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짱이 없었던 걸까? 너무 늦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나빴던 걸까? 혹시 처음부터 이룰 수 없었던 꿈이었던 걸까?


대학생이 되어 고향을 떠난다는건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라 불리기에는 아직은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건 아마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지 않았으니 짐작할 수가 없다. 과감하게 좀 더 가봤다면 좋았을걸, 하지만 두렵다. 헤어질 때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라고 했을 때는 정말 놀랐다. 23년의 약점이 한꺼번에 드러난 듯한 심정이었다. 부모라도 그렇게 정곡을찌르지는 못할 것이다.]  P.25



산시로에게 도쿄는 처음이었고, 대학교도 처음이었고, 수업도 처음이었고, 특히 사랑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첫눈에 호감을 느낀 여성 ˝미네코˝는 한없이 높아보였고, 학식이 높은 교수이자 연적으로 생각한 ˝노노미야˝는 ˝산시로˝보다 한발짝 앞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산시로는 멍하니 있었다. 곧 조그만 목소리로 ˝모순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의 분위기와 저 여자가 모순인지, 저 색채와 저 눈빛이 모순인지, 저 여자를 보고 기차에서 만난 여자를 떠올린 게 모순인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자신의 방침이 두 갈래로 모순되어 있는 건지, 또는 굉장히 기쁜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모순인지.. 시골 출신의 청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왠지 모순된 것만 같았다.]  P.46



도쿄에 살게 된 ˝산시로˝에게는 세 가지의 세계가 생겼다. 첫번째 세계는 그가 멀리 떠나온 고향의 세계, 두번째 세계는 그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의 세계, 마지막 세번째 세계는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 세계다. 하지만 하늘처럼 높아서 고개를 들고 바라만 봐야 했던 세번째 세계에 ˝산시로˝는 안착할 수는 없었을까?

[세 번째 세계는 봄처럼 찬연히 흔들리고 있다. 전등이 있다. 은수저가 있다. 환성이 있다.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거품이 이는 샴페인 잔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중 으뜸가는 것으로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 산시로에게는 이 세계가 가장 의미심장한 세계다. 이 세계는 바로 코앞에 있다. 다만 다가가기가 힘들다.]  P.107



˝산시로˝는 결코 배짱이 없지 않았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서 ˝미네코˝를 만나려고 했고 그녀와 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했으며, 약간의 망설임이 있긴 했지만 상상만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아직 러브의 경험이 없었지만  그녀가 ˝산시로˝에게 보여주는 태도와 말들을 통해 그녀 역시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느끼고 과감하게 그의 마음을 그녀에게 전한다.

--‐------‐--------
˝오늘은 하라구치 씨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아니요, 볼일은 없었습니다. ˝

˝그럼 그냥 놀러 온 건가요?˝

˝아니요, 놀러 온 건 아닙니다.˝

˝그럼 왜 온 건데요?˝

산시로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당신을 만나러 온 겁니다.˝ 
--‐------‐--------  P.284



하지만 그의 고백이 늦었던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의 고백과는 상관없이 ˝미네코˝가 ˝산시로˝에게 느낀 감정은 단순한 연민이었던 걸까? <Pity‘s akin to love>, 연민은 사랑에 가깝지만, 결코 사랑은 아닌 것이다.


결국 ˝산시로˝는 그녀가 이야기 했던 Stray sheep,  미아가 되어 버리고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그렇게 갑자기 ˝산시로˝에 대한 마음을 접고 한순간 떠나버린 ˝미네코˝는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의 자조적인 말처럼 자신을 정말 죄인이라 생각했을까?

--‐------‐--------
˝어떤가, <숲 속의 여인>은?˝

˝<숲 속의 여인>이라는 제목이 안 좋네.˝

˝그럼, 뭐라고 하면 좋겠나?˝

산시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속으로,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이라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  P.335



한편의 멋진 연애소설이자 성장소설인 ˝산시로˝는 문장속에 숨겨져 있는 여백이 많은걸 생각하게 하고, 예측하지 못한 결말과 함께 강한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를 보여준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소세키˝의 내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


이 책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소세키˝의 여섯 작품을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산시로>가 가장 좋은 것 같다.

