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도스토예프스키(이하 도선생님)의 ‘노름꾼‘을 읽었다. 내가 읽은 도선생님의 아홉번째 작품. 일단 제목부터 엄청난 흥미가 느껴진다. 이런 주제에, 도선생님의 글이면 재미없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도박을 해보면 알겠지만(친구랑 가족끼리 ㅎㅎ) 이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명절이나 여행가서 점당 100원 짜리 고스톱을 치다보면 밤새는건 일도 아니지 않은가. 특히 기술이 필요없는 확률에 의해서만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라면 누구나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승리의 기쁨을 몇번 맛보다 보면 중독되기 쉽다. 이러한 대표적인 도박이 바로 ‘룰렛‘, 우리가 흔히 아는 ‘카지노‘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도박이 바로 ‘룰렛‘이다. 도선생님은 27일만에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도선생님은 아내와 별거기간 중 여대생인 ˝아뽈리나리야˝를 알게 되고, 도도한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둘은 파리로 여행을 같이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도선생님은 지속적으로 구애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도선생님과의 밀당을 즐기면서 석달동안 동반여행을 한다. 이러한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면서, 여행 도중 문제의 도박인 ‘룰렛‘에 빠지게 되고, 그는 가진 돈을 모두 잃게 되고, 애매했던 그녀와의 관계도 끝이 나게 된다.
이러한 도선생님의 그때의 경험과 감정이 거의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소설이 바로 ‘노름꾼‘이다. (소설의 여주인공의 이름은 심지어 ˝뽈리나˝이다.)
‘룰레텐부르크‘ 지역을 주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알렉세이˝는 러시아의 퇴역한 장군인 ˝자고랸스끼˝의 가정교사이며, 여주인공인 ˝뽈리나˝는 장군의 양녀이다.
주인공은 그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지만, 그녀는 주인공에게 항상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그를 이용하며, 그녀는 프랑스인 후작 ˝드 그리외˝와 영국인 ˝미스터 에이슬리˝와 같은 외국인의 구애를 받는데, 이 세명과 기이하고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녀한테 나는 노예일 뿐이고, 또 그녀의 눈에는 내가 너무도 하찮게 보이기 때문에 그녀는 나의 무례한 호기심에 화를 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설사 그녀가 질문을 허락한다 하더라도 그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때는 묻는 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때도 있다. 우리들의 관계는 정말 그렇다」ㅡ36페이지
장군은 ˝드 그리외˝에게 빌린 돈을 갚고 프랑스 여성인 ˝블랑슈˝와 결혼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있는 75세의 할머니인 ˝바실리예브나˝의 유산 상속을 기다리는데, 주구장창 모스크바에 전보를 보내 할머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한다.
「이것 봐, 이 사람이 날 몰라본단 말이야! 날 땅속에 묻어 버렸다니까! 죽었나 안죽었나 쉴 새 없이 전보를 보냈지? 난 다 알고 있어! 하지만 자 봐, 난 건강해」ㅡ107페이지
이에 열받은 할머니는 ‘룰레텐부르크‘로 오고, 이곳에서 ‘룰렛‘에 빠져 엄청난 금액을 잃게 된다. 이에 유산금액이 줄어드는 걸 걱정하는 장군은 할머니가 도박을 못하게 설득하지만, 이미 열받은 할머니는 장군에게 유산을 한푼도 안주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프랑스인 ˝드 그리외˝는 ˝뽈리나˝에 대한 사랑을 접게 되고, ˝블랑슈˝는 장군을 떠난다.
반면 주인공인 ˝알렉세이˝는 ˝뽈리나˝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룰렛‘을 하게 되고, 거금을 따게 된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딴 돈을 모두 그녀에게 주지만,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그를 떠나 영국인 ˝에이슬리˝에게 가게 된다.
˝뽈리나˝와 사랑에 실패한 ˝알렉세이˝는 이후 ˝블랑슈˝의 애인이 되어 프랑스로 떠나기도 하지만, 예전과 같은 열정적이고 진실된 사랑을 할 수 없게 되고,
또한 엄청난 거금을 따본 경험 때문에 이후 돈에 대한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도박에 대한 짜릿함을 잊지 못하고 도박판을 전전하면 살아간다.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도박의 감정과 사랑의 감정은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점, 실패의 후유증이 대단히 크다는 점, 그리고 실패의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예리하게 묘사한 도선생님은 진짜 천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한 이 책의 내면에는 주인공인 ˝알렉세이˝와 장군과 같이,
욕심이 많고, 낭비벽이 심하며,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광분하는 ‘러시아인‘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 도선생님이 생각하는 ‘러시아인‘의 문제, 그리고 각 나라별 민족의 나쁜 특성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어 읽으면서 자주 웃게 된다.
(특히 독일, 프랑스, 폴란드인에 대한 표현은 왠지 공감이 된다~)
도선생님의 작품 중 가장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도박‘과 ‘사랑‘은 위험하다고 말해주는 가장 교훈적인 작품이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