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 나태함을 깨우는 철학의 날 선 물음들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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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전망 좋은 위치에 자리한 카페에서 후식을 맛보며 한껏 분위기를 잡은 사진이 활개를 치는 SNS 활용 시대에 시선은 머물렀다 떠나기를 반복한다특별한 맛을 찾아다니는 유랑객처럼 오늘도 친구가 무엇을 먹었는지 궁금해 하며 소비적 욕망을 돋운다취향에 맞는 물건과 먹거리를 찾아 소신 있게 소비하기보다는 남들 맛있다고 먹는 것을 따라 찾는 경향으로 치달을 때가 있다먹고 마시는 일련의 활동들도 피사체에 담아 경쟁적으로 남기는 이들을 보면서 굳이 사진을 올려 타인의 욕망을 자극할 필요는 있을지 회의들 때가 종종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시공간을 초월하는 정서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바람으로 싫은 내색하지 않고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다가도 자신의 취향을 고집할 때면 이대로 어른이 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반문하게 된다자신의 것이 소중하고 귀하면 타인의 것도 존귀함을 인정하며 유대관계를 유지할 때 지치지 않는 공고의 선을 실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모든 규제를 무장해제한 방학 동안 늦잠을 자고 게으름을 부리며 나태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지내는 학생들을 볼 때면 지금 주어진 자유가 타당한 것인지 묻게 된다.

  ‘자유는 예속무지는 힘

  이라는 풍자적 경구로 감시자들을 한눈에 넣어 통제하려는 독재자의 속내를 드러낸다스파르타식 입시학원은 자유가 개인에게 얼마나 버거운 짐인지 보여주는 실례로 자칫하면 자유가 나태와 타락한 삶을 조장하는 불안으로 이어지기 쉬움을 보여준다자율적인 생활을 통해 길러지는 게 바람직한 자유를 강제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유인이 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스스로 정한 삶의 의미에 얼마나 충실하였는지 살피며 지낼 때자유인으로 소중한 것들을 지키며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중국으로 1년 어학연수를 다녀 온 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토익을 비롯한 기본적인 스펙을 쌓느라 고군분투했던 딸을 보면서 대량 실업을 양산하는 고학력 실상에 암담해진다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의 틀에서는 햇수가 쌓일수록 불안은 엄습하여 취업 준비생을 황폐하게 만든다경험의 가치를 내세워 눈을 낮춰 취업 원서를 넣고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직장에서 수습기간을 마쳤지만 정의롭지 못한 조직 질서를 거부하면서도 보복성 폭력에 마음을 닫고 지내는 모양이다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채 보고 싶은 면만 보는 상사는 상대를 업신여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사원들이 받는 상처가 크다고 했다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안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토론하고 유연한 태도로 대안을 모색하려는 변화를 시도할 때 사회는 진화 발전해 간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문명사회의 이기를 누리며 지내는 실용성 이면에는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로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파괴돼 회생불능의 상황으로 악화되었다소비를 촉진해야 발전하는 경제구조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환경을 보전하려는 실천은 불가피하다객관성에 입각한 과학 지식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대신 건전한 비판정신으로 사회를 좋게 하는지 따져 볼 일이다확실하다고 인간의 이용 측면에 초점을 두는 기술주의적 환경론과 환경 자체에 가치를 두는 생태적 관점을 절충하여 윤리적 태도로 환경을 보존해 가야 한다숨 쉬기도 힘든 미세먼지 터널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도덕적 선을 실현하는 일에 가치를 두고 국제적인 협력체제 구축을 미룰 수 없다.


