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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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한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시간이다."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은 액자식 구성으로, 한 남자가 태어나서 죽기 직전까지 쓴 자서전이다. 그 남자가 자서전을 쓴 이유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평범한 삶이였을지라도 남과 똑같은 삶은 아니었을 것이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적어도 한명쯤은 있겠지 라는 마음에서 쓰기 시작한 자서전. 자서전이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다.


겉으로 봤을때는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 나는 자서전을 쓰면서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나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게 기억나는 것이라곤 조용하고 당연해 보이는, 거의 기계적인 세월의 흐름이며, 내게 다가올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른 시간들과 마찬가지로 별로 극적이지 못할 것이다.]  P.19



믿음직하고 너무나 높게만 보였던 아버지, 언제나 자식 걱정만 하는 어머니, 가족은 나에게 세상을 처음 마주하게 해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하게 된 후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도 처음 접하게 된다.

[위대하고 힘든 것이 사랑이다. 또한 가장 행복한 사랑일지라도 도가 지나치면 끔찍하고 부담스러워진다. 고통 없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으로 죽을 수 있고, 고뇌를 통해 사랑의 원대함을 측정할 수 있다면.]  P.103



유년기를 마치고 김나지움에 입학해서 보낸 8년간의 세월은 그의 성장에 또다른 영향을 끼쳤다. 소극적인 성격에 친구 하나 없이 보낸 그 시절의 나는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처음 발을 디딘 '프라하'는 나에게 또한번의 충격을 주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과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은 그의 생각을 바꾸게 했고, 결국 나는 아버지의 뜻을 거르고 학업을 포기한다. 그리고 어린시절 동경했던 기차를 기억하면서 철도청에 취직한다.

[철도가 지니고 있는 독특하고 약간은 이국적인 정취와 먼 곳에 대한 동경, 매일같이 도착하고 출발하는 모험을 수용하는 낭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 철도에는 뭔가 내게 걸맞은 것이 있었고, 철도는 나의 끊임없는 몽상에 어울리는 테두리였다.]  P.178



그는 철도관련 일을 하면서 자신이 상관으로 모시던 역장의 딸과 결혼을 하고, 이후 안정되고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아간다. 자식은 없었지만 대신 역장으로서의 주어진 임무에 매진하고 부인에게는 따뜻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모를 공허함과 권태를 느낀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이 나를 변하게 한걸까?

[우리 사이에는 틈 같은 게 생겼고, 아무것도 그걸 원상으로 돌려놓을 수가 없었소. 당신이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해도 그 틈은 사라지지 않았소. 당신은 누워 있어도 잠이 들지 않았고, 나도 잠을 자지 않고 있었지만,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소. 아마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말이오.]  P.116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쓴 자서전의 초반에는 내가 좋게 기억하는, 그래도 강하게 인식되어 있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다. 하지만 과거를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그동안 꺼내보이기 싫었던, 숨겨두었던 또다른 자아들을 떠올리게 되고, 자서전의 후반에는 이러한 자아들에 대해, 자기가 잃어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써내려간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세 번째 인물이 있는 거군. 첫 번째는 평범하고 행복한 사람이고, 두 번째는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는 억척이이고, 이 우울증 환자가 세 번째 인물이지.]  P.159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욕망, 억눌렀던 자아들이 폭발하면서 그의 글은 점점 거칠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무엇을 억제하고 살았던가? 왜 그때 하고 싶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던가?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나는 내 속에 숨어있던 자아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래, 하지만 운명들이 그렇게 많으면, 그처럼 많은 가능성들이 있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떻게 모두의 손을 잡고 이끌 수 있는가? 영원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내 삶의 방향을 바꿔 가야 하는가?]  P.207




그렇다면 수 많은 자아를 억누르고 살아왔던 나의 평범한 인생은 축복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은 독자에게 내면을 돌아보게 하고, '모든 인생은 평범하지만, 동시에 특별하다'는 따뜻한 위로를 보내는 것 같다. 꼭 성공한 인생만이 위대한 것은 아니다.



Ps 1. 이 책은 "차페크"가 쓴 철학 3부작(호르두발, 별똥별, 평범한 인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책의 내용이 상당히 철학적이다. 그리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수두룩하다. 초반부만 잘 넘기면 후반부를 아주 감명깊게 읽을 수 있다.

