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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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흔여섯의 어머니를 찾는 시간은 존재의 알갱이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질책할 때에도 어머니는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였을 것이라며 딸을 믿고 정서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아버지는 상상 속에나 자리하였고 기박한 세월을 보낸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오누이를 길렀다. 신산한 삶에 자애로운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어머니였지만 자식을 향한 어머니 마음은 화톳불처럼 타올라 목울대를 적실 때가 많았다. 내리사랑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인 어머니는 사랑의 결정체이자 헌신적 사랑의 정수로 자리한다. 점점 땅과 가까워져 가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오지만 음성으로 안부를 전하고 단걸음에 찾아갈 수 있는 곳에 머무르는 어머니가 있어 든든하다. 노쇠한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며 소통할 수 있어 다행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엘리스와 로즈의 자백 속으로 빠져든다.

 

   그 시간, 그 공간에 머무르지 않았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는 회의는 지금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일 테다. 누군가를 만나러 나간 거리에서 그 대상을 만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미로 속에 갇힐 때가 있다. 스무 살 엘리스는 기다리던 남자를 만나지 못한 대신 서른여섯 살 코니를 만나 헤어나기 힘든 사랑에 빠져들었다. 카페 종업원, 국립극장 안내원, 모델 일을 하며 지내던 엘리스는 코니의 보호를 받으며 그녀의 삶 깊숙이 들어갔다. 코니는 마치 엘리스를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어내려는 듯 자신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린 그녀를 나만의 작품으로 창조하려는 욕망이 컸다. 환희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인의 손길이 머무는 시간을 탐닉하던 엘리스는 코니와의 생활에서 점점 자아를 잃어갔다. 코니의 사랑을 느끼고 확인하며 존재의 기쁨을 느끼던 엘리스의 감정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휘발되어갔다.

   

  욕망 때문에 편협해진 머리 작은 새

   라고 여긴 엘리스는 코니와의 동거가 점점 자신을 무능하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행복을 발견하는 양가성에 의문을 품는다. 런던을 떠나 콘을 따라다닌 엘리스는 언젠가는 그녀가 자신을 어딘가로 치워두고 싶어 할 수도 있음을 가늠하였다. 누군가에게 관찰되고, 누군가에게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엘리스는 특별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잃어가는 일을 용인하기는 힘들었다. 코니의 작품 밀랍심장을 영화 촬영으로 그녀를 따라 할리우드에 왔지만 엘리스가 할 일은 없었고 무료함으로 채워질 뿐이었다. 엘리스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한 날, 코니는 매력적인 여배우 바버라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향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발견한다. 엘리스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모델 일을 자처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여기던 때, 인생에서 여자보다는 바다를 더 원한 남자 맷에게 서핑을 배운 엘리스는 또 다른 환락의 세계로 향한다. 코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변심한 그녀에게 보란 듯이 맷과 함께 바다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종국에는 그의 아기를 갖게 되었다.

  임신한 걸 알게 되면 아이를 꼭 낳아요.’

   뱃속에 품었던 아이를 잃고 힘들어하는 샤라는 남편의 아이를 잉태한 엘리스와 약속을 한 뒤였다. 상대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엘리스는 로즈를 낳았고 그녀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되었다.

저는 엄마를 몰라요. 아기일 때 엄마가 떠났어요.’

엄마의 부재로 아버지와 함께 지낸 로즈는 어딘가로 사라진 엄마의 소식을 찾아 나섰다. 아버지는 엄마의 일화를 들려주기보다는 콘스탄스 홀든이 쓴 두 권의 소설을 말하며 작가가 엄마와 연인이었다는 말만 전했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재규어가 사는 나라로 가고 싶어.’

