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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미세먼지가 걷힌 하늘이 막역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담임을 맡아 여유가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돌려 생각하면 10대의 튀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생기를 회복하는 듯하다.

교육 경력이 늘어난 만큼 학부모들 연령이 별 차이 나지 않더니 어느 새 동년배이거나

담임보다 나이가 적은 이들이 많은 것을 감안하니 세월이 무심히도 흘렀음을 절감한다.

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 없다는 점은 불변의 진리처럼 다가온다.

   점심을 먹고 도서실에 들렀다가 자리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려는데 170센티미터가 넘는

반장이 허리를 굽히고 조심스레 다가와서는,

   "선생님, 벚꽃이 떨어지기 전에 반 친구들과 함께 사진 찍어요."

 한 학생이 외조모 상으로 학교에 오지 않고 있는데 한 녀석은 월요일에 다시 찍어야 한다며

우정을 드러냈다.

   제자들 중에는 고등학교 교정의 벚나무 아래서 교감하던 순간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침 맞고 오는 길 벚꽃이 가득한 교정을 피사체에 담아 보냈더니 고맙다는 말을 전하였는데

금요일에는 우리 반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내린 비로 벚꽃은 지고 그 자리를 희롱하며 날아디니던 벌들은 다른 꽃을 찾아 떠났을 것이지만

피사체 속에 남은 벚꽃은 우리들 마음 속에서 분분이 날리고 있을 터이다.

꽃 다운 나이에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 간 세월호 희생자들의 어린 넋들을

위로하며 돈으로 아이들 목숨을 흥정하는 어른들의 잘못을 참회하며 4월에 읽고 싶은 에세이를

모아 본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사회적 약자로 심리적으로 위축된 이들을 찾아 그들의 아픔을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던 그녀가 15년 째 파킨스 병을 앓고 있었다니 그저 놀라웠다.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여러 일을 병행하며 소임을 다하는 모습에서 진한 감동이 밀려든다. 오늘 하루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에 답을 준다.

 " 잘 살고 있는 거냐?"

 

 

 

 

 

 

  실의 고통을 다 짐지우지 못한 채 숨구멍을 틔워주기 위해 떠난 인도여행의 추억이 떠오른다. 빠하르간지에서의 충격적인 현상들 앞에 공포와 설렘이교차하던 시간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던 인도 여행의 아련한 향수는 언젠가는 그곳을 다시 밝으려는 갈망으로 가득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길 위의 철학자들과 수행자들을 목격할 수 있는 곳 인도의 진풍경을 새롭게 보고 싶다.

신기한 나라 인도로 불리는 그곳으로 떠날 힘을 비축하며 오늘도 지낸다.

 

 

 

  어느 순간 운명을 믿는 이로 변해 있었다. 삶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며 팔자 도망은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때면 가능하다고 여기며 지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불가항력적인 뭔가가 있어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있다고 여길 때가 속출한다.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이들도 전생에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데 남은 날들을 좀 더 신중하게 살아가기 위해 전생이 궁금해졌다.

 

 

 

 

 

 

 

 소설가 김영하 작품을 즐겨 읽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는 기득권들의 무책임한 말들보다는 자신의 이력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전업작가로 표현하는 일을 즐기는 삶을 살고 있는 작가의 솔직함이 때로는 위로가 된다. 스물 세 살의 딸이 중국에서 공부를 하다 두 달 남짓이면 고국으로 돌아온다. 취준생으로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 나이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자신이 즐기며 행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골몰할 수 잇었으면 한다. 작가의 <<보다>>에 이어 <<말하다>>를 구매해 두고 아직 읽기 전이지만 많은 독자들과 함께 소통하고 싶은 에세이라 권한다.