Ps 2.  책을 읽고나서 체호프의 <지루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늘 저녁에는 체호프를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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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2-22 20: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말 철학적이군요! 어제? 리뷰 올리신 정체성에 관한 책과도 느낌이 비슷해보여요. 기회가 있을때 자신의 삶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처럼 자서전이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듯 모든 개개인의 삶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니까요😄

새파랑 2021-12-22 20:10   좋아요 5 | URL
그러고보니 왠지 비슷한 책을 계속 읽는 기분이 드네요 😅
답안지는 잠자냥님 리뷰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

저도 한번 부끄럽지만 과거를 돌아봐야 겠습니다 ㅋ 어디 멀리 휴가가서 😆

그레이스 2021-12-22 20:5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숨쉬듯 책읽는 달인 새파랑님!

새파랑 2021-12-22 21:54   좋아요 6 | URL
제가 평일 남는 시간에는 책만 봐서 그런가봐요 ^^ 달인은 아니죠 ㅎㅎ

scott 2021-12-23 00:43   좋아요 3 | URL
독보적 걷기도 탑!👌^^

페넬로페 2021-12-22 23:0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 평범하면서도 철학적일 것 같아요^^
언젠가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난 어떤식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새파랑 2021-12-22 23:19   좋아요 6 | URL
이 책 읽고나서 도대체 이 책의 리뷰는 어떻게 써야되지? 고민했어요 😅
책 읽으면서도 생각을 많이 했는데, 생각을 글로 쓰려니 힘들더라구요. 저는 자서전은 못쓸거 같아요 ^^

페넬로페님은 잘 표현하실거 같아요~!!

munsun09 2021-12-22 23: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어 주문 들어갔는데...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2-22 23:20   좋아요 6 | URL
두껍지 않은 책이었는데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문장도 매끄럽고 좋았습니다~!!

scott 2021-12-23 00: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저얼대 평범 하지 않습니다

세문집 독!파 랑 ^ㅅ^

새파랑 2021-12-23 07:00   좋아요 3 | URL
22년에는 닉네임 바꿀까요? ^^ 그냥 보면 저 완전 평범합니다 ㅋㅋ

오거서 2021-12-23 22:37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독보적!
평범하지 않아요. ^^;

새파랑 2021-12-24 06:55   좋아요 0 | URL
독보적 미션만 잘하지 다른건 다 평범한거 같은데 😅 칭찬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야 겠어요~!!

희선 2021-12-23 0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처럼 《평범한 인생》이라 생각해도 자기 삶을 되돌아 보면 여러 가지 일이 떠오르기도 하겠습니다 살면서 하지 못한 걸 생각하고 아쉬워하지만, 한 것도 있으니 그것도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을 테니... 사람은 잃은 걸 더 크게 여기기도 하는군요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겠지요


희선

새파랑 2021-12-23 07:02   좋아요 4 | URL
저도 하지 못하고 아쉬웠던 순간들이 가끔 생각나더라구요. 얻은것에 만족 하면 되는데 이상과 현실은 약간 차이가 있나봐요 ㅎㅎ

mini74 2021-12-23 10: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자아를 억누르며 사는 평범한 삶이 축복인지 불행인지에 대한 물음이 확 와닿네요 새파랑님. 평범하지만 특별하다는 위로를 주는 책. 연말에 꼭 필요한 위로같은 느낌 ㅎㅎ 저번 잠자냥님 글 읽으며 1월에 사야지 했는데 ㅠㅠ 맘이 급해지네요 ㅎㅎㅎ

새파랑 2021-12-23 11:11   좋아요 4 | URL
잠자냥님 별 다섯에 저의 허접한 리뷰면 읽어보셔도 좋을거 같아요 ^^ 전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람돌이 2021-12-23 10: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이렇게 새로운 작가를 알아갑니다. 세상에서 평범하게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는 살아본 이는 다 알지요. ^^

새파랑 2021-12-23 11:11   좋아요 3 | URL
저도 이제 차페크는 두번째 읽은 작품이었어요 ㅋ 살아있는것 자체도 어떻게 보면 기적인거 같아요~!!

오거서 2021-12-23 22:39   좋아요 1 | URL
12월 3주 신간 중에 차페크 에세이 두 권 보이더라구요. ^^;

새파랑 2021-12-24 06:55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래도 구매는 내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