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눈 창비청소년문학 84
주디 블룸 지음, 안신혜 옮김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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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수성이 예민한 스물다섯 명의 여학생들과 인연을 맺고 새로운 생활을 다짐하는 자리 창백한 얼굴에 드문드문 마른버짐이 핀 여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 담임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교과 수업 시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아침 자습 시간에는 한눈에 들어옵니다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왜 저리도 파리한 모습으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지 관심이 갔습니다새 학기 시작으로 일상은 분주해졌고, 3월 중순 사흘의 가정방문 기간을 앞두고 중점적으로 챙겨야 할 목록을 작성하였습니다.


  유한한 시간을 살다 가는 생명체가 맞닥뜨린 죽음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기억 속에 저장하고 가슴에 품고 살게 합니다간간이 들려오는 부음은 망자를 애도해야 하는 시간이 이어질 때유족들에게 다가가 위로한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알은체하는 일도 조심스러워집니다죽음이 갈라놓은 영원한 결별을 경험하지 않고는 고통을 자각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편의점으로 침입한 강도의 총을 맞고 데이비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고남은 가족은 가장과의 준비 없는 이별로 망연자실하였습니다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자활의지를 잃은 데이비 가족의 회생을 바라며 5년 전에 만난 한 여학생을 떠올렸습니다.


   아이들이 작성한 신상 조사서 약도를 보며 제자의 집을 찾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눈에 선연합니다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고 어린 남매를 보살필 여력이 없던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습니다오갈 데 없는 오누이를 떠맡은 할머니는 살아내느라 곤한 몸을 눕히고 쉴 수 있는 공간도 없이 이 집 저 집을 떠돌다 퇴락한 빈집을 빌려 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가정방문 날며칠 전 내린 비로 방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었고올라오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장판 옆으로 둘러놓은 수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심인성 질병과 당뇨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할머니는 발품을 팔아 손녀와 손자를 뒷바라지하면서도 아이들을 잘 키우려는 마음이 컸습니다할머니는 지난한 세월의 흔적을 조금씩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손녀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괜찮은데 병으로 죽게 되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할머니의 거친 손을 잡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선생님으로 손녀가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며 발걸음을 떼었습니다어릴 때부터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과 따돌림을 당해왔던 일들은 보리의 마음을 음울한 잿빛으로 물들여갔습니다어른들에 대한 불신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보리의 축 처져 있는 어깨를 토닥이며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는 중용의 구절을 들려주었습니다.


   제이슨과 어머니데이비는 그녀의 고모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현지 적응을 위해 며칠을 보냈습니다괴한이 침입하여 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는 내재해 있었지만 무력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는 고모부의 조언을 따라 거처를 고모 네로 옮겼습니다고모 네의 도움으로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는 자식들에 비해 데이비 어머니는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상실감으로 불면의 고통 속에서 헤매는가 하면 두통약을 복용하며 무기력하게 보내기 일쑤였습니다자신의 의사 표현은 점점 줄어들고 고모가 말한 대로 움직이는 어머니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 데이비는 일상에 변화를 시도하며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협곡을 찾아 집중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인적이 드문 협곡에서 울프를 만나 뒤부터 데이비는 그와 필요한 말만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생활의 활기를 조금씩 찾아 갔습니다우연적 시간들이 쌓여 필연적 의미를 띠고 삶의 방향을 틀어줄 때가 있습니다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보리와 주기적으로 대화하며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교사를 경계하며 쉽게 말문을 트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꿈 장학생 신청서류를 보이며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비쳤을 때 보리는 선생님처럼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사례는 없었다며 고마워했습니다제자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검토한 뒤 멘토로 학생과 어떻게 교류하며 지낼 것인지 계획서를 작성하고 장학금 활용방안까지 세세히 입력하였습니다열흘의 사정 기간이 끝난 뒤 장학생에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습니다.


  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환경에서 독서를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균형 잡힌 생활을 하는 가운데 비전을 드러내며 살아가려는 의지를 더했습니다경제적 상황이 안 좋아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사서 읽지 못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토요일에는 읍내에 있는 서점에 서 만나 함께 읽을 책을 구입하여 책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갔습니다일찍 철이 들어서인지 책을 깊이 있게 읽고 선생님이 베풀어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며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이로 살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아버지 죽음의 잔상이 남아 있는 데이비 옷에는 총상을 입은 아버지가 흘린 흥건한 피가 잔혹한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아버지의 죽음 이후 살아남은 가족의 시간도 멈춰버렸지만 산 자들은 어찌 해도 생존을 이어가야 했습니다이상과 현실이 괴리되어 화가의 꿈을 꾸었지만 편의점을 지키며 살아온 아버지는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았을 것입니다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고목처럼 말라 숨을 쉬기도 힘들어 했던 울프의 아버지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은 보리 아버지 등 세상의 어떤 죽음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죽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고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이들은 가슴에 묻고 그리워하며 애도하는 시간 속에 생전에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합니다 기억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며 망자와의 만남을 추억하는 일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입니다제자 역시 두 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났을 때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지갑에 넣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꺼내어 본다고 하였습니다아버지와 함께 지난 시간은 잘 생각도 안 나지만 딸과 아들을 할머니 손에 남기고 하늘로 갈 때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보였습니다매달 20만 원의 장학금을 받아 학습에 필요한 책을 사고 교통비로 쓰면서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기초 실력이 부족했던 수학 공부를 반복하며 풀리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는 능동적인 태도는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고배우며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까지 품게 되었습니다지금 제자는 지방의 대학교에서 사회교육을 공부하며 틈틈이 사회복지기관에서 가르침을 전하는 봉사로 그동안 배운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며 선순환의 복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뜻하지 않은 불행을 탓하며 무력하게 지내기보다는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나 힘을 모아 나아가려는 추동력으로 결집될 때 진화 발전해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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