건너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며 엄마의 궤적을 찾기 위해 아빠에게 물음을 던졌지만 아빠는 딸 스스로 어머니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기를 바랐다. 자기 집착에 사로잡혀 감정적으로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조와 지낸 햇수가 쌓일수록 로지는 지리멸렬한 관계를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딸 로즈는 작가가 쓴 소설을 읽고 작가 콘스턴스를 찾아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세상을 제 뜻대로 주무르는 데 익숙한 작가는 타자를 칠 수 있는 가정부가 필요했다.

 

   엄마의 소식을 찾아 나선 로라 브라운은 놓쳐버린 길 어딘가에 진정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작가와 함께하였다. 자신감이 적고 두려움이 많았던 로즈에서 대담하고 능률적이며 재미있는 로라로 변신한 딸은 엄마의 자취를 찾아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 상황을 조작해 코니 집에서 일하게 된 로라-로즈-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진짜 누구인지 무시한 채 지내게 되었다. 비밀을 간직한 양파처럼 껍질을 벗겨내도 진실을 쉽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로라는 변심타이핑이 끝나가면서 처음보다 알기 힘든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 머무르자 코니 곁을 떠날 때가 머지 않았음을 예감했다.

 

   오랜 시간을 보낸 삶의 궤적보다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지 못할 때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연인으로 보낸 시간의 다감했던 일들보다 남은 시간이 슬픔으로 채워질 수도 있음을 간파한 이들은 이별을 선택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서로 가꾸지 않으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처럼 허탈감을 남긴다. 엘리스가 코니를 떠나 다른 선택을 한 것처럼 로즈 역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아 나섰다. 로즈 역시 아이를 출산하고 생물학적 아버지를 묻어 둔 채 가보지 않은 곳으로 향하며 인생 여행에 오른다. 코니는 연인이었던 엘리스와 딸 로즈가 함께 만든 초록 토끼 그림을 액자에 담아 그녀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삶을 지속하듯 로즈 역시 여행에서 돌아와 지난 시간을 정리하며 새 길을 찾아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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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아버지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가는 길, 부인도 없이 5남매를 키워낸 노인의 깊은 주름살이 떠올랐다. 며칠 전 어머니 일손을 거들기 위해 찾은 친정에서 치매가 와서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는 아버님의 소식을 들었는데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니 황망했다. 독성이 강한 제초제 그라막손 병이 시신 옆에 뒹굴고 있어 음독자살로 사건은 종결됐다.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들고 정신이 들 때면 자식들에게 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그는 이웃에게 종종 전하였다고 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병세 악화로 생활이 마비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동네 어른들의 추정이었다. 뒤늦게 주검을 발견한 그의 동생은 도시로 나가 사는 자식들에게 부음을 전했다.

 

   “너거 아배가 숨을 끊었다. 어서 내려와라.”

    다급한 숙부의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내려왔다는 친구는 얼마나 울었던지 눈덩이가 부어올라 있었다. 아버님이 질병의 고통 없는 세상에서 자식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라며 친구의 손을 붙잡고 등을 토닥거렸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망자의 삶을 기리며 문상객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하지만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추모하는 이 없이 외로움 속에 홀로 죽음을 결정하는 이들은 오래 방치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군말 없이 치우는 청소부가 있다. 일찍이 배운 것이 하필이면 시(), 얼굴을 맞대고 말을 건네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편이 더 익숙한지라 청소부가 선택한 애도의 방식은 책을 쓰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죽으면 나의 일은 시작된다.’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인 저자는 8년 동안 주검의 최전선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낸 이들의 죽음을 추모한다. 품격을 잃지 않고 살다 가면 좋겠지만 인생은 생각대로 잘 돌아가지 않을 때가 늘어남을 살아갈수록 알아차리게 된다. 다양한 이유로 고독사한 집을 찾았을 때, 기이한 형상을 한 풍경은 삶의 마지막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질병의 원인에 따라 주검에서 나오는 오물의 양과 냄새 등의 농도는 더해져 특별한 소명 의식이 없으면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이승에서의 신산하였던 생활을 마감하고 마지막 가는 길은 홀로 가는 외로운 길어있다.

