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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 화가가 평생 그린 소재 중에서 요아르가 가장 어려웠다. 그가 그의 친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화폭에 담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여름의 그 날, 해가 지기 시작하자 요아르가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너는 이 좆같은 마을에서 좀 떠나야 해." "그런 말 하지 마." 화가가 애원하자 요아르는 화를 냈다. "아니, 넌 떠나야 돼. 우린 이미 망해서 상관없는데 넌 아니거든? 씨발, 넌 존나 대단해서 전 세계가 인정하는 화가인데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뿐이라고. 다른 새끼들이 너 대단한 거 알아봐도 그전에 우리가 먼저 알아챘으니까 그것만 까먹지 마." 43"
프레드릭 배크만. 이 이름이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이름을 앞에 두었을 뿐인데 어디선가 '탕 탕 탕 탕 탕' 베어타운의 하키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실제로 들어본 적 없는 퍽을 날리는 소리를 마치 일상처럼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야기꾼과의 재회가 반갑고 기뻤다. 기대를 품고 책을 읽기 전에 어플을 하나 눌러 앤 마리의 노래를 찾았다. 어쩐지 십대시절의 풋풋한 한 때를 담은 노래를 들으며 읽어야겠다 싶었다. 경쾌한 리듬을 따라 튀어오르던 마음이 점차 다르게 두근거렸다. 어른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가득한 시작을 읽으며 나는 왜 어른이 되어버렸을까 안타까웠다. 십대의 내가 읽었다면 루이사의 마음이 어떻게 다가왔을까. 지금의 나는 안타깝게도 작품이 주는 충격과 감동에 빠져들기보다는 인테리어와 사진, 가격, 샌드위치의 만족감과 더 가까운 것이 확실한 어른이었다. 루이사와 이렇게 멀리 떨어진 채로 괜찮은걸까. 이 예리하고 불완전하지만 순수한 감성 앞에서 얼마나 마음을 열고 부딪혀 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이번에도 프레드릭 배크만이 열어줄 따뜻하고 감동적인 휴머니티가 살아있는 세계로 무사히 빠져들 수 있을까. '탕 탕 탕 탕 탕' 들어본 적 없는 퍽 소리를 속으로 따라하며 바다로 뛰어들듯,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기꺼이.
우연하고도 운명적인 부딪힘으로 시작된 루이사와 화가/크리스티안/킴킴의 만남은 마치 두 사람의 생이, 두 우주가 온 존재를 다해 부딪혀 공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루이사와 화가의 만남은 마치 비슷한 색을 가진 영혼이 서로를 알아보고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듯이 자연스럽게 얽힌다. 그저 한 그림을 아주 오래도록 소중히 바라고 사랑해왔을 뿐인데, 그 안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이들의 닮아있음은 서로의 마음을 울린다. 이들의 짧은 공명은 피스켄의 죽음이 루이사에게 커다란 상처와 온 생을 통틀어 어찌할 수 없는 깊은 흔적을 남긴 것처럼, 소중한 이의 상실이라는 공통의 상처를 가진 테드와 연결된다. 서른 아홉, 마흔이 되어서 다시 열네살 시절이나 다름없는 열여덟, 날 것의 루이사를 상대해야만 하게 된 테드에게 몇번이나 위로와 응원을 보내야 했다.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는 동안 어느새 "팔이 하나뿐이 남자를 나무에서 떨어뜨리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133)" 묻는 농담이 재밌어졌다. 그리고 루이사에게서 요아르며 알리가, 지나가버린 열네살의 날들이 느껴지는 때면 어쩐지 눈물이 났다.
테드, 요아르, 알리, 크리스티안. 열네살들은 저마다의 고통을 버겁도록 안고 있음에도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아낄 줄 모른다해도 어쩔 수 없으리라 여길 수 밖에 없는 학대와 방치를 당하면서도 이들은 사랑과 관심을 나눈다. 받아본 적 없는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면서 아낌없이 표현했고, 온 힘을 다해 서로를 지키고 붙잡고 싶었으면서 어쩌지도 못하고 놓쳐버려야 했다.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기에 그럼에도 서로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반짝이던 시절에 나누던 시덥지않은 농담과 말다툼에 웃음이 나다가도 그 반짝임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박제되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가끔 이들이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너무나 깊게 느껴질 때면 당황하곤 해야했다. 이렇게 열렬히 누군가와 이어져있던 때가 있었던가? "나이를 먹으면 기억하지 못하는 심장의 두근거림(22)"처럼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그것마저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런 관계도 '경험해 본 사람만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경험하지 못한 경우라면 설명할 도리가 없이(22)'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은 꼬박 하룻밤이 전부였고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랑에 그보다 더 미친 듯이 빠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느낌을 절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522"
이 웃기고, 씁쓸하고, 가끔은 어이없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때로 너무나 달아서 놀랍기도 했다. 사랑을 쏟을 곳은 오직 서로 뿐이라 그들이 가진 가장 부드럽고 달고 상냥한 마음을 거칠고 날카로운 유머안에 녹여냈는데 그래도 문득문득 그 마음이 너무 달아서 이보다 달고 간질이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최근에 달리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을 정도다. 치마를 입기 싫어하는 알리를 위해 세 친구 모두 치마를 입고 공연장에 온다. 가장 힘들어하고 피하고 싶어하는 일을 함께 해주는 마음, 치마를 입은 소년들을 상상하며 웃음이 날 지언정 따뜻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봄날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기대할 때 추천해주어도 될만큼 사랑으로 가득하다. '나의 친구들'은 장편을 장편으로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흡입력과 실없는 농담에 점차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게 되는 친근함, 빛이 나던 열네살의 어느 바다에 함께 뛰어들었던 것 같은 반짝임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하지만 프래드릭 배크만을 너무나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싶지 않기도 하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힘껏 저항한다. 살아가기 위해 애쓰면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인물들을 응원하고 사랑하게 만들면서, 어딘지 모르게 감도는 슬픔의 그림자를 한 구석에서 조용히 품고 있게도 한다. 베어타운 삼부작의 마지막을 기꺼운 마음으로 읽지 못한 이유도 거기있다. 너무나 좋은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의 안온을 빌게 되는 것처럼, 이야기 안으로 빠져들어가면서도 이면의 그늘을 느끼게 되는 것이 지워지지 않고 남은 얼룩처럼 마음에 걸렸다. 처음엔 슬픔이 너무나 크게 다가와 웃으며 읽으면서도 괴로운 마음이 컸는데, 삶이 누구에게나 공평히 안배해놓은 저마다의 굴곡 또한 어쩔 수 없는-때로는 필요했을지도 모를 과정이었음을 천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슬픔과 괴로움 마저도 프레드릭 배크만의 세계 속 인물들을 만나면 그 안에서 제 소임을 다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품는다는 것은 깨어지기 쉬운 믿음이다. 하지만 '나의 친구들'은 그 믿음을 더욱 굳게 다지며 기대 이상의 감동을 보여주었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운, 오래도록 아끼게 될 만한 또 하나의 '나의 친구'가 되어준 책이다. 온 세상을 봄에 한걸음 더 가깝게 만들도록 내린 봄비처럼, 독자의 마음을 온통 감동과 따뜻함으로 물들일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나의 친구들'을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