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지막 연인 ㅣ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
찬 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2월
평점 :
딱히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적은 없었는데 이번에서야 알았다. 나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중국문학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는 것을. 책을 중간쯤 읽다가 "응...?" 이러면서 작가의 이력을 다시 찾아봤다. 1953년에 태어나 중국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과 소설의 독특함이 의외였다. 물론 환상과 실제의 경계를 오가며 마술적 리얼리즘을 표방한 소설은 많지만, 이것이 중국 현대 소설에서 보여졌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점점 당황스러워진다. 앞에서 언급한 몽환적 경계와는 별개로, 일단 500여 쪽에 달하는 소설에서 이렇다할 줄거리가 없다. 등장인물마다 어딘가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데, 왜 이러는지 표면적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서로에게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보이는 공통점과 어느 지점에서 관계가 맺어진 그들의 연대, 그리고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두 번 읽기에 돌입하면서 깨달은 점은 이 인물들이 흘러가는대로 자신들을 내맡겼듯 독자도 이들을 그저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소위 '의식의 흐름'이라고 말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무의식의 흐름'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이 어느 순간 깊이 감추어져 있던, 혹은 잊고 있었던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듯 독자는 그들을 쫓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머리를 탁 울리는 문장들과 마주하게 된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몽환적 경계를 넘나드는데, 그 매개체는 각각 다르다. 존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몽환의 세계로 넘어간다면, 마리아는 카펫을 짜는 동안 예지력에 가까운 마력을 발휘한다. 빈센트는 잠자는 동안 꿈을 통해 다른 세계로 옮겨가고, 리사는 남편의 꿈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고아 출신 에다의 몽환적 경계는 그리움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들의 엇갈림이다. 빈센트는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여자를 찾아 헤매고, 리사는 그런 남편의 뒤를 쫓는데 두 사람은 간발의 차이로 항상 어긋난다. 존과 마리아는 각자의 관심사에 집중하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각성하는 순간, 한 발씩 늦다는 느낌이 크다. 이는 레이건과 에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무엇을 찾고자하는지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헤매다가 그들이 종당에 대면하는 것은 그들의 과거다. 존은 아들이 장미꽃을 훼손하며 감정을 다 쏟다내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에 의해 위축되었던 자신을 떠올린다. 마리아가 카펫을 짤 때 들리는 목소리는 그의 (조)부모들이고, 빈센트는 리사의 고향인 '도박의 도시'에서 그녀의 과거 삶으로 들어가서야 리사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을 탓함과 동시에 아내에 대한 연민을 깨닫고 사랑이 깊어진다.
ㅡ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을 짚어본다.
먼저 물항아리에 갇힌 황금거북의 이야기인데, 마을 사람들을 물항아리에 갇혀 죽음으로 가는 줄도 모른 채 주어진 먹이가 안정된 삶이라고 착각하는 황금거북에 빗대는 장면은 안정과 안주를 구분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이제는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음에도 '중산층'이라는 기준과 사회적 관습에 길들여져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릴라의 할머니는 마리아에게 존의 일은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으며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릴라의 할머니가 있는 방은 너무 어두워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다. 지지할 벽을 찾고 있는 마리아에게 할머니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자신의 실수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피곤하면 그냥 자도 된다고 하면서. 텅 비고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는 '집'에서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공포감을 느끼는 마리아. 그러나 실상은 마리아의 오른손 쪽 가까이에 나가는 문이 있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문득, 우리가 만은 부분에 있어 문을 열 수 있음에도 문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마치 스스로 찾아온 공간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빈센트처럼 말이다.
우리는 삶에서 늘 길을 잃을까봐 혹은 걷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를 두고 두려워한다.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길을 잃었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잃은 것이 아니라 경험과 과정이 쌓이는 배움이라는 것을 깨우친다면 우리는 쉽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ㅡ
책을 읽으면서 후안 롤포의 <뻬드로 빠라모>가 생각나기도 하고,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 카프카의 <소송> 이 떠올려지기도 했다. 인물들이 실재와 환상의 경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측면에서 보자면 작가가 왜 '중국의 카프카'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깊고 짙게 느껴졌던 감정은 쓸쓸함이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하나하나가 왜 이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던지 읽는 동안 어깨 너머로 찬바람이 지나가는 듯 했다.
소설을 통해 사람은 기억을 통해 과거를 되돌릴 수 없고, 사랑없이 욕망만 남은 삶은 황무지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찬쉐. 그럼에도 미래를 향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세지를 통해 나는, 우리는 각자 처한 위치와 소속을 떠나 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