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복무하다 - 리영희 평전
권태선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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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500명 이상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흉흉한 소식이 함께하는 2020년 말입니다. 엄습하는 불안감으로 외출은 삼가고 집에서 글을 읽으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습니다. 대학 시절 사회과학 도서를 읽고 학우들과 함께 토론하며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읽은 전환시대의 논리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자국의 이익에 사로잡혀 베트남 전쟁을 부추기며 야욕을 구체화하한 미국의 극악한 이기주의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들의 민간인 살상,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통찰력 있는 연구와 재해석, 일본의 군국주의화 등을 접하며 분단으로 고착화된 이념의 대립에서 벗어나 통일 한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안개 속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국에 인터넷 신문 기사로 코로나19 관련 소식을 확인하며 일과를 시작합니다. 진실 보도인 것처럼 위장한 기사 내용을 믿고 따랐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와 범국가적인 재난을 틈타 가짜 뉴스를 남발하여 특수를 누리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레기로 불리는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허위 사실과 과장된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까지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투쟁의 일선에서 복무하다 그로 인한 고난으로 점철된 생애를 보낸 고 리영희의 일대기를 담은 글에는 칼보다 강한 펜의 힘을 일깨웁니다. 선생은 기자 시절 취재를 하거나 외신을 번역해 기사를 작성할 때,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 진실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라야 글을 완성했습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진술에 입각한 진실만을 보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자유에 따른 책임을 다하고자 자신의 앎을 삶 속에서 실천한 지성인으로 선생이 살았던 시대의 우상과 맞서 싸우며 한평생 진실에 복무하였습니다. 수업 시대, 연마 시대, 실천 시대, 성찰의 시대 네 부분으로 구성된 <<진실에 복무하다>>를 읽으며 사상의 은사를 넘어선 인간미 가득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자란 선생은 진실을 알리는 일을 천명으로 받아들이고 기득 계층의 이해관계를 떠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선생은 아버지의 의협심과 어느 누구에게도 굽힐 줄 몰랐던 어머니의 성정을 닮았습니다. 독립군으로 활동한 머슴 문학빈과 평등사상으로 진취적인 기풍이 흐르는 외삼촌을 공경하며 이들의 의로운 정신으로 선생의 내면은 차올랐습니다. 생존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해양대학교에 진학한 후 여순반란 사건을 진압군으로 투입되었을 때, 목격한 수많은 주검들 옆에 통곡하는 이들의 눈물에 담긴 의미를 궁구했습니다.

 

   1950년 봄 안동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유엔군 연락장교단 후보생으로 생활하며 자국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미국의 실체를 파악했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관계를 조명하며 중공군 참전 이후 적을 알기 위해 중국 공부를 시작해 1970년대 독보적인 중국 전문가로 자리했습니다. 7년의 통역 장교 생활은 선생을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담금질하였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성과 참혹한 전쟁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인식과 대안을 생각하며 진실에 복무하는 기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현장 실습을 하며 보낸 6개월은 대한민국의 민주적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언론의 사명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비민주적인 독재 정치로 권력을 쥐고 누리는 이승만 정권 타도만이 민주주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언론 매체에 기고했습니다. 선생은 이후 조선일보 외신부장을 역임하며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철회해야 한다는 글을 써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배후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서도 언론의 사명은 진실을 전달하는 데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국제문제를 면밀히 살피며 시대의 흐름을 선취한 사람으로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열망이 컸던 선생은 현지인 입장에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파헤쳤습니다. 미국과의 밀약으로 얻을 수 있는 특혜를 염두에 둔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결정한 박정희 정권의 실체를 드러낸 기고문은 외압을 불렀습니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군사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을 저지하려는 민주화 운동에 발을 담그기 시작하며 진실에 복무하겠다는 다짐으로 들어섰던 기자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사실과 사실을 꿰어 진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깊이 있는 탐구가 있어야 한다.’

   권력을 비호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기자들을 비판하며 한양대 신방과 교수로 들어선 선생은 국제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탐구하는 학자로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파헤쳐 진실을 알렸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평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선생은 한반도의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반전 평화의 한시를 써서 지인들에게 돌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감행된 부시의 이라크 침략으로 한반도에 전쟁의 화근이 생길 수도 있음을 우려했습니다. 선생의 우려대로 미국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요청하였고, 노무현 정부를 파병을 결정을 비판하는 시위에 동참한 선생은 정부의 미국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내며 파병 철회를 촉구하였습니다. 유신헌법을 개정한 박정희는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해 극우 반공 체제 확립을 위해 민주 인사들을 수감하는 반인륜적 패악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억눌린 자에게는 예의를 차리지만 권력에 기대어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습니다. 출옥 후 아내의 지적정치적 성장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40년 넘게 함께한 길동무인 아내를 향한 그만의 표현법이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가정보다는 사회를 앞세운 전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민족주의자로 사르트르와 루쉰에게 배운 지식인의 책임을 가족들에게도 강요하며 엄혹하게 대했던 일들, 자기 성찰로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습니다. 젊은 날의 리영희는 이성의 지배를 통해 동물적 요소를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지만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겪으며 인간의 이성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   일제 식민지 시대에 변방에서 태어난 선생은 해방의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625전쟁을 겪으며 서슬 퍼런 유신 시대와 독재정권의 불온한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언론과 대학이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비롯된 불의에 대한 의분은 선생의 삶을 지탱해 온 바탕이지만 그의 건강을 해치는 적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단으로 시대를 깨우는 언론인이자 올곧은 학자의 길에 충실하였습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져서도 강제 휴식기 몸의 감각을 되살리는 재활 운동뿐 아니라 그동안 읽고 싶어도 읽지 못했던 책들을 보며 지냈습니다. 선생은 젊은 시절 외부적 현상과 변화에 대응해온 남의 삶에서 조금은 명상적인 나의 삶을 다짐하였지만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돌리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반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역대의 군사 정권은 선량한 국민들에게 해악을 끼친 사건들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어떤 반성도 하지 않는 정권을 비판하였습니다. 새로운 자료와 통계정보를 수집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 선생은 새로운 정보와 통찰을 담은 글을 써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과열 경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식화된 시민집단의 역량과 시민집단과의 연대 확대와 강화를 전제하였습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할 진실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언론인의 사명으로 알고 정의롭지 못한 시대에 타협하지 않는 의지로 평생을 지켜 온 선생님의 길을 마음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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