 

 

 

 

 

 문학 평론가 정여울의 글을 좋아한다. 수식어가 난무하는 글보다는 간명하면서도 고갱이를 짚어내는 명쾌함에 끌려 많이도 추천하는 작가의 글이다. 그녀가 낸 여행서가 인기를 끌면서 또 다른 여행서를 출간하였는데 이번에도 주관성이 객관성을 확보하는 글로 가득하길 바라며 읽고 싶은 책으로 넣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면 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올 여름 라다크 여행이 계획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먼 공간을 찾아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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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당선작 독자선정 위원에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최종 선정되신 10분의 독자선정위원을 발표합니다. 


선정되신 분들께 축하의 말씀 드리며, 앞으로 좋은 활동 기대합니다.


[독자 선정 위원회]


강*주 happys***@naver.com

노*주 nop***@chol.com

라*현 rudnfd***@naver.com

박*희 ary***@hanmail.net

서*경 littlegir***@naver.com

양*은 zol***@naver.com

이*은 rai***@naver.com

이*원 heeya19***@naver.com

정*욱 jhen***@hanmail.net

최*주 alle***@hanmail.net



[활동 상세 내역]

* 대상 투표글 : 2015년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작성 글 (4월,5,6월 당선작 대상)

* 투표 방법 : 로그인 후에 이달의 당선작으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글에 "좋아요"를 클릭합니다. 

  (반드시 고객님 계정으로 로그인 하신 후 공감을 클릭해주셔야 합니다.)

* 상세한 활동 사항은 고객님께 안내 메일을 보내드리니 참고해주시고 문의사항은 지기 서재나 고객팀으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으로 시작했던 독자 선정 위원회 활동을 통해 관심 분야의 서평을 읽고 공감하며

다양한 생각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4월부터 다시 활동하게 되어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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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어쩌면 가까이 - 슬픈 날에도 기쁜 날에도, 제주
허지숙 & 허지영 글.사진 / 허밍버드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바쁘게 움직이며 살던 친구는 에너지 고갈 상태라 재충전이 필요한데 빛의 속도로 움지깅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하였다. 코발트 빛 바다와 달콤 쌉싸름한 추억을 몰고 오는 바람에 가슴 속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그만인 곳 제주도로 가자는 암묵적인 소통에 우리는 제주 공항에서 만나 사나흘 함께 지내기로 하였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살 수 있다고 여겼던 이들도 하나 둘 곁을 떠나고 남아 있는 친구가 몇 안 되기에 그들과 교감하며 사는 일은 인생의 노년을 풍요롭게 보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가슴 속 이야기를 나누며 살 수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음을 잘 알기에 지금 곁에서 정성을 다하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며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수다를 늘어놓는 잦은 만남이 주는 공허함보다는 자주 보지는 못하여도 서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든든한 보호막이 내게도 필요했다.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를 찾아 생전 그가 담았던 제주의 풍광을 보면서 오름 하나하나의 가치가 새롭게 파고들었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제주도 곳곳을 피사체에 담아 제주도의 속살들을 보여주었다.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제주도의 내밀함을 찾아 제주도를 찾는 이들에게 이국적인 풍광에 인생의 진솔함을 투사하여 고독을 상쇄하며 지냈던 그가 떠오른다. 또 하나의 사진첩을 발간한 허 자매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공부를 하러 제주도를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살면서 사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손짓하는 제주도를 담았다. 일상적인 공간이 색다른 의미로 창조되는 시간은 너와 나가 우리로 연대하여 소통하고 교감하는 순간이었다.

보리밭 사이를 걸어가는 자매의 치맛자락이 나풀거릴 때마다 제주도 생활의 이야기는 도르래에 감긴 실이 풀리듯 간결한 문장에 녹아 흐른다.

   제주에 정착한 이들은 예술적 심미안을 바탕으로 재능을 발휘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함께 하는 일상을 피사체에 담아 제주도를 드러냈다. 가만히 있어도 좋을 공간 제주도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으로 비춰지는 제주도의 속살들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곳으로 가고 싶은 열망을 더한다.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색과 문양으로 신비로움을 더하는 공간 제주도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느긋하게 움직이며 천혜의 자연과 함께 하는 자매의 일상이 부러움으로 차오를 정도다. 올레 길을 걷는 이가 늘어나서인지 구석구석에 들어선 게스트 하우스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어 이색적인 공간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비축하며 지내기에는 제주도만한 곳이 없어 보인다.

