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유명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만들어내며 인기를 구가한 작품들이 있다. 바로 사회에 지친 강박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괴짜의사 '이라부' 시리즈로 총 3부작 소설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국내에 유명하게 소개되며 일본의 문학상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공중그네>가 바로 그것인데, 이 작품은 아직도 '오쿠다 히데오'를 대표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은 이 <공중그네>가 2부에 해당되고, 그 전에 1부가 <인 더 풀>이다. <인 더 풀> 또한 우리 주위에서 보는 평범한 사람들이 강박증 환자로 나와 이라부를 통한 치료기였다면, <공중그네>는 좀더 특정 분야 전문인을 환자로 설정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3부인 이번 <면장 선거>는 특정 분야에서 더 나아가 특수성을 더욱더 살리면서 사회에서 명망있는 실제 유명인을 소재로 소위 '공인'에 대한 풍자를 곁들인 작품이다. 표제작 '면장 선거'를 제외하고 나머지 3편의 이야기가 다 그러한데, 그럼 이들의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 본다.

세 편은 실제 유명인을 모델로 한 이야기, <면장 선거>

첫 번째 이야기 <구단주>는 일본에서 잘 나가는 78세의 고령의 노신사로 그는 전쟁시대를 대표하며 지금의 일본을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그런 인물이다. 실제 일본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사 대표이기도 하고, 일본 프로야구 인기구단 구단주이기도 한 이 노신사는 한마디로 제대로 된 사회 지도층 권력자다. 즉, 자신이 지금껏 해온 전력으로 이만큼 일본이 발전해 왔다는 옹고집의 아집이 강한 그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부터 권력의 종말을 의미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일종의 패닉 장애와 강박을 겪는다.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며 폐쇠된 공간을 싫어하는 등 그는 그렇게 인생의 종말에서 위기 의식을 느끼며 '이라부'를 찾아가 치료를 받는다. 이라부의 치료 방식이나 응대에 마뜩잖고 버릇 없는 놈이라 홀대했지만 점점 더 그의 치료에 익숙해져 가는데, 과연 이 구단주는 그 어떤 패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두 번째 이야기 <안퐁맨>은 일견 우리에 소개된 '호빵맨'을 떠오르게 하는 이름인데, 그렇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개릭터인 '안팡맨'을 연상시키는 여기 주인공의 별명으로 그의 성 '안포'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여기 30대의 젊은 주인공 '안포'는 한마디로 잘 나가는 IT업계의 총아로 견실한 기업가다. 아니, 견실하기 보다는 어떤 고생없이 쭉쭉 치고 나가며 성장해 온 소위 잘나가는 CEO 벤처 사업가다. 그러면서 안퐁맨은 그 어떤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가는 극단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해오며 청년성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즉 문득문득 기억 상실에 걸리는데, 바로 일본의 글자 '히라가나'를 순간 못 쓰는 낭패를 겪는다. 이에 이라부를 찾아가 상담하며 급기야 유치원까지 찾아가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며 치료를 하는데, 어떻게 그의 순간 기억 상실은 다시 돌아왔을까?

세 번째 이야기 <카리스마 직업>은 바로 연예계 이야기다. 젊은 배우는 아니지만 마흔을 넘기고도 변함없는 미모와 젊음을 자랑하는 여배우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런 미모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그녀는 항상 바쁘다. 즉, 남들한테 유명인으로써 잘 보이기 위해서 소위 뼈를 깍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견지하에, 오로지 자신의 미모를 유지하기 위한 미용과 다이어트 문제에 병적으로 매달리며 이성을 잃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말 눈물겨울 수가 없는데, 결국 심적 고통에 이라부를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이라부의 간호사인 '마유미'를 통해서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여기서 바로 그간 안 알려졌던 마유미의 전력이 나오는데, 그녀는 바로 펑키 락밴드의 기타를 치며 자신의 표현했던 시크한 여자였다. 그리고 그 마유미가 속한 락밴드 공연을 보러 간 여배우는 그곳에 그 어떤 해방감을 찾는다.

