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일기 - 당신이 두고 간 오늘의 조각들 카페 소사이어티 1
이미연 지음 / 시간의흐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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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일기> - 이미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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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이제 커피의 신이야. 커피를 달라고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커피를 마시기 전이니까 제정신이 아닌 좀비들이거든? 그들에게 커피를 줄 수 있는 너는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들이 아무리 재촉해도, 무례하게 굴어도 쫄지 말고 네 페이스대로 천천히 해줘. 어쩌겠어? 커피를 가진 자는 너인데.” (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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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나의 취향과 완전히 잘 맞는 에세이를 읽었다. <카운터 일기>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저자가 뉴욕 브루클린의 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적은 글(일기)을 엮은 에세이로,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뒤도 안돌아보고 무작정 이 책을 들이밀고 싶을 정도로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투썸 플레이스에서 6개월, 개인 카페에서 1년 남짓한 기간을 아르바이트 해본 적이 있는지라,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파는 입장이라는 같은 처지로서 크게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었고 한국과는 다른 뉴욕 카페만의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으며, 작가님의 현란한 글솜씨로 지금의 내 심정에 가장 필요했던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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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은 리듬에 맞춰 고개까지 그덕이며 (물론 아무도 못 듣게)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손님 중에서 무의식적으로 같은 부분을 흥얼거리는 사람이 나 말고도 두 명이나 더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남몰래 재밌어 했다. (27p)

개인 카페에서 있었던 경험이 떠올라서 낯부끄러움을 느꼈던 구절이었다. 투썸이나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와는 다르게 개인 카페에는 손님이 언제나 많진 않다. 특정 시간대에만 몰리고 그 외에는 아주 한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때문에 손님들이 아무도 없을 때에는 카페에 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조작(?)하여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바꿔 틀곤 했었다. 그 사건 당시에도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나는 이때다 싶어 노래를 바꿔 틀고 밀린 설거지를 하며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설거지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던) 손님이 와있었다. 웃참 챌린지를 하는 그 분의 얼굴을 보며 뒤늦게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니, 그때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수준을 넘어서 ‘열창’을 하다시피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테이크아웃으로 그 손님을 보내드린 뒤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창피해서 주저 앉아 속으로 부끄러움을 달랬던 기억이 났다. (참고로 그때 불렀던 노래는 지아의 ‘술한잔해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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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 망쳐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옳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다다르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그때 가서 돌아보면 지그재그로 걸어온 지난 길이 그 순간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요소임을 수긍하게 될 테니까. 옳다고 생각되는 그 지점에서 눈 깜짝할 새에 다시 내려와 또 회의와 고민으로 점철된 길을 걸으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를 묻더라도 하나하나 도장을 찍다 보면 언젠가는 선물처럼 ‘리뎀션의 순간이 다시 온다는 것을 아니까 조금 덜 두려워할 수 있을 것 같다. (45p)

군대에서 전역한 뒤에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는 것일까, 잘못된 곳을 향한 것은 아닐까, 혹은 너무 돌아가고 있는 걸까 등등 고민이 많은 요즘의 나에게, 45페이지의 이 구절들은 너무도 정확하고 시기적절한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는 옳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다다르는 순간’이 오기를, ‘지그재그로 걸어온 지난 길이 그 순간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요소임을 수긍’하게 되기를 바라며 조금은 걱정을 덜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그대로 추진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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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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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도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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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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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겨레출판’의 공식 블로그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 ‘청년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다양한 문화 요소를 분석하며 빈곤과 단절, 욕망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신랄하고 통통 튀는 문투로 비평하는 사회서.’ 