 

   사체 썩는 냄새와 쌓여가는 배달 물건 등으로 죽음을 알리는 고인의 집을 말끔히 정리하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특수청소부의 글을 보며 죽음을 향하는 길이 고독하지 않았으면 한다. 태어난 자는 죽음을 향하는 인생 열차에 올라탄 셈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고 사용한 번개탄 봉투와 가스 뚜껑까지 분리수거함에 정리해 둔 고인의 몸짓을 떠올리면 안쓰러워진다. 어떤 이유에서든 홀로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이의 손길로 이승에서의 모진 삶도 갈무리되는 것이라 여긴다.

 

    유한한 삶에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숙명을 피해 갈 방법이 없음을 자각하면서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다양한 형태로 삶의 궤적을 남긴 이들은 절망적인 삶의 현실을 향해 저주를 토해내듯 죽음을 맞았다.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조차 확보되지 않은 세상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숨통을 막아버린 죽음은 목숨을 보전할 힘조차 예비하지 않았다. 특수 장비를 갖추고 주검의 흔적들을 치우며 망자(亡者)의 곁을 들여다보며 지난한 세월 속 고단했을 시간을 떠올린다. 살아있는 감각으로 맞닥뜨리며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기에는 버거운 극한의 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 없고 회생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의 죽음에 싸인 삶의 조각들을 통해 유한한 삶에 가치를 담으며 지난 시간들을 불러낸다. 무연고 죽음이나 고독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다양한 의뢰인을 만나 의뢰인의 고충을 처리하며 스스로를 옭아매던 시간에서 벗어나 지금의 시간에 충실할 필요를 느낀다. 변변한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한 줌 재로 변했을 주검을 뒤로 하고 말끔히 청소하는 고역을 마다하지 않았을 집 청소는 이뤄졌을 것이다. 갖가지 사연을 품고 살다 간 사람들의 마지막을 가늠하며 그들이 남긴 흔적을 치우는 움직임에는 망자의 고단했던 삶을 위로하는 의식이 함께했으리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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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차명식 지음 / 북드라망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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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한 달에 두 차례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눴다. 스무 명의 학생들이 동일한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 책 속 내용과 세상사를 연결지어 말하기 등의 수업을 나누는 시간이 쉽지 않았다. 궁벽한 시골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며 생각과 느낌을 나누며 생각에 깊이를 더하는 시간으로 나갔으면 하는데 쉽지는 않았다. 경쟁 위주의 교육 현장에서 내신 등급을 잘 받기 위해 시간을 쏟다 보니 책을 읽어오는 일조차 버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이 아이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책을 꼼꼼히 뜯어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가운데 한 사람은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학교 공부 로 지쳐가는 아이들을 독려하며 한 해 수업을 갈무리했다.

 

    책과 함께한 시간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내면의 깊이를 더하였고, 십대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타자와의 접속을 둘러싼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수업을 앞두고 그동안 읽은 책들의 목록을 나열하며 생각들의 얼개를 짜고 별점을 주면서 도서 목록을 선정하였다. 책을 매개로 한 공간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독서를 통해 자신을 기워내고 싶은 바람을 안고 독서학교에 들어온 만큼 정한 책을 완독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욕심이 앞서는 학생은 책을 읽고 적절한 발문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일도 덧붙이겠다고 하지만 시간을 내어 제 시간에 맞춰 오는 일조차 쉽지 않은 휴일 오전임을 우리는 안다.