네 번째 이야기 <면장 선거> 이 책의 표제작이도 한 이야기로,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바로 선거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선거가 도심에서 펼치는 그런 선거가 아니라, 바로 작은 섬에서 펼쳐지는 선거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아주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어찌보면 더 공명정대할 그 작은 선거판이 그 섬의 내력이 이어오듯 양 진영으로 나뉜 채, 서로 흑색선전에다 돈 선거가 판을 친다. 이에 중간에 낀 도시에서 파견나온 24살의 젊지만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한 공무원의 눈을 통해 이들의 선거 이야기를 펼친다. 그리고 우리의 이라부는 여기에 두 달간 파견나온 의사로 나와 그 또한 선거판에 개입돼 돈을 먹는 등, 이라부식의 멋진 호연을 펼친다. 양 진영을 왔다갔다 하며 선거 지원성 찬조 연설을 하는 등 말이다. 이렇게 양 진영이 혼탁한 선거에 치쳐갈 때쯤, 이들은 서로에게 눈을 뜨고 그 섬의 전통놀이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면서 마지막에 작은 감동까지 선사하는 맛이 느껴지는 이야기로 맺는다.



이렇게 본 네 편의 이야기들을 간단히 살펴봤듯이 모두 사회성이 짙은 이야기들이다. 단순히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그 이야기에 담고 있는 메시지들이 묵직하다. 더군다나 앞에 세 이야기는 모두 일본의 실제 인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구단주>는 인기구단 구단주이자 요미우리 신문사 대표 '와타나베 쓰네오'를 모델로 삼으며, 이를 통해서 옹고집의 70대 후반 노신사의 권력의 정점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느낀 인생의 종말에 대한 회한과 고통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펼쳐냈다. <안퐁맨>은 젊은 나이에 성공한 벤처기업가 '라이브도어'의 대표였던 '호리에 다카후미'를 모델로 삼아 극단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어떤 강박을 보여주며 치료에는 유연함을 강조했다.

사회성이 짙은 '이라부'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 <면장선거>

또한 <카리스마 직업>에서 나오는 여배우 이야기는 바로 영화 <실낙원>의 여주인공을 맡은 '구로키 히토미'를 모델로 했다. 물론 실제 여배우가 여기 이야기처럼 그런 타입인지 몰라도, 적어도 인기 여배우라면 그 어떤 미용에 몰두하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표제작 <면장 선거>는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아닌 가공의 이야기지만, 의미하는 바는 실로 크다. 우리네 정치사회판을 주름잡고 그 어떤 정치적 행위로써 펼쳐지는 선거판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이른바 흑색선전에 돈선거 특히 돈선거는 돋을 정도로 주고받는 게 가관도 아니다. 이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는 젊은 공무원과 그를 치료하며 선거에 묘하게 개입된 이라부까지, 또 이를 지켜보는 시니컬한 마유미 간호사 등, 여기 인간 군상들은 그 쏠라닥질의 선거판에서 그렇게 묘하게 활약하며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만 봐도 이 소설은 정말 위트와 풍자로 가득한 사회소설이라 할 수 있다. 대신에 그 어떤 유명한 고전류 작품처럼 진중하거나 묵직한 것이 아니라 가벼운 터치로 재밌게 그리며 본질을 꿰뚫는 예리함까지 선보인다. 그것이 일종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유명인으로써 다가오는 그 어떤 강박증을 이라부는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때로는 방관자로써 물러나 그들의 어깨에 얹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다. 심리적 패닉으로 몰리는 강박이란 게 어찌보면 신경정신 질환의 일종이지만 이렇게 쉽게 마음을 한풀 꺽고 내려 놓는다면 이를 통해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라부식만의 유쾌하고 독특한 상상이 빚어낸 치료법인 것이다.

아무튼 이번 '면장 선거'를 끝으로 이라부 시리즈 3부작은 모두 마무리됐다. 그런데 계속 이라부가 기달려지는 것은 왜일까.. 그와 함께 마유미도 그렇고, 그것은 아마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이라부를 찾아가 치료받을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다음 이라부 이야기를 막연히 기다려 본다. 무리하게 짧은 다리를 꼬꼬 앉은 그의 히죽거리는 모습과 마유미의 터질듯한 육감적인 가슴 계곡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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