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속으로 -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진 이름. 평생을 방랑자로 산 작가 김사량의 작품집
김사량 지음, 김석희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와서 보니 모든것이 자신을 슬프게 할 씨앗이 아니었던가˝


일제강점기 시대를 다룬 영화를 볼때면 항상 생각하는게 있다. ‘과연 내가 저 시대에 살았더라면 나는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을까? 아니면 그냥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았을까?


시간이 흐른 후에야 누구나 쉽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확실한 건 그때 그 시절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녹색광선에서 여섯번째로 출판된 책 <빛 속으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작가인 ˝김사량˝이, 일본어로 쓴 단편을 모은 작품이다. 솔직히 ˝김사량˝ 작가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1914년 태어난 그는 평양에서 항일시위를 하다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밀항하여 도쿄제대에 입학했으며, <빛 속으로>를 일본어로 써서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는 작품을 쓰지만, 한때는 일본을 위한 글을 쓰기도 하였으며, 이후 중국에 있는 항일근거지로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해방 후 그는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게 되고 6.25. 전쟁때 북한의 종군기자로 참가하여 1950년에 사망한다.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친일 이력에다가 해방 후에는 북한으로 가게되어, 우리나라와 북한 어디에도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잊혀졌던 작가였던 ˝김사량˝.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저항작가로 다시 알려지게 되면서 그의 작품은 주목받게 된다.


이 작품에 실려있는 단편 <빛 속으로>, <천마>, <풀이 깊다>를 읽어보면 일제강점기 시대에 저항하는 모습에 더하여,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1.

표제작인 <빛 속으로>에세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주요 테마는 이름. 됴쿄국제대학 학생인 ˝남˝이라는 이름의 주인공 ˝나˝는 빈민촌의 S 협회에서 이이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를 ˝남 선생님˝이 아닌 일본식 이름 ˝미나미 선생님˝ 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 이걸 고치려고 하지 않고 ˝미나미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내버려 둔다. 오히려 조선인의 이름을 감추면서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그곳에서 살아가기에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러한 것에 대한 가책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가 조선인이라고 하면, 저런 아이들이 나를 대하는 기분 속에는 애정 이외에 나쁜 의미의 호기심이랄까, 아무튼 다른 감정이 앞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추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모두가 그런 식으로 나를 불렀을 뿐이에요.]  P.22



이후 그는 자신과 비슷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아이 ˝야마다 하루오˝를 만난다. 그 아이는 ˝나˝를 볼때마다 ˝조센징˝이라고 놀려대고, 조선인을 증오하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아이였다. 처음에 ˝나는˝ 그를 일본인 아이라고 알았지만, 이후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일본인이고, 어머니는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고 조선인을 싫어하며, 어머니는 자신이 조선인임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야마다 하루오˝에게 ˝나˝는 연민을 느끼고, 그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아이와 가까워 질수록 나는 왠지 모를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한 줄기 빛을 보게 된다.

----------------
˝선생님, 나는 선생님 이름을 알아.˝

˝그래? 말해봐.˝

˝남 선생님이지?˝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는 내 손에 자기 옆구리에 끼고 있던 웃옷을 내던지고 달려 내려갔다.
나도 문득 구원받은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쓰러질 듯 타다닥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  P.68



2.

두번째 작품인 <천마>는 경성을 배경으로, 일본인 관료를 등에 엎고 온갖 기행을 일삼는 작가 ˝현룡˝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준 낮은 외국어와 얕은 지식을 앞세워서 깨어있는 작가 행세를 하는 ˝현룡˝, 하지만 그의 만행을 더이상 봐줄수 없었던 일본인 관료˝오무라˝는 그에게 절로 유배를 가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절에 너무나 들어가기 싫었던 그는 일본에서 우연히 알게된 ˝다나카˝라는 작가가 경성에 방문하여 관료 ˝오무라˝를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작가 ˝다나카˝를 찾아가 그가 절에 안들어가도록 힘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일본인 앞에서 조선인을 욕하며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천룡˝을 보면서 작가인 ˝다나카˝는 그의 모습을 조선의 대표적인 ‘인텔리‘로 보게된다. 결국 설득은 실패하고, 그는 자신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고 외치고 다니면서 약간은 미쳐버리게 된다.