책에 대해 내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더욱 적확할 것 같으므로, 나의 설명은 부가적인 차원에서 위의 문장에 덧붙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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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다양한 문화요소’라는 말은, ‘갓생, 배민맛, 방꾸미기, 랜선 사수, 중고 거래, 안읽씹, 사주 풀이, 데이트 앱, #좋아요’ 까지 총 9개의 키워드를 함의하고 있다. 이런 주제들 모두 ‘MZ’라고 불리우는 요즘 세대들이 빠져있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와닿지 않는 주제들도 있었지만(이를테면 ‘사주 풀이’는 절대 불신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글에서 ‘젊음’이 느껴지는 듯한 문체, 즉 출판사의 소개에서 말하는 ‘신랄하고 통통튀는 문투’로 쓰여서 평소에 관심없는 주제에 관한 부분들까지도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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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가지 주제를 모두 다루면 글의 분량이 터져버릴 듯하여,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주제 하나를 꼽아 글을 쓰려한다. 바로 ‘갓생’이다. ‘갓생’이라는 말은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며 타의 모범이 되는 성실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다. 요즘들어 ‘갓생 실천’과 관련한 주제의 컨텐츠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곤 했다. 특히 책에서도 언급한, 갓생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미라클 모닝’과 관련해서 새벽 5-6시쯤 일어나 생산적인 삶을 실천하는 모습들을 인스타 피드, 유튜브 브이로그 등의 SNS 상에서 유달리 많이 보았던 것 같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들에 비해 내가 뒤쳐지고 있는 듯하여 울적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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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갓생’을 추종하는 듯한 요즘 트렌드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특히 앞서 말한 ‘미라클 모닝’에 대한 비판으로는, 애초에 ‘미라클 모닝’이라는 것이 억만장자들의 습관에서 비롯한 용어로, 최소 1년 이상은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미라클 모닝’을 실천할 수 있는 ‘억만장자’적인 배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억만장자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한 달 이상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인스타 피드에서 찾아보기가 매우 드물고, 오히려 ‘3달 하고 포기’ 등 포기했다는 투의 게시물을 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최후의 ‘팩트 폭행’을 신랄하게 내리꽂는다.

🗣 성공의 등급을 매기고, 내 주변 다섯 사람의 평균이 자신의 수준이므로 성공한 사람들 위주로 사귀어야 한다는 <미라클 모닝>식의 갓생 가치관이 오히려 혐생일 수 있다. (39p)

때문에 책을 읽으며 ‘갓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막연하게 ‘갓생’에 대해 부러워(만 하고 실천은 안)했던 나에게 이 책은 시니컬한 위로를 던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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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뿐만 아니라 배달 음식에 관한 ‘배민맛’, 카카오톡 잘 읽지 않는 ‘안읽씹’, 인스타의 하트 수에 집착하는 듯한 ‘좋아요’ 등등 이 책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에 대해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저자는 독자에게 궁극적인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이 책에 언급된 주제들이 ‘요즘의 문화 트렌드’라고 미화되어서 칭해지지만, 실은 그 안에 ‘중독’이라는 말이 포함된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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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교과서 - 한순간에 행복해지는 방법
다케다 소운 지음, 강현숙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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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교과서> - 다케다 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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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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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올렸던 <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의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자기계발서를 혐오하는 사람이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정도(正道)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에서 던지는 교훈이나 가르침 등이 와닿지 않는 듯하다. 사실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요청받을 때에도 ‘자기계발서’의 경우에는 웬만하면 거절하는 편이고, 이번 소미미디어 출판사의 서포터즈 ‘소미랑’으로 활동하게 된 것도 이 출판사에서는 거의 문학 작품만이 출간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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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 자기계발서 <긍정의 교과서>가 출간되어 배송받았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라고도 하고, 원래 자기계발서를 잘 출간하지 않던 출판사에서 출간된 자기계발서기에 그래도 조금은 괜찮을까 싶은 마음을 가지고 책을 펼쳐들었다. 그러나, 역시 나와 자기계발서는 정말 맞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기만 한 채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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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상당히 중요하게 간주하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11개의 챕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각 챕터 안에는 저자가 제시하는 방식이자 교훈과 함께 그를 뒷받침할만한, 저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이야기들은 내게 모두 소위 ‘뜬구름 잡는다’고 말하는 듯한, 피상적인 이야기로만 읽혔을 뿐이었다.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아는, 혹은 한번쯤은 들어본 내용이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건 어려울 듯한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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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책의 한 챕터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리더십이 없으니 경영은 무리다.] ->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주위 사람이 하나로 뭉쳐 적극적으로 성공한 팀도 많이 있습니다. (56p)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언급한 뒤, 그에 대한 반박의 의견을 남기는 듯 서술한 문장이다. 그러나 위의 문장 같은 경우에는, ‘리더십이 없으니 경영은 무리다’에 대한 반박을 저 한 문장으로만 끝냈다. 구체적인 실제 사례 하나 언급하지 않았고, 그게 아니라면 리더십이 없음에도 주위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과학적인 근거라도 있어야 할텐데 그마저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더 명확한 근거를 갖추고 쓰였다면 더욱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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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은 책이기 때문에 좋은 점을 하나 정도는 언급하고 싶지만… 내게는 그런 모습이 아예 보이질 않았다. 목차를 보더라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사고방식 하나 없이, 어디선가 한번쯤은 다 들어봤을 법한 내용들이다. ‘아무리 해도 지나치치 않는 감사’, ‘다른 사람을 바꿀 순 없다. 자신을 바꿔라’ 등등…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평소에 읽어보고 싶었으나 한번도 읽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입문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인 듯싶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자기계발서 분야의 ‘독서 만렙’ 수준의 사람들에겐, 이 책은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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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담당자님… 신경써서 책을 출간하셔서 보내주셨을텐데 이렇게밖에 읽지 못하여 너무 죄송할 따름입니다… 자기계발서는 저와 정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출간되는 문학 작품들은 더욱 열심히 읽고 좋은 글 남기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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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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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김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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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가슴 아픈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해 우리의 군함이 침몰되어 당시 배에 타고 있던 46명의 군인들이 순직하게 된, 바로 ‘천안함 사건’이다. 놀랍게도, 그리고 너무 부끄럽게도 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 당시 12살의 나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정도의 수준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 너무도 무안하고 낯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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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이 책이 바로 그 ‘천안함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제목만 보고 구입했던 책이어서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는 차원의 르포 형식으로 쓰인 책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보다 집중적으로 조망하여 서술한 책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천안함 사건’ 자체의 숨겨진 진실보다는 그 사건을 겪어낸 ‘생존장병들의 사건 이후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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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이들이 사건 이후 고통스러운 삶에 시달려야 했던 원인을 미시적 관점(PTSD)과 거시적 관점(냉혹한 한국 현실)에서 분석하고, 실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해소하기 위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었으며,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할 시각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전부 적기엔 인스타 피드 양의 한계치를 넘어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과 분노했던 부분 등을 중심으로 이 책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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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가장 화나고 놀랐던 것은 바로 생존장병들을 대하던 한국의 현실이었다. 이 사회는 살아남은 병사들을 보듬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냉담하고 참혹한 태도만을 보였다. 이를테면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게 된 책임을 생존병사들에게 떠넘겼고, 언론은 이런 시각을 더욱 크게 확산시켰다. 그들의 주장은 정리하자면 이렇다.

