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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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바로 잡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산란할 때면 집 가까이 있는 절을 찾는다. 5리 산길을 걸어 대숲을 가로질러 도착한 절 마당에는 주지 스님의 도반으로 통하는 보리가 꼬리를 흔들며 참배객을 맞는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으로 들어가 삼보에 귀의하는 의식을 치른 뒤 정적이 흐르는 법당 안에 홀로 앉아 참선하며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는다. 침묵하며 내면으로 빠져드는 시간은 내려놓지 못해 생기는 번민을 삭여준다. 원망하는 마음을 거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반문하며 명산대찰을 찾아 먼 길을 나서는 것일 테다.


   2018630일 바레인에서 열린 제42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 7곳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그윽한 계곡이 있는 자연적 환경과 어울리는 절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유산인 사찰에 대한 이해를 드높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 일상 속에 산사를 담고 지내는 독자의 기쁨은 배가 된다. 남도 1번지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찾았던 강진의 무위사, 해남의 대흥사와 일지암에서의 추억은 빛바랜 사진들처럼 아련한 그리움을 낳는다.


  늦가을 노란 은행잎 떨어진 비탈길을 걸어 일주문에 이르는 영주 부석사는 화엄 세계를 연 의상대사와 선묘 아가씨의 사랑이 얽혀 있는 부석사의 창건 유래로 애틋함을 내포한다.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의 상주처인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장쾌한 경관은 소백산맥을 정원으로 삼은 듯 펼쳐져 있다.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최고(最古)인 봉정사 극락전, 참선방인 영산암의 낮은 돌담 너머로 안마당을 구경하며 복잡한 마당의 조화가 주는 편안함을 더할 수가 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만나는 무지개 모양의 승선교에 비친 붉은 잎들은 선암사 가는 길을 환상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선암사는 크고 작은 당우들이 길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같은 절로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로 사계절 내내 그윽한 향기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교의 뿌리를 튼실하게 지켜내기 위해 경내에 석등을 들이지 않았고, 심검당 환기 구멍에 수()와 해() 자를 새겨 불조심을 각별히 해온 실천적인 노력에 숙연해졌다. ()자형 건물로 가운데 넓은 공간을 경계로 남녀 화장실이 나뉘어 있는 뒷간은 개방형으로 근심을 해결하는 매력을 발산케 하는 곳이다.


  양쪽에서 흘러드는 계곡을 끌어안아 절집 전체를 4구역으로 나누고는 크게 남원과 북원으로 갈라놓은 대흥사의 가람배치는 산사의 아늑함과 대찰의 위용을 담은 계획 아래 건립되었음을 방증한다고 한다. 다선 일치를 실현하고 추사 김정희와 교유하였던 초의 선사가 칩거하던 일지암을 찾아 하룻밤 묵으며 스님께서 내어 준 차 한 잔은 지금껏 녹차와 함께 하는 인연을 잇게 하였다. 동백꽃이 아름다운 조용한 절 선운사, 선비의 기풍이 서려 있는 도솔암 내원궁 지장보살좌상을 참배하러 가는 길은 학업에 대한 열의를 더하는 길이기도 하다.


  일주문 지나 열병식하듯 늘어서 있는 전나무숲길을 걸어 이르는 내소사는 대웅보전의 꽃창살 사방연속무늬는 멋스러움으로 탐방객을 매료시킨다. 산신각에 올라 경내를 굽어보는 맛이 개심사 답사의 절정이라니 대웅보전에 들렀다 그냥 나온 게 마음에 걸렸다. 원목을 그대로 세워 듬직함을 보이는 무량사 일주문을 지나 석등, 석탑, 극락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무량사 전경을 보면 정연함이 드러난다. 절이 서지 않으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던 지증대사가 창건한 문경의 봉암사는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 날에 산문을 열어 열두 송이 연꽃 봉오리에 앉은 자태를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대웅전 기단석의 물받이통은 낙숫물이 마당을 파지 않도록 기능적인 홈통을 설치하는 지혜를 선보인다.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사이로 늘어선 솔밭을 지나 운문사 가는 길은 장엄한 새벽 예불로도 유명세를 탄다. 비구니 스님들이 부처님께 귀의하며 일심으로 드리는 의식은 비장미까지 더해 전율케 한다. 관룡사 절집에서 50미터 위족에 있는 용선대 벼랑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8세기 초 석굴암 이전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니 모진 비바람을 견딘 인고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다산초당에 들렀다 오솔길을 따라 세 굽이를 걷다 보면 백련사에 이른다. 정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백련사 혜장을 만나러 다니던 길이라 그의 고독한 유배생활의 숨통을 틔워주던 길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애틋함으로 녹아 있는 길이기도 하다.


   태백산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정암사는 좁은 절 마당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전각과 탑까지 절묘하게 공간 배치하여 아늑하고 호쾌한 분위기를 두루 갖추었다니 조형미가 더해 보인다. 묘향산 분지에 자리한 보현사 813층 석탑의 균형감은 비례를 염두에 둔 조상들의 지혜로부터 발현되었다. 내금강에 넓게 터를 잡고 앉은 표훈사는 수많은 탐방객들이 들렀던 대찰로 사계절마다 개성 있는 이름으로 불리는 금강산의 진수를 담고 있다니 재개될 금강산 여행을 그리며 승()과 속()이 함께하는 자리에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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