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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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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레이는 어머니가 장래를 걱정할 정도로 괴짜였고, 그의 이러한 엉뚱함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어머니는 니레이가 14살 때 돌아가셨고, 환영받지 못하는 큰외삼촌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당시 하라공업팀의 코치이자 니레이의 아버지와 사촌지간인 후지무라는 그가 세계적인 스키점프 선수가 될 거라는 천재성을 알아보고 니레이를 입양할 계획이었다. 후지무라의 지도 아래에서 일취월장하며 승승장구하던 니레이의 시련은 후지무라의 급사와 함께 찾아왔다. 


대부분 합숙소에서 지냈다고 하지만, 니레이가 머물렀던 소속팀 기숙사의 방은 방바닥에 놓아둔 스물네 권의 백과사전과 니레이 본인이 직접 그린 스기에 유코의 연필 초상화, 어머니와 후지무라의 불단이 전부일만큼 사람이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물건이 거의 없었다. 


시합 내내 전혀 긴장감을 보이지 않는 니레이는 얄미울 정도로 다른 선수들의 심리전에 휘말리지 않는다. 우승을 하고 난 후에도 겸손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본인이 직접 케이크를 사 자축한다. 그렇다고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관심사 외에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그야말로 신경 구조가 남다른 사람이다. 



소설 읽다보면 니레이는 그야말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크다.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관계 맺기에 미숙할 뿐만 아니라 오로지 비약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지경이라 연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아할 정도다. 그런데 유코와 교제를 한 이유도 씁쓸하기 그지없다. 참 안쓰러운 사람인데, 이것도 독자의 일방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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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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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레이의 사망 원인은 독극물 중독. 그는 평소에 캡슐형 비타민제를 복용했는데, 니레이가 복용하는 비타민제 중 다섯개의 캡슐에서 맹독성의 아코니틴이 검출됐다. 이로써 니레이 사망은 사고가 아닌 살인 사건으로 경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니레이가 비타민제를 처방받아 복용한 시기는 작년 봄부터였고, 죽기 전날에 처방받아 사건 당일 아침 및 점심 식사 후에도 복용했다. 형사들이 탐문한 결과 니레이의 부탁으로 비타민제를 보관하고 있던 레스토랑은 오전 9시부터 9시 40분 동안 직원이 없는 상태이고,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두기 때문에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어중간하다. 독극물이 검출된 비타민 캡슐은 총 여섯 개. 니레이를 빨리 죽이고 싶었다면 어떤 캡슐을 먹을지 모르니 전부 독극물 섞어놓아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독극물을 섞어놓은 시각은 확정하기 쉬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독극물 캡슐을 이렇게 어정쩡한 갯수로 만들었을까? 뭔가 딱 떨어지지 않는다. 


부모 형제가 없는 니레이는 평소에 병적이다싶을 정도로 명랑한 데에 비해 주변 사람과 개인적인 교류가 전혀 없다. 진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장난꾸러기같은 해맑음을 가장한 순수는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스물두 살 니레이 아키라. 이 남자,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천재 선수라고 불리며 승승장구하니 질투하지 않은 선수가 없을리 만무하지만, 타인을 죽이면서까지 1등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이 그를 죽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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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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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 미야사마 스키점프 대회에서  닛세이자동차팀 소속 선수 세 명이 도약 후 활공에서 이상한 자세를 보이며 떨어졌고, 무명에 가까운 이들의 추락은 큰 부상이 없는 채로 사람들에게 크게 각인되지 않았다. 이날 넘어진 선수는 그들 세 명 뿐이었고, 닛세이자동차팀 감독 스기에 다이스케만이 이 상황이 불편했다. 


1989년, 일본 최고의 스키점프 선수 니레이 아키라가 사망했다. 미야노모리 스키점프 경기장에서 연습 비행 도중 추락했고, 목격자는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경기장을 찾은 그의 연인 스기에 유코였다. 


스키점프 발상지는 노르웨이. 원래는 죄인에게 벌을 주는 수단으로서 죄인에게 스키를 신기고 엄청난 급경사 위에서 멀어버리는데, 경사면 중간에 울퉁불퉁한 혹 모양을 만들어 거기에 걸려 공중에 패대기쳐지도록 해 그 순간의 공포를 맛보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특전이 있는데 추락하지 않고 무사히 착지하면 그 죄인의 죄를 사해준다고. 이건 처음 알았다는. 죄인에게 벌을 주는 수단이 스포츠의 한 종목이 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전해지는 뉘앙스가 예사롭지 않다. 냄새가 나, 냄새가... 


