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을 잘 모셔야 후손이 잘 된다.’

   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어왔다. 팔순이 가까운 어머니는 스물 둘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선조들의 제사를 지냈다. 제삿날을 앞두고 어머니는 재래시장을 찾아 신선한 식재료를 구매하여 깔끔히 손질하여 제수 음식을 장만하였다. 부정 타면 안 되니 언행을 삼가고 정성을 모아 제사를 지냈다. 제사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해온 동네 어른들은 어머니가 조상을 잘 섬겨 자식들이 잘 된 것이라며 입을 모을 때면 어머니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바쁜 올케를 대신하여 상차림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할 때면 심통이 날 때가 있다. 얼굴도 모르는 증조할머니 제사를 챙기면서 고달프게 일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딸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타박을 주는 어머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제사 지내는 문제를 쟁점으로 한 TV토론 참여자로 나온 시선은 오랫동안 한 집안의 풍습으로 여기며 지내온 제사를 강경하게 반대하였다. 시선은 사후에 본인의 제사는 지내지 말라는 말까지 남길 정도로 마음 없이 형식만 남은 제사를 겉치레로 여겼다. 입버릇처럼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던 그녀가 이승을 뜬 지 십 년이 되었지만 자식들은 지금껏 어머니 제삿날을 챙기지 않았다. 자식들은 피안의 세계로 떠난 어머니 마음을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은 일은 생전 그녀의 소신을 지켜주는 일이라 생각해 왔다.

 

   큰딸 명혜는 한 달에 한 번 남매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엄마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선언했다. 이 말을 듣고는 여러 말이 오갔지만 남매들은 어머니 사후 10주기를 맞아 시선이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에 모여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싫어하던 방식의 제사가 아니라 하와이에서 살았을 때의 의미를 찾아 그 순간들과 연결된 물건들을 제사상에 올리기로 하였다. 특별한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하와이로 모여들어 심시선이 살았던 시간들을 불러낸다. 그녀는 분쟁에 휘말려서도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은 강렬한 인물로 대중의 가벼운 사랑과 소수의 미움을 받고 살았다. 아들과 딸을 편애하지 않았고, 데려온 자식을 대할 때에도 차별 없이 대한 어머니였기에 자식들은 서로 배가 달라도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목적인 확실한 자식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는 하와이에서 어머니가 지냈던 시간을 반추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심시선의 사후 십 년을 애도한다. 화가로 살아갈 길을 열어줄 것처럼 다가온 마티아스는 시선을 감정적으로 고문하며 자신의 곁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그녀는 자아 정체성을 파괴하는 그의 압력을 피해 새로운 삶을 설계한다. 애방의 도움으로 요제프 리와 심시선은 파리로 가 자기 변신을 꾀하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한국 미술계에 안착한 시선은 모국어로 표현하며 생활하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요제프 리와의 사랑을 접어야 했다. 남편이 독일로 돌아간 이후 그녀는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글을 썼다.

 

   어머니는 생활의 조각들을 모아 글을 쓰며 자식들을 키우느라 힘들었을 텐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며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 없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기를 바랐다. 손녀들은 자신에게 무게 중심을 두고 시대 너머를 보며 지낸 할머니로 기억하며 그녀와의 만남을 추억하였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어떤 고비가 올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여행지로 각광받는 하와이에서 박동 넘치는 다양한 활동을 연상하며 찾은 이들에게 이주민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공간에서 공동체를 이뤄 제 빛깔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곁들여 이주민의 애환을 드러냈다.

 

