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으로 본 세계사 - 판사의 눈으로 가려 뽑은 울림 있는 판결
박형남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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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본 세계사> - 박형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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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하여 많이 알지는 못해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수능의 사회탐구 선택과목으로 ‘세계사’를 치뤘고, 2등급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의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세계사’의 내용은 별로 없다. 공부할 땐 그래도 재밌게 공부했던 기억이 나는데, 무엇을 공부했는지 막상 남아있는 게 별로 없달까. 그래서인지 세계의 다양한 역사를 다룬 책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은 한 유튜버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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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박형남’ 판사님은 역사에 굵직한 획을 하나 그었다고 생각되는 세계의 역대 재판 15개를 선별하여 내용을 책에 담으셨다. 이런 책들은 보통 목차를 중요시하는 편인데, 평소 많이 궁금해하고 흥미롭게 생각했던 주제가 눈에 띄었다. [세일럼의 마녀재판], [아이히만 재판]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재판들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모두 다루기에는 글의 분량이 한없이 많아질 것이 뻔히 예상되므로 간단히 이 두 재판에 대해서만 감상(?)을 남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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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마녀 재판]

‘생사람에게 엉뚱한 누명 씌우기’, 좀 더 엄밀하게는 ‘한 집단에서 분노나 공포를 조장하는 선동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개인이나 소수자 집단을 탄압하는 집단 히스테리’로 정의되는 '마녀 재판'은 중세 유럽에서 너무도 심하게 성행했다. 이 시기의 유럽은 청교도 공동체가 농경사회에서 상업사회로 변해가는 과도기에 있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정치, 사회적으로 갈등이 깊어져 갔다. 이때 일부 여성들은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거나 상업에 종사하며 부를 축적하였는데, 이들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졌고, 그들의 부와 영향력 등에 위협을 느낀 교회 등의 세력이 이들을 마녀로 몰고 갔던 것이다. ‘마녀 재판’의 역사적 배경이 많이 궁금했었는데, 알고나니 너무도 어이없고 말도 안되는 이유에 허탈하고 화가 났다.

🗣 마녀를 고발한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데 종교적 신심이 없는 사람들이 잘살고 마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에 불만을 품다가, 이들이 마녀라는 목사의 말만 믿고 청교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악마로 지목했을 것이다. (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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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 재판]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에 앞장서서 활약했던 나치당 소속 군인이었다. 아이히만은 독일의 패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하여 15년을 살다가 결국 붙잡혀 다른 전범들보다 한참을 뒤쳐진 1961년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주요 나치 전범 등이 뉘른베르크 재판 등에서 처단되었지만 전쟁 직후였던 점과 패전국인 독일에서 재판이 이루어졌던 점 등 여러 이유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아이히만 재판은 전쟁이 끝난 지 15년 후 객관적인 사각과 증거에 따라 진행되면서, 유대인 대학살의 실상 등이 전세계에 속속들이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역사에서 잊혀지고 싶었던 아이히만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나치의 만행을 세계에 널리 퍼뜨려주었다는 점에서 희한하면서도 신기했다.

🗣 아이히만은 증인석에 앉아서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전범들의 주장과 같았다. (중략) 한 민족에게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는 개별적으로 개인에 대한 범죄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무겁게 처벌되어야 한다고 판시하며 사형을 선고했다.(353-3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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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이 두 재판 말고도 흥미로운 재판들이 많다. 실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소크라테스 재판], 범죄 영화와 드라마에서 한번쯤은 본 ‘미란다 원칙’의 기원이 되는 [미란다 재판] 등에 대한 내용을 이 글에 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꾸준히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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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말들의 흐름 1
정은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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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 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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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카페인 분해 능력을 갖추지 못하여 과도한 커피(한 잔 초과)를 섭취하게 되면 그날의 숙면은 글렀다고 봐야하지만, 그럼에도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책과 함께 즐기는 캡슐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오전 아홉 시쯤 독서실로 출근하여 챙기는 컴포즈 커피의 대용량 아메리카노 한 잔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캡슐커피 한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 느껴지는 씁쓸한 상쾌함이 비몽사몽한 나의 정신을 맑게 개어주고, 인터넷 강의 선생님의 자장가(를 빙자한 강의)를 들으며 스르륵 눈이 감길 때 컴포즈 커피가 내 등을 토닥이며 다시금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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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를 읽으며 내가 커피를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를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은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커피에 대한 일종의 신념을 보면서, 괜히 기분 좋아지는 커피 향을 지금 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저 잠에서 깨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커피가 실은 나의 삶 속에서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라는 걸 깨닫기도 하였다.

