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다 읽어도 또 읽고 싶은 책이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매우 흡족해했다. 신은 존재한다. 분명 존재한다. 돌아갈 곳이 고향밖에 없는 건 아니다. 보라, 무저항주의의 성과를. 나는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슬픔은 돈을 내서라도 사라는 말이 있다. 푸른 하늘은 감옥의 창문을 통해 볼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하던가. 감사한 일이다. 이 장미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마음의 왕이라고 순간 생각했다. - P296

도대체 저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또렷한 형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불안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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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정말 좋았다. 류노스케 보다는 다자이가 더 내 취향~!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사라져서 덧없어졌죠. 어차피 모든 게 그렇지만."

소설이란 참 시시해요. 아무리 좋은 작품을 써도 이미 어딘가에서 백 년 전에 더 훌륭한 작품이 나와 있잖아요. 더 새로운, 더욱 미래의 작품이 백 년 전에 이미 만들어진 거죠. 기껏해야 흉내만 낼 뿐이고. - P58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모든 게 원인인 것 같아서. - P96

나는 최소한 인정으로 가득 찬 이 나흘간을 천천히, 천천히 그리워하겠다. 단, 나흘간의 추억이 오년, 십년의 생활보다 소중할 수 있다. 나홀간의 추억이 아아, 일평생보다 소중할 수도 있다. - P143

사람에게 너무 의지했어. 사람의 힘을 과신했지. 그것도, 그 밖의 수치스러운 수많은 실패들도, 다 알고 있어. 어떻게든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당신도 조금은 알잖아. 지푸라기 하나에 매달려 살아왔지. 약간의 무게에도 그 지푸라기가 끊어질 것 같아서 나는 필사적이었는데 말이야. 당신도 알지? 내가 나약한 게 아니라, 괴로움이 너무 무거운 거야. 이건 투정이야. 원망이지 - P183

정원 구석에 장미꽃이 네송이 피어 있다. 노란 장미 하나 흰 장미 둘, 분홍색 하나. 꽃을 바라보며 인간도 정말 좋은 점이 있구나, 생각했다.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도 인간이고, 꽃을 사랑하는 것도 인간이니 말이다. - P229

우리는 결코 찰나주의자는 아니지만, 너무 먼 산을 가리키며 저기까지 가면 경치가 좋을 거라고들 말한다. 그건 분명 맞는 말이고, 조금의 거짓도 섞이지 않았다는 걸 알지만, 지금 이렇게 심한 복통을 않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며 그냥 조금만 더 참아라, 저 산꼭대기까지 가면 다 해결된다, 하고 그저 그렇게만 가르친다. 분명히 누군가가 틀렸다. 나쁜 건 바로 당신이다. - P262

내일도 또 똑같은 하루가 오겠지. 행복은 평생, 오지 않는다.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 온다, 내일은 온다고 믿고 잠자리에 드는 게 좋겠지. 일부러 푹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부자리에 누웠다. 아아, 기분이 좋다. 이불이 차서 등이 적당히 서늘해서 나도 모르게 넋을 잃었다. 행복은 하룻밤 늦게 찾아온다. 멍하니 그런 말을 떠올렸다. 행복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갔고, 그 이튿날, 멋진 행복의 전령이 버리고 떠난 집으로 찾아왔지만 이미 늦었다. 행복은 하룻밤 늦게 찾아온다. 행복은...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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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도 완벽하고 묘사도 완벽하고 결말도 최고였다.

아주 작은, 평범한 희망이라도 좋았다. 사람은 그것이 없으면 내일을 향해 살아갈 수 없다. 내일 해야 할 바느질거리, 내일 떠나기로 한 여행 티켓 한 장, 내일 마시려고 병에 남겨둔 술 한 모금 이런 것들을 사람들은 내일에 양보한다. 그림으로써 새벽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 P37

단지 희망을 기 위해서 이토록 쏟아붓는 열정은 어쩌면 인간 존재의 가시적인 형식, 그것이 유선형이든 아치형이든 어떤 형식의 충실한 모형일지도 모른다. 열정이라는 것은 하나의 형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그토록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 P119

괜찮나요? 배가 침몰 직전이에요. 아직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건가요? 당신은 정신의 배를 너무 흑사시켰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을 스스로 상실한 체 이 지경에 이른 거예요. 이젠 육체의 힘으로만 바다를 헤엄쳐 나가야 합니다. 그때 당신 앞에 놓인 것은 죽음 뿐일 거예요. 그래도 괜찮나요?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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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화된 보뱅... 그래도 좋다...너무 우울한 작품

