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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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흔여섯의 어머니를 찾는 시간은 존재의 알갱이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질책할 때에도 어머니는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였을 것이라며 딸을 믿고 정서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아버지는 상상 속에나 자리하였고 기박한 세월을 보낸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오누이를 길렀다. 신산한 삶에 자애로운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어머니였지만 자식을 향한 어머니 마음은 화톳불처럼 타올라 목울대를 적실 때가 많았다. 내리사랑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인 어머니는 사랑의 결정체이자 헌신적 사랑의 정수로 자리한다. 점점 땅과 가까워져 가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오지만 음성으로 안부를 전하고 단걸음에 찾아갈 수 있는 곳에 머무르는 어머니가 있어 든든하다. 노쇠한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며 소통할 수 있어 다행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엘리스와 로즈의 자백 속으로 빠져든다.

 

   그 시간, 그 공간에 머무르지 않았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는 회의는 지금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일 테다. 누군가를 만나러 나간 거리에서 그 대상을 만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미로 속에 갇힐 때가 있다. 스무 살 엘리스는 기다리던 남자를 만나지 못한 대신 서른여섯 살 코니를 만나 헤어나기 힘든 사랑에 빠져들었다. 카페 종업원, 국립극장 안내원, 모델 일을 하며 지내던 엘리스는 코니의 보호를 받으며 그녀의 삶 깊숙이 들어갔다. 코니는 마치 엘리스를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어내려는 듯 자신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린 그녀를 나만의 작품으로 창조하려는 욕망이 컸다. 환희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인의 손길이 머무는 시간을 탐닉하던 엘리스는 코니와의 생활에서 점점 자아를 잃어갔다. 코니의 사랑을 느끼고 확인하며 존재의 기쁨을 느끼던 엘리스의 감정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휘발되어갔다.

   

  욕망 때문에 편협해진 머리 작은 새

   라고 여긴 엘리스는 코니와의 동거가 점점 자신을 무능하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행복을 발견하는 양가성에 의문을 품는다. 런던을 떠나 콘을 따라다닌 엘리스는 언젠가는 그녀가 자신을 어딘가로 치워두고 싶어 할 수도 있음을 가늠하였다. 누군가에게 관찰되고, 누군가에게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엘리스는 특별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잃어가는 일을 용인하기는 힘들었다. 코니의 작품 밀랍심장을 영화 촬영으로 그녀를 따라 할리우드에 왔지만 엘리스가 할 일은 없었고 무료함으로 채워질 뿐이었다. 엘리스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한 날, 코니는 매력적인 여배우 바버라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향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발견한다. 엘리스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모델 일을 자처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여기던 때, 인생에서 여자보다는 바다를 더 원한 남자 맷에게 서핑을 배운 엘리스는 또 다른 환락의 세계로 향한다. 코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변심한 그녀에게 보란 듯이 맷과 함께 바다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종국에는 그의 아기를 갖게 되었다.

  임신한 걸 알게 되면 아이를 꼭 낳아요.’

   뱃속에 품었던 아이를 잃고 힘들어하는 샤라는 남편의 아이를 잉태한 엘리스와 약속을 한 뒤였다. 상대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엘리스는 로즈를 낳았고 그녀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되었다.

저는 엄마를 몰라요. 아기일 때 엄마가 떠났어요.’

엄마의 부재로 아버지와 함께 지낸 로즈는 어딘가로 사라진 엄마의 소식을 찾아 나섰다. 아버지는 엄마의 일화를 들려주기보다는 콘스탄스 홀든이 쓴 두 권의 소설을 말하며 작가가 엄마와 연인이었다는 말만 전했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재규어가 사는 나라로 가고 싶어.’

건너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며 엄마의 궤적을 찾기 위해 아빠에게 물음을 던졌지만 아빠는 딸 스스로 어머니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기를 바랐다. 자기 집착에 사로잡혀 감정적으로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조와 지낸 햇수가 쌓일수록 로지는 지리멸렬한 관계를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딸 로즈는 작가가 쓴 소설을 읽고 작가 콘스턴스를 찾아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세상을 제 뜻대로 주무르는 데 익숙한 작가는 타자를 칠 수 있는 가정부가 필요했다.

 

   엄마의 소식을 찾아 나선 로라 브라운은 놓쳐버린 길 어딘가에 진정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작가와 함께하였다. 자신감이 적고 두려움이 많았던 로즈에서 대담하고 능률적이며 재미있는 로라로 변신한 딸은 엄마의 자취를 찾아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 상황을 조작해 코니 집에서 일하게 된 로라-로즈-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진짜 누구인지 무시한 채 지내게 되었다. 비밀을 간직한 양파처럼 껍질을 벗겨내도 진실을 쉽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로라는 변심타이핑이 끝나가면서 처음보다 알기 힘든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 머무르자 코니 곁을 떠날 때가 머지 않았음을 예감했다.

 

   오랜 시간을 보낸 삶의 궤적보다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지 못할 때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연인으로 보낸 시간의 다감했던 일들보다 남은 시간이 슬픔으로 채워질 수도 있음을 간파한 이들은 이별을 선택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서로 가꾸지 않으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처럼 허탈감을 남긴다. 엘리스가 코니를 떠나 다른 선택을 한 것처럼 로즈 역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아 나섰다. 로즈 역시 아이를 출산하고 생물학적 아버지를 묻어 둔 채 가보지 않은 곳으로 향하며 인생 여행에 오른다. 코니는 연인이었던 엘리스와 딸 로즈가 함께 만든 초록 토끼 그림을 액자에 담아 그녀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삶을 지속하듯 로즈 역시 여행에서 돌아와 지난 시간을 정리하며 새 길을 찾아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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