[일본인을 만났을 때는 일종의 비굴함으로 조선인의 험담을 줄줄이 늘어놓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리하여 비로소 자신도 일본인과 동급이라고 믿는 그였다. 드디어 현룡은 불같은 열정으로 타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나는 이런 구제할 길 없는 민족성을 생각하면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네. 다나카, 이보게 자네, 내 기분을 알겠나?˝]  P.120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일본인 앞에서 굽신거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천룡˝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인텔리‘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



3.

세번째 작품인 <풀이 깊다>는 강원도 산골을 배경으로, 식민지의 이중언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 정책 중 하나인 ‘색의 장려(백색 옷의 착용 금지)‘를  위해 산민들에게 일본어로 연설하는 군수(주인공의 작은아버지), 그리고 이를 조선어로 통역하 는 코풀이 선생님(주인공의 중학교 은사)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프기만 하다.


이러한 어이없는 상황을 지켜보던 주인공 의대생 ˝박인식˝은 이후 흰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먹물을 뿌리는 폭력성을 목격하게 되고,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조국의 비통함을 체감한다. 이후 그는 화전민들의 치료와 야학을 위해 산으로 들어간다. 일본의 폭력성을 피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했던 화전민의 모습은 마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의 안타까움과 겹쳐보였다.

[방화는 쫓겨 들어가는 그들이 이 세상에 퍼붓는 일종의 저주일까? 군청에서는 자기 관할 내에서 만큼은 화전민들을 살게 할 수 없다며 사방에서 화전민을 쫓아내기만 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산속 깊이, 산속 깊이.]  P.175




일제강점기를 살아가야 했던, 그리고 ‘적의 언어‘인 일본어로 글을 썼던 작가 ˝김사량˝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 책의 해설에도 나와있지만 책을 읽고나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소설인 <문맹>이 떠올랐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때 일본에 저항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저항문학 이겠지만,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는 것 역시도 저항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아간 사람들에게 위로와 경의를 보내고 싶다.



Ps 1. 표제작인 <빛 속으로>는 정말 잘 쓰여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Ps 2. 이로써 녹색광선에서 출판한 여섯권의 책을 다 읽었다. 곧 일곱번째 책이 나온다고 하던데 그 책도 빨리 읽고싶다.

댓글(69)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그레이스 2022-01-07 19: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2-01-07 19:16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드려요 2022년도 잘 부탁드려요 ^^

thkang1001 2022-01-07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서재의 달인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새파랑 2022-01-07 19:16   좋아요 3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물감 2022-01-07 2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리뷰당선 축하해요 ^^

새파랑 2022-01-08 00:18   좋아요 1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1-07 2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새파랑 2022-01-08 00:18   좋아요 2 | URL
축하를 또 받네요~!!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2-01-07 2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적의 언어로 글을 쓴 크리스토프도.... 그렇군요.
정체성이라는 주제가 선명하네요.

새파랑 2022-01-08 00:20   좋아요 1 | URL
초란공님 이 책 좋아하실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독서 응원합니다~!!

러블리땡 2022-01-08 0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좋은 밤 되세요 ^^

새파랑 2022-01-08 00:20   좋아요 2 | URL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 러블리땡님 주말독서도 화이팅 입니다~!!

페넬로페 2022-01-08 00: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녹색광선 출판사 찐사랑의 보답같아요. 당연한 리뷰 당선입니다.
저도 하나씩 관심 가져 볼께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01-08 07:52   좋아요 4 | URL
또 감사합니다~!! 제가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합니다 ^^

희선 2022-01-08 00: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축하합니다 김사량 작가를 사랑할지도 모르겠네요 좋아하는 작가에서 한사람이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01-08 07:53   좋아요 2 | URL
ㅋ 사랑까지는 아니고 좋아하는 작가는 맞습니다~!! 희선님 주말 잘 보내세요 ^^

bookholic 2022-01-08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의 정성스러운 글은 이달의 당선작 첫손에 꼽을 만합니다.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01-10 06:03   좋아요 1 | URL
북홀릭님 감사합니다 ^^ 이번달에도 함께 열독 하시죠~!!

하나의책장 2022-01-10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에는 새파랑님이 빠질 순 없죠!
새파랑님, 축하드려요^^ 굿밤되세요♡

새파랑 2022-01-10 06:04   좋아요 1 | URL
하나님 감사합니다 ^^ 새벽에 봤네요 ㅋ 좋은 하루 보내세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