  아득바득 일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일에 급급해 온 사람들은 어떻게 놀아야 제대로 노는 것인지 망각한 채 일에 매몰되어 왔을 뿐이다곁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의 AI, 로봇 등의 확산으로 기존의 직업에서 물러나 늘어난 시간을 보내느라 고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놀면서 일하고 즐기는 인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가꾸어 나갈 때 존엄성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남들의 평가나 이해 득실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삶이 아니라 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살려가는 일에 가치를 두고 소신 있게 살아야 함을 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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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정유정.지승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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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 일어나 세탁조에 빨래를 넣고 책상 앞에 앉아 읽던 책을 읽는데 제자의 전화가 들어왔다고등학교 때부터 막역하게 지낸 친구 엄마의 부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어머니의 오랜 투병생활 병상을 지켰던 제자는 죽음의 공포 속에 휩싸여 지낸 적을 회고하며 6개월 선고받았던 어머니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 하더니.........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순리를 거역하기는 힘든 줄 알지만 어머니의 죽음은 이승에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부재로 이어진다소설가 정유정의 소설 작법을 담은 인터뷰 형식의 글을 읽으며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가슴에 묻고 살아남아야 하는 이의 질긴 생명력이 겹쳐졌다.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독서 인구가 더 줄어들어 출판 시장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현실이다하지만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은 있어 소설가들은 창작에 몰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개연성 있는 허구를 다루는 소설이 독자들의 읽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까지 작가의 노력과 집필 과정은 녹록치 않을 것이다전문 인터뷰어 와 두터운 독자층을 이루고 있는 전업 작가의 담론은 한 편의 소설이 탈고되기까지의 과정을 아우르고 있다실패를 거듭하며 등단하기까지의 고단했던 시절을 털어놓으며 전문적인 이야기꾼으로 자리할 수 있었음을 알게 한다.


    ‘나는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어떻게 쓸까?’

   쓰려는 무엇을 말이 되게 논리적으로 증명해내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취하는 소설작법에서 관련 책들을 분석하면서 많이 읽을 필요는 커진다진실을 말해야 하는 작가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관을 정립하여 소설을 쓰므로 스스로 편협한 시각을 가진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자기 검열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투병 중이던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어머니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던 청춘 시절의 암울했던 경험이 <<내 심장을 쏴라>>에 투영된 만큼 작가는 주인공 이수명을 사랑했다.


  동물적 성향을 띠는 역동적인 종목으로 고독을 견딘다는 작가는 인간의 악을 소설의 주류로 삼아 선이라는 절대가치를 지향하며절대적 가치와 일치된 행동으로 생명체의 존엄함을 드러내려 했다사회적 관행이나 시선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특별한 악인을 여러 인물로 변주해 소설 속에 등장시켰다독자와의 연결통로로 삼는 주인공은 이야기의 주제를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 대리인으로 절정부분을 주도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적대자는 주인공과 체급이 비슷한 이로 갈등의 정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인공에 대적하는 이로 자리해야 한다.


  현실화될 수 있는 확실성의 정도를 담은 소설 속 내적 개연성은 깊이 있는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할 때 밀도 있는 소설에서 가늠할 수 있다소설을 구상하며 개요를 작성하고 이야기의 기본이 되는 자료를 충분히 조사하여 초고 쓸 준비에 들어간다크고 작은 스케치북에 소설 속 공간을 세밀하게 담아 공간이 품고 있는 상황과 의미를 결부 짓는 과정까지 꼼꼼히 그려 자기가 만드는 세계를 신처럼 알고 이야기를 써내려갔다일필휘지로 초고를 쓴 뒤 소설의 시작과 결말은 살리고 나머지는 버려져 초고는 작품을 부화하는 통과의례로 자리하는 듯했다도공들이 가마에서 구워진 도자기를 깨부수는 것처럼 초고에 연연해하지 않는 모습은 이야기꾼을 지향하는 소설가의 전문성을 가늠할 수가 있다.