🗣 지나친 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때때로 마음의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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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볶은 지 한 달 지난 파나마다. 파나마는 퍼음 볶았을 때는 맛이 복잡해서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 달 이상 묵힌 다음 마시면 숙성되면서 맛이 부드럽게 하나로 모여져서 놀랍도록 맛있어진다. 긴 세월 있는 듯 없는 듯 분위기파로 지낸 배우가 갑자기 그것 자체가 새로운 성격이 되어 대단히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중략) 한 달 지난 파나마 커피는 사치스럽다. 왜냐하면 한 번에 콩을 1킬로그램씩 볶는데, 이 원두가 한 달 동안 안 팔리고 남아 있어야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나마 원두를 주문받을 때마다 미적거리며 천천히 봉투에 담는다. 혹시라도 마음을 바꾸시지 않을까 기대하며. (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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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관련한 부분들은, 내가 비흡연자라 조금 아쉬웠다. 정은 작가님의 글이 아쉬운 게 아니라, 내가 담배를 피웠더라면 이 글을 더 재밌고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다만 그럼에도, 담배와 얽힌 작가님의 추억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할아버지가 주셨던 담배부터 금연 구역인 절에 들어가서 몰래 담배를 피던 추억,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첫눈에 반해버린 남자를 따라 본격적으로 피우기 시작한 기억 까지도. 커피와 담배는 둘 다 쓰고 맛없지만 그것들이 담고 있는 한 개인의 추억은 아주 깊었다. 그 추억을 작가님은 <커피와 담배>라는 책으로 사람들과 공유하였고,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그 추억의 공유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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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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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 - 서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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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을 전하기로 작정한 듯한 책들을 지금까지 많이 읽어왔지만, 근래에 들어 ‘책’을 통해 가장 큰 힐링을 받은 건 바로 <소년을 읽다>를 읽은 뒤였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이, 어째서 내게 이렇게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을까, 또한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들게 하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며 반성하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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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소년원’ 이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그런 생각들‘만’ 들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소년심판>이라는 드라마만 하더라도, 무거운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처벌 수위가 가벼워지는 현 제도를 비판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컨텐츠들이 ‘소년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다 못해 강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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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소년심판>의 주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소년원’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이다. 내 주변에 소년원을 나온 사람을 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만약 누군가가 ‘소년원 출신’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아무래도 그 사람으로부터 심리적 거리감이 생길 내 모습이 너무도 쉽게 예상이 된다. 소년원을 다녀온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팔과 등에 용 문신이 그려져있을 것 같고, 조금만 쳐다봐도 뭘 꼬라(?)보냐고 소리치며 화낼 것 같은… 그런 이미지가 연상이 된다.

🗣 “선생님, 여기 오시니까 어떠세요?”

“여기? 다른 학교에 간 거랑 똑같은데.”