돌과 짐승도 누군가가 그들을 더 이상 보지 않을 때, 땅과 하늘이 그들을 떠나고 영원히 버려졌음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 살과 피부처럼 피를 흘릴 것이다. - P12

가벼움. 내 안의 강물이 나를 모두 떠났을 때, 진줏빛 뼈가 더는 빛나지 않고 거칠해져 회색이 될 때, 내 영혼은 이 사이로 빠져나오고 입술을 지나 아주 높이 저 멀리 날 아갈 것이다. 연처럼, 참새처럼. 새들을 죽은 자의 영혼이라 하지 않던가. - P14

내 마음속, 그 안에서는 다른 시간이 흘렸다. 뒤집힌 탄생. 첫 번째 통증이 나타났다. 사라진 물.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울고 있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내가 왜 우는지 몰랐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것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음을. - P16

당신의 손은 말보다 미리 앞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그리곤 했다. 말 아래 숨겨진 말을. 마음을 건드리고 입술을 어루만지는 손길로. 삶 속에서, 당신은 삶보다 더 많은 것을 엿볼 수 있게 해 줬다. 문장 없이, 당신의 걸음걸이와 행동과 미소만으로. - P23

나는 다정힌ㅁ과 잔인함이 욕망의 이면에 서로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을 깨날았다. 존재는 부재로 인해 성장했기에 부재를 피할 수는 없었다. 탄생은 죽음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때로는 니아가는 일이 포기나 멀어짐보다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 P74

가끔 우리의 사랑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사랑이 이상하지 않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던가? 우리는 서로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함께 있기를 그친 적은 없었다. - P115

때때로 당신 옆에 더 오래 있고 싶었고, 생기 넘치는 단순한 시간을 즐기고 싶었고, 지속되는 시간 속에서만 펼쳐지는 일들을 즐기고 싶었다. 그런 욕망에 사로잡힐 때면 무척 괴로워서 일주일의 날수만큼의 장미꽃을 나 자신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우울감은 금세 사라졌다. 욕망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제 갈길을 가기 위해선 비밀이 필요했으니까. 바로 이 욕구가 표면에서 멀리 떨어진,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천혜의 장소에 샘을 탄생시켰다. - P116

당신이 떠난다고 말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말을 아끼는 당신에게 감사했다.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도 별로 없지만, 사랑이 끝날 때는 더더구나 아무런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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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5-16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흑화된 보뱅이라니 너무 궁금하네요! 오늘 책 주문하려다 말았는데 다행입니다ㅎㅎ

새파랑 2024-05-18 15:40   좋아요 2 | URL
바쁘신 미미님께는 당분간 비추입니다. 나중에 시간의 여유가 생기실때 읽어보세요~!!

얄라알라 2024-05-30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벵이 우울하다고요?아니 보벵 작품이?....

˝흑화˝단어로 어느 정도 예고받았다 싶었는데 정말이군요....흑.

제가 예전에 보뱅 작품 읽고 구글에서 ‘노랑색‘ 찾아 다녔는데 ‘흑‘의 작품이라니...궁금합니다

새파랑 2024-06-01 09:03   좋아요 1 | URL
제 친구는 이 책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다고 합니다 ㅋㅋ 예전 작품들하고는 결이 많이 다르긴 합니다 ^^

서니데이 2024-06-01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필 이미지 아래, 올해 9월까지는 바쁘신 것 같네요.
새파랑님, 오늘부터 6월 시작이라서 인사 왔어요.
좋은 일들 가득한 한 달 보내시고, 기분 좋은 시간 되세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2024-07-03 0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4-07-01 16: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엇, 새파랑님 9월까지 쉬시는군요 ㅠㅠ 꼭 돌아오셔야 해요~!

그레이스 2024-07-01 16:17   좋아요 1 | URL
어디에 그런 말씀이 ?!
ㅠㅠ

독서괭 2024-07-01 16:43   좋아요 2 | URL
서재 pc로 보시면 프로필 아래 적혀 있더라고요!

2024-07-03 0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3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수하 2024-07-24 15:29   좋아요 2 | URL
저도 요즘 안 보이신다 싶어 찾아와봤는데, 괭님 덕분에 알았네요.
여름 잘 나시고 9월엔 꼭 만나요 새파랑님!