   백지 위에 무엇인가를 써야 하는 심리적 압박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낳기도 하지만 다독(多讀)과 필사를 포함한 다작(多作)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작가 역시 자신과의 싸움인 글쓰기에서 전문성을 띠기까지 숱한 고민 속에 실천적인 노력이 있어왔다이야기 만드는 데 중점을 둔 초고에 장면 간의 유기적 연결에 중점을 둔 수정을 거쳐 탈고한다단문의 간결함과 속도감을 문장의 특징으로 삼는 작가는 첫 문장을 쓸 때에도 강렬한 인상을 끌어내기 위하여 고심했다.


  전문성을 인정받는 소설가 역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소설을 탈고하기까지의 의심독자들의 반응을 둘러싼 두려움 등을 이겨내기 위한 준비는 기초 작업을 튼튼히 하는 일부터 챙겼다한 편의 소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공들인 시간에 경외를 품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경험에 상상력을 입혀 내적 개연성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이에게는 습작 기법의 길라잡이로 자리할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작위적이지 않아 공감 지수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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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눈 창비청소년문학 84
주디 블룸 지음, 안신혜 옮김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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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수성이 예민한 스물다섯 명의 여학생들과 인연을 맺고 새로운 생활을 다짐하는 자리 창백한 얼굴에 드문드문 마른버짐이 핀 여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 담임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교과 수업 시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아침 자습 시간에는 한눈에 들어옵니다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왜 저리도 파리한 모습으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지 관심이 갔습니다새 학기 시작으로 일상은 분주해졌고, 3월 중순 사흘의 가정방문 기간을 앞두고 중점적으로 챙겨야 할 목록을 작성하였습니다.


  유한한 시간을 살다 가는 생명체가 맞닥뜨린 죽음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기억 속에 저장하고 가슴에 품고 살게 합니다간간이 들려오는 부음은 망자를 애도해야 하는 시간이 이어질 때유족들에게 다가가 위로한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알은체하는 일도 조심스러워집니다죽음이 갈라놓은 영원한 결별을 경험하지 않고는 고통을 자각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편의점으로 침입한 강도의 총을 맞고 데이비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고남은 가족은 가장과의 준비 없는 이별로 망연자실하였습니다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자활의지를 잃은 데이비 가족의 회생을 바라며 5년 전에 만난 한 여학생을 떠올렸습니다.


   아이들이 작성한 신상 조사서 약도를 보며 제자의 집을 찾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눈에 선연합니다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고 어린 남매를 보살필 여력이 없던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습니다오갈 데 없는 오누이를 떠맡은 할머니는 살아내느라 곤한 몸을 눕히고 쉴 수 있는 공간도 없이 이 집 저 집을 떠돌다 퇴락한 빈집을 빌려 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가정방문 날며칠 전 내린 비로 방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었고올라오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장판 옆으로 둘러놓은 수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심인성 질병과 당뇨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할머니는 발품을 팔아 손녀와 손자를 뒷바라지하면서도 아이들을 잘 키우려는 마음이 컸습니다할머니는 지난한 세월의 흔적을 조금씩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손녀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괜찮은데 병으로 죽게 되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할머니의 거친 손을 잡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선생님으로 손녀가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며 발걸음을 떼었습니다어릴 때부터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과 따돌림을 당해왔던 일들은 보리의 마음을 음울한 잿빛으로 물들여갔습니다어른들에 대한 불신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보리의 축 처져 있는 어깨를 토닥이며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는 중용의 구절을 들려주었습니다.