- 천안함의 장비로도 적의 잠수정과 어뢰를 충분히 탐지할 수 있었다.

- 당시 대잠 위협이 있었음에도 경계 등급을 상향 조정하지 않았다.

- 즉, 병사들의 경계 작전 실패로 인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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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80년대에 만들어진 당시 천안함이 보유한 장비는 9~13kHz 정도의 주파수를 청음하게 되어 있으나, 북한이 썼던 유도 어뢰의 주파수는 3~8kHz 수준이었다. 즉, 천안함의 장비로는 북한 어뢰의 탐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사건 발생 전에 기무사령관이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의 사전 징후’를 국방부와 합참에 보고하였으나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사건 직후 청와대는 어뢰에 대한 내용이 일절 없이 ‘선체 파공으로 인한 침몰’이라는 보고를 받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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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진실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여론은 천안함 사건에서 살아돌아온 병사들에게 ‘패잔병’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정치계에서는 이 사건을 서로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만 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PTSD’라는 심리적 고통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그 누구도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을 ‘행운아’로 취급할 뿐이었다.

🗣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1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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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비참함’이 피해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회적 폭력을 대할 때 가해자의 행동을 따져 묻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인지 확인하는 데 더 큰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이에 반박하지 못하였다. ‘천안함 사건’ 뿐만 아니라 ‘세월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등의 수많은 피해를 낳았던 참사들 모두 희생되셨던 분들께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고에서 살아돌아온 분들께도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그분들은 평생을 잊지 못할 끔찍한 경험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인데, 감히 우리가 그들을 ‘살아돌아왔으니 운이 좋’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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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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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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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등 일반 산문의 문장과 소설 속 문장의 결은 아주 많이 다르다. 소설의 경우에는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는다 하더라도 이야기 속 장면에 맞는 문장이다보니 독자가 그 상황에 본인을 맞추어 몰입을 해야하는 반면, 일반 산문의 경우에는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훨씬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독자들은 그 마음을 소설보다 더욱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닌, 그저 개인적으로 느낀 둘의 차이를 설명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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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 선배님의 추천으로 이병률 작가님의 산문을 처음 읽어보았다. 시도 쓰시는 분이라 나랑은 결이 맞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도 시적인 산문 <시와 산책>이 나랑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님이 전혀 어렵지 않다고 말씀해주셔서 그 말을 믿고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내 마음을 울리는 듯한 문장들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소설을 주로 읽는 나에게 이 책은, 소설 속 문장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그 많은 문장들 중 일부를 공유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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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p]

