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사건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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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젊은 작가이자 선봉파의 기수로 잘 알려진 '위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 등의 장편소설을 통해서 그는 국내 팬들을 다수 확보한 나름의 인기 작가다. 그래서 강호도 이미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서 그 쏠라닥질 같은 인생사를 제대로 보았다. 그 속에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등 격변기가 관통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가 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위트 가득히 풍자를 한 아름 담아 펼쳐낸 이야기였다. 그래서 '위화'하면 이제는 낯설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그가 쓴 그 두 권의 소설에 아직도 매료되긴 하는데, 물론 올해가 가기 전 <형제> 3권에도 도전할 참이다. 그전에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위화의 신간이 나왔다 해서 몇 주전 사 이번에 읽게 된 소설이 있다. 바로 <4월 3일 사건>이다. 

'카프카'적 느낌이 다분한 '위화'의 중편집, <4월 3일 사건>

얼추 제목만 보면 우리의 참혹했던 '제주 4.3사건'을 떠올리는 제목의 이 작품은 위화의 중편소설 4개를 모아놓은 책이다. 물론 마지막 이야기는 짧아서 단편으로 봐야겠지만, 그런데 이야기를 쓴 시점으로 따지면 신간은 아니다. 모두 위화의 초창기 시절 80년대 후반에 습작 비스름하게 써온 작품들이고, 그 중에서 옥석을 가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신간으로 펴낸 것이다. 또 다른 단편집 <무더운 여름>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이 중 <4월 3일 사건>을 먼저 읽게 됐는데, 그런데 이 책의 느낌이 기존의 <인생>이나 <허삼관 매혈기>와는 완전히 180도 다른 분위기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어 깜짝 놀라기도 한데, 그것은 어떤 대단한 소설을 발견했다는 의미보다는 그 문체와 내용에 있어 기존과 확연히 다른 점에서 느끼는 원초적인 느낌이다. 마치 '그로테스크'하기로 유명한 '카프카'적 느낌으로 다가온 이 <4월 3일 사건>.. 네 편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첫 번째 이야기는 표제작 <4월 3일 사건>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어떤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긴 한데, 그런데 이 사건이 정확히 나오질 않는다. 더군다나 화자인 주인공의 이름도 없이 그냥 '그'로만 나온다. 바로 십대 소년 '그'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고,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이 와 닿지 않게 꽤 이상하다. 때로는 몽환적인 풍경을 그리며 비현실적이면서 추상적인 묘사로 일관해 읽는 이로 하여금 머리를 싸매게 한다. 즉, 이야기 하려는 대상 자체도 명확하지 않은 채 그 소년의 내면의 심리적 감정을 묘사하며 그 소년이 위험에 쌓인 그 어떤 음모를 밝히려 한다. 다분히 '그' 중심으로 써내려 갔지만 기이하고 모호할 뿐, 과연 그 음모는 실제로 존재한 것일까?

두 번째 이야기는 <여름 태풍>이다. 이야기는 제목처럼 그 어떤 자연재해를 다룬 이야기다. 최근에 개봉한 중국영화 <대지진>에서 나왔던 '당산 대지진'이 여기서 언급한다. 여기서 화자는 '바이수'라는 소년이다. 그 소년이 이 당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관측을 탐지했다는 등의 에피소드를 전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자연재해 앞에 무너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나온다. 학교 선생님부터 해서 그와 관련된 사람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이들의 관계를 알 듯하면서도 도통 알 수가 없는 구조를 띈다. 시간적 흐름이 없이 대사는 허공을 맴돌며 표현의 의도 또한 모호하다. 더군다나 지진과 태풍이라는 자연재해 앞에 선생의 아내와 소년의 관계도 모호하고 그 어떤 의미를 알 수 없는 상징과 비유로 가득해 모호한 정서적 울림만 주려는 느낌이다. 과연 잘 전달이 된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어느 지주의 죽음>이다. 그나마 앞선 두 개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확실하고 명확하게 들어오는 이야기 구조를 띄고 있다. 제목처럼 배경은 중일전쟁 시기 중국 시골의 어느 지주 집안이 있다. 그 집안의 아들이 일본군의 길라잡이로 나서면서 아비는 그 아들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집사 '쑨시'가 직접 찾기 위해서 그들을 쫓는다. 그러면서 일본군이 행군하는 동선을 좇으며 그들의 만행을 이야기하고, 길라잡이가 된 아들은 그들을 엉뚱한 곳으로 이끎으로써 죽음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먼 이방에 온 군인들의 처연한 마음을 전달하며, 아들의 심정과 아들을 잃은 아비의 심정을 대비시켜 그리고 있다. 물론 제목처럼 이 지주 가문은 마지막에 죽는다. 특히 아비는 너른 벌판의 똥통 옆에서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조용히 숨을 거두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마치 <인생>에서 누구처럼 말이다. 아무튼, 앞선 두 개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서사 구조가 명확해 이야기 전달이 잘 된 작품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조상>이다. '어느 지주의 죽음'을 통해서 받은 이야기감이 다시 앞의 '4월 3일 사건'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 이야기도 도통 모호할 뿐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어떤 우리네 할아버지 같은 '조상'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 자연을 담아낸 그 어떤 숲에 대한 원시적 존재와 동경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그러면서 그 원시적 존재에 대한 애틋함과 두려움을 한 아이의 시선으로 묘사한 이야기인데, 여기서 조상은 그 숲에서 알 수 없는 '괴수'로 어른들의 눈에 비춰지고, 편견에서 자유로운 아이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대비감을 준다. 더군다나 그 괴수가 나타났을 때 어른들은 공포에 휩싸여 공격하고 잡은 괴수를 조각을 내는 등 잔혹함을 보인다. 과연, 그 소년이 보았던 숲속에는 그런 괴수(조상)가 살고 있었을까?



'위화'의 색다른 작가적 풍모를 볼 수 있는 중편집, <4월 3일 사건>

이렇게 본 네 편의 이야기들을 살펴봤는데, 물론 마지막은 단편의 느낌이지만 아무튼 어느 것 하나 쉽게 와 닿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다만 세 번째 이야기 <어느 지주의 죽음>을 빼놓고선 나머지 세개는 참 그로테스크한 기이함과 모오함의 이중적 구조를 띄고 있다. 바로 소위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전위적 작품들이라 볼 수 있는데, 보편적 서사가 아닌 전통 서사를 구사하며 이야기 전개의 알레고리를 뒤집는 묘수까지, 이번 위화의 중편집은 다분히 그 색과 맛이 기존에 잘 알려진 <인생>이나 <허삼관 매혈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접하고 읽는 이들에게는 꽤 낯설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작법 자체가 '카프카'의 영향을 받은 느낌으로 다가오며, 위화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 내면의 깔려있는 알 수 없는 그 어떤 공포와 억압, 그리고 그런 인간을 둘러싼 폭력과 죽음을 통해서 삶의 근원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지레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기존 인기작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 등에서 느꼈던 '위화' 스타일의 연장선에서 택했던 이 소설 <4월 3일 사건>은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고차원적인 그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읽는 내내 알 듯 모를 듯 모호하게 머리를 쥐어짜게 만드는 이렇게 다분히 실험적이면서 전위적인 소설들, 간만에 다시 '카프카'를 찾아 읽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그래도 '위화'에게 카프카적인 색다른 풍모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고 난 위안 거리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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