   제이슨과 어머니데이비는 그녀의 고모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현지 적응을 위해 며칠을 보냈습니다괴한이 침입하여 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는 내재해 있었지만 무력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는 고모부의 조언을 따라 거처를 고모 네로 옮겼습니다고모 네의 도움으로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는 자식들에 비해 데이비 어머니는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상실감으로 불면의 고통 속에서 헤매는가 하면 두통약을 복용하며 무기력하게 보내기 일쑤였습니다자신의 의사 표현은 점점 줄어들고 고모가 말한 대로 움직이는 어머니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 데이비는 일상에 변화를 시도하며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협곡을 찾아 집중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인적이 드문 협곡에서 울프를 만나 뒤부터 데이비는 그와 필요한 말만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생활의 활기를 조금씩 찾아 갔습니다우연적 시간들이 쌓여 필연적 의미를 띠고 삶의 방향을 틀어줄 때가 있습니다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보리와 주기적으로 대화하며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교사를 경계하며 쉽게 말문을 트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꿈 장학생 신청서류를 보이며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비쳤을 때 보리는 선생님처럼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사례는 없었다며 고마워했습니다제자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검토한 뒤 멘토로 학생과 어떻게 교류하며 지낼 것인지 계획서를 작성하고 장학금 활용방안까지 세세히 입력하였습니다열흘의 사정 기간이 끝난 뒤 장학생에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습니다.


  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환경에서 독서를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균형 잡힌 생활을 하는 가운데 비전을 드러내며 살아가려는 의지를 더했습니다경제적 상황이 안 좋아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사서 읽지 못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토요일에는 읍내에 있는 서점에 서 만나 함께 읽을 책을 구입하여 책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갔습니다일찍 철이 들어서인지 책을 깊이 있게 읽고 선생님이 베풀어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며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이로 살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아버지 죽음의 잔상이 남아 있는 데이비 옷에는 총상을 입은 아버지가 흘린 흥건한 피가 잔혹한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아버지의 죽음 이후 살아남은 가족의 시간도 멈춰버렸지만 산 자들은 어찌 해도 생존을 이어가야 했습니다이상과 현실이 괴리되어 화가의 꿈을 꾸었지만 편의점을 지키며 살아온 아버지는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았을 것입니다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고목처럼 말라 숨을 쉬기도 힘들어 했던 울프의 아버지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은 보리 아버지 등 세상의 어떤 죽음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죽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고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이들은 가슴에 묻고 그리워하며 애도하는 시간 속에 생전에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합니다 기억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며 망자와의 만남을 추억하는 일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입니다제자 역시 두 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났을 때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지갑에 넣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꺼내어 본다고 하였습니다아버지와 함께 지난 시간은 잘 생각도 안 나지만 딸과 아들을 할머니 손에 남기고 하늘로 갈 때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보였습니다매달 20만 원의 장학금을 받아 학습에 필요한 책을 사고 교통비로 쓰면서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기초 실력이 부족했던 수학 공부를 반복하며 풀리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는 능동적인 태도는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고배우며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까지 품게 되었습니다지금 제자는 지방의 대학교에서 사회교육을 공부하며 틈틈이 사회복지기관에서 가르침을 전하는 봉사로 그동안 배운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며 선순환의 복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뜻하지 않은 불행을 탓하며 무력하게 지내기보다는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나 힘을 모아 나아가려는 추동력으로 결집될 때 진화 발전해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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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2 - 지치지 않는 교사들의 아름답고도 세속적인 독서교육 배우는 사람, 교사
경기도중등독서교육연구회 외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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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시로 대학을 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농어촌 지역의 고3교실에서도 EBS문제지 풀이 위주의 수업이 일반적이다. 문제풀이 기술을 앞세워 다섯 보기 중 정답일 확률이 높은 답을 찾는 빠른 길을 뚫는 게 목표인 것처럼 다른 방법은 별로 생각지 않은 수업을 행해 왔다. 문학 작품을 공부할 때면 외적인 내용을 곁들이며 처져 있는 아이들을 깨우지만 이내 아이들은 심드렁해져 고개를 숙이고 만다. 나 홀로 수업에 익숙해 한 시간 떠들고 나올 때면 밀려드는 허탈감이 컸다. 고등학교에 재직할 때는 중학교로 가서 원 없이 독서 교육 실컷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못할 이유는 도처에 자리했다.