    제주의 자연을 사랑하고 시간이 깃든 오래 된 물건을 각별히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엄마의 감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들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며 풍광 속에 주인공으로 자리하여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여행 중에 만난 벨기에 청년과 함께 일몰이 아름다운 수월봉을 찾았고 미래의 이상형을 만나 바닷가에서 그들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연출하며 상상 속 아이디어를 재현한 일은 통념을 부수는 행동 중 하나로 신선함을 더했다. 화산 폭발 때 날아온 화산재가 겹겹이 쌓인 화산쇄설층은 폭발의 격렬함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줄무늬로 새겨져 있었다. 동백 언덕으로 불리는 카멜리아 힐의 수국 동산은 남다른 매력을 주는 청초함으로 가득했다.

    여름에 제주도를 여행했을 때 대지의 열기와 인파에서 묻어나는 열기로 몸살을 앓았던 기억이 떠올라 여름 여행은 꺼리기 일쑤인데 사려니 숲길, 삼다수 목장, 마방목지 등을 구경하기에 좋은 516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라면 마음이 달라질 것 같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마는 제주의 고독과 처연함이 공존하는 때로 호젓한 묘미를 즐길 수 있다니 이 무렵 제주를 찾았을 때 장마를 만나더라도 불평은 잠재워 둘 일이다. 가을에는 오름을 오르며 오름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곁들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겨울이면 온 세상을 순백으로 뒤덮어 이색적인 절경을 선사하는 제주도의 산은 경이로움 속에 태곳적 비밀을 간직한 듯한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다.

   새해 벽두 돈내코에서 영실로 내려오는 한라산을 오르며 헛디뎌 실족할까 봐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내디디며 걸었던 눈길 산행은 지금도 선연하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하였던 특별한 산행은 정신을 한군데 모아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뚜렷한 성취감을 주었고 어던 일이든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귤 수확이 한창인 때는 농가를 찾아 귤 따는 일을 도우며 제주도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한 방에서 모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도 따사롭게 전해진다. 숫자 49가 들어가는 날이면 제주 오일장은 갖가지 명물들로 전을 벌이니 장날 제주도 전통 장 구경에 나서서 색다른 즐거움에 빠져들고 싶다. 미처 가보지 못하였던 곳을 향해 하늘을 가르고 비행하는 물체에 동경하는 마음을 담는 길에 자매의 사진 속 일상이 융해되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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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산소 다녀오는 길 매화 봉오리가 맺혔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금세라도 꽃망울을 터뜰릴 기세더니

어느 새 꽃이 피었단다.

연일 황사와 미세 먼지로 마음까지 답답해져 외출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지내다 새학기 맞이 목욕(?)을 다녀와 제자 결혼식에 다녀왔다.

배구로 맺은 인연이라 이색적인 이벤트로 배구공 스파이크로 맞혀서 나온

뽀뽀를 하객들 앞에서 능청스럽게 해내는 부부를 보면서 한바탕 웃어젖혔다.

3월 1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선열들의 흉내를 내며 만세를 삼창하는

모습에 또 한 번 웃어야 했다.

 

바빠질 3월 미리 읽고 싶은 에세이를 선정해 본다.

한비야의 열정에 매료되어 그녀의 책을 찾아 읽었고

못할 것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뚝심에 나도 모르게

끌려들고 말았다.

여고 시절 만난 사서 선생님과의 인연을 통해 한 해에

책 100권 읽기 운동을 지속한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나역시 제자들에게 감화를 줄 수 있는 스승으로 자리해야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이 글은 지금의 한비야를 존재케 한 원칙을 모아 놓은 글로

긴급 구호 활동을 펼칠 때에도 글쓰기를 놓치지 않은 그녀의

원칙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좋아하는 단어 둘이 모여 있다.

