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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
박찬일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 미식과 음식의 철학은 도시의 식탁 위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이다. 생산자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생산자들을 만나러 농어촌에 가면 더러 밥상을 받게 되는데, 제일 먼저 듣는 인사가 "좋은 건 다 팔아치우고 우리는 이렇게 소박하게 먹어요. 미안해요"다. 도시의 미식을 떠받치는 생산자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도시인의 시각에서 보면 가장 낮은 단계의 미식을 누리고 산다. 6"
약 10년 전 '뜨거운 한입' 초판 출간 이후 개정판이 나오며 바뀐 제목이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라고 한다. 전보다 더 과격해진 제목이지만 확실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 토마토와 가지에 가격이 990원에서 2890원까지 오르내리는 웃기는 애호박만 곁들이면 라따뚜이를 만들겠구나 였다. 참고로 오늘의 애호박 시세는 1190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의 생활과 관심사는 먹고 사는 것으로 채워져있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여러 범주에서 강조되고 있다.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는 그 중, 먹는 일을 다루니 자연스럽게 삶이 따라온다. 식재나 음식과 관련된 내용의 글들이 묶여있다보니 읽으면서 할 말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책이다. 십년 전에는 왜 몰랐을까 아쉬울 정도로 매력 넘치는 내용들이 많다.
미역냉국에 가지가 들어 있던 어린 시절(28)을 이야기할 때 놀랐다. 오이가 아니라 가지라니. 낯설다. 어린시절부터 가지볶음을 좋아했던 가지사랑단원인데도 냉국에 들어간 가지를 떠올리면 가지헤이터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도 갈 것 같다. 미역냉국에 가지를 넣으시던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쌀이 없어 우동으로 저녁밥을 해먹는 형편을 이웃에게 알리기 싫어하셨다는 가오(65)와 콩나물 50원 어치씩 나눠사기 전략(37)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즐거움이었다.
식재와 관한 일화 중 유순히 읽어넘기지 못한 것 중 하나가 닭껍질(54)이다. 바삭하게 익혀진 전기구이 같은 껍질은 모르겠지만, 백숙의 껍질을 떠올리면 물컹하고 닭살이 돋아난 껍질이 상수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비슷한 생각은 비계(138)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굽기라도 할라치면 온 주방을 기름 자국 가득히 만드는 물컹한 비계가 억울할게 뭐가 있어!싶은 것이다. 하지만 얇은 삼겹(대패로 하면 편하겠지)으로 닭을 감아 오븐에 구워내는 이탈리아 닭요리는 도전해보고픈 '천국의 맛'이다.
맛이 아닌 통각(144)의 식재료인 마늘에 대한 내용에선 결혼을 했더니 시댁에 가는 날이면 마늘과 고추를 사다두고 손질을 시켜 며칠을 붓고 쓰린 손가락에 고생했다는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양파를 썰면 눈물이 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늘과 고추의 매운 기운이 화상과 같은 자극을 피부에 일으킨다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다. 이밖에도 감각으로 맛을 더하는 심지가 살아있는 리조토(39), 목구멍을 치고 넘기는 맛의 소바(79), 후각을 때려오는 홍어(123)의 소개도 인상적이다.
재료와 음식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빠질 수 없다. 재밌는 것은 압구정은 맥도날드(215)가 차지했다. 그 1호점이 압구정에서 시작했단 것이 이유인데, 과거 친구들이 롯데리아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내용이기도 했다. 국밥을 이야기할 때 전주(168)가 등장해 돼지국밥과 순대국밥 애호가들은 섭섭했을지도 모르나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다'는 전주의 콩나물국밥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반가운 등장이었다. 하지만 부대찌개(186)는 자고로 의정부식이 제일이라 꼽는다.
누군가가 물으면 어김없이 요리가 싫다고 한다. 물론 요리는 때로 재밌다. 하지만 그에 따라오는 정리의 과정이 요리를 바라보는 눈을 감게 만든다. 마트와 시장을 돌아보며 재료를 사는 것, 책이나 유튜브 같은 것을 보며 과정을 따라해가는 재미는 좋지만 기름 튐, 연기와 냄새, 설거지, 남은 식재료 보관과 소진같은 것들이 날 지치게 한다. 게는 남이 발라준 게살이 가장 맛있고, 대기업에서 배합한 양념장에 높은 신뢰도를 보내고, 음식은 사먹는 것이 최고라고 외치는 사람은 입으로만 음식을 즐기다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를 통해 직업과 삶으로서의 음식을 배우게 되어 좋았다. 요리와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가 입맛에 맞을 것이다. 반드시 맛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