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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평점 :
"강간은 전쟁 무기다."
이 책은 전시 강간에 대한 책으로서 성폭력을 전쟁 무기로 사용된 경우들에 집중해 서술했다. 독자는 역사책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군대와 민병대 강간 뿐만 아니라 성노예제, 강제결혼, 강제 임신, 강제 불임, 아기 유괴 등의 범죄와 강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들이 당하는 배척과 학대까지 수많은 여성의 참혹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목도 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르완다, 보스니아, 아르헨티나, 독일, 이라크, 콩고, 필리핀 등 전쟁과 내전이 벌어지는 거의 모든 곳에서 전시 강간은 이루어졌다. 생후 몇 달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 구분없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적 학대와 폭행을 당했고,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들까지 성노예로 내몰렸다. 존엄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쟁 종족이나 이교도로 여기는 사람을 말살하기 위해 가해자들은 강간을 사용한다.
강간 가해자들은 ISIS를 비롯해 보코하람, 버마 무슬림을 상대로 한 버마 정규군,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당시의 파키스탄군, 르완다의 종족 전쟁, 보스니아인을 상대로 한 세르비아인, 2차 대전 막바지의 소비에트 연방의 붉은 군대,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권, 콩고 민병대, 아시아 곳곳의 여성을 이용한 일본군 위안부 시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음에도, 강간은 세계에서 가장 소홀히 다뤄지는 전쟁범죄다.
철장에 갇혀 있는 여성들을 산 채로 불태우고, 제노사이드를 목적으로 학살당하고, 성노예로 팔리고, 여성들을 인터넷에서 거래한다. 집단으로 납치 강간하며, 강간 후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책에 언급된 내용들을 일일이 다 열거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지경임에도 이들의 고통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체념으로 무시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다.
아웅 산 수 치의 사례를 읽으면서 우리가 갖는 양면성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2016년 수 치가 선출되고 1년 뒤 군 보안부대는 라카인 북부에서 로힝야족의 마을을 불태우고 수백 명을 학살했으며 여성들을 집단 강간했고, 약 9만명이 폭력을 피해 달아나야 했다. 어린 아기를 죽이고, 그 장면을 아기의 어머니가 목격하게 하고, 그 어머니를 집단 강간하는 군대가 한 나라의 안위를 책임져야할 정상적인 군대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가. 수 치 정권 하의 이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에 맞선 불교 가치의 수호자로 인기를 얻었다. 버무 군부는 페이스북을 이용해 이슬람을 불교에 대한 세계적인 위협으로,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버마의 민족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해 로힝야족을 향한 대중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릇된 민족주의와 폭력적 국수주의. 아주 익숙한 흐름이다. 수 치의 이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여러 나라의 역사 속에서 흔히 자행되어 왔고, 경중의 차이일 뿐 대다수 사람에게서 보여지기 때문일 터다.
위에서 일일이 열거하고 싶다고 쓰긴 했다만, 사실 피해 사례들은 너무 끔찍해 차마 쓸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스스로 살기를 거부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고, 살아남아 탈출해도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희생된 여성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모든 면에서 유린당한 그들은 가족에게 외면 당하고,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고향에서 쫓겨났고, 심지어 남편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강간 피해에 살아남은 여성들의 환경은 열악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비참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강간의 목적은 적에게 모멸감을 주고 사기를 꺾는 것만이 아니고 체계적인 전쟁 무기다. 이 무기는 개별적으로,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들이 아니고 종교적으로 '정당화'한 고의적이며 이념에 근거한 정책이다. 강간은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 공동체 전체에 최대치의 굴욕을 가하기 위해 유별나게 가학적인 방식으로 자행되었다. 또한 침략 중에 부수적으로 일어난 행동으로 볼 수 없고 의도적인 패턴으로서 그 자체로 전략적인 용도로 쓰였으며 공동체의 사기를 꺾고 공포를 조장해 그들을 고향으로부터 몰아내고 침략 세력의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에 따라 의식적으로 자행되었다.
보편적으로 비난받는 범죄인 강간이 어떻게 전시에는 문제시되지 않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일까? 저자는 이 배경에 대해 고대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강간 위에 건설된 로마, 강간을 신화로 포장해 문제 삼지 않는 고대 그리스를 시작으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에서 나타나는 집단 강간의 역사는 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전쟁 강간은 역사적 사건이 있는 모든 장소에서 어김없이 일어난다.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시녀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 벌어졌던 사건들의 실제 사례를 가져와 썼다고, 작가는 밝힌 바 있다. 소설에서는 여성의 성노예가 체계적인 제도 하에서 이루지는데, 이는 우리 현실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전시 성폭력 가해자와 평상시에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에는 차이가 있다. 심리학자 잉에르 셸스베크에 따르면, "전쟁이라는 배경에서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이끄는 규볌과 가치로부터의 극단적 단절이 일어난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살인과 성폭력은 분명히 구분된다. 살인이 특정 상황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지만 성폭력은 그럴 수 없다. 그럼에도 전시 성폭력이 허용 가능한 행위처럼 여겨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은 전시라는 상황이 평범하지 않은 데다 성폭력을 저질러도 군 지도부로부터 아무런 대응이나 처벌, 비난을 받지 않기 때문" 이다.
그리고 앤터니 비버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다양한 군대 사이에서 성폭력의 정도가 다른 것을 두고 부분적으로 '군대 문화'를 든다. 또한 전시 강간이 모든 전쟁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성폭력 보고가 거의 없다는 점이 잉에르 셰스베크와 앤터니 비버의 주장을 뒷바침해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하버드대 교수 다라케이 코언은 '전투원 사회화'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납치나 강제징병 같은 강제적 수단으로 신병을 보충한 무장 집단은 이방인들의 집합으로부터 단결된 전투 세력을 창조해야 한다. (...) 강간, 특히 집단 강간은 강제로 징병된 대원들이 처음 경험하는 공포스럽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충성심과 존경으로 결속될 수 있게 한다"고.
강간은 여성에게만 자행되지 않는다. 남성 강간은 대다수 동성애와 연관되어 있어 드러나기가 더욱 어렵다. 2010년 콩고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분쟁 지역에서 남성의 23.6퍼센트 가량이 성폭력을 경험했다. 저자는 콩코 뿐만 아니라 보스니아, 아프카니스탄, 차드, 리비아의 이주민 수용소에서 남성 성폭력 사례를 마주했다. 또한 시리아에 억류된 남성 수감자의 최대 90퍼센트가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본다.
전쟁 강간범들은 여성을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들이 마치 인도적 행동을 했다고 착각한다. 전범 가해자들 중에 전시 강간으로 기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전무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하다. 읽는 것조차 힘이 드는데, 이 모든 것을 겪고 살아낸, 혹은 더이상 삶을 지속시킬 수 없어 스스로 삶을 끝내거나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그들에게 어떤 연민도 감히 드러내기 조심스럽다. 판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었다는 그라시엘라의 말,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최고의 치료제는 가해자의 처벌이라는 말이 깊게 와 박힌다.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모든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기 전에는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역사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일방적인 침공이 버젓이 일어나고, 몇 년째 이어지는 역병으로 세상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무엇도 확실하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약자의 이야기를 듣고 침묵을 지키지 않으며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