술과 책방이라니 묘한 조합이 어색하면서도 관심을 끈다.

치맥 대신 책맥을 떠올리게 하는 상암동 술 먹는 책방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며 책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이

연상된다.

술에 먹히거나 삼키면 자신을 잃을 수도 있으니

가볍게 한 잔 하면서 책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한겨레 신문 기자로 그녀가 쓴 글을 종종 읽었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내 설득력 있는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을진대 그녀의 필력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표현으로 독자를 이끌었다.

오후 4시는 해가 지기 전 하루를 마감할 준비를 슬슬 하는 시간이다.

조금은 느긋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반추하는 시간 서촌 오후 4시는

어떤 시간의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있을지 궁금해진다.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간 송광사

관도 없이 승복 그대로 덮어 다비장으로 향하던

스님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무 아미타불을 독송하며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

생전 무소유를 철저히 지키며 자신에게는 너무나 혹독하였던

스님의 청정한 삶이 그리워지는 요즘

최인호 작가와 법정 스님의 한담이 궁금해진다.

올 봄에는 선암사 넘어 송광사로 내려와 스님이 계셨던

불임암에 들러 참배하고 와야겠다.

법정 스님 같은 선지식을 만나 청정한 도량에서 불법을 만난

인연에 늘 감사하다.

 

결혼은 늘 안고 풀어야 할 과제를 내게 많이 주었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는데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늘 힘들어하는 결혼 생활 23년차 직장여성이다.

집에서는 소소한 갈등이 서로를 갉아먹고 이제는 서로에게 심드렁해져

지내는 게 편하다는 생각에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여 주는 생활로

타협점을 찾았다.

결혼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45년차 아내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앞으로 살아온 세월만큼 더 지내봐야 부부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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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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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을 때나 떠난 이들이 그리울 때든 배고플 때든 햇볕은 따사롭게 내리 쬐어 궁핍을 달래주었다. 서자로 태어난 이덕무는 가난을 대물림하여 굶주림을 다반사로 여기며 지냈던 시절에도 책을 내리 읽어갔다. 추울 때나 괴로울 때, 아플 때와 배고플 때도 책을 읽으며 견뎌냈던 이덕무를 보면서 독서의 이로움은 어디에서 연유하였는지 그토록 책에 빠져 지낸 것인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굶주리는 식솔들을 위해 사색의 오랜 결과물을 내다 팔아야 했던 씁쓸함을 알아차린 유득공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책을 팔아 술을 사오게 해 함께 나누는 자리는 상상만 해도 흐뭇해진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나누고 술을 마시며 책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백탑 아래서 학문을 나누며 즐거움을 함께 했던 벗들과의 교류는 지치고 힘든 생활에 정신적 양분을 공급해 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서자(庶子) 신분으로 운명이 결정되어버린 부조리한 시대적 상황에 에 대한 울분과 고독으로 점철된 힘든 상황에서도 내밀한 생각을 주고받으며 책을 함께 읽고 소통하였던 같은 처지의 벗들이 있었기에 사람으로서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백탑 그림자는 벗들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고, 불온한 세상에 자신을 곧추 세우고 살아갈 힘을 주었다. 백탑으로 불리는 원각사 십층 석탑은 막막한 삶에서 오는 고단함을 풀어주었고, 백탑 아래로 온 이덕무는 나이를 뛰어넘는 벗들과 사귀었다. 그의 처남으로 무예를 뜻을 둔 백동수, 백성들의 삶이 나아질 방법을 찾는 일에 골몰한 박제가, 사대부 집안의 자제로 신분의 사슬을 넘어 사람됨을 중시하는 연암,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유득공, 명문가의 자제로 나이와 신분에 거리낌 없이 어울린 이서구와 같은 벗이 있어 막막한 세월을 서로 의지하며 견뎌낼 수 있었다.

