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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수아즈 사강이 바라보는 사랑과 권태를 담은 단편 열아홉 작품이 실려있다.
10년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변함없이 사랑하지만 익숙함이 커지고 깊은 대화가 단절된 부부, 부유한 중년의 여성에게 사랑을 구걸하며 기생해서 살아가는 지골로,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곁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보게 되는 남자, 긴 세월 동안 감춰오면서 아내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남편의 비밀, 지나간 사랑의 아련함과 그와는 무관한 현실에서의 처세, 외로움 때문에 이별도 쉽지 않은 연인,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헤어진 남편을 향한 그리움, 사는 게 연기인지 연기가 삶인지 이제는 분간하기도 어려운 가장, 위기를 겪어보니 곁에 있는 사람의 현실적(?)인 소중함을 깨닫는 여인, 공개적으로 멋지게 결별을 선언하고 싶었으나 막상 헤어지자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 야비한 남자의 심보,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은 젊은 시절의 열정적인 사랑.
프랑수아즈 사강은 거의 대부분의 소설을 통해 사랑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결혼 생활 혹은 연애란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듯 하다. 마치 결혼을 하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외도는 거쳐야하는 수순인것처럼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상처받는 마음과는 별개로 하나같이 배우자 혹은 연인의 외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랑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는 자는 덜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돈을 가진 자이고, 때로는 인생에 있어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게 있을 수 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인생, 경쟁에서 오는 긴장감. 헛되이 살지 않았으나 인생이란 참으로 고단하다. 그래서일까. 사랑의 끝에는 늘 권태와 고독이 기다리고 있음을 프랑수아즈 사강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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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작품은 표제작 [길모퉁이 카페]와 [고독의 늪]이다.
암으로 3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은 마르크. 별거 중인 아내, 자기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는 노부모, 법적 자식이 아닌 실수로 낳은 아이들. 이들이 그와 관계된 사람들 면면이다. 암이라는 병으로 인해 마르크는 별다른 변명없이 그들을 떠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직후 마르크가 무덤덤하게 찾아간 곳은 병원 앞 길모퉁이 카페다. 그는 카페의 모든 손님들에게 한 잔씩 돌린다. 이는 그가 더 이상 초라하지 않아야 할 자신에 대한 호의 였다.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생각해야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친구들과 매력적인 주말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닷없이 붉은 가을 길을 걷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던 서른 살 프뤼당스. 자기의 삶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녀가 고독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음에도, 그 순간 사무치도록 고독하다. 고독을 느끼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삶이려나. 나는 프뤼당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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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시합], [왼쪽 눈썹], [개 같은 밤]은 프랑수아즈의 작품이라는 게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혼자서 큭큭 거리며 읽었는데, 그에게 이런 꽁트같은 작품이 있다니, 여기에 이 책의 의의를 두어도 좋을 성 싶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분량이 많지 않은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책들은 특히나 한 편당 20여쪽을 전후로 할 만큼 아주 짧은 소설들인데, 느낌이 그렇게 썩 가볍지만은 않아서 좋았다.
뻘.
이 책은 행간과 텍스트 간격이 넉넉해 눈의 피로도가 낮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