   어머니 제삿날 제수 음식 대신 자식들은 마련한 물건들을 상에 올려놓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어머니와의 인연에 감사하는 의식을 치렀다. 두꺼운 종이에 붙인 레후아꽃, 등산화 밑창에 끼여 있던 작은 화산석 자갈, 블록 탑, 팬케이크 등을 상에 올렸다. 자식들은 하와이에서 보낸 어머니 삶의 의미를 규정하며 그동안 생각해 낸 것들을 시도하며 결과물을 찾았다. 병약하다고만 여기던 우윤은 수차례 도전 끝에 큰 파도를 타며 성공적으로 실리콘 물병에 포말을 담아 할머니 제사상에 올리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어머니를 줄기로 뻗어 나온 가지인 자식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생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가운데 함께해야 할 일은 힘을 합치며 그들만의 방식대로 삶의 빛깔을 드러낸다. 자본의 힘에 눌려 중심까지 버리고 사는 속물들, 극단의 이기주의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들이 득세하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일상의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하며 자식들은 현재를 살고 있다. 위선을 떨치고 소신을 지키며 살았던 어머니의 혼이 자식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보내고 있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실에 복무하다 - 리영희 평전
권태선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일 500명 이상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흉흉한 소식이 함께하는 2020년 말입니다. 엄습하는 불안감으로 외출은 삼가고 집에서 글을 읽으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습니다. 대학 시절 사회과학 도서를 읽고 학우들과 함께 토론하며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읽은 전환시대의 논리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자국의 이익에 사로잡혀 베트남 전쟁을 부추기며 야욕을 구체화하한 미국의 극악한 이기주의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들의 민간인 살상,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통찰력 있는 연구와 재해석, 일본의 군국주의화 등을 접하며 분단으로 고착화된 이념의 대립에서 벗어나 통일 한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안개 속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국에 인터넷 신문 기사로 코로나19 관련 소식을 확인하며 일과를 시작합니다. 진실 보도인 것처럼 위장한 기사 내용을 믿고 따랐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와 범국가적인 재난을 틈타 가짜 뉴스를 남발하여 특수를 누리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레기로 불리는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허위 사실과 과장된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까지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투쟁의 일선에서 복무하다 그로 인한 고난으로 점철된 생애를 보낸 고 리영희의 일대기를 담은 글에는 칼보다 강한 펜의 힘을 일깨웁니다. 선생은 기자 시절 취재를 하거나 외신을 번역해 기사를 작성할 때,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 진실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라야 글을 완성했습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진술에 입각한 진실만을 보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자유에 따른 책임을 다하고자 자신의 앎을 삶 속에서 실천한 지성인으로 선생이 살았던 시대의 우상과 맞서 싸우며 한평생 진실에 복무하였습니다. 수업 시대, 연마 시대, 실천 시대, 성찰의 시대 네 부분으로 구성된 <<진실에 복무하다>>를 읽으며 사상의 은사를 넘어선 인간미 가득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자란 선생은 진실을 알리는 일을 천명으로 받아들이고 기득 계층의 이해관계를 떠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선생은 아버지의 의협심과 어느 누구에게도 굽힐 줄 몰랐던 어머니의 성정을 닮았습니다. 독립군으로 활동한 머슴 문학빈과 평등사상으로 진취적인 기풍이 흐르는 외삼촌을 공경하며 이들의 의로운 정신으로 선생의 내면은 차올랐습니다. 생존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해양대학교에 진학한 후 여순반란 사건을 진압군으로 투입되었을 때, 목격한 수많은 주검들 옆에 통곡하는 이들의 눈물에 담긴 의미를 궁구했습니다.

 

   1950년 봄 안동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유엔군 연락장교단 후보생으로 생활하며 자국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미국의 실체를 파악했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관계를 조명하며 중공군 참전 이후 적을 알기 위해 중국 공부를 시작해 1970년대 독보적인 중국 전문가로 자리했습니다. 7년의 통역 장교 생활은 선생을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담금질하였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성과 참혹한 전쟁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인식과 대안을 생각하며 진실에 복무하는 기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현장 실습을 하며 보낸 6개월은 대한민국의 민주적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언론의 사명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비민주적인 독재 정치로 권력을 쥐고 누리는 이승만 정권 타도만이 민주주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언론 매체에 기고했습니다. 선생은 이후 조선일보 외신부장을 역임하며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철회해야 한다는 글을 써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배후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서도 언론의 사명은 진실을 전달하는 데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국제문제를 면밀히 살피며 시대의 흐름을 선취한 사람으로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열망이 컸던 선생은 현지인 입장에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파헤쳤습니다. 미국과의 밀약으로 얻을 수 있는 특혜를 염두에 둔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결정한 박정희 정권의 실체를 드러낸 기고문은 외압을 불렀습니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군사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을 저지하려는 민주화 운동에 발을 담그기 시작하며 진실에 복무하겠다는 다짐으로 들어섰던 기자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사실과 사실을 꿰어 진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깊이 있는 탐구가 있어야 한다.’

