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스케는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의 흐름이 거기서 뚝 멈추고 자신도 오요네도 순식간에 화석이 되어버렸다면 차라리 괴롭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


돌이켜보면 그때 멈췄어야 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랬더라면 지금 겪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주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둘이 사랑한다면 그걸로 된거지‘라고 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움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나쓰메 소세키의 전기 연애 3부작의 마지막 <문>은 모든 사람들은 들어갈 수 있지만 자신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문 밖에서 계속 서성이면서 살아가야 하는, 어쩔수 없이 서로에게만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자신은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지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가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저히 원래의 길로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문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문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아래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P.277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한다고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 그 사랑이 타인에게 아픔을 주었다면 그 아픔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고통으로 이어진다면 너무 가혹한게 아닐까?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는 누구어게도 환영받지 못한 사랑을 하게되어 친구를 배신하게 되고, 부모에게 버림받게 되며, 대학도 졸업히지 못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채 가난하게 살아가야 했다. 다행히 두 부부의 사랑은 열정적인지는 않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있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지만, 서로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그들의 사랑과 소소한 행복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소스케와 오요네의 일생을 어둡게 채색한 관계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흐릿하게 해 자신들이 어딘가 유령 같다는 생각을 품게 했다. 그들은 마음속 어느 부분에 남에게 보이지 않는 무서운 결핵성 균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는 얼굴로 서로를 대해왔다.]  P.223



초반부의 다소 느린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감춰져 있는 부부만의 은밀한 비밀이 점점 드러날수록 작품에 대한 몰입도는 커졌다. 다만 후반부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많이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진행 없이는 후반부에 나오는 ˝소스케˝의 감정이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는 되었다.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잘 극복하여 다시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다시 겨울이 찾아 오더라도 두 사람의 힘으로 이를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정말 다행이에요. 드디어 봄이 돼서˝ 하며 눈썹을 환하게 폈다. 소스케는 툇마루로 나가 길게 자란 손톱을 자르면서, ˝응,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인 채 가위를 움직였다.]  P.284



전기 3부작에 대해 주관적인 평가를 해보자면 ‘산시로‘ >= ‘그 후‘ > ‘문‘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크게 우열이 있는건 아니고 100점과 99점 수준 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렇게 차분하면서도 깊이있게 묘사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소세키 작품으로 <행인> 을 읽어봐야 겠다.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10-11 20: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등! ^ㅅ^

새파랑 2021-10-11 20:34   좋아요 3 | URL
😊 생각보다 이 책을 오래 읽었어요 ㅎㅎ

scott 2021-10-12 01:31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마지막
노래 선곡이 빠졌습니돠!

소세키옹의 [문 ]테마곡은 ?

새파랑 2021-10-12 07:05   좋아요 2 | URL
앗 ㅋ 어울리는 노래를 찾기가 힘드네요 ㅜㅜ 근데 책을 읽으면서 say you love me 를 배경음악으로 해서 읽었어요 😅

서니데이 2021-10-11 20: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여기서도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의 책이.^^
새파랑님, 오늘 대체휴일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새파랑 2021-10-11 20:59   좋아요 5 | URL
휴일인데 평일같은 느낌이었어요 ㅋ 서니데이님 내일부터는 다시 평일 일상으로 ^^

바람돌이 2021-10-11 21: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부부의 문제가 뭐였기에 평생 문밖에서 살아야 했는지 궁금증이 무럭 무럭.... 이건 정말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

새파랑 2021-10-11 21:23   좋아요 5 | URL
자세한건 책 속에? ㅎㅎ 문제가 좀 있긴 있었습니다. 서로가 말을 할 수 없는 문제? 저도 책을 읽다보니까 알게 되었어요 ^^ 나름 반전? 😆

mini74 2021-10-11 21: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문 밖에서의 삶은 참 외롭고 쓸쓸할 것 같아요 봄에도 곧 겨울 올 것임을 이야기는 주인공 대사가 ㅠㅠ 저도 소세키 시작하고 싶은데 ㅎㅎ 오늘은 똘이랑 뒹굴뒹굴하고 있어요. 새파랑님 편한 저녁보내세요 ~~

