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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작년에 사회비평서를 한 권 읽은 뒤 배달플랫폼에 관련한 책을 읽어보고 싶던 차에 이 책이 출간해 읽게 되었다. 일단 핸드폰에 쇼핑앱과 배달앱이 전혀 없다보니 우리나라 배달산업의 형태부터 이해해야 했다. 물론 앱을 사용한다고 해서 이를 아는 사람도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그나저나 저자분이 이해하기 쉽게 찰떡으로 써주셨다). 그리고 처음 알았다, 배달앱을 통해 소비자가 배달노동자의 실시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책에서 언급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산업재해 신청 1위, 2위, 7위, 9위가 모두 유통, 배달업이다. 재해가 중공업 현장에서 플랫폼, 즉 디지털 일자리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2022년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77명, 그러나 이들 사고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재해조사통계에서 77명의 죽음은 해당하지 않았다. 도로는 배달노동자가 일하는 일터다. 그러나 사업장 외 교통사고는 경찰청이 조사하고 노동부는 관여하지 않으며 거기다 대다수의 배달노동자는 1인 사업자로서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노동부는 산재보험으로 보상은 하지만 사고 예방을 위한 원인 분석이나 대책을 내놓지는 않는다.
라이더의 생계와 기업의 이윤, 소비자의 편리가 복잡하게 엮여있는 구조 속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배달라이더의 사고 피해는 배달노동자로 끝나지 않는다. 배달노동자 사고는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교통사고이자 업무를 하다 발생한 산재사고다. 업체 사장뿐 아니라 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시민들이 살아가는 마을과 많은 사람이 공적으로 사용하는 도로 위에 배달플랫폼기업이 거대한 공장을 지어버렸다.' 라는 문장이 현재의 배달플랫폼 시장을 가장 적확하게 정의한 건 아닐까싶다.
배달플랫폼기업은 산재를 무수히 유발하면서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여러 책임에서 자유롭고, 주기적인 물리적 비용 없이도 고객 유치가 가능하며, 얼마든지 기본 시급 없는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있다. 심지어 영업과 사후 관리에 필요한 인프라 비용조차 전혀 지불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공공의 장소와 영역을 사유화하면서 기업 소득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 위험이 높은 배달산업을 창업하는 데에 규제가 전무해 배달앱사업자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이에 따른 그들 간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경쟁은 라이더들의 생존과 직결된다. 규제 없는 자유업이다보니 국가도 배달대행사업에 대한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이에 따른 통계조차 신뢰성이 떨어진다.
배달파트너 앱에 가입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허점 투성이다. 구멍 숭숭 뚫린 허점은 배달료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에 관련한 부분을 읽는 동안 머리가 지끈거렸다. 배달료 책정 및 분배 체계와 거리 측정, 배차 등이 배달노동자들에게 일방적 횡포를 부리는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지역별, 동네배달대행사별 등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핸드폰 화면 안에 예쁘고 단정하게 꾸며진 배달앱과는 다르게 현실 속 배달노동 현장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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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장악한 배달 오토바이의 난폭한 주행을 손가락질 하면서, 집에서 배달을 기다릴 때에는 조금만 늦어도 불만을 쏟아낸다. 업주에게는 최고의 효율성을 장착한 라이더가 도로 위의 시민에게는 최악의 라이더이지만 한편으로 배달을 기다리는 시민에게는 신속한 라이더로 칭찬받는, 그리고 배달 라이더를 1인 사업체로 만들어놓고, 개인 고용인처럼 부리려드는, 이 복잡한 모순적 굴레를 쥐고 있는 헤게모니는 과연 무엇(누구)일까.
저자는 배달노동자 산재사고 원인을 위험한 작업장, 위험한 작업도구, 과속을 유도하는 임금체계, 직업교육의 부재와 미숙련 노동, 불충분한 법체계 등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하면서, 수많은 실제 사례들과 근거를 통해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안전 문제, 배달산업의 가혹한 구조, 배달앱들의 알고리즘 등을 다루고, 가장 시급한 안전교육을 비롯해 노동조합과 그에 관련한 법 개정의 필요성 및 대안을 제시한다.
읽다보니 플랫폼노동자의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 무엇보다 이 산업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다가왔다. 노동 현장도, 책임 소재도 불분명한 이 유령같은 산업시스템에서 배달노동자뿐 아니라 가게 업주, 소비자까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대행앱 플랫폼기업들이 주장하는 혁신의 바탕에는 1차 산업에 가까운 육체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기업은 교묘하게 원시적 축적 과정을 담고 있음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저자는 노동조합, 시민, 전문가 등 대부분이 지지하는 제도 개선이 어려운 이유는 자동차 산업 중심으로 이뤄진 교통산업 발달에 의해 이륜차의 특성을 이해하는 문화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고 본다. 배달시장이 확대된 시점에 앞서 얘기했듯 사회의 공공 인프라를 사업장으로 활용하는 1인 사업자이자 노동자들의 주요 작업 도구인 이륜차에 대한 철처한 관리가 시급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저자 박정훈 님이 하신 말씀 중 하나를 짚으려 한다. 라이더를 향해 인신 공격과 비하 발언이 담긴 폭언을 한 손님에게, '손님은 공인이 아니며, 개인일 뿐입니다'라고 말씀했다(p201). 그러나 설령 공인이라고 해도, 그러한 발언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린다. 무엇보다 배달대행업에 종사하는 라이더가 노동자라는 인식부터 전제되어야 하고, 그들에 대한 편견도 같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사족.
사실 평소 책을 읽는 속도를 감안하면 이 책은 적잖이 오래 붙잡고 있는 셈이었다. 실제 사례들이 언급되다보니 오토바이 사고가 머릿속에 그려져서 책장을 계속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라이더에게 퍼붓는 폭언은 가히 재난 수준이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은 이유에는 사고 그 자체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죽을 수도 있는 사고 순간에 라이더가 걱정하는 건 제 목숨이 아니라 배달통 안의 손상된 음식과 배상해줘야 하는 여러 제반 비용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어느 한 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배달노동자들이 반복적으로 겪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