   권력을 비호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기자들을 비판하며 한양대 신방과 교수로 들어선 선생은 국제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탐구하는 학자로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파헤쳐 진실을 알렸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평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선생은 한반도의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반전 평화의 한시를 써서 지인들에게 돌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감행된 부시의 이라크 침략으로 한반도에 전쟁의 화근이 생길 수도 있음을 우려했습니다. 선생의 우려대로 미국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요청하였고, 노무현 정부를 파병을 결정을 비판하는 시위에 동참한 선생은 정부의 미국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내며 파병 철회를 촉구하였습니다. 유신헌법을 개정한 박정희는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해 극우 반공 체제 확립을 위해 민주 인사들을 수감하는 반인륜적 패악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억눌린 자에게는 예의를 차리지만 권력에 기대어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습니다. 출옥 후 아내의 지적정치적 성장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40년 넘게 함께한 길동무인 아내를 향한 그만의 표현법이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가정보다는 사회를 앞세운 전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민족주의자로 사르트르와 루쉰에게 배운 지식인의 책임을 가족들에게도 강요하며 엄혹하게 대했던 일들, 자기 성찰로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습니다. 젊은 날의 리영희는 이성의 지배를 통해 동물적 요소를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지만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겪으며 인간의 이성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   일제 식민지 시대에 변방에서 태어난 선생은 해방의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625전쟁을 겪으며 서슬 퍼런 유신 시대와 독재정권의 불온한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언론과 대학이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비롯된 불의에 대한 의분은 선생의 삶을 지탱해 온 바탕이지만 그의 건강을 해치는 적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단으로 시대를 깨우는 언론인이자 올곧은 학자의 길에 충실하였습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져서도 강제 휴식기 몸의 감각을 되살리는 재활 운동뿐 아니라 그동안 읽고 싶어도 읽지 못했던 책들을 보며 지냈습니다. 선생은 젊은 시절 외부적 현상과 변화에 대응해온 남의 삶에서 조금은 명상적인 나의 삶을 다짐하였지만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돌리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반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역대의 군사 정권은 선량한 국민들에게 해악을 끼친 사건들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어떤 반성도 하지 않는 정권을 비판하였습니다. 새로운 자료와 통계정보를 수집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 선생은 새로운 정보와 통찰을 담은 글을 써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과열 경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식화된 시민집단의 역량과 시민집단과의 연대 확대와 강화를 전제하였습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할 진실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언론인의 사명으로 알고 정의롭지 못한 시대에 타협하지 않는 의지로 평생을 지켜 온 선생님의 길을 마음에 담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매, 밥 됩니까 - 여행작가 노중훈이 사랑한 골목 뒤꼍 할머니 식당 27곳 이야기
노중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 늦잠을 자는 호사를 마다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라디오를 켠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시대에 주파수로 떠나는 여행을 선택하고 MBC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듣는다. 방송을 들은 지 오래지 않아 방송 진행자와 소통하지는 못하였지만 오랜 청취자들과는 맛집을 찾아 함께 음식을 나누며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감 있는 대화를 나누며 같은 자리에 앉아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관계 형성에 도움을 준다. 여행 작가로 여러 공간을 찾아 의미를 발견하며 책으로 엮은 할매, 밥 됩니까는 인연의 결과물이다.

    40년 전 이승을 뜬 할매는 귀가 어두운 상황에서도 할매를 부르며 달려오는 손녀 소리를 잘도 알아듣고 반응하였다. 공부하느라 애썼다며 거친 손으로 손녀의 얼어붙은 볼을 부비며 등을 다독이며 온기를 선물하였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따스한 밥 한 그릇을 내놓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저자의 발품 따라 관록이 붙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한다. 애틋한 그리움이 덩이째 몰려드는 추억에 흠뻑 젖어 여행 작가가 사랑한 할머니 식당 27곳은 즉석 식품과 MSG를 넣은 음식과는 거리가 있는 건강한 한 끼로 충분했다.

 

   생선을 노릇노릇 굽기 위해서는 프라이팬에 얹은 고기를 자주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할머니 말이 귓가에 쟁쟁한 것처럼 연륜만큼이나 일상에 배어 있는 손맛을 찾아 작가는 길 위에 섰다. 사는 것이 녹록치 않은 시간을 견디며 지내느라 힘든 서로에게 밥 한 술에 김장 김치 한 가닥 얹어 주며 고단한 시간을 공유했던 시절을 불러내 추억 속 음식을 찾아 작가는 떠난다. 어느 순간부터 요리 시연을 보이며 음식을 만드는 모습, 이름 있는 식당을 찾아 맛있게 먹는 이들 등을 담은 방송이 뜨자 너도나도 먹는 방송에 열광하며 지낼 때가 있다.

