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아리(임현경) 지음 / 북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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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끼고 있어 멋진 휴양지가 많은 인도네시아 그 중에서도 발리는 아름다운 산과 호수로 많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갈 자유를 코로나19에 저당 잡힌 채 음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만난 아리의 우붓 이야기는 설렘과 행복을 준다. 인생이라는 삶의 무대에서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로 살던 남녀가 서로에게 끌려 연애를 하고 한 곳에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가부장적인 유교적 풍습이 관행처럼 이어져 오는 대한민국에서의 결혼 생활은 여성이 감내해야 할 몫이 남성보다 많은 편이다. 출산 후 육아와 부엌살림 등을 도맡아 행하며 에너지를 쏟아 부어도 쉽게 풀리지 않는 일들이 줄을 잇는다.

 

    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아리는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당부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자신의 뜻과는 달리 가족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의 생각과는 달리 행동해야 할 때가 많았다. 결혼해서는 아내로서 가정을 잘 돌봐야 하였고, 크고 작은 집안 행사에 참석하며 자유를 찾기 힘들 때가 많았다. 주변부로 밀려난 자신이 중심에 선 시간을 갖고 싶은 그녀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중부 지역 산속에 위치한 우붓으로 향하였다. 혼자 힘으로 살고 일할 수 있음을 확인하며, 아직도 자신이 성장할 수 있음을 느끼고 싶은 도전은 현실적인 선택으로 귀결되었다.

 

   아이와 함께 우붓으로 가는 길, 한국에서 혼자 생활할 남편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지만 아리는 인생의 진짜 여행지를 찾았다. 새 이름 아리와 함께 시작된 새로운 도전은 우붓에서의 맑은 가난을 유지하며 마음이 시키는 대로 생활하여갔다. 춤을 추고, 수영하며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풍부하게 소유하지 말고 풍성하게 존재하라.’

는 승() 법정의 말대로 그녀는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쉬며 그동안 한국에서 사느라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하리라 마음먹었다.

쉬세요!’

듣고 싶은 말을 일상의 안부처럼 건네는 우붓 현지인들을 보며 그녀는 나라도 우선 쉬어야겠다고 고백한다. 딸은 국제학교인 쁠랑이 스쿨에 다니며 우붓에서의 생활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경쟁이 없고 평가가 없는 쁠랑이 스쿨에서 엄마와 딸은 다양한 삶이 공존하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며 협력하는 생활의 소중함을 배워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우붓 거리 곳곳을 달리며 현지인들의 삶 가까이에서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다. 번역가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우붓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번역으로 생활비를 충당해 갔다. 삶의 모든 것이 힌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붓 사람들은 삶의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며 생명체가 공존하는 삶을 지향한다.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에 휩싸여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하며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였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며 받아들이는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는 살사를 추며 땀을 흘리는 사이 불안함을 떨쳐내었다. 즐거워 보이는 일을 그냥 그렇게 시작하며 우붓에서의 생활 밀도를 높여갔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다음으로 미룬 채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할 새도 없이 살아온 시간들에 처연해진다. 조금은 단순하게 움직이면 될 일을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옥죄며 지내온 나날에 쉼이 필요했다. 상대의 행복한 순간을 제거해야 결혼 생활이 행복해진다면 고립된 개인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하느라 기진맥진하였던 때가 떠올라 울컥해졌다. 직장인, 며느리, 아내, 엄마, 딸로 살아내느라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인도로 한 달 여행을 떠났던 추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연애로 결혼 생활에 대한 현실적 대안 없이 시작된 결혼 생활은 쉽지 않았다. 결혼과 동시에 개인의 독립성은 거세당한 채 우리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의무는 늘어났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현실은 서로의 뜻을 드러내며 조율하는 과정보다는 해야 할 일들만 목록화해 실행을 부추겼다. 자신의 정체성을 갉아먹으며 유지되는 결혼생활은 부부에게 안 좋은 감정을 남기며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를 감지하였다면 더 늦기 전에 결혼 생활의 전환점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아리는 4년간 우붓에서 생활하며 자신 안에 숨겨진 수많은 가능성들을 발견하며 오롯한 나로 존재하는 경험을 맛보았다. 이 경험들은 흩어진 가족이 한 공간에서 영역을 확장하여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찾아 길 위에 설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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