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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무대위의 배우만 연극을 하는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하나의 무대일 수도 있고,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항상 솔직하게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자주 연극을 해야 하고, 그렇게 보면 우리 모두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솔직하게 자신의 본 모습만을 그대로 드러내고 살아갈 수는 없다.
˝필립 로스˝ 작품 <전락>의 주인공 ˝액슬러˝는 ‘죽고 싶어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어하는 남자‘로 노년의 연극배우 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연기하는 방법을 잃어버렸고, 치료를 위해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더이상 그를 돌봐줄 수 없었던 아내 ˝빅토리아˝는 그를 떠나고, 그는 정신병원에서 ˝시블˝이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시블˝은 그녀의 남편이 어린 딸에게 성추행 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게 일종의 연기, 아주 엉터리인 연기처럼 보였다. 무너져내리는 인물을 연기할 때 거기엔 체계와 질서가 있다. 그러나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지켜보는 건, 자신의 종말을 연기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일이다.] P.14
˝액슬러˝는 ˝시블˝의 고통에 찬 대화를 귀기울여서 듣게 되고,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며, 자신의 남편을 죽여달라는 그녀의 요구에도 이해심을 보여준다 물론, 청부살인을 수락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한사람은 정신병원에 자진해서 입원을 했고, 또 한사람은 자살을 시도했다. 과연 그 둘은 앞으로 자신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이후 정신병원을 나온 ˝액슬러˝는 그의 절친한 친구의 딸인 ˝페긴˝과 연인이 된다. ˝엑슬러˝는 65살, ˝페긴˝은 40살, 사랑에 있어서 나이차이가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액슬러˝는 쿨하게 받아들인 반면 ˝페긴˝은 자신의 부모에게 둘 사이를 비밀로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부모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둘 사이는 부모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페긴˝의 성적 취향 때문에 둘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동성애자 였던 ˝페긴˝은 ˝액슬러˝를 만나고 난 후 이성애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의 성적 취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와 해어지게 된다. 어떻게든 ˝페긴˝과 함께하려고 그녀의 성적 취향을 맞춰주기 위해 연극했던 ˝액슬러˝는 결국 버림받게 되고 극심한 충격에 빠진다.
노년의 나이에 그에게 찾아왔던 자극적인 사랑은 결국 비참하게 끝나고, 그는 연극에서도 삶에서도 깊은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그는 하루종일,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주저앉아 산탄총의 방어쇠를 당길 순간만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 상황이 바뀌면, 액슬러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 관계를 끝내버릴 수 있는 더 강한 위치에 올라서고 나는 너무 우유부단해서 이 관계를 지금 끊어버리지 못한 탓에 힘없는 위치로 떨어지겠지. 그리고 그녀가 강해지고 내가 약해졌을 때 가해질 타격을 나는 견뎌내지 못하겠지. ] P.73
이후 그는 자살을 시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시블˝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남편을 살해하여 고통을 벗어나게된 사건을 떠올리게 되고,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중얼거린다.
마침내 연극에서 자살을 연기하는 것과 실제 삶에서 자살을 연기하는 것이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는 연극과도 같았던 자신의 인생을 자살로 끝내게 된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의 마지막 대사를 유서로 남겨놓고 말이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단지 연극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맥베스를 어떻게 연기할지 답을 찾지 못했던 때만큼이나 알 수 없었다. 스물다섯 살 어린 연인에게 버림받은 늙은 연인 역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지? 캐럴이 수화기를 들고 있는 동안 방아쇠를 당겨 자신의 머리통을 날려버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거야말로 이 배역을 연기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P.146
[사건의 진상은 콘스탄틴 가브릴로비치가 총으로 쏘았다는 것이다.] P.150
얼마전에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전락>과 제목은 같았지만, 전혀 다른 작품이었던 ˝필립 로스˝의 <전락>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직업으로서의 연극이든, 인생으로서의 연극이든,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어떻게든 수행한 연극배우의 마지막 열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제목 그대로 삶과 사랑에 실패한 연극배우의 전락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이야기 자체는 매우 자극적이고 흥미로웠지만 뭔가 내가 이해를 못한 기분이 든다. ˝필립 로스˝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