 

    생계유지를 위한 식당 운영이지만 인정 많은 할머니들은 욕심 내지 않고 지난세월의 궤적을 녹여 감칠맛이 더하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 길 위에 서서 어딘가로 향하는 여행 작가는 언젠가는 추억 속에 자리할 할머니들의 식당을 찾아 사람들의 질박한 삶을 살뜰히도 녹여낸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낮은 식당 문턱을 넘어 칼제비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며 살아가는 일상을 공유하는 소통의 시간은 서로에 대한 힘을 돋운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 단골들이 주로 찾는 식당은 규모가 작고 허름하지만 켜켜이 쌓인 사람 냄새로 가득하였다.

 

   사람들의 입맛이 일정하지 않아 맛의 균질성을 따질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찾고 싶은 한두 개 쯤은 있을 것이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오르는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보리밥집이다. 다리에 힘이 없어 산행이 힘들어지기 전 조계산을 찾을 이유 중 하나는 24년 넘게 한 자리에서 제철 나물과 보리밥을 정찬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가마솥 뚜껑을 열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숭늉으로 속을 데우면 산행의 피로가 확 풀리고 만다. 저자 역시 동네 터주 대감처럼 한 곳에 오랫동안 식당을 열고 장사하던 할머니들이 자취를 감추기 전 식당을 찾아 밀착 취재하며 할머니들의 구수한 입담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음식을 준비하는 할머니와 주고받는 이야기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국수사리처럼 말려 있었다. 수돗물을 담아 끓여낸 맹물 국수, 갓 맛이 나는 냉이를 얹는 갓냉이 국수, 갈비 포를 뜨는 것에서부터 직접 띄우는 청국장까지 노부부가 자체 해결하는 명성숯불갈비 등 찾고 싶은 식당들이 늘어난다. 많이 먹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국수를 만들어 준 비산국수집 할머니는 서울에서 왔다는 저자의 말에 국수 값에서 1,000원을 빼고 계산을 하였다니 그 인심에 웃음이 난다.

   ‘많이 줘도 아깝지 않고 행복해. 나중에 편안하게 갈 것 같아.’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낙으로 살았다는 주인의 말에서는 베풀며 사는 기쁨이 깊숙이 자리한 듯하다.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는 방송에 심취할 수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 손님으로 나가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저자는 라디오에 빚진 것이 많다고 여긴다. 자신의 영역을 넘어 방송으로 소통한 청취자들에게 무엇이더라도 보은하고 싶은 마음에 애청자를 만나 밥 한 끼를 하였다. 39년째 순창의 작은 식당-칠보 식당-을 지키는 할매의 요리법 전수는 간간이 이어졌고, 다시 찾았을 때에는 후한 대접으로 식객을 전율케 하였다. 메뉴판 없이 가까운 시장에서 그날그날 장을 봐서 형편에 맞게 음식을 내는 성원식품이 각박한 서울에 온기를 뿜어내는 듯하다. 밤이 깊어가는 시간 성원 식품의 단골은 소주 한 병에 김치전을 곁들이며 출출한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헛헛한 마음까지 달래고 온다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점심시간에만 문을 열었다 닫는 정희식당은 3인 이상 주문과 전화 예약을 필수로 영업을 하는 식당이다. 가자미 찌개와 갈치 찌개를 주된 요리로 하는 17첩 한정식으로 만찬을 준비하는 식당 할매는 돈을 벌려는 생각은 접은 것처럼 보인다. 가자미 찌개 1인분에 1만 원인데 직접 손질하여 만든 반찬 가짓수가 열 가지가 넘는다니 놀라워 꼭 한번 찾고 싶어진다. 기술을 가르쳐준다고 해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삼복당 제과점 주인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무성한 잎을 달고 서 있다 떨어지는 잎들처럼 생명의 불꽃이 사위어가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할매들의 손맛은 여행자의 취재 글에 남아 우리는 음식에 공을 들이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녹여낸 할매들을 기억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아리(임현경) 지음 / 북튼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다를 끼고 있어 멋진 휴양지가 많은 인도네시아 그 중에서도 발리는 아름다운 산과 호수로 많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갈 자유를 코로나19에 저당 잡힌 채 음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만난 아리의 우붓 이야기는 설렘과 행복을 준다. 인생이라는 삶의 무대에서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로 살던 남녀가 서로에게 끌려 연애를 하고 한 곳에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가부장적인 유교적 풍습이 관행처럼 이어져 오는 대한민국에서의 결혼 생활은 여성이 감내해야 할 몫이 남성보다 많은 편이다. 출산 후 육아와 부엌살림 등을 도맡아 행하며 에너지를 쏟아 부어도 쉽게 풀리지 않는 일들이 줄을 잇는다.