2024-07-04 0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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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36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타인과 조우하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믿고 읽는 백수린 작가의 초창기 작품은 어떨지 궁금했다. 문학동네 북클럽에도 가입한데다, 이 책이 이달의 도서? 이길래 문학동네 북샵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바로 읽었는데, '엄청난 작품이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아주 괜찮았다.


사실 내가 이 작품에 대해 기대한 분위기는 <여름의 빌라> 였는데, <여름의 빌리>와는 다른 면이 많았다. 우선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좀 쎄고(?),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작품도 많았으며, 작가가 의도를 꼭꼭 숨겨놔서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던 건지 숨은 의도를 찾는 고생도 했어야 했다. (해설이랑 인터뷰를 보면 답이 잘 나와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작품을 꼽는다면 표제작인 <폴링 인 폴> 이었다. 이 단편은 완전 내 취향 이었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에 대한 짝사랑의 아쉬운 감정을 너무나 잘 그려낸 작품이었다. 이건 작가님의 자전적인 작품(?) 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해본다.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한국어 강사인 나의 수업에 재미교포인 '폴'이 참가하게 되고, 처음에는 그를 꺼리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개인적인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어느 순간 그를 신경쓰게 된다. 삼심대 중반인 나, 그리고 이십대 중반인 폴. 극 I인 나와 극E인 폴.


폴 역시 나를 좋아하는게 아닌가 라는 착각은 만남이 거듭할 수록 옅어졌다. 그는 나를 친누나 같다고
했고, 어느날 폴은 술자리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유리코라는 일본 여학생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폴과 유리코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고독해진다. 하지만 결코 이 마음을 폴에게 말할 수는 없었고 나는 폴에게, 폴은 결코 알 수 없는 나만의 작별인사를 준비한다. 폴은 내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나는 폴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의 이름을 다급히 불렸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이제 두번 다시 나는 이런 감정으로 그를 바리볼 수 없을 것이다. 한 번도 그럴듯하게 명명된 적이 없는 초라한 내 사랑. 이제 와 고백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만큼은 건네고 싶었다. 삼 십대의 사랑은 그렇게 쉽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니까. ] P.65 <폴링 인 폴>


언제나 궁금했었다. 짝사랑은 언제 시작되는건가? 짝사랑 당하는 사람은 짝사랑 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모르는척 하는 걸까? 만약 알고 있었다면 어느 시기가 되서야 알게 되는걸까? 물론 짝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이전까지의 이야기 이지만...


이렇게 쓰고 나니 이 작품이 단순한 짝사랑 이야기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작가는 짝사랑 이야기에 미국인인 폴과 이민 1세대인 폴의 아버지와의 갈등, 이민 2세대의 모국에 대한 마음과 역사 인식을 절묘히 섞어놨는데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아주 매끄러웠다. 살짝 <눈부신 안부>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그 다음으로 <거짓말 연습>이 좋았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언제나 진실말을 말했던 걸까? 아니 타인에게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스쳐 지나가면, 나만 놓아 버리면 끝인 사람들인데? 필요에 따라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이 꼭 나쁜것 만은 아니다. 나쁜건 나를 떠나버린 사람들이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P.15 <거짓말 연습>




Ps. <폴링 인 폴> 작품집을 읽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훨씬 좋아한다는 것을. 그런데 하루키는 왜 좋은걸까? ㅎㅎ

#북클럽문학동네 #이달책 #폴링인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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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5-12 1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에 그럭저럭 괜찮게 읽었던 소설집인데 벌써 가물가물 느낌만 남았어요. ㅎㅎㅎ깨끗하고 맑은 취향(?)의 새파랑님께는 어울릴 것 같습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4-05-13 21:26   좋아요 3 | URL
역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열반인님~!! 사실 전 한강작가님이나 최진영 작가님이 더 취향입니다~!!

저 깨끗하고 맑지는 않는데...단지 보뱅을 좋아할뿐 ㅋ

바람돌이 2024-05-13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북홀릭님과 새파랑님 두분이 한꺼번에 백수린 작가를 좋다고 하시네요. 익히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읽어본 적은 없는데 저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새파랑 2024-05-13 21:27   좋아요 1 | URL
아 ㅋ 요새 바빠서 북플을 잘못하고 있는데 북홀릭님도 그러셨군요~!!!

백수린 작가님 작품 다 괜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