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초입인 마흔 고개를 넘으면서 회복 탄력성은 떨어져 생기 있게 움직이며 지내던 30대와는 달리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변화를 자주 느끼던 중 생애 전환기 건강 검진 대상자에게 통지되는 안내문을 받았다. 국민 건강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질병 치료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행하는 검진을 받기 위해 인근 도시의 종합병원으로 향하였다. 같은 연배의 검진 대상자들은 검진 표를 들고 순번대로 움직이며 검사에 응하였다. 위내시경 수면 검사를 받고 깨어났을 때 담당 의사는 위에 용종이 발견되어 그것을 따로 떼어내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며 그 결과는 열흘 뒤에나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생각지도 못한 조직 검사는 비극적인 상상을 불러일으켜 평정심을 유지하기는커녕 극심한 공포에 짓눌려 결과가 나오기까지 애간장을 졸여야 했다. 암으로 판명되어 항암 치료를 받는 고통보다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잠을 이루지 못했던 시간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결과는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서른도 안 된 데이지의 암 재발은 불가항력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재앙처럼 여겨졌다.

 

   스물세 살의 데이지는 불의한 사고로 다친 팔을 치료하던 종 종양을 발견해 종양 절제술 이후 항암 치료를 끝내고 무탈한 일상을 회복하여 부부는 신혼의 행복을 찾아갈 것처럼 보였다. 수의사로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보며 수의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잭과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데이지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뒤 부부는 사랑의 열매인 아기를 가지려고 했지만 가혹한 운명의 신은 예고 없이 유방암 재발과 다른 기관으로 암이 전이돼 길어야 4~6개월이라는 시간을 유예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계획을 행할 수 없는 시간이 긴박하게 다가선 만큼 부부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파고를 억누르며 성숙한 언행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암 재발을 막기 위해 했던 일련의 활동들이 무위로 돌아가 허탈감에 젖을 새도 없이 데이지는 햇빛에 스러지고 말 이슬처럼 사위어갈 목숨을 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홀로 남겨질 잭을 위해 그의 아내를 구하는 계획을 실행하였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전문가이지만 아내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은 남편의 성향을 이해하고 부족함을 채워 줄 새 아내를 구하는 일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였다. 남편의 새 아내에게 필요한 자질을 챙기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편의 사진을 올리는 아내의 비통함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잭이 혼자 남으면 어떻게 될까?’

  데이지의 염려와 고민은 치료 불능의 상태에 이르고 만 자신의 고통에 귀착하기보다는 홀로 남을 남편의 원활한 생활에 집중되어 있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유한한 인생에 대한 통찰로 생에 집착하기보다는 스스로 남은 삶을 정리하면서 살아남은 자를 배려하는 데이지의 넉넉한 마음은 남편의 새 아내를 구하는 요건에서도 드러났다. 그녀는 교감하며 지내던 케일리와 함께 잭에게 걸맞은 아내를 구해주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낼 때도 있지만 기저에는 슬픔의 깊이가 더한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뒤 데이지는 돌연한 교통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딸을 키워냈던 그녀의 외로움을 통찰하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숙함을 보였다.

 

   고작 스물일곱! 공부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일들이 줄지어 서있는 원하는 바를 접고 오로지 한 가지 일을 계획하는 동안 데이지의 바람은 잭이 잘 지낼 수 있는 있는 방안을 찾는 일에만 집중하였다. 곁에 있을 것이라 여겼던 한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의 불가피한 현실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그를 밀어내는 그녀의 행동은 남은 정을 떼려는 의도처럼 비춰져 처연함이 더했다. 심사숙고하여 잭의 배우자로 결정한 패멀라는 남편과 함께 강아지 구조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벌여온 사이다. 둘의 친밀함을 토대로 상상해내는 세상은 자신이 채울 수 없는 단란한 가족의 일상이 갖는 쓰라린 즐거움이었다.