   벗들이 백탑 아래 마련해 준 청장서옥에서 백로처럼 욕심 없이 책 속에 빠져들어 지낼 수 있었다.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책 속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에 전율하던 책 읽기는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 가운데 하나다. 이들과 함께 스승으로 받들던 담헌 홍대용선생과 연암 박지원 선생과의 학문적 교류는 세간의 벽을 허물고 깊이 있는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인생의 길동무로 자리하여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할 때를 기다리며 현실의 무게를 견뎌냈다. 서자로 태어났다는 이유가 삶의 족쇄로 걸림돌이 될 때에도 우리를 동여 맨 쇠사슬을 끊어내고야 말겠다는 박제가 같은 벗이 있어 이덕무는 찰나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감싸 주며 다독거리던 유득공의 어머니의 말을 전해들을 때마다 서늘한 가슴에 흘러들었던 따스한 피는 불합리한 세상에서 정을 나누며 살게 했다.

   이덕무의 처남이자 오랜 벗인 백동수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무예를 익히고 사람을 낫게 하는 의술도 함께 익히며 평화를 유지하며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생활 형편이 더 어려워져 백동수가 식솔들과 함께 기린협으로 들어갈 때도 벗들은 가난할 때의 사귐이 우정의 핵심이었다고 말하며 힘듦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전하였다. 명문가의 자제로 환한 처지에 놓인 이서구는 좋은 책들을 그와 함께 읽으며 책 속의 담론을 나누었고, 책 속의 내용을 읊조리며 지냈던 시절은 고달픔을 상쇄하는 즐거운 추억의 장면이었다.

   ‘조선 사람의 눈으로, 조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야.’

   스승 연암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발로 알아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였다. 스승 담헌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과학적인 시선으로 보게 하는 열린 사고를 열어주었고, 지금껏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굴레를 벗어나 새 희망을 품게 하였다.

   자신만의 비좁은 틀인 선입견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오류에 빠져서 그것이 편협한 시선임을 일깨우지 못한 채 지낼 때가 있다. 변화를 시도하여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생활을 끌어당기는 생활에 책은 껍질을 깨고 부화하는 병아리처럼 자신을 둘러싼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준다. 서자로 태어나 신분의 벽에 갇혀 지내던 시절 다양한 책들을 읽고 소통하며 지낸 벗들과 함께 드넓은 땅을 밟고 관직에 나가 교류하며 살게 될 때는 그의 나이 마흔 살 때이었다. 박제가는 중국에서 보고 들으며 배운 내용을 토대로 북학의를 써서 변화를 두려워하여 안일한 생활을 지속하는 사대부들을 풍자하는 말로 끝맺어 굳어진 체제에 변화를 시도하였다. ()과 무()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조화를 이뤄야 함을 간파한 정조의 부름으로 백동수까지 대궐로 들어와 백탑 아래 모였던 벗들이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며 지방의 고을 현감으로 일할 때, 고을 백성들의 생활을 면밀히 살펴 시정해야 할 부분을 찾아 갔다. 그리하여 힘없는 백성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을 백성들의 살림을 살찌우며 권세를 부려 갖은 횡포를 일삼는 양반들을 엄격히 다스려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서로의 사간을 나누어 전한 이야기가 후손들의 마음에 따스한 바람을 일으키듯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간서치는 세월 속으로 사라져갔다. 백탑 아래에 모여 책이야기를 나누며 고달픈 삶을 달래며 집중하여 책을 읽으며 세상 보는 눈을 길러 혜안을 갖추었다. 조선 시대 지성인들이라 불릴 수 있는 백탑파의 움직임은 소박하면서도 담박한 성정에 묻어나 가시적인 성과에 매몰되어 살아온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책을 읽고 사유하는 가운데 우리는 균형감 있게 성장할 수 있는 질료(質料)를 축적할 수 있음을 새기며 오늘도 책을 읽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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