“그래도 소년원에서 강사로 와달라고 했을 때 기분이 좀 그렇지 않으셨어요? 안오고 싶지 않으셨어요? (중략) 그런 거 있잖아요. 사회 사람들도 ‘소년원’하면 안 좋게 생각하고, 이상한 아이들 있다고 생각하는 시선, 그런 거 있잖아요.”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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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년을 읽다>에서 작가가 만난 소년원의 소년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문신 등 외적인 모습이 상상했던 것과 비슷하더라도, 내적인 모습에서 전혀 생각치도 못한 순수함을 작가는 마주하고선 놀란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과몰입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책을 아껴가며 읽으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소년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괜히 내 마음까지 순수해지는 듯한 힐링을 느낌과 동시에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이 어째서 이런 곳에 들어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곳의 소년들은 저마다 다양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 부분은 내가 이 글에서 적는 것보다 책으로 직접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따로 적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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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원 본연의 목적처럼 우리 사회는 그들이 행동을 교정하고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이상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의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실현하지 않아도 좋으니, 좋은 삶을 살지 못해도 좋으니, 사회의 아래에서 우리에게 무해한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혹시 아닐까. (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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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이라도 소년들의 입장을 헤아려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었다. 단지 더욱 강력하게 처벌 수위를 높여야한다, 소년원이 아니라 일반범죄처럼 교도소에 보내야한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겪은 사연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소년원에서 나왔을 직면해야 냉담한 사회적 시선들을 고려해보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아니 우리가 역으로 그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책을 덮고선 많은 생각에 잠겨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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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바늘 매일과 영원 4
소유정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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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바늘> - 소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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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하 ‘민팁’)을 오래전부터 봐왔던 ‘선생님’이라면 분명 ‘매일과 영원’ 에세이 시리즈를 알 것이다. 일기 형식의 문학론 에세이를 다룬 이 시리즈는 민팁의 ‘말줄임표 시즌2’에서 주된 컨텐츠로 다뤄젔기 때문이다. 나도 민팁을 애청하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매일과 영원’ 시리즈에 대한 궁금증을 항시 갖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시인들이 쓰신 것들이라 구입이 꺼려지고는 했다. 개인적으로 시와 정말 맞지 않기도 하고, 시를 소재로 한 에세이 ‘시와 산책’을 읽어보았지만 역시나 시적인 언어로 가득한 그 책을 시적 감수성이 영에 수렴하는 내가 읽기엔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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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세 개의 바늘>은 문학평론가가 쓴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구매 욕구가 폭발하였다. 사실 북스타그램을 하면서 친구에게 비평이나 평론을 배워보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들으면서 나도 점차 관심이 생겨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보통 문학 작품의 뒷편에 수록되어있는 문학 평론가들의 글을 볼 때마다 감탄과 동시에 열등감이 들긴 했다. 같은 작품을 읽었는데도 어떻게 이런 느낌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지, 나는 이만한 수준의 글을 절대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일종의 무력감 및 자기혐오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문학 평론가의 글은 책 뒷편에 수록되어있는 짤막한 글 말고는 읽어본 적이 없기에, 평론가가 쓴 문학론 에세이 <세 개의 바늘>이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 읽다보면 평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조금은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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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작가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세 개의 바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작가님이 갖고 있는 ‘문학’에 대한 생각들, ‘문학’을 즐기는 방법들을 읽어가며 나와는 어떤 부분이 같고 다른지를 비교해가는 재미가 있었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예를 들자면, ‘독서 과속방지턱’이 그랬다.

🗣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빠르게 책장을 넘기게 하는 그 부분에 나는 작은 표시를 남긴다. 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부분에 과속방지턱을 세우는 셈이다. 혼자서는 이를 독서 과속방지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략) 나는 과속을 멈추고 음미하고자 잠시 독서를 멈추고 방지턱을 세운다. (90p)

