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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ㅣ 창비세계문학 16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이한정 옮김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일기란 오늘 하루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자신의 마음을 글로 옮겨 쓴 당신만의 작품이다.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나만이 읽는다는 것이며, 그래서 일기는 진실하게 쓰일 수 밖에 없다. 나만이 읽는데 거짓으로 쓸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만약 내 일기를 누가 본다는걸 안다면, 또는 누가 봐주기를 원한다면 일기에 쓰이는 게 모두 진실일 수 있을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열쇠>는 누군가에게 읽혀지길 원하는 일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기에 쓰이는 소재는 성욕, 불륜 등 성생활의 투쟁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은 6개월 동안 남편과 아내의 일기가 교차로 쓰여지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따라서 이 책은 일기를 쓴 사람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므로, 일기를 쓴 사람이 바라본 타인의 생각과 행동은 주관적(추측) 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일기 자체를 상대방이 본다는 가정하에 썼기 때문에 자신이 쓴 내용 또한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등장인물은 남편, 아내(이꾸꼬), 딸(토시꼬), 키무라(딸의 남자친구) 등 네명이다.
등장인물을 소개해 보자면,
<남편> / 일기 쓰는 사람
56세. 전직 대학교수 사료, 아내에 대한 관음증이 있으며, 고혈압 환자다. 1월1일을 기점으로 그의 성생활과 아내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일기에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일기를 아내가 훔쳐본다고 생각한다. 고령의 나이 때문에 성생활에 신체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지만, 성욕은 오히려 점점 왕성해 진다. 반면 아내가 자신의 성행위에 만족하지 못함을 알고 있고 아내에게 미안함을 가지면서도 다소 소극적인 아내에게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딸의 남자친구인 ˝키무라˝가 등장하고, 아내의 행동에서 아내가 ˝키무라˝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그는 의도적으로 아내와 ˝키무라˝가 가까워지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질투심을 극대화 하고, 이것이 아내와의 성관계에서 극적인 영향을 주기를 희망한다. 그러면서도 아내와 ˝키무라˝가 어느 선까지 갔는지 몰라 초조해 한다.
<아내(이꾸꼬)> / 일기 쓰는 사람
45세. 딸보다도 매력적인 여성으로,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끈기고, 이러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가끔씩 각혈도 한다. 남편과의 성생활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지식한 부모님 밑에서 교육맡은 그녀는 이를 결코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만 담아 둔다.
그러던 어느날 딸이 남지친구인 ˝키무라˝를 만나게 되고, 그와 자주 만날수록 그에게 빠져들게 되고, 집 밖에서 그와 단둘이서의 밀회를 즐기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남편이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키무라˝와의 만남이 남편과의 성관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남편은˝ 그녀와 ˝키무라˝의 밀회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남편과의 성관계, ˝키무라˝와의 밀회를 일기에 쓰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의 일기를 정말 읽었을까? 그리고 아내가 쓴 일기의 내용은 사실일까?
<딸(토시꼬)> / 일기 안씀, 모호한 제3자
자신의 남자친구와 엄마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남자친구와 엄마가 만나는 상황을 일부러 연출해 주고 오히려 밀회 장소를 추천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숨기지 않는다. 왜 그럴까? 딸에게도 뭔가 삐둘어진 성욕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결코 다정하게 대하지 않고, 오히려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키무라> / 일기 안씀, 모호한 제3자
딸의 남자친구이지만 오히려 그녀의 엄마에게 성욕을 보이는 인물. 남편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소개해주고 남편의 삐뚤어진 욕망(부인의 나체사진 촬영)을 부추기며, 이후 ˝키무라˝는 남편이 필름사진으로 찍은 부인의 나체사진을 남편의 부탁으로 인화하기도 한다.
이후 방학을 맞이한 ˝키무라˝는 매일 오후 자신의 여자친구인 ˝토시꼬˝가 아닌 그녀의 엄마인 ˝아내(이꼬꾸)˝를 만나 밀회를 즐기고 점점 그녀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켜주면서 ˝이꼬꾸˝의 감정을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꼬꾸˝는 ‘정조(?)‘를 지킨다고 한다. 과연 이건 사실일까?
(쓰고 보니 무슨 막장 드라마 같다)
이런 각 인물들 간의 특징 속에서 부부간의 성관계는 점점 쾌락에 빠지게 되고, 이와 동시에 ˝키무라˝에 대한 ˝아내(이꼬꾸)˝의 감정도 극에 달하게 된다. 이 미친 관계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시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훔쳐보는 스릴과 반전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해 어디까지 진실일 수 있는지, 속마음을 터놓는 것은 가족에게도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매운맛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생각보다 맵지는 않고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