 

   사유하며 표현하는 일에 익숙지 않은 중학생들은 물음을 던지고 함께 생각해 의견을 공유하자는 말을 피하고 싶어 하였다. 생각도 해보지도 않고 그냥 귀찮다며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뱉는다.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 소통하는 힘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수업을 병행했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수업으로 지치지 않는 교사와 배움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마음을 바로 잡고 생각하는 배움을 실천하는 독서를 염두에 두고 매시간 책 읽고 표현하는 힘의 막대함을 역설했다.

 

   기승전책으로 불리는 국어 시간은 입시에 대한 부담 없이 기획한 수업을 시도할 수 있어 여건은 좋은 편이다. 진득하게 앉아 집중하여 책 읽기를 힘들어하지만 조금씩 시간을 늘려 가는 학생들을 보며 잘 안 된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등교하면 도서실에서 책을 찾아 읽고 골똘히 생각하는 학생 한둘의 모습에서 희망을 떠올리며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는 글 속에 실린 교사들의 독서교육의 실천적 사례에 감화 받는다.

 

   정시로 대학을 주로 가는 대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인문 독서 프로젝트, 자아 정체성을 찾아 진로를 탐색하는 독서, 시를 읽고 함께 하는 공부 등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나와 다른 이를 이해하여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문학 작품 읽기는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일깨우며 공동체적 삶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준다. 교과서 속 사건들이 일어난 원인과 배경, 사건 발발 후 영향 등을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지는 역사 시간, 선생님은 그림책 읽기로 교과서 속 사건에만 머물러 있던 데서 벗어나 현재적 관점으로 통찰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도 흥미롭게 보는 역사 만화를 읽기 교재로 삼아 지금도 되풀이되는 적폐를 새기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며 일상을 보내는 일은 나은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으로 이끌 것이다.

 

   방황한 시간이 길었던 국어 교사는 그 시간이 있었기에 현실의 벽과 타협하지 않고 진로를 선택하고 미래를 그릴 때가 있었다고 회고하며 수업 사례에 그 내용을 녹여냈다. 작품을 읽고 경험과 결부지어 의미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자발성을 찾아가는 일은 교사와 학생의 경계를 세운다고 소리를 지르던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관련 도서를 읽고 친구들과 책 속 의견을 나눔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치유하며 성장하는 독서 활동 시간이길 바라며 연수 경험을 나눈 교사들의 실제 수업 사례는 함께 읽기의 힘이 끌어낸 결과물로 여겨진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교사와 기꺼이 배우려는 학생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수업을 그리며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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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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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바로 잡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산란할 때면 집 가까이 있는 절을 찾는다. 5리 산길을 걸어 대숲을 가로질러 도착한 절 마당에는 주지 스님의 도반으로 통하는 보리가 꼬리를 흔들며 참배객을 맞는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으로 들어가 삼보에 귀의하는 의식을 치른 뒤 정적이 흐르는 법당 안에 홀로 앉아 참선하며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는다. 침묵하며 내면으로 빠져드는 시간은 내려놓지 못해 생기는 번민을 삭여준다. 원망하는 마음을 거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반문하며 명산대찰을 찾아 먼 길을 나서는 것일 테다.


   2018630일 바레인에서 열린 제42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 7곳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그윽한 계곡이 있는 자연적 환경과 어울리는 절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유산인 사찰에 대한 이해를 드높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 일상 속에 산사를 담고 지내는 독자의 기쁨은 배가 된다. 남도 1번지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찾았던 강진의 무위사, 해남의 대흥사와 일지암에서의 추억은 빛바랜 사진들처럼 아련한 그리움을 낳는다.