 

   생명적 유기체는 누구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에 놓여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틀이 멀다하고 접하는 부음(訃音) 중에서도 젊은 생명이 제 빛을 발하기도 전에 세상과 결별하였다는 소식은 헛헛함에 휩싸이게 한다. 스물 셋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자의 상가를 찾았을 때 남은 식구들과 친구들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는 진풍경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척의 광경이었다. 다양한 죽음을 목도하면서 슬픔에 젖을 때마다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할지 고민한다. 순연한 흐름으로 죽음을 수용하며 남은 자들을 배려하는 넉넉한 사랑은 견지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푸념을 거두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하고 싶다. 데이지와의 짧은 결혼 생활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살아갈 잭의 입가에 번지는 엷은 웃음은 인연의 고리로 잔잔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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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책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글을 읽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 게 아니라 책이 제대로 안 읽혀져서 스트레스 받는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아이들에게 욕심내어 책을 읽기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소화하여 읽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다독(多讀)이 다다익선(多多益善)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마음잡고 음미하며 책을 읽는 일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한 권을 오롯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일이 요긴하다. 한 권의 책을 정독하고 모르는 부분 없이 자유롭게 읽혀 통찰력 있게 파악하는 힘이 중요하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질적인 성장을 돕는 책 읽기는 편법을 쓰지 않고 묵묵히 책 내용을 좇아 읽으며 모르는 게 없어질 때 오감을 동원하는 읽기는 가슴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책 뜯기 공부법이란 자극적인 제목이 풍기는 것처럼 책 속의 내용을 맛보고 씹어 삼키듯이 책 속의 내용과 지식을 온전히 소화시킬 때 공부법의 효율성은 높아질 것이다. 소신 있는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유명인사들 은 독서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너머의 세상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연계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스스로 발전의 동인으로 삼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고수들은 자신만의 독서 방법으로 체계적인 책 읽기를 누적해 나갔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생에서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학교에서 교육받은 지식은 큰 힘을 제공하지 못한 채 절망감을 더하여 즉흥적인 문제 해결로 일을 말끔히 처리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한마디로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진단한 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탐색하며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통찰력 있게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 다양한 독서를 다양한 관점에서 대하고 읽은 후 현실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포스트잇 독서법은 책을 읽으면서 뚜렷한 사고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책에서 얻은 지식을 자신의 표현으로 다시 메모한 뒤 그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메모하고 앞으로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메모하여 읽어 갈 때 숙련도는 길러진다. 알리바바 그룹에서 시행하는 책 뜯기 토론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읽은 만큼만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하여 이를 통해 생존 여유를 늘려갔다.

 

   책 속의 지식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은 개인적인 경험과 연계시켜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우선 과제이다. 책 뜯기 리더는 학습자들에게 지식과 자신의 경험을 연계하여 향후 응용 계획을 세워갈 때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다.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능력을 신장하기 위해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다. 실천을 강조하는 학습에서 지식을 응용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책 뜯기 공부법은 확장식 활용과 재구성식 활용을 통한 효율성을 제고한다. 책 뜯기 리더는 학습을 촉진하기 위해 경험 연계, 참여 유도, 활용 촉진의 과정은 학습자가 지식을 연역적으로 추리할 수 있도록 도와 자신의 핵심 역량을 찾아가는 일을 돕는 과정이다. 궁극적으로는 추상적인 지식을 자신의 경험과 결부지어 사고를 통해 능력을 계발해나가는 학습법으로 책 속 지식을 끄집어내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해낼 때 책 듣기 공부는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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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얼떨결에 시작한 평가단 활동의 연임으로 15기 평가단으로 활동하는 영예를 안았다.

5월의 봄은 실종된 지 오래라 여름의 더위는 성큼 다가서 엄습한다.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갈수록 인내심이 고갈된 아이들이

많아지는 듯해 아쉬움이 더할 때가 있다.

