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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 ㅣ 에세이&
이근화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솔직한 글이라 어떨 때는 웃고, 어떨 때는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나와 다른 사람. 때로 덮어두는 것이 편해 드러내지 않는 속을 성큼 보여주는 내용에 금방 마음이 풀어졌다. '다 큰 아이가 팬티에(40)',하는 부분은 너무했다고 웃었다. 분명 네 아이들 중 누군가는 "아! 엄마!!"하고 소리를 지르는 날이 오겠지. '틴에이저, 열한살의 사회생활(132)'에 대해 읽으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어쩌면 전혀 다른 기억이 쓰여지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미리 짐작이라도 한 듯, 그 단락을 시작하며 작가는 " 기억 속의 친구들은 나의 착각이나 오해 속에서 떠들고 움직입니다. 멀리 있는 그들을 나의 사랑 위에 가만히 놓아봅니다. (130)"하는 문구를 덧붙였다. 쓰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싶었다. 일상이 하루씩 꿰어서 한 권의 책이되고, 어떤 하루는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새겨지는 것.
정말 혼자일 때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를 읽었다. 조용한 시간 속에서 기대보다 많은 휴식을 얻었다. 돌봄과 사회, 정치 문제들(비상계엄, 코로나, 기후변화, 인공지능 등)도 담아내 현실을 외면하고 힐링과 위로만 담은 내용이 아닌데도 차분한 어조에 신경이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작은 인간들'과 '숲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내용이 특히 좋았다. 기억 속에 때때로 맴도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바다 건너 초록불(위대한 개츠비)'처럼 느껴졌다. 안녕을 빌며 떠올려 볼 사람들이 있던가 짚어보았는데 글쎄, 아직은 누구에게 달아주고픈 입술이 없다. 혹은 입술을 달아주고픈 누구도 없는지 모른다. 있는 입술도 떼어버리고 싶은 사람들은 좀 있었던 것도 같다.
시인의 에세이여서 종종 등장하는 다른 시와 산문들이 반갑다. 이럴 때 이런 시를 떠올리는구나, 시인은 이런가? 해석하기 어려운 언어로 세상을 그리는 사람의 팔레트를 살펴 본 기분이 든다. 책을 다 읽은 뒤에 이리저리 책을 살펴보니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가 에세이&의 여덟번째 책이었다. 사실 전에는 에세이로 구분되는 분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몇 해 전부터 만나게 되는 에세이들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었구나 싶어졌다. 어쩌면 취향이 변했을지도 모르고. 앞서 나온 다른 책의 목록을 살펴보니 익숙한 이름들이 보여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시끄러운 세상과 변덕스러운 날씨에 지쳤다면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와 함께 조용한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더불어 에세이&의 다른 책들도 함께 살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