 

   일요일 오후 2, 2 학생들과 만나 책을 읽는 동네 청년은 1년 동안 계절마다 다른 범주의 책들을 선정하였다. 봄에는 학교, 여름에는 집, 가을에는 마을, 겨울에는 세계 관련도서를 읽으며 청년과 학생들이 나눈 수업 후기, 학생들의 글, 청년의 기억 속 소통 과정을 재구성하였다. 학교에서 십대들과 만나온 지 30년이 넘은 지금,

  ‘나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종소리에 따라 움직이며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자신과 만날 때면 학생들을 속박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효율성을 따지며 소수의 생각을 배제하려 했던 적을 떠올리며 학교란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빼앗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편한 생각이 들 때, 개토의 바보 만들기를 읽고 쓴 글을 보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의존성이란 말로 집약하며 학교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학교생활 적응이라는 미명 아래 아이들을 틀에 맞춰 가꾸려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있다. 친구들과 선후배가 서로 어울려 지내기 위해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며 상대를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간다. 단편적인 지식을 전수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책 읽기를 통해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성찰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획하며 나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길에 선다.

 

    고등학생들과 함께하던 시절, 학생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지역(고향) 탈출을 목표로 공부한다.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집을 떠나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열망이 컸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안온하게 지내면서도 이런저런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은 대도시로의 대학 진학으로 모아졌다. ‘오이 대왕속 아버지처럼 아버지 말이 바로 법이라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띤 이들이 존재했고, ‘엄마는 왜?’를 통해서는 어머니에 대한 정체성을 묻는다. 매니저 엄마를 자처하는 엄마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대목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재구성하며 자신이 바라는 어머니의 상을 정립하여 갈 수 있을 것이다. 경제개발 계획을 내세워 전통적인 마을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근대화된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생활양식의 변화가 뚜렷해졌다.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살던 자리를 기득권들에게 내주고 변두리로 추방당한 사람들이 자리한 곳에서 벌어지는 삶의 풍경은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애잔한 생활상이 자리한다. ‘원미동 사람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지고 다른 오늘은 살아내느라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면서도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지낼 정도로 낯익은 시골 마을처럼 낯선 동네 사람들과 관계망을 이어 함께 살아갈 힘을 전하는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는 삭막한 도시에 훈훈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익명의 도시에서 낯선 이들로 고립될 수 있는 이들이 마을 주민으로 자아감을 형성하며 연대하는 시간 속에 마을 공동체는 상생의 묘를 발현해 나갈 것이다.

 

   책을 매개로 한 수업에서 힘든 것은 아이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발표에 인색한 모습이다.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며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지만 수동적으로 참여할 뿐이다. 청년은 아이들이 입을 열기까지 적절한 물음을 던지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와 소통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익숙한 대상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대상으로 겨울에 다룬 세계는 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감의 영역을 확장하여 가는 과정에 있다. ‘는 아우슈비츠 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만화책으로 유태인을 탄압하는 잔혹함이 세밀하게 드러난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책을 통해 그 시대의 사건을 일부라도 이해하며 지금도 타자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19805·18 민주화 운동을 재해석한 소년이 온다는 소년 동호를 불러내 시대적 아픔과 숙명적인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의 처연함을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듯 서술하였다. 무법의 폭압으로 혈육과 친구, 이웃을 잃고 스러져간 이들을 그리워하다 부서진 영혼을 부여안고 살다 피안의 세상으로 떠난 넋을 달래는 진혼곡에 열여섯 살 소년이 투영되며 역사적 사건은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만난 타인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자신의 관점을 바로 세워가는 길에 놓여 있다. 아이들은 지금껏 스스로를 지배해 왔던 관념의 벽을 깨고 관점을 새롭게 하는 일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바르게 인식하고 타자와 연대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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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4-1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모임하고 있어요^^
반갑네요
조금 다른 것은 엄마도 함께 참여하도록 권한다는것.
반갑습니다.^^

자성지 2021-04-15 12:58   좋아요 1 | URL
궁벽한 시골에서 지역적 한계를 넘어설 독서 모임에서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 여기며 오늘도 책과 함께합니다.
 
