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버지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가는 길, 부인도 없이 5남매를 키워낸 노인의 깊은 주름살이 떠올랐다. 며칠 전 어머니 일손을 거들기 위해 찾은 친정에서 치매가 와서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는 아버님의 소식을 들었는데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니 황망했다. 독성이 강한 제초제 그라막손 병이 시신 옆에 뒹굴고 있어 음독자살로 사건은 종결됐다.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들고 정신이 들 때면 자식들에게 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그는 이웃에게 종종 전하였다고 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병세 악화로 생활이 마비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동네 어른들의 추정이었다. 뒤늦게 주검을 발견한 그의 동생은 도시로 나가 사는 자식들에게 부음을 전했다.

 

   “너거 아배가 숨을 끊었다. 어서 내려와라.”

    다급한 숙부의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내려왔다는 친구는 얼마나 울었던지 눈덩이가 부어올라 있었다. 아버님이 질병의 고통 없는 세상에서 자식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라며 친구의 손을 붙잡고 등을 토닥거렸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망자의 삶을 기리며 문상객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하지만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추모하는 이 없이 외로움 속에 홀로 죽음을 결정하는 이들은 오래 방치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군말 없이 치우는 청소부가 있다. 일찍이 배운 것이 하필이면 시(), 얼굴을 맞대고 말을 건네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편이 더 익숙한지라 청소부가 선택한 애도의 방식은 책을 쓰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죽으면 나의 일은 시작된다.’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인 저자는 8년 동안 주검의 최전선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낸 이들의 죽음을 추모한다. 품격을 잃지 않고 살다 가면 좋겠지만 인생은 생각대로 잘 돌아가지 않을 때가 늘어남을 살아갈수록 알아차리게 된다. 다양한 이유로 고독사한 집을 찾았을 때, 기이한 형상을 한 풍경은 삶의 마지막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질병의 원인에 따라 주검에서 나오는 오물의 양과 냄새 등의 농도는 더해져 특별한 소명 의식이 없으면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이승에서의 신산하였던 생활을 마감하고 마지막 가는 길은 홀로 가는 외로운 길어있다.

 

   사체 썩는 냄새와 쌓여가는 배달 물건 등으로 죽음을 알리는 고인의 집을 말끔히 정리하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특수청소부의 글을 보며 죽음을 향하는 길이 고독하지 않았으면 한다. 태어난 자는 죽음을 향하는 인생 열차에 올라탄 셈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고 사용한 번개탄 봉투와 가스 뚜껑까지 분리수거함에 정리해 둔 고인의 몸짓을 떠올리면 안쓰러워진다. 어떤 이유에서든 홀로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이의 손길로 이승에서의 모진 삶도 갈무리되는 것이라 여긴다.

 

    유한한 삶에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숙명을 피해 갈 방법이 없음을 자각하면서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다양한 형태로 삶의 궤적을 남긴 이들은 절망적인 삶의 현실을 향해 저주를 토해내듯 죽음을 맞았다.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조차 확보되지 않은 세상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숨통을 막아버린 죽음은 목숨을 보전할 힘조차 예비하지 않았다. 특수 장비를 갖추고 주검의 흔적들을 치우며 망자(亡者)의 곁을 들여다보며 지난한 세월 속 고단했을 시간을 떠올린다. 살아있는 감각으로 맞닥뜨리며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기에는 버거운 극한의 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 없고 회생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의 죽음에 싸인 삶의 조각들을 통해 유한한 삶에 가치를 담으며 지난 시간들을 불러낸다. 무연고 죽음이나 고독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다양한 의뢰인을 만나 의뢰인의 고충을 처리하며 스스로를 옭아매던 시간에서 벗어나 지금의 시간에 충실할 필요를 느낀다. 변변한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한 줌 재로 변했을 주검을 뒤로 하고 말끔히 청소하는 고역을 마다하지 않았을 집 청소는 이뤄졌을 것이다. 갖가지 사연을 품고 살다 간 사람들의 마지막을 가늠하며 그들이 남긴 흔적을 치우는 움직임에는 망자의 고단했던 삶을 위로하는 의식이 함께했으리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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