  늦가을 노란 은행잎 떨어진 비탈길을 걸어 일주문에 이르는 영주 부석사는 화엄 세계를 연 의상대사와 선묘 아가씨의 사랑이 얽혀 있는 부석사의 창건 유래로 애틋함을 내포한다.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의 상주처인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장쾌한 경관은 소백산맥을 정원으로 삼은 듯 펼쳐져 있다.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최고(最古)인 봉정사 극락전, 참선방인 영산암의 낮은 돌담 너머로 안마당을 구경하며 복잡한 마당의 조화가 주는 편안함을 더할 수가 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만나는 무지개 모양의 승선교에 비친 붉은 잎들은 선암사 가는 길을 환상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선암사는 크고 작은 당우들이 길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같은 절로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로 사계절 내내 그윽한 향기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교의 뿌리를 튼실하게 지켜내기 위해 경내에 석등을 들이지 않았고, 심검당 환기 구멍에 수()와 해() 자를 새겨 불조심을 각별히 해온 실천적인 노력에 숙연해졌다. ()자형 건물로 가운데 넓은 공간을 경계로 남녀 화장실이 나뉘어 있는 뒷간은 개방형으로 근심을 해결하는 매력을 발산케 하는 곳이다.


  양쪽에서 흘러드는 계곡을 끌어안아 절집 전체를 4구역으로 나누고는 크게 남원과 북원으로 갈라놓은 대흥사의 가람배치는 산사의 아늑함과 대찰의 위용을 담은 계획 아래 건립되었음을 방증한다고 한다. 다선 일치를 실현하고 추사 김정희와 교유하였던 초의 선사가 칩거하던 일지암을 찾아 하룻밤 묵으며 스님께서 내어 준 차 한 잔은 지금껏 녹차와 함께 하는 인연을 잇게 하였다. 동백꽃이 아름다운 조용한 절 선운사, 선비의 기풍이 서려 있는 도솔암 내원궁 지장보살좌상을 참배하러 가는 길은 학업에 대한 열의를 더하는 길이기도 하다.


  일주문 지나 열병식하듯 늘어서 있는 전나무숲길을 걸어 이르는 내소사는 대웅보전의 꽃창살 사방연속무늬는 멋스러움으로 탐방객을 매료시킨다. 산신각에 올라 경내를 굽어보는 맛이 개심사 답사의 절정이라니 대웅보전에 들렀다 그냥 나온 게 마음에 걸렸다. 원목을 그대로 세워 듬직함을 보이는 무량사 일주문을 지나 석등, 석탑, 극락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무량사 전경을 보면 정연함이 드러난다. 절이 서지 않으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던 지증대사가 창건한 문경의 봉암사는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 날에 산문을 열어 열두 송이 연꽃 봉오리에 앉은 자태를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대웅전 기단석의 물받이통은 낙숫물이 마당을 파지 않도록 기능적인 홈통을 설치하는 지혜를 선보인다.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사이로 늘어선 솔밭을 지나 운문사 가는 길은 장엄한 새벽 예불로도 유명세를 탄다. 비구니 스님들이 부처님께 귀의하며 일심으로 드리는 의식은 비장미까지 더해 전율케 한다. 관룡사 절집에서 50미터 위족에 있는 용선대 벼랑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8세기 초 석굴암 이전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니 모진 비바람을 견딘 인고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다산초당에 들렀다 오솔길을 따라 세 굽이를 걷다 보면 백련사에 이른다. 정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백련사 혜장을 만나러 다니던 길이라 그의 고독한 유배생활의 숨통을 틔워주던 길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애틋함으로 녹아 있는 길이기도 하다.


   태백산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정암사는 좁은 절 마당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전각과 탑까지 절묘하게 공간 배치하여 아늑하고 호쾌한 분위기를 두루 갖추었다니 조형미가 더해 보인다. 묘향산 분지에 자리한 보현사 813층 석탑의 균형감은 비례를 염두에 둔 조상들의 지혜로부터 발현되었다. 내금강에 넓게 터를 잡고 앉은 표훈사는 수많은 탐방객들이 들렀던 대찰로 사계절마다 개성 있는 이름으로 불리는 금강산의 진수를 담고 있다니 재개될 금강산 여행을 그리며 승()과 속()이 함께하는 자리에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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