오늘부터 줄이기로 했다 - 덜 사고,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이기
김진영 지음 / 민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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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비대면 시대가 일상화된 지 오래라 컴퓨터 앞에서 생필품을 구매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 번의 클릭으로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기사의 수고는 줄을 잇는다.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어 물건을 진열할 때마다 늘어나는 쓰레기에 몸살을 앓는 지구 환경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생존을 위한 명목으로 드는 생계 유지비를 최소화하는 일이 절실하지만 소비를 덜 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생필품을 구매하다가도 덤으로 주는 판촉과 적정 금액 이상을 소비하면 포인트를 돌려주는 마케팅 전략에 현혹되는 자신을 돌아본다.

   현대인들은 많이 먹고 잘 먹어서 각종 성인병을 앓으며 어마어마한 돈을 병원비로 지출한다.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로 고통받는 이들을 볼 때마다 음식의 양을 줄이고 많이 움직여 군살이 붙지 않도록 자신을 관리하는 일은 쉽지 않으므로 청춘시절의 몸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먹는 양을 줄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기에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오이, 토마토. 상추 등을 넣은 샐러드로 시작하는 것이 나은 방법일 것이다. 많은 욕심과 용구를 줄이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는 길일 것이다. 

 

   기온이 떨어지면 내의를 입고 옷을 껴입어 보온을 유지하며 겨울철 적정온도를 지키기보다는 옷을 얇게 입고 온열 기구를 틀어 실내온도를 높이는데 익숙해 있다. 꽃샘추위가 오는 환절기 실내온도를 22도로 맞추자고 이야기하면 너무 춥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좀 따뜻하게 지내면 안 되느냐고 항변하는 아이들 모습에서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정황이 역력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한 채 우선에 달콤하고 편리한 것을 따르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기상 이변으로 힘든 세상에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하지만 불편을 감내하려는 모습과는 멀어 보였다. 덜 먹고 많이 움직이며 몸집을 줄여 건강한 생활을 회복하고, 신제품을 사기보다는 더 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화석 연료를 덜 쓰는 일은 지구 환경을 지키는 일로 귀결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고단함을 풀고 재충전할 내 집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음에 좌절하면서 나만의 공간 확보를 위해 허리춤을 조여매고 사는 이들이 많다. ‘지상의 방 한 칸’이라는 소설에서 작가는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는 ‘방 한 칸’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방 한 칸’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여정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처럼 월급쟁이가 성실하게 노력하여 내 집을 장만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를 만났는지도 모른다. 가족의 보금자리로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인 집이 어느 새 땅과 함께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한 채 돈을 벌기 위해 마치 주식처럼 전문적으로 투기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아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은 멀어 보인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길지 않은 50대 중반 갱년기를 거치며 몸과 마음은 청춘 시절과는 다른 신호를 보낸다. 아픈 곳이 늘어날 때마다 앞으로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향후 삶의 질은 더 떨어져 행복한 생활을 동경하며 지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산발적으로 늘어나자 안전에 대한 염려가 증폭되었지만 철저한 생활 방역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불안한 마음을 조금씩 거두어갔다. 생활하는 가우데 삶의 의미를 찾고 목표를 세워 현재 가장 필요한 것에 집중함으로써 행복의 충분조건을 찾아 스스로 관리하며 인생의 후반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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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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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코로나19가 널리 퍼지기 전 딸과 함께 보라카이로 34일 여행을 다녀왔다. 칼리보 공항에서 입국 신고를 하고 현지 여행사 사장을 만나 환전을 하고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뱃길을 찾아 이동하였다. 통통배 같은 배를 타고 보라카이로 가는 뱃길은 그리 멀지 않아 배 멀미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딸이 정한 숙소에 여장을 풀고 화이트 비치를 거닐며 에메랄드 바다 위로 펼쳐진 다채로운 풍경은 설렘과 평온을 주었다. 새하얀 모래 위를 걷다 더위에 지치면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컸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면 해변을 따라 늘어선 가게에 들러 소나기를 피하며 망고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에 나서기 쉽지 않은 때, 사막 위의 오아시스처럼 여행에 대한 갈증은 커졌다. 반복되는 생활인으로 밋밋한 일상에 심드렁해질 때마다 여행을 준비해왔다. 앞뒤 재지 않고 열망하는 공간을 찾아 나서기를 반복하며 지낸 시간들이 그리움으로 밀려드는 지금도 여행비를 모은다. 랜선 여행지를 찾아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찾아 코로나19가 종식된 뒤 가봐야 할 곳 순위를 매기며 오늘도 일상의 단조로움을 상쇄한다. 겁 없이 책 속 사원을 찾아 배낭여행을 결정하고 망설임 없이 길 위에 나섰던 추억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준다.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이에게 여행 준비가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도 의료인의 길을 걷는 대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열정적인 저자의 여행 준비는 구글 지도에 찍힌 별의 숫자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직접 방문한 장소와 가보고 싶은 장소들이 별이 되어 지도 위에서 빛나는 모습만 봐도 황홀할 듯하다. 여행지를 염두에 두고 봐야 할 것들을 정리하였다면 낯선 곳에서 잘 지내기 위하여 섭취하는 음식은 여행의 본질에 맛을 더하는 재료이다. 식당을 선택하는 데에도 여행자만의 스토리로 담을 수 있는 음식점에서 지출을 좀 과하게 하더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추억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제라니움은 주 4일만 문을 여는 음식점으로 점심도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니 명성에 부합하는 인기를 가늠할 수 있겠다