 

    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아리는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당부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자신의 뜻과는 달리 가족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의 생각과는 달리 행동해야 할 때가 많았다. 결혼해서는 아내로서 가정을 잘 돌봐야 하였고, 크고 작은 집안 행사에 참석하며 자유를 찾기 힘들 때가 많았다. 주변부로 밀려난 자신이 중심에 선 시간을 갖고 싶은 그녀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중부 지역 산속에 위치한 우붓으로 향하였다. 혼자 힘으로 살고 일할 수 있음을 확인하며, 아직도 자신이 성장할 수 있음을 느끼고 싶은 도전은 현실적인 선택으로 귀결되었다.

 

   아이와 함께 우붓으로 가는 길, 한국에서 혼자 생활할 남편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지만 아리는 인생의 진짜 여행지를 찾았다. 새 이름 아리와 함께 시작된 새로운 도전은 우붓에서의 맑은 가난을 유지하며 마음이 시키는 대로 생활하여갔다. 춤을 추고, 수영하며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풍부하게 소유하지 말고 풍성하게 존재하라.’

는 승() 법정의 말대로 그녀는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쉬며 그동안 한국에서 사느라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하리라 마음먹었다.

쉬세요!’

듣고 싶은 말을 일상의 안부처럼 건네는 우붓 현지인들을 보며 그녀는 나라도 우선 쉬어야겠다고 고백한다. 딸은 국제학교인 쁠랑이 스쿨에 다니며 우붓에서의 생활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경쟁이 없고 평가가 없는 쁠랑이 스쿨에서 엄마와 딸은 다양한 삶이 공존하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며 협력하는 생활의 소중함을 배워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우붓 거리 곳곳을 달리며 현지인들의 삶 가까이에서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다. 번역가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우붓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번역으로 생활비를 충당해 갔다. 삶의 모든 것이 힌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붓 사람들은 삶의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며 생명체가 공존하는 삶을 지향한다.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에 휩싸여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하며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였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며 받아들이는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는 살사를 추며 땀을 흘리는 사이 불안함을 떨쳐내었다. 즐거워 보이는 일을 그냥 그렇게 시작하며 우붓에서의 생활 밀도를 높여갔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다음으로 미룬 채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할 새도 없이 살아온 시간들에 처연해진다. 조금은 단순하게 움직이면 될 일을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옥죄며 지내온 나날에 쉼이 필요했다. 상대의 행복한 순간을 제거해야 결혼 생활이 행복해진다면 고립된 개인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하느라 기진맥진하였던 때가 떠올라 울컥해졌다. 직장인, 며느리, 아내, 엄마, 딸로 살아내느라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인도로 한 달 여행을 떠났던 추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연애로 결혼 생활에 대한 현실적 대안 없이 시작된 결혼 생활은 쉽지 않았다. 결혼과 동시에 개인의 독립성은 거세당한 채 우리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의무는 늘어났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현실은 서로의 뜻을 드러내며 조율하는 과정보다는 해야 할 일들만 목록화해 실행을 부추겼다. 자신의 정체성을 갉아먹으며 유지되는 결혼생활은 부부에게 안 좋은 감정을 남기며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를 감지하였다면 더 늦기 전에 결혼 생활의 전환점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아리는 4년간 우붓에서 생활하며 자신 안에 숨겨진 수많은 가능성들을 발견하며 오롯한 나로 존재하는 경험을 맛보았다. 이 경험들은 흩어진 가족이 한 공간에서 영역을 확장하여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찾아 길 위에 설 수 있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 '보는'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관하여 땅콩문고
김겨울 지음 / 유유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 귀하던 시절 동네 언니네 책상 위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처음으로 소유했던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때라 교과서 외의 다른 책이 열을 맞춰 제목을 드러내고 있어 생경했다. 그 중에서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말했던 소설 노인과 바다를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언니는 그 책을 선뜻 꺼내 주었다. 꼬마전구 불빛 아래 소설을 읽으며 산티아고 노인이 청새치와 붙어 한판 승부를 겨룰 때는 노인이 바다 속으로 끌려갈까 조마조마하던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는 이의 마음은 그 시절 읽은 책을 함께 읽고 공감하고 싶은 욕구에서 나왔을 것이다.