​오랜만에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 새롭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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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인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
찬 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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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적은 없었는데 이번에서야 알았다. 나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중국문학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는 것을. 책을 중간쯤 읽다가 "응...?" 이러면서 작가의 이력을 다시 찾아봤다. 1953년에 태어나 중국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과 소설의 독특함이 의외였다. 물론 환상과 실제의 경계를 오가며 마술적 리얼리즘을 표방한 소설은 많지만, 이것이 중국 현대 소설에서 보여졌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점점 당황스러워진다. 앞에서 언급한 몽환적 경계와는 별개로, 일단 500여 쪽에 달하는 소설에서 이렇다할 줄거리가 없다. 등장인물마다 어딘가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데, 왜 이러는지 표면적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서로에게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보이는 공통점과 어느 지점에서 관계가 맺어진 그들의 연대, 그리고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두 번 읽기에 돌입하면서 깨달은 점은 이 인물들이 흘러가는대로 자신들을 내맡겼듯 독자도 이들을 그저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소위 '의식의 흐름'이라고 말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무의식의 흐름'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이 어느 순간 깊이 감추어져 있던, 혹은 잊고 있었던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듯 독자는 그들을 쫓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머리를 탁 울리는 문장들과 마주하게 된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몽환적 경계를 넘나드는데, 그 매개체는 각각 다르다. 존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몽환의 세계로 넘어간다면, 마리아는 카펫을 짜는 동안 예지력에 가까운 마력을 발휘한다. 빈센트는 잠자는 동안 꿈을 통해 다른 세계로 옮겨가고, 리사는 남편의 꿈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고아 출신 에다의 몽환적 경계는 그리움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들의 엇갈림이다. 빈센트는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여자를 찾아 헤매고, 리사는 그런 남편의 뒤를 쫓는데 두 사람은 간발의 차이로 항상 어긋난다. 존과 마리아는 각자의 관심사에 집중하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각성하는 순간, 한 발씩 늦다는 느낌이 크다. 이는 레이건과 에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무엇을 찾고자하는지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헤매다가 그들이 종당에 대면하는 것은 그들의 과거다. 존은 아들이 장미꽃을 훼손하며 감정을 다 쏟다내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에 의해 위축되었던 자신을 떠올린다. 마리아가 카펫을 짤 때 들리는 목소리는 그의 (조)부모들이고, 빈센트는 리사의 고향인 '도박의 도시'에서 그녀의 과거 삶으로 들어가서야 리사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을 탓함과 동시에 아내에 대한 연민을 깨닫고 사랑이 깊어진다.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을 짚어본다.
먼저 물항아리에 갇힌 황금거북의 이야기인데, 마을 사람들을 물항아리에 갇혀 죽음으로 가는 줄도 모른 채 주어진 먹이가 안정된 삶이라고 착각하는 황금거북에 빗대는 장면은 안정과 안주를 구분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이제는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음에도 '중산층'이라는 기준과 사회적 관습에 길들여져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릴라의 할머니는 마리아에게 존의 일은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으며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릴라의 할머니가 있는 방은 너무 어두워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다. 지지할 벽을 찾고 있는 마리아에게 할머니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자신의 실수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피곤하면 그냥 자도 된다고 하면서. 텅 비고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는 '집'에서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공포감을 느끼는 마리아. 그러나 실상은 마리아의 오른손 쪽 가까이에 나가는 문이 있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문득, 우리가 만은 부분에 있어 문을 열 수 있음에도 문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마치 스스로 찾아온 공간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빈센트처럼 말이다.  



우리는 삶에서 늘 길을 잃을까봐 혹은 걷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를 두고 두려워한다.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길을 잃었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잃은 것이 아니라 경험과 과정이 쌓이는 배움이라는 것을 깨우친다면 우리는 쉽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후안 롤포의 <뻬드로 빠라모>가 생각나기도 하고,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 카프카의 <소송> 이 떠올려지기도 했다. 인물들이 실재와 환상의 경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측면에서 보자면 작가가 왜 '중국의 카프카'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깊고 짙게 느껴졌던 감정은 쓸쓸함이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하나하나가 왜 이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던지 읽는 동안 어깨 너머로 찬바람이 지나가는 듯 했다. 



소설을 통해 사람은 기억을 통해 과거를 되돌릴 수 없고, 사랑없이 욕망만 남은 삶은 황무지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찬쉐. 그럼에도 미래를 향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세지를 통해 나는, 우리는 각자 처한 위치와 소속을 떠나 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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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주
실비 제르맹 지음, 류재화 옮김 / 1984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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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제르맹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에세이가 기대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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