보통은 책에 무언가 표시를 남기는 것은 작중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대목 등 어떠한 ‘갈림길’ 앞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그 점을 밝히고 있고, 나 또한 그렇다. (물론 책에다 직접 표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는 편이다.) 그러나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하는 부분’에 표시를 남긴다는 것은 내게 아주 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독서 방법인데, 책 자체를 음미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에 납득이 가기도 하여 놀란 것이다. 이 지점에서 느꼈던 신선함은 곧 재미로 바뀌었고, 이는 ‘문학론 에세이’의 매력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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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분 외에도 좋았던 대목들은 많다. 소설을 쓸 생각이었으나 문학 평론 부문으로 등단하게 된 작가님의 사연이랄지, 김금희 작가님이나 김혼비, 박태하 작가님 등 많은 작가들과의 인연을 다룬 부분이랄지, 뜨개질과 자수를 좋아하고 그를 문학에 접목시켜 설명하는 대목 등등 <세 개의 바늘>을 통하여 색다른 문학의 향유를 깨칠 수 있었다. 물론 ‘시’와 관련된 부분들은 하나같이 내 머리에서 튕겨져 나갔다. 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뭔가 붕-뜬 공상적인 느낌이 든다. 시적인 표현이 거의 대부분 무언가에 비유하는 것이 많아서 직접적인 표현 그 속에 숨어있는 참된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여러번 시도했지만, ‘시’는 그저 교과서에 수록되어 공부할 때나 좋았지 지금의 내겐 맞지 않는 것 같다. <세 개의 바늘>에서는 어떤 시 혹은 시인에 대한 작가님의 감상 및 평론이 적지 않게 들어있는데, 그 부분은 내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아쉬운 느낌으로 독서를 마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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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정용준 작가님의 글(가제 ‘소설만세’)이 ‘매일과 영원’ 시리즈로 출간된 예정인가보다. 정말 너무 기대되고, 출간 되자마자 바로 구입해서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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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서 - 외롭지 않은 혼자였거나 함께여도 외로웠던 순간들의 기록
장마음 지음, 원예진 사진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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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서> - 장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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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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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나라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뒤흔들었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이하 ‘죽떡먹’) 이후로, 힐링을 표방한 에세이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죽떡먹’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그 책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 뒤로 계속해서 나오는 힐링 에세이들은 정말 나랑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이 책을 받았을 때에도 나의 속마음은 ‘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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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서’라는 제목에 공감이 많이 갔다. 나의 MBTI가 ‘관심받기 싫어하는 관종’이라는 모순적인 특성을 가진 ISFP인 만큼, 말의 앞뒤가 다르면서도 그런 역설적인 마음이 와닿는 이 책의 제목이 좋아서 얼른 집어들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난 느낌은, ‘산문시’ 같다는 것이다.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내가 읽어온 에세이들과는 결이 조금 달랐고, 오히려 산문으로 쓰인 ‘시’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던 책이었다. 그게 오히려 더 좋았다. 일상적인 언어보다 함축적, 비유적인 표현들이 많이 쓰였고, 그런 부분이 다른 흔한 에세이들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아서 이곳에 조금 적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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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사람들에게서부터 멀찍이 떨어져 혼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중략)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아픔은 그 어떤 배신감보다 크고, 억지 웃음을 지으며 애써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그 어떤 노동보다도 고되니까요.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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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치를 왜 그렇게 많이 봐. 사람들 시선에 너무 신경쓰지 마. 어차피 널 좋아할 사람들은 네가 어떤 행동을 하든 널 좋아할 거고, 널 미워하는 사람들은 네가 어떻든 간에 널 미워할 거야.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한테 관심이 없어.” (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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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어떤 모난 감정이 생기면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자신의 미운 점이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온 게 아닌가, 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까봐 두렵다면 사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하며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람은 속이 너무 좁아”라고 말한 사람치고 속이 좁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1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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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에세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비슷한 소재의 소설들도 계속해서 출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내린 답이 절대 정답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치고 힘들고 우울할 때 본인만 우울한 게 아니란 것을, 다른 사람들도 지쳐있고 힘들어한다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역으로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하고 넋두리를 털어놓을 때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것은, 너만 힘든 게 아니라 나도 힘드니까 같이 힘을 내서 살아가보자 하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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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자기 혐오에 휩싸여 한없이 심연의 늪으로 빠져들어갈 때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 것을 깨달으면, 동질감에서 뿜어져나오는 위로가 참으로 효과적인 것 같다. 이 책도 같은 맥락에서 읽기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쓴 작가님도 속으로 많이 우울했었고 힘듦의 시간을 견뎌왔다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느껴졌고, 또 많이 위로를 받았다. 더불어 앞서 말했듯이 뻔하지 않은 ‘산문시’처럼 느껴져서 마음을 더욱 울렸던 것 같았다. 요즘 주위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는데, ‘괜찮아?’같은 상투적인 질문이 아니라 이 책과 함께 진심을 담아 위로 한마디를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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