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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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코로나19가 널리 퍼지기 전 딸과 함께 보라카이로 34일 여행을 다녀왔다. 칼리보 공항에서 입국 신고를 하고 현지 여행사 사장을 만나 환전을 하고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뱃길을 찾아 이동하였다. 통통배 같은 배를 타고 보라카이로 가는 뱃길은 그리 멀지 않아 배 멀미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딸이 정한 숙소에 여장을 풀고 화이트 비치를 거닐며 에메랄드 바다 위로 펼쳐진 다채로운 풍경은 설렘과 평온을 주었다. 새하얀 모래 위를 걷다 더위에 지치면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컸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면 해변을 따라 늘어선 가게에 들러 소나기를 피하며 망고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에 나서기 쉽지 않은 때, 사막 위의 오아시스처럼 여행에 대한 갈증은 커졌다. 반복되는 생활인으로 밋밋한 일상에 심드렁해질 때마다 여행을 준비해왔다. 앞뒤 재지 않고 열망하는 공간을 찾아 나서기를 반복하며 지낸 시간들이 그리움으로 밀려드는 지금도 여행비를 모은다. 랜선 여행지를 찾아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찾아 코로나19가 종식된 뒤 가봐야 할 곳 순위를 매기며 오늘도 일상의 단조로움을 상쇄한다. 겁 없이 책 속 사원을 찾아 배낭여행을 결정하고 망설임 없이 길 위에 나섰던 추억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준다.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이에게 여행 준비가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도 의료인의 길을 걷는 대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열정적인 저자의 여행 준비는 구글 지도에 찍힌 별의 숫자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직접 방문한 장소와 가보고 싶은 장소들이 별이 되어 지도 위에서 빛나는 모습만 봐도 황홀할 듯하다. 여행지를 염두에 두고 봐야 할 것들을 정리하였다면 낯선 곳에서 잘 지내기 위하여 섭취하는 음식은 여행의 본질에 맛을 더하는 재료이다. 식당을 선택하는 데에도 여행자만의 스토리로 담을 수 있는 음식점에서 지출을 좀 과하게 하더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추억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제라니움은 주 4일만 문을 여는 음식점으로 점심도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니 명성에 부합하는 인기를 가늠할 수 있겠다

 

   언제나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헤아리기 힘든 때,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날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 안내서를 읽는다. 배낭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론리플래닛 시리즈를 포함한 여행 가이드북이 즐비하게 늘어선 책꽂이에는 가고 싶은 나라들의 목록이 자리한다. 여행과 관련 없는 책을 읽다 공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나라를 동경하며 그곳을 찾았을 때에는 여행지에서의 감흥을 돋운다. 당장 여행을 가는 것은 어려워도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여행 준비는 언제든지 할 수 있기에 오늘도 한 번은 가고 싶은 곳을 찾아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동이 필수인 여행에서 여행 전에 일정표를 작성하는 일은 여러 번 생각해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다. 면적이 넓은 공간을 이동해야할 때에는 이동 방법을 고려하고 여행지에서 먹고 볼 것들을 메모하며 수정하기를 반복한다. 여행지를 떠올릴 만한 기념품과 생필품을 구매하여 즐거운 기억을 돕는 일은 여행을 마음대로 못 떠나는 시대에 효용성이 크다. 여행을 준비하며 그 나라 말을 공부하며 여행을 즐기는 자신과 만날 준비에 들어간다. 몸짓언어로 소통하며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있으나 그 나라 언어로 표현하면 여행지에서 겪을 시행착오를 조금 줄이며 자신감이 붙을 수도 있다. 여행 일정표 아래 이동 경로를 표시하고 특정 장소에서 본 것과 맛본 것들을 기록하며 여행을 추억하는 일은 휘발되는 기억을 다잡는 방법이다.

 

   전례 없는 코로나19 시대에 책장 귀퉁이에 자리한 동유럽 여행 앨범을 들추며 체코 플젠 양조장 투어를 떠올린다. 맥주의 도시 체코 플젠(Pilsen)에서 세계 최초의 라거(Larger) 맥주가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 맥주 저장고 공장 방문은 입장료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았다.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다음 여행지로는 북유럽 한두 나라를 정해 여유 있게 그곳을 돌아보자며 적금을 붓고 있는데 언제나 그곳으로 갈는지는 모르나 여행 준비의 기술을 읽으며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명소를 적고 그 이유를 적는다. 헤밍웨이의 도시 스페인 '론다' 거대한 협곡 사이를 잇는 절벽 위에 세워진 곳에서 비현실적 공간이 뿜는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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