 

   2020년 전례 없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 확산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으며 이 사태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비말을 통해 감염되는 상황에서 대면 접촉을 피하고 기본 생활 수칙을 잘 지켜야 하는 때, 다양한 콘텐츠가 담긴 온라인 플랫폼이 사람들의 연결 고리로 작용한다. 3월 학기 시작은 미뤄졌고 등교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원격 수업을 진행하며 교실이 없는 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는 시대에 진입하였다. 인터넷 강의를 시청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던 수험생처럼 학생들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수업에 동참해야 했다.

 

   시청각 영상 자료에 익숙한 세대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치 등에 접속해 원하는 정보를 얻으며 지낸다. 활자와 점점 멀어져 가는 아이들이 관심을 끌 만한 북튜버를 찾다 만난 겨울서점이다.

  -겨울서점 Winter Bookstore구독자 16.2만 명-

책을 들고 내용을 간단히 전하는 방식으로 책 읽기를 권하기보다는 동영상 자료에 친숙한 학생들에게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새로운 책을 만나는 일이 더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콘셉트별로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북튜브 채널에 계정을 만들고 활동하며 북튜버로 정체성을 찾는 작가는 구독자와 소통하는 일에 비중을 두고 영상의 대표 이미지인 섬네일에도 신경을 쓰며 활동 중이다.

 

   수십 개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며 각 채널의 역동성과 관계성 등을 탐색하며, 북튜버를 꿈꾼다면 책을 만지고 읽고 느끼며 책을 가까이하는 생활인으로 존재해야 함을 일깨운다. 책에 대한 사랑을 맘껏 표출할 수 있는 책들의 이상향을 그리며 북튜버로 나선 작가는 얼굴을 드러내는 직접 나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영상을 촬영해 구독자와의 친밀감을 유지해왔다. 북튜브 제작에 필요한 필수 장비인 책, 컴퓨터, 편집프로그램과 선택 사항인 카메라, 마이크, 조명, 웹갬 등의 기능을 소개하며 북튜버의 일주일을 선보인다. 영상 기획과 촬영, 편집을 홀로 행하는 작가는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영상을 제작해 화요일 정오에 자료를 올린다.

 

   ‘어디까지 준비하느냐

    작가는 내용이 탄탄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소개하는 책의 저자가 쓴 다른 글을 더 읽고 내용의 질을 높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독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의 접점을 찾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영상에 책을 어떻게 이식시킬 것인지를 작가는 기획 포인트로 삼았다. 시청자가 영상에 참여할 수 있는 북튜브 제작을 위해 스크립트를 구상한 뒤 촬영한 뒤 편집에 편집을 거쳐 업로드하고, 시청자가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작가는 편집호흡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영상을 올린 뒤 영상을 끝까지 본 조회율, 어떤 영상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지 등의 통계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채널 성장 전략을 수립한다니 겨울서점의 정체성 정립에도 도움 되는 자료로 보인다.

 

   영상을 많이 보고 자란 세대답게 1인 유튜버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다. 유튜브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구독자 수 1천 명과 시청 시간 4천 시간이라는 최소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니 유튜버로 돈을 벌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수익 창출을 위해 많은 유튜버가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랫동안 자신의 콘텐츠를 보도록 온 신경을 모아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준비시간이 긴 북튜버가 스트리밍처럼 생방송을 매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질 좋은 콘텐츠로 구독자를 천천히 늘려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랜선으로 전하는 책 이야기를 듣고 힘든 상황을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는 감사의 글을 접할 때는 눈물을 흘리는 감성의 소유자이다.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선한 삶의 의지를 더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을 때 이 세상을 더욱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책을 읽고 쓴다. 디지털 문명 세대와는 다르게 메모하며 책을 읽고 내용을 생각하며 의견을 덧붙여 블로그에 표현하며 지내면서도 북튜버 채널을 기웃거리며 탐색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고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직장인으로 십대들과 귀한 인연을 맺고 책과 함께하는 일상에 변화를 불어넣고 싶어서이다. 1년 정도는 유튜브로 버는 돈이 없어도 꾸준히 영상을 제작하고 다양한 영상을 보면서 한 우물을 깊게 판 덕분에 작가는 북튜버로 자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핍을 채우며 좋아하는 책과 글을 업으로 삼은 겨울서점에 부는 훈훈한 바람을 타고 책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들이 늘어나길 소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