다음 책으로는 전기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문>을 읽고, 그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완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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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08 20: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고딩때 야자 끝나고 친구랑 이어폰 하나씩 나눠 끼고 걸으며 듣던 음악이에요. 이 음악이 떠오르는 책이라니 무지 기대가 됩니다 ~~

새파랑 2021-10-08 21:06   좋아요 6 | URL
전 초딩때~!! 정확히 매칭되는건 아니지만 그냥 떠올랐습니다. 바보같은 산시로 안타까워요 ㅜㅜ

scott 2021-10-08 21: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하루키옹의 스푸트닉 연인들이 떠오르네요 ^^

새파랑 2021-10-08 21:08   좋아요 6 | URL
와 스푸트니크 연인들~! 왠지 전반적인 느낌이 비슷한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1-10-08 21: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글로 산시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그와 미네코에 대해서도요. 이 소설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젊은 시절의 나도 돌아볼 수 있었고요^^
오랜만에 새파랑님 리뷰에 읽은 책에 대해 쓸 수 있어 좋네요 ㅎㅎ

새파랑 2021-10-08 21:32   좋아요 6 | URL
최근에 페넬로페님이 리뷰를 너무 완벽하게 쓰셔서 전 간단히 제가 좋아하는 부분만 썼어요. 사랑 이야기 말고 다른것도 많이 들어있는데 ^^ 이 책 너무 좋네요~!!

청아 2021-10-08 22:0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가장 좋았다고 언급도 하셨지만 노래까지 곁들여 주신것 보니 무척 좋으셨나봐요ㅎㅎ🤭
게다가 이승환의<너를 향한 마음>이라니! 꼭꼭 읽어봐야겠어요(거의 매일하는 약속 이지만 진심🤦‍♀️)저 페넬로페님께 독서슬럼프 전염되었나봐요.책도 따라 읽고 슬럼프도 따라하기😅ㅎㅎ

새파랑 2021-10-08 22:25   좋아요 6 | URL
미미님에게도 슬럼프가 있으시다니 왠지 인간(?)처럼 느껴져서 더 좋은것 같아요 😄
저는 미미님 보관함 따라 하는중인데 ㅎㅎ 이 책 두꺼워 보이는데 잘 읽혀서 금방 읽어요. 강추합니다~!! 저 이승환 1집, 2집 완전 좋아해요 ^^

행복한책읽기 2021-10-08 2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젠 소세키까지 거의 섭렵. 와. 진짜 범접 불가 독서력. 정녕 닮고 싶어요.^^ 읽으면서 딱 일본풍이라고 느껴졌어요. 신기도 하죠.^^;;

새파랑 2021-10-08 23:51   좋아요 1 | URL
아직 소세키 작품은 많이 못읽었는데😅
신기하게 나라마다 그 분위기가 있는거 같아요. 일본이랑 러시이는 그게 확 느껴지더라구요~

그레이스 2021-10-09 0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
전작읽기 함께 하시겠네요
저 지금 <문>리뷰 올리고 와서 이 글 읽고 있어요.
저도 산시로가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이예요
회화적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새파랑 2021-10-09 08:15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과 페넬로페님 따라서 소세키 전작 읽기 동참 입니다 ^^
전 특히 산시로라는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그레이스 2021-10-09 08:17   좋아요 2 | URL
환영합니다~~~

독서괭 2021-10-09 0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새파랑님도 소세키 마니아시군요. 여섯권! 이제 여섯 권 더 읽으시면 완독인가요? 화이팅입니다^^

새파랑 2021-10-09 08:18   좋아요 1 | URL
제가 현암사 책 뒤에 보니까 소세키 장편은 총 14편 이더라구요~ 이제 여덟권 더? 읽고싶은 책은 점점 많아지는데 시간은 없고 😅

2021-10-09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9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10-09 0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보신 《산시로》가 가장 좋으셨군요 그런 걸 만나서 좋았겠습니다 친구도 그렇지만 좋아하는 사람 마음을 잡는 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새파랑 님 오늘 한글날이고 주말이네요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1-10-09 08:26   좋아요 2 | URL
마음을 아는것도 어렵고 잡는것도 어려운 것 같아요. 책을 보면 주인공의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상대방의 행동은 의문 투성이 입니다 ㅎㅎ 해피앤딩이 아니어서 더 좋았던 작품 😊

bookholic 2021-10-09 09: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봐야겠어요.. 읽은 책과 어울리는 노래 한 곡..^^

새파랑 2021-10-09 11:42   좋아요 1 | URL
이제 첫 문장, 끝 문장에 어울리는 노래까지 볼 수 있겠군요 ^^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