두 편을 소개 받았으니 이런 흐름 또한 나쁘지 않았다.
사탕수수, 사탕무 같은 작물과 설탕은 우리 땅에서 재배하고 생산했던 작물이 아니라 그 역사가 멀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설탕과 전쟁, 노예, 식민의 역사가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흑인 노예를 대신할 노동력을 얻기 위해 이주민을 받았는데, 지난 광복절 때 티비 프로그램 강연에 나온 적 있는 첫 이민 세대인 이들이 독립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아 힘을 보탠 일화가 여기서도 소개 되고 있다.
책의 중반 쿠바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멕시코를 통해서 이주해 온 한인 여성의 후손인 소녀들과 만난 이야기(157)는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과 소설 [검은꽃]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 인신 매매, 취업 사기나 다름없는 이주 노동의 역사는 마찬가지로 '9장 하와이, 설탕, 그리고 우리'의 내용과 이어진다. 하와이 사진 신부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란 소설이 이 배경을 다루고 있으니 읽어봐도 좋겠다.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핫초콜렛 가루가 너무 달길래 덜 달게 마시고 싶어 카카오 가루를 샀을 때 깨달았다. 카카오 가루는 달지 않았다. 초콜렛 특유의 향과 색이 진한 카카오 가루는 그만큼 쓴 맛이 났고 거기에 설탕을 넣었을 때 비로소 알던 초콜렛 맛이 났다. 초콜렛은 원래 달다고 생각했지만 단맛을 내는 설탕이 들어가서야 아는 맛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는 설탕을 넣었는지 혹은 생각보다 많은 양의 설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먹는 것들이 더 있을 것이다.
단맛에 단맛을 더하는 자극적인 음식들이 유행하는 지금, 설탕은 더 많은 수요를 낳고 그만큼 많은 배척을 당하고 있다. 과거의 설탕이 제국주의와 식민지, 노예 무역을 둘러싼 전쟁 속에서 파이를 키워나갔다면, 현재의 설탕은 사람들의 입맛과 건강 사이에서 여전히 그 나름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설탕 전쟁'은 설탕이 얼마나 유능한 싸움꾼으로 우리 생활 속에 자리를 잡아왔는지 그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마냥 달지만은 않은 설탕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설탕 전쟁'과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