세태가 변하였는데 전통적인 수법으로 더위를 식히려는 생각에 젖어 지내는

경직된 사고로 기운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위해 일상의 리듬을 찾아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일이 필요한 때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 줄 에세이들로

6월 신간 평가단 추천 도서를 뽑아본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 잡고 뒷산 등성이를 타고 오르며 무명의 어둠을 밝히려는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적이 있다. 함께 살던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세월에 공양미 이고 가서 참배할 부처님마저 안 계셨다면 할머니는 가슴의 응어리를 숙명처럼 안고 살았을 것이다.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은 박완서 작가는 그 일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며 그저 감내할 뿐이라고 말하였다.

계율을 지키며 사는 게 맞지만 절에 안 나오면 지옥 간다는 말로 옥죄지 않고 마음이 고달플 때 사찰 대웅전 좌복에 앉아 참선하고 108배 수행하는 일로 위로를 얻을 때가 많다. 

번뇌 망상을 넘어 삼독심을 버리고 살아가려는 움직임에 마음 속 등불은 환해진다.

 

 

 

 

 

청빈한 생활과 검약함을 선택하여 살다가신 두 분의 편지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교육자로 아동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며 오염된 우리말을 바르게 쓰는 일게 열정적이었던 이오덕 선생님과 강아지똥으로 더 유명한 종지기 권정생 선생님은 내면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질병의 고통을 끊고 지내는 천상에서 잘 계시는지요?

 

 

 

 

예술가 헤세는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며 누구보다 성장을 위한 고뇌를 담은 작품들을 남겼다. 한 세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며 따뜻한 감성을 지닌 노년으로 살다가고 싶은 마음에 헤세의 작품은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가 손홍규가 지난 2008년부터 3년 반 동안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손홍규의 로그인〉을 묶은 산문집이다. 당시에 썼던 180여 편의 글 중에서 138편을 가려 엮었다.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우직하고 따뜻한 애정,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진실한 주장을 담은 글이라니 궁금증이 더한다. 편견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청춘의 핵심적 태도인 열정과 도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그녀의

삶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설렘을 준다.

전문계 고교에서 처음으로 독서 골든벨을 울린 여학생이란 이력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독서욕에 대한 갈망이 집약되어서이다.

자기애를 넘어 인류애로 확장해 나간 그녀의 사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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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성 패혈증으로 검사 도중 죽음을 맞은 이웃의 부고를 전해 듣고 문상을 다녀오는 길 일흔 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영정 사진 속 주인공은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이 쉰을 바라보는 나이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다고 여길 때면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새롭게 발견한다. 죽음이 자신을 비껴가 지인들은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추억 속 그들을 불러내어 반추하며 살아가는 일은 절대 고독의 심연 속으로 끌어가고 말 것이다.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먼저 묵게 되면 무덤에 와서 술 한 잔 따르며 말도 좀 걸어주라는 말을 들을 때면 처연해지고 만다.

  

   말수가 적은데다 원칙적인 삶을 고수하며 타협하기를 거부하던 오베의 황량한 삶에 소통의 빛으로 자리했던 소냐의 죽음은 그의 삶에 품위를 앗아 가버렸다. 논리 정연한 문제해결로 정답을 찾아가는 수학을 좋아했던 소년 오베에게 일상성이 깨지는 일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불가항력적인 혈육의 죽음은 세상에 홀로 남은 이가 감내하며 살아야 할 몫으로 남았다. 세상사에는 질서가 있어야 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있어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생활이 지속되길 바랐던 이에게 일상성의 균열은 스스로를 고립된 섬에 유폐하는 일로 이어졌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에 적극적이었던 오베는 자동차 엔진을 이해하고 그것을 능숙하게 부릴 줄 알았다. 엄마를 여의고 떠나버린 엄마의 소소한 기억들을 가슴에 묻고 살면서 부자지간은 침묵 속에 추억 속 인물을 불러내며 지냈다.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버지였지만 엔진을 정밀하게 이해하여 그는 고장 난 차를 완전하게 고쳐 전문성을 겸비한 이로 능력을 인정받으며 기능장으로서 품위를 갖춰 갔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아버지의 성향을 닮은 아베는 아버지마저 여의고 열여섯에 아버지가 일하던 곳에서 현장 일을 도우며 기술자의 자질을 길러가던 중 불미스런 일로 누명을 썼을 때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품위를 지킬 줄 알았다. 말문을 닫고 지내던 오베에게 누구도 쉽게 말을 붙이지 않았을 때 친절함 이면에 자리한 잇속을 드러내며 접근한 남자에게 보험사기를 당하였을 때도 그는 크게 맞서지 않았다. 물건들은 저마다 쓰일 곳이 정해져 있게 마련이지만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과욕이 낳은 똥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푸념하며 오베는 물건의 올바른 기능을 존중하였을 뿐이다.