새파랑 2021-10-11 21:24   좋아요 4 | URL
미니님은 애린왕자도 끝내셨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곧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페넬로페 2021-10-11 22: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리뷰 쓰셨네요^^
저도 준비중입니다 ㅎㅎ
저는 문>산시로>그 후 순으로 점수 매겼어요~~
사연이 있지만 소스케와 오요네의 사랑이 넘 좋았어요^^
그들이 이제 용기내어 문 밖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새파랑 2021-10-11 22:11   좋아요 5 | URL
어떤 사연인지 궁금한데요? ^^ 저는 셋다 좋았는데 순서를 매기자면 저랬어요 ㅎㅎ 소스케와 오요네의 사랑 이야기가 자세히 나왔더라면 좋았을텐데, 왠지 많이 생략 된 것도 여운이 남아서 좋더라구요. 오요네 입장에서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더라구요 😄

막시무스 2021-10-11 22: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부부의 사랑이 만든 그 문이 대체 어떤 문이길래 부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건지 궁금해지는데요!ㅎ 즐건 한주되십시요!

새파랑 2021-10-11 23:11   좋아요 3 | URL
그걸 설명하면 스포라는? ㅎㅎ 제가 막시무스님을 궁금하게 했다니 성공이군요~!! 어쩔수 없다지만 좀 아쉽더라구요 ㅜㅜ 그땐 그럴수밬에 없었던건지~~ 내일 평일도 활기차게 시작하세요~!!

행복한책읽기 2021-10-12 0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정 5G 독서가. 진정 이 기차에 올라타고픕니다. 저는 읽으면서 차암 일본 부부 같다, 또 그런 생각을 했다는. 울 드라마와 넘 비교돼서 말이죠.^^;;

scott 2021-10-12 01:31   좋아요 3 | URL
근데 소세키옹 실제로 형수한테 맘 품고 이런 작품 쓴 거 같은 ㅎㅎㅎ

송태욱 번역가는 시간이 흐를 수록 [문]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

새파랑 2021-10-12 07:02   좋아요 3 | URL
이번 연휴에는 그렇게 많이 못읽었어요 😅 일본 특유의 조용한 가족 느낌이 들어요 ㅋ 그러면서도 저렇게 애정이 있는걸 보면 말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 같아요~!

번역가가 가장 좋았다고 하시니 다시 읽어봐야 할까요? ㅎㅎ

희선 2021-10-12 0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전기 삼부작 사이에는 연애가 들어가는군요 그건 몰랐습니다 《문》은 참 조용한 소설이었던 것 같네요 소세키 소설은 거의 그렇기는 하군요 예전에 제가 쓴 걸 보니 《그 후》에 나온 것과 비슷한 장면이 여기에도 나오는군요 그걸 쓰기도 했네요 두 사람만 있다면 힘들지 몰라도 아주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새파랑 2021-10-12 07:08   좋아요 3 | URL
저도 어디에서 본게 전기 3부작이 연애 3부작 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후>가 현재의 선택을 통한 미래의 고난이 예고된다면, <문>은 과거의 선택에 의한 현재의 고난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더라구요.

coolcat329 2021-10-12 06: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전기3부작은 다 사랑이야기군요. 부부의 비밀 어디서 우연히 읽고 알았던거 같은데 또 까먹었네요 ㅋ 다행다행 😌

새파랑 2021-10-12 07:09   좋아요 2 | URL
책을 읽으신다면 아마 생각나실 겁니다. 전 아예 모르고 읽어서 혹시 남편의 동생하고 바람나는 건가? 의심하면서 읽었어요 ㅋㅋ

초딩 2021-10-12 0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관계된 두 사람만 충분하다면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인데
누군가 한 명이 문 넘어를 보게 될 때 비극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
행인도 기대합니다~

새파랑 2021-10-12 08:39   좋아요 2 | URL
이 책을 보면 두 사람의 마음만 가지고도 안되는게 있는것 같더라구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연관되고 과거가 계속 발목을 잡고. 그래서 서로에게 말하지 못하는 사연들도 있고. 왠지 열린 결말이라 좋았어요 ^^

그레이스 2021-10-12 2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또 겨울이 오겠지 하는 소스케의 말에 오요네는 또 상처입고...
소스케는 오요네와의 선택때문에 불행한게 아니라 자아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가라타니 고진이 햄릿에 비유하면서, 햄릿이 불행한것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온것이라고...
그래서 분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새파랑 2021-10-12 23:13   좋아요 2 | URL
그런 내부의 자아 때문에 힘든 것은 소스케의 성향탓도 있겠죠? 좀 대담하게 살 필요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

그레이스 2021-10-12 23:14   좋아요 2 | URL
맘대로 되면 성격검사 같은게 나오질 않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