 

   언제나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헤아리기 힘든 때,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날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 안내서를 읽는다. 배낭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론리플래닛 시리즈를 포함한 여행 가이드북이 즐비하게 늘어선 책꽂이에는 가고 싶은 나라들의 목록이 자리한다. 여행과 관련 없는 책을 읽다 공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나라를 동경하며 그곳을 찾았을 때에는 여행지에서의 감흥을 돋운다. 당장 여행을 가는 것은 어려워도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여행 준비는 언제든지 할 수 있기에 오늘도 한 번은 가고 싶은 곳을 찾아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동이 필수인 여행에서 여행 전에 일정표를 작성하는 일은 여러 번 생각해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다. 면적이 넓은 공간을 이동해야할 때에는 이동 방법을 고려하고 여행지에서 먹고 볼 것들을 메모하며 수정하기를 반복한다. 여행지를 떠올릴 만한 기념품과 생필품을 구매하여 즐거운 기억을 돕는 일은 여행을 마음대로 못 떠나는 시대에 효용성이 크다. 여행을 준비하며 그 나라 말을 공부하며 여행을 즐기는 자신과 만날 준비에 들어간다. 몸짓언어로 소통하며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있으나 그 나라 언어로 표현하면 여행지에서 겪을 시행착오를 조금 줄이며 자신감이 붙을 수도 있다. 여행 일정표 아래 이동 경로를 표시하고 특정 장소에서 본 것과 맛본 것들을 기록하며 여행을 추억하는 일은 휘발되는 기억을 다잡는 방법이다.

 

   전례 없는 코로나19 시대에 책장 귀퉁이에 자리한 동유럽 여행 앨범을 들추며 체코 플젠 양조장 투어를 떠올린다. 맥주의 도시 체코 플젠(Pilsen)에서 세계 최초의 라거(Larger) 맥주가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 맥주 저장고 공장 방문은 입장료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았다.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다음 여행지로는 북유럽 한두 나라를 정해 여유 있게 그곳을 돌아보자며 적금을 붓고 있는데 언제나 그곳으로 갈는지는 모르나 여행 준비의 기술을 읽으며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명소를 적고 그 이유를 적는다. 헤밍웨이의 도시 스페인 '론다' 거대한 협곡 사이를 잇는 절벽 위에 세워진 곳에서 비현실적 공간이 뿜는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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