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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평점 :
˝사랑은 때때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사람을 상처 입힌 다음에야 끝난답니다.˝
막장 이야기도 그녀가 쓰면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 여기 ˝뤼도빅˝ 이라는 부잣집 아들이 있다. 그는 ˝마리로르˝라는 여성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 보다는 그의 재산을, 그의 배경을 보고 그와 결혼을 한다. 사랑없는 둘의 동행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어느날 ˝마리로르˝가 운전하던 스포츠카가 트럭과 추돌하게 되고, 보조석에 타고 있던 ˝뤼도빅˝은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그는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고 포기했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하지만 다소 멍한 모습이 남아있던 그는 정신치료를 계속 받게 되고, 이 모습을 바라보던 ˝마리로르˝는 그에게 남아있던 정마저 떨어지게 된다. 속으로는 돈많은 미망인을 꿈꾸었던 그녀는 남편이 퇴윈을 하지만 그를 냉대한다.
[뤼도빅이 집으로 돌아온 것은 마리로르에게 재난과도 같았다. 그녀는 사람들의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과부 역할은 해낼 수 있었지만, ‘멍청이의 아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마리로르는 그때까지 그녀가 지지해 온, 심지어는 막연하게 사랑해 온 그 청년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P.28
이러한 며느리의 사악함을 알게된 ˝뤼도빅˝의 아버지 ˝앙리˝는 며느리의 어머니이자 얼마전 미망인이 된 ˝파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파니˝는 딸 부부가 살고있는 ‘라 크레소나드‘로 오게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뤼도빅˝은 자신에게 차갑게만 대하던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진심어린 마음을 보여준 장모님 ˝파니˝에게 사랑을 느낀다. 게다가 ˝파니˝ 역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끌리는 마음을 멈출 수 없게 되고, 결국 사위인 ˝뤼도빅˝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지속될지 얼마나 진지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이리저리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분명한 감정은 행복하다는 것 뿐이었다.] P.236
[그 불가능한 상황, 그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욕망이야말로 그녀의 연애사에서 가장 관능적인 기억이 었다. 그 순간이 지나가자 그녀는 불쑥 중얼거렸다. ˝그는 미쳤고, 나는 음란해.˝] P.276
더 놀라운건 ˝뤼도빅˝의 아버지인 ˝앙리˝역시 사돈인 ˝파니˝에게 마음을 뺏겨 그녀와의 사랑을 꿈꾼다. 과연 이 미친 사랑의 끝은 어떻게 될까?
[전혀 현실적인 근거가 없었음에도 욕망이 그런 느낌을 들게 했고, 질투가 그것을 부채질했다.] P.151
사위와 장모님의 사랑, 게다가 아버지와 아들이 연적이라니 이건 막장중의 막장이다. 그럼에도 거부감이 들거나 어색하지 않다. 저속하지도 않다. 오히려 낭만적이고 두 사람의 감정 변화가 공감이 된다. 이게 작가의 필력이고 사강의 아우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아름다운 눈길을 증오의 시선으로 맞받아 탁하고 혼란스럽게 바꿔 놓기 위해서는 그 순간 그녀가 정말이지 그를 증오해야만 가능했다. 그를 정말로 증오하지 않고서는 그녀 자신의 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직시하기 어려웠다.] P.277
미완성 작품이다보니 이야기는 다소 절정의 순간에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마무리가 작품에 여운을 더해주고, 독자 나름의 결말을 상상하게 된다. 또한 사강의 섬세한 감정선과 사랑에 대한 그녀의 냉철한 관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하는 작품이다. 특히 재미 측면에서는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 중 최고였다.
Ps. 내가 읽은 사강의 책들을 찾아보니 총 다섯 작품이었다. 목록을 보니 안좋았던 작품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