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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되기 ㅣ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얼마 전 읽은 책에서 폴 오스터의 [겨울 일기]에 대한 글을 보고 몇번이나 곱씹었다. [겨울 일기]에서 폴 오스터는 과거의 자신을 '당신'이라 칭하며 거리를 둔다. 반면 집이라는 공간은 세세하게 담아내며 전에 살던 곳의 주소까지 기록했는데, 그 차이는 공간이 과거나 미래의 자신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기억과 경험을 되살려주기 때문이었을까 싶었다. '관내 여행자 - 되기'도 사건과 사유를 공통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통로로 공간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어 읽어보고 싶었다.
연초에 친구와 짧게 하루를 보내며 그때는 제법 큰 결심을 한 것처럼, 앞으로 우리가 서로 만나 시간을 보내는 날이 일년에도 몇번 되지 않을테니 만나고 나면 그날의 기록을 해두어야 겠다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실천은 다짐보다 늦어 그날의 기록조차 아직이고 그 뒤로 날이 더우면 덥고, 비가 오면 와서 만남마저 늦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관내 여행자 - 되기'에는 바로 그런 기록이 담겨 있어 의미와 자극이 남달랐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의정부'편이었는데, 의정부 고산동이라는 지명과 뺏벌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충격이 있었다. 언젠가 가보리라 마음 먹고 찾아보니 25년까지 도시새뜰마을사업으로 생활 여건을 개조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라 하니 책에서 본 것과는 다른 느낌의 마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레방 이전 같은 '역사 지우기' 움직임이 동두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니지모리 스튜디오 같은 곳을 운영하고 일본의 유곽마저 재현하는 시에서 옛 성병 관리소 같은 역사는 지우려는 것이 안타깝다.
다른 부분을 꼽자면 일터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퇴근길의 택시나, 회사 화장실, 점심시간의 산책 같은 소소하고 현실적인 공간들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점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다 공감되는 내용이라는 점이 또 안타깝기도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사회성을 발휘해야 했던 시간, 화장실 칸마다 문을 열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내쉬어야 했던 한숨, 도시를 가로지르던 천을 따라 끼니 대신 걷던 걸음 같은 것들이 선명했다.
' 관내 여행자 - 되기'는 나와 짧은 여행길을 함께 떠났다. 간만에 떠나는 여행은 빈 곳이 많았고, 캐리어의 남는 공간에 책을 한 권 넣으면서 이게 맞나 싶었다. 여행을 떠나서도 책을 읽을까, 여행에 여행자 되기를 끼워넣으면 너무 보란듯한 선택이 아닌가. 여행지의 뜬 시간 속마다 책을 펼치며 책 안의 가볍지 않은 걸음을 따라 가다보니 어쩌면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여행에 어울리지만 여행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무게가 있었다.
두 작가가 서로 주고받는 공간과 경험을 바라보며 연초에 했던 다짐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둘이서' 불현듯 함께 길을 떠날 수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이 특별함을 경험해보고 나니 이번에야 말로 우리가 걷고 보낸 시간들을 기록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명상으로 빼벌마을
**[두레방도 성병관리소도…여성 착취 현장 ‘역사 지우기’ 시도] 한겨례 이준희 기자 20240828
https://v.daum.net/v/20240828164509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