📖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중요한 일이다. 당선되지 않았다는 것은 당선의 의미만큼이나 중요하며 역시나 안 되었다는 것은 되기 위한 과정으로도 중대하다. (중략) 안 될 수도 있는 일에 말도 안 되는 확률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어느 한 단면은 바뀐다. 그 상황은 자신의 현재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내부의 힘까지도 뭉근하게 키운다. 어딘가에 떨어져보지 않는 우리는, 어디에선가 망해보지 않은 우리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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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3p]

📖 밥을 먹을 때 그 사람과 함께여서 맛이 두 배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별 음식도 아닌데 그 사람하고 함께 먹으면 맛있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

📖 슬픔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슬픔을 알더라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또 어딘가에는 슬쩍이라도 칠칠맞지 못하게 슬픔을 묻힌 사람이면 좋겠다.

📖 벌이 날아들었을 때 “움직이지 말고 그냥 눈감고 있어”하고 내가 소리치면, 나를 믿고 벌이 떠날 때까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 어떤 비밀에 대해 내가 이야기할 때 ‘누구한테 절대 이야기하면 안 돼’라고 못박지 않아도 좋은 사람.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거나 두 사람이 아주 완전히 분리될 일이 생길 때, 서로의 어떤 부분에 대해 남에게 함부로 말로 옮기는 일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

📖 평상시에는 보통 눈을 가진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을 들여다볼 때나 세상을 내다볼 때는 광각렌즈와 망원렌즈, 모두의 사용이 가능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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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p]

📖 설령 당신이 어느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하나 남기는 것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 당신을 떠올릴 때 슬픔 대신 어느 믿음직한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나는 바란다.

📖 세상과의 이별을 앞둔 순간에 단어 하나가 멤돌더라도 그 단어를 마음 속에서 꺼내올리지 못할 수도 있겠다. 죽음 앞에서 확연히 떠오르는 뭔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다 풀고 갈 상황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살면서 미처 다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어리석게도 영원히 내성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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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p]

📖 “아마, 공연이 잘 안됐다면 그건, 자기 자신한테 집중이 안 되서였을 거예요. (중략) 우린 늘, 자기 자신한테 집중을 못해서 못마땅해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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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p]

📖 그 누가 됐건, 누군가 먼길을 떠나는 것은 커다란 의미다. 먼길 위에서 안전해야 하고, 성과를 가져와야 하고, 또 남겨두고 온 가족을 많이 생각해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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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p]

📖 다른 사람 너머를 보고 싶어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다른 사람의 속을 읽고 싶은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게 다 좋아해서였겠지만 그게 다 관심 있어서였지만 단지 그런 자잘한 욕심들로 힘든 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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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p]

📖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싶어하는 바람에 끝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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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p]

📖 만나고 있다고 다 사랑하는 건 아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그녀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이 몇 번이나 나왔다면 이미 잔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고 그걸 주섬주섬 봉합하려는 너는, 이성 때문에 그러는 것이지 네 영혼이 시켜서가 아닌 거다. 무슨 얘기냐 하면 가만히 네 영혼에게 물어보라는 이야기다. 네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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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p]

📖 그때는 그랬을리 없는 상황들을 이제는 꺼내보며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재배치한다. 나의 고집으로 인해 별로 좋게 기억될 만한 사건이 아닌데도 시간이라는 망사를 이용해 그때 일을 통과시켜 재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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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p]

📖 사실 우리는 잘 만나다가도 어느 순간 둔해진 관계라서 안 만나게 되고, 또 멀어지게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아예 둔한 사람 자체를 멀리하게도 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안 섬세한 사람들’에게 있어 섬세한 사람이란 ‘그거 참 머리 아픈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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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p]

📖 그래, 맞아. 저토록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삶. 바로 내가 살고 싶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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