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거의 없는 편이다. 친가쪽이나 외가쪽 할아버지 두 분 모두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 뵐 일이 있어도 어렵게만 느껴질 뿐, 할아버지께 어리광을 부리거나 해 본 기억이 없다. 어릴 때는 여름방학동안 곧잘 할아버지댁에서 지내곤 했는데, 그 때도 그저 난 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고 지내는 정도였고, 할아버지께서는 그런 나를 공부 열심히 한다고(?) 기특해 하시곤 했었다. 

정작 할아버지로서의 진한 애정은 장손이었던 내 동생에게만 갖고 계셨기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나 나나 서로에 대해 깊이 알지도 못하고 딱 피붙이로서 필요한만큼의 애정만 지닌 채 지내온 것 같다. 할아버지께선 내가 결혼하고 얼마 안 있다 돌아가셨는데 어른이 되도록 할아버지와 내가 같이 만든 추억 하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쓸쓸하게 했었다. 하긴...어쩌면 그런 추억이 없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별로 없었기때문에 할아버지의 죽음앞에서도 나는 의연할 수 있었던것이겠지. 

리버보이를 읽고 제일 먼저 떠올린것은 이렇듯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 아이들이기도 했다.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슬픔과 충격의 크기는 분명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과 애정의 깊이에 비례할것이고, 그 만큼 죽음이라는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터... 15살 제스와 엇비슷한 나이의 우리 아이들에게 만약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죽음이 찾아온다면 그 애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 상실을 극복해 나갈것인지...그 후에 자신들 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그리고 그런 모습을 나는 또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것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은 착잡해지고 제스가 겪고 있는 온갖 심정의 변화가 나에게도 똑같이 찾아든 듯 싶었다.

리버보이는 어찌 보면 매우 심심하게 보일 정도로 별다른 변화가 없는 장소를 배경으로 극적 요소가 없는 내용을 단순한 등장인물들이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이렇게 지루한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계속 읽어나가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독자로 하여금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소녀 제스를 자꾸만 응원하게 만드는 저자의 이야기 솜씨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었던 듯 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흘러가며 순환하는 강물을 인생의 시작과 끝에 비유하며 소설의 배경으로 선택했으리라. 또한 할아버지에겐 그림을 통해, 제스에겐 수영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게 함으로써 주인공들 모두 삶과 죽음에 대해 의연한 태도를 보이도록 하는데 이 또한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들을 응원하게 만드는 이유중의 하나다.

죽음을 앞두고 움직이기조차 힘든 몸으로 마지막 그림 "리버보이"를 완성하려는 할아버지의 고집스러운 의지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제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손을 움직일 수 없어 결국 그림을 포기했을 때 제스가 할아버지를 설득해 함께 그림을 완성하는 장면은 잔잔하게 흘러가던 내용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 사람은 생을 마감하면서, 또 한 사람은 삶에의 도전을 시작하면서 완성한 그 그림은 할아버지와 손녀를 이어주는 매개체요, 삶의 끝과 시작이 만나는 접점, 그리고 할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손녀가 대신 이루기를 바라는 희망이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되지만, 제스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경험했던 슬픔, 연민, 좌절, 깊은 애정까지 수많은 감정들을 할아버지와의 추억으로 마음속에 담아둘 수 있게 된다.

제스가 할아버지와의 이별여행에서 만난 리버보이는 살아가면서 늘 되새겨야 할 <꿈>이자, 삶에 대한 <정신>이다. 바다까지 흘러가는 강물에 동화되어 유려하게 헤엄쳐갔던 리버보이는 바로 죽음을 앞두고도 삶에 자긍심이 있었던 할아버지요, 또한 할아버지의 죽음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 앞에 놓인 삶에 도전하는 제스 그 자신이었다. 리버보이는 또한 수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다. 끊임없이 삶을 시작하고 도전하고 끝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리버보이는 늘 이렇게 말할것이다.

삶이 항상 아름다운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고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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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14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뉴베리 수상작이던가요? 읽고 싶은 책인데... 제목 때문에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나네요. ^^

책향기 2008-01-14 14:40   좋아요 0 | URL
해리포터를 제치고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다고 광고하더군요. 해리포터를 제쳤다는 말에 내용이 굉장히 역동적일거라 생각했는데 잔잔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어요^^

미즈행복 2008-01-16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와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싫어하는 엄마가 대부분 아닌가요? ^^ -시댁 다들 안가려고 하잖아요-

책향기 2008-01-17 14:46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추억을 만들어주기 싫어한다기보단 생활이 바쁜것도 이유중 하나일거 같은데요...저는 결혼해서 시아버님이랑 8년가까이 살다 분가했고 지금도 2주에 한번씩은 찾아뵈요. 근데 아버님이 움직이는걸 싫어하셔서 아이들과의 추억이란게 그저 집에서 TV시청하는것밖에 없을거 같아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