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밥 됩니까 - 여행작가 노중훈이 사랑한 골목 뒤꼍 할머니 식당 27곳 이야기
노중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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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 늦잠을 자는 호사를 마다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라디오를 켠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시대에 주파수로 떠나는 여행을 선택하고 MBC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듣는다. 방송을 들은 지 오래지 않아 방송 진행자와 소통하지는 못하였지만 오랜 청취자들과는 맛집을 찾아 함께 음식을 나누며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감 있는 대화를 나누며 같은 자리에 앉아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관계 형성에 도움을 준다. 여행 작가로 여러 공간을 찾아 의미를 발견하며 책으로 엮은 할매, 밥 됩니까는 인연의 결과물이다.

    40년 전 이승을 뜬 할매는 귀가 어두운 상황에서도 할매를 부르며 달려오는 손녀 소리를 잘도 알아듣고 반응하였다. 공부하느라 애썼다며 거친 손으로 손녀의 얼어붙은 볼을 부비며 등을 다독이며 온기를 선물하였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따스한 밥 한 그릇을 내놓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저자의 발품 따라 관록이 붙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한다. 애틋한 그리움이 덩이째 몰려드는 추억에 흠뻑 젖어 여행 작가가 사랑한 할머니 식당 27곳은 즉석 식품과 MSG를 넣은 음식과는 거리가 있는 건강한 한 끼로 충분했다.

 

   생선을 노릇노릇 굽기 위해서는 프라이팬에 얹은 고기를 자주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할머니 말이 귓가에 쟁쟁한 것처럼 연륜만큼이나 일상에 배어 있는 손맛을 찾아 작가는 길 위에 섰다. 사는 것이 녹록치 않은 시간을 견디며 지내느라 힘든 서로에게 밥 한 술에 김장 김치 한 가닥 얹어 주며 고단한 시간을 공유했던 시절을 불러내 추억 속 음식을 찾아 작가는 떠난다. 어느 순간부터 요리 시연을 보이며 음식을 만드는 모습, 이름 있는 식당을 찾아 맛있게 먹는 이들 등을 담은 방송이 뜨자 너도나도 먹는 방송에 열광하며 지낼 때가 있다.

 

    생계유지를 위한 식당 운영이지만 인정 많은 할머니들은 욕심 내지 않고 지난세월의 궤적을 녹여 감칠맛이 더하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 길 위에 서서 어딘가로 향하는 여행 작가는 언젠가는 추억 속에 자리할 할머니들의 식당을 찾아 사람들의 질박한 삶을 살뜰히도 녹여낸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낮은 식당 문턱을 넘어 칼제비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며 살아가는 일상을 공유하는 소통의 시간은 서로에 대한 힘을 돋운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 단골들이 주로 찾는 식당은 규모가 작고 허름하지만 켜켜이 쌓인 사람 냄새로 가득하였다.

 

   사람들의 입맛이 일정하지 않아 맛의 균질성을 따질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찾고 싶은 한두 개 쯤은 있을 것이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오르는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보리밥집이다. 다리에 힘이 없어 산행이 힘들어지기 전 조계산을 찾을 이유 중 하나는 24년 넘게 한 자리에서 제철 나물과 보리밥을 정찬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가마솥 뚜껑을 열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숭늉으로 속을 데우면 산행의 피로가 확 풀리고 만다. 저자 역시 동네 터주 대감처럼 한 곳에 오랫동안 식당을 열고 장사하던 할머니들이 자취를 감추기 전 식당을 찾아 밀착 취재하며 할머니들의 구수한 입담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음식을 준비하는 할머니와 주고받는 이야기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국수사리처럼 말려 있었다. 수돗물을 담아 끓여낸 맹물 국수, 갓 맛이 나는 냉이를 얹는 갓냉이 국수, 갈비 포를 뜨는 것에서부터 직접 띄우는 청국장까지 노부부가 자체 해결하는 명성숯불갈비 등 찾고 싶은 식당들이 늘어난다. 많이 먹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국수를 만들어 준 비산국수집 할머니는 서울에서 왔다는 저자의 말에 국수 값에서 1,000원을 빼고 계산을 하였다니 그 인심에 웃음이 난다.

   ‘많이 줘도 아깝지 않고 행복해. 나중에 편안하게 갈 것 같아.’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낙으로 살았다는 주인의 말에서는 베풀며 사는 기쁨이 깊숙이 자리한 듯하다.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는 방송에 심취할 수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 손님으로 나가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저자는 라디오에 빚진 것이 많다고 여긴다. 자신의 영역을 넘어 방송으로 소통한 청취자들에게 무엇이더라도 보은하고 싶은 마음에 애청자를 만나 밥 한 끼를 하였다. 39년째 순창의 작은 식당-칠보 식당-을 지키는 할매의 요리법 전수는 간간이 이어졌고, 다시 찾았을 때에는 후한 대접으로 식객을 전율케 하였다. 메뉴판 없이 가까운 시장에서 그날그날 장을 봐서 형편에 맞게 음식을 내는 성원식품이 각박한 서울에 온기를 뿜어내는 듯하다. 밤이 깊어가는 시간 성원 식품의 단골은 소주 한 병에 김치전을 곁들이며 출출한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헛헛한 마음까지 달래고 온다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점심시간에만 문을 열었다 닫는 정희식당은 3인 이상 주문과 전화 예약을 필수로 영업을 하는 식당이다. 가자미 찌개와 갈치 찌개를 주된 요리로 하는 17첩 한정식으로 만찬을 준비하는 식당 할매는 돈을 벌려는 생각은 접은 것처럼 보인다. 가자미 찌개 1인분에 1만 원인데 직접 손질하여 만든 반찬 가짓수가 열 가지가 넘는다니 놀라워 꼭 한번 찾고 싶어진다. 기술을 가르쳐준다고 해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삼복당 제과점 주인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무성한 잎을 달고 서 있다 떨어지는 잎들처럼 생명의 불꽃이 사위어가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할매들의 손맛은 여행자의 취재 글에 남아 우리는 음식에 공을 들이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녹여낸 할매들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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