   목적지를 오가는 열차 안에서 책과 고양이 아버지를 좋아하였던 소냐를 만남으로써 웃음을 잃고 지낸 오베는 웃을 줄 알았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유일한 존재로 각인되어갔다. 오베는 소냐를 만나기 전까지는 삶을 지속하였지만 진정으로 살았던 게 아니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성실함으로 무장한 그는 주택 회사에 고용되어 장기근속하며 의무를 다하였고 소냐와 결혼하여 비로소 가족을 떠나보낸 절대 고독의 심연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고 일과를 시작하던 안정적인 일상이 지속될 때는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소중한 줄을 모른다. 하지만 돌연한 사고로 치명적인 화를 입고 재앙에서 헤어나기 힘들 때면 일상의 리듬이 지속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게 된다.

   소냐가 떠나고 그녀가 남긴 사진 속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지난날을 반추하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베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죽음을 결심하지만 이웃의 기습적인 방문과 누군가의 도움 요청은 인위적으로 목숨을 끊기로 한 날을 유예하게 만들었다. 평화를 사랑하고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언행을 삼가는 원칙을 고수하며 살아온 오베는 정신을 잃고 선로에 떨어진 남자의 목숨을 구하고 영웅으로 떠올라 일간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도 그는 으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행동하는 남자로 소통하며 지냈던 루네가 기억을 잃고 의존적으로 숨을 쉬며 사는 그를 마음대로 처분해도 되는 짐짝처럼 말했을 때도 오베는 그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잇달아 생겨나 유예해두었던 죽음에 임박하였을 때 그는 사후의 일을 문서화하여 변호사에게 일임하였고 인연을 맺고 지낸 이웃에게 짧은 편지를 전하였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 사람이 죽고 난 뒤 살아남은 자들의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조문객 금지. 시간 낭비 금지!’

   라는 오베의 유언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장례식에 조문객은 많았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들을 추억하며 오랫동안 홀로 살아야 하는 이의 고통은 커 보인다. 소냐가 곁에 있던 세상과 그녀가 유택(幽宅)에 갇혀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로 허공 속에 흩어져 버리는 씁쓸함은 죽음으로 결별한 이들의 고통 속에 자리한다. 행동으로 보이며 진정성 있는 실천력으로 그만의 사랑 방식으로 이웃을 배려하며 지냈던 오베는 죽어가면서도 지켜야 할 품위를 잃지 않았다. 융통성 없는 남자라는 말을 들을 때도 화를 내지 않고 넘길 수 있는 아량은 소냐를 향한 오베의 깊은 사랑에서 발현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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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부터 주말마다 친정으로 간다.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나면 오후 5시 30분 넘어 집에 도착하여 행장을 구리고 길을 나선다.

일흔 하나인 엄마는 곡우 전부터 녹차와 고사리로 몸살을 앓는다.

이른 새벽부터 차밭에 나가 해가 질 때까지 녹차를 따고 집으로 돌아와 티를 가려 낸 뒤

달궈진 가마에 녹차를 넣고 덖고 비벼 건조시키는 차를 만드는 작업이 이뤄진다.

덖은 차를 식혀 비비고 자시 그것들을 가마솥에 넣어 덖어 비비는 반복 작업을 거친 뒤

건조시킨 뒤 다시 가마솥에 넣어 살살 덖어내는 일로 마무리된다.

