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케는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의 흐름이 거기서 뚝 멈추고 자신도 오요네도 순식간에 화석이 되어버렸다면 차라리 괴롭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멈췄어야 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랬더라면 지금 겪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주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둘이 사랑한다면 그걸로 된거지‘라고 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움이 남아있지는 않을까?나쓰메 소세키의 전기 연애 3부작의 마지막 <문>은 모든 사람들은 들어갈 수 있지만 자신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문 밖에서 계속 서성이면서 살아가야 하는, 어쩔수 없이 서로에게만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자신은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지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가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저히 원래의 길로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문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문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아래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P.277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한다고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 그 사랑이 타인에게 아픔을 주었다면 그 아픔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고통으로 이어진다면 너무 가혹한게 아닐까?˝소스케˝와 ˝오요네˝ 부부는 누구어게도 환영받지 못한 사랑을 하게되어 친구를 배신하게 되고, 부모에게 버림받게 되며, 대학도 졸업히지 못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채 가난하게 살아가야 했다. 다행히 두 부부의 사랑은 열정적인지는 않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있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지만, 서로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그들의 사랑과 소소한 행복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소스케와 오요네의 일생을 어둡게 채색한 관계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흐릿하게 해 자신들이 어딘가 유령 같다는 생각을 품게 했다. 그들은 마음속 어느 부분에 남에게 보이지 않는 무서운 결핵성 균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는 얼굴로 서로를 대해왔다.] P.223초반부의 다소 느린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감춰져 있는 부부만의 은밀한 비밀이 점점 드러날수록 작품에 대한 몰입도는 커졌다. 다만 후반부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많이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진행 없이는 후반부에 나오는 ˝소스케˝의 감정이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는 되었다.˝소스케˝와 ˝오요네˝ 부부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잘 극복하여 다시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다시 겨울이 찾아 오더라도 두 사람의 힘으로 이를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정말 다행이에요. 드디어 봄이 돼서˝ 하며 눈썹을 환하게 폈다. 소스케는 툇마루로 나가 길게 자란 손톱을 자르면서, ˝응,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인 채 가위를 움직였다.] P.284전기 3부작에 대해 주관적인 평가를 해보자면 ‘산시로‘ >= ‘그 후‘ > ‘문‘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크게 우열이 있는건 아니고 100점과 99점 수준 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렇게 차분하면서도 깊이있게 묘사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소세키 작품으로 <행인> 을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