 

오늘도 녹차 밭에 새벽 5시 40분에 나가 오후 4시까지 녹찻잎을 따면서 일상처럼 일하는 엄마를

생각하니 허리가 아픈 것도 내색할 수가 없다.

평생을 논밭에서 살아온 어머니 오늘은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배가 된다.

일할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수십 번을 되새기며 고진한 노동을 상쇄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리 잠을 잤다.

먼지 푸석푸석한 몸을 씻어내리고 매주 한 캔을 마시며 노동을 성찰한다.

 

 

 

  

  아버지 얼굴을 기억 못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이 자리한다. 누구보다 딸이 귀한 집안에 태어난 여식을 누구보다 사랑했으나 추억을 남길 틈도 없이 피안의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 그래서인지 아버지 이름만 불러봐도 눈물이 맺힌다.

뇌성마비 아들을 태우고 해변의 모래 위를 미는 아버지의 모습이 뭉게구름 사이 코발트 빛 바닷속 청신함에 투영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들과 가장 헌신적인 아버지가 펼치는 아름다운 레이스  뇌성마비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자신은 그 뒤에서 휠체어를 밀며 보스턴 마라톤대회 풀코스와 하와이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한 철인 딕 호이트의 숭고한 시간을 통해 자식들을 살리는 부모로 자리하길 바라며 한계를 넘어서는 사랑을 다짐한다.

 

 

 

  3학년 학생의 독후활동기록장을 검사하면서 한 학생이 쓴 감상문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3학년 들어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시작하려는데 그럴 마음까지 앗아가버리는 냉엄한 현실적인 말 앞에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고 했다.

  '3학년 들어서 공부를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여러분들만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니니 점수가 쉽게 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

수년 지켜 본 바에 의하면 현실적으로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변수라는 예외적 조항도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담임의 냉혹한 말 한마디에 공부할 마음조차 내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마음을 다시 내어 볼 일이다.

힘들고 지칠 때 용기를 불어넣어 줄  책 한 권으로 오그라든 마음을 펴고 처진 어깨를 바로 펴길 바라며 다시 희망을 노래한다.

 

 

 

 

   질문에 대한 선택지 5개 중에 정답일 확률이 가장 높은 정답을 찾아 길을 떠나는 수업에 익숙해져서인지 발문을 통해 생각하여 말하는 일상적 물음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서글픈 일이다 관행대로 움직이기보다는 변화를 시도하며 새로운 삶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 바람과는 달리 점점 뇌는 굳어져 가는 현실이다.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생각하기 위해 방향을 바꾸어 관찰하고 곱씹어보기를 통해 생각을 글어내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던 작가의 신간 도서로 경직된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다.

 

 

 

   35년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의 소통은 그저 말 없이 앉아 있어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말을 하지 않아도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 따뜻해지는 이와의 인연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로 시작되었다. 자신의 상대로 움직이며 말하기를 즐겨 하는 현대인들에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귀를 쫑긋 세우고 상대의 말을 듣고 공감적으로 수용하는 이해 활동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인생의 이면을 들추어 스스로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소소한 일상이 초래한 일련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하고 잣대를 들이대며 편을 가르는 세상에 융합과 조화는 멀어져 보인다. 다름을 인정하고 너와 나가 융해하는 통찰적 삶을 위해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다.    

 

 

  한 작가의 유명세 이면에 자리하는 삶의 일면을 통해 지나온 자신을 돌아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나는 어떻게 변하여야 하나를 반추한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아래어덯게 살아야 하는지 성찰케 한다. 나의 불운한 삶도 어쩌면 스스로 만든 창작품이라는 것을 간과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돌아보게 한다. 부부가 한평생 같이 살면서 증오하고 불화하기보다는 떨어져 서로가 질적인 향상을 도모할 수 있디면 사회적 약속인 결혼이라는 규약을 깰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론적으로 비춰진 원인의 공방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하기보다는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이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상황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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