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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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MBTI는 ISFP이다. 몇 번을 검사해봤지만 언제나 이 결과가 나온 것을 보면, 내게 있어서 이 검사는 신뢰도가 상당히 높은 편인 듯하다. 아무튼, MBTI 항목 중에서도 I와 E 성향을 구분짓는 유형에서 나는 I의 비율이 거의 70%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정도면 어디가서 내향형 인간이라고 소개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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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가 나를 그렇게 보지는 않았다. 어느 모임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와 MBTI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내게 ‘너는 확신의 E형 인간이야’라고 말한 것이다. 꽤 충격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친구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에 만난 군대 후임마저 내 MBTI보고 E성향 아니었냐고 물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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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지내는 가족이나 자주 만나는 찐친들은 다들 나를 I형 인간으로 보았기에 남들도 나를 내향적인 사람으로 보는구나 싶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전혀 다르게 나를 생각했다는 사실이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지내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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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기분이 들자마자 곧바로 침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향적인 나의 성격을 고쳐야 하는 치부로, 숨기고픈 단점으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사회를 살아가면서 내향적인 부분도 꼭 필요할 테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지내는 데에 있어서 외향적인 성격만이 도움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내밀 예찬>이라는 제목의 책은 꼭 읽어야만 할, 필독서 같은 느낌을 주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딱 마주했을때, ‘어머 이건 사야해’라는 울림이 머릿속을 스쳤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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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은 온전히 ‘내향’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소소한 일상과 그에 대한 사유를 담은 에세이일 뿐이다. 다만, 이 책의 저자가 내향적인 사람이라 같은 내향인으로서 다른 에세이에 비해 공감이 가는 지점들이 조금 더 많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도 제목을 <내밀 예찬>으로 짓기에는 조금 부족해보였다. 사실 이 책은 판형도 작은 편이고 두께도 아주 얇은 편이라 책의 전체 내용을 ‘내향’적인 성격에 관한 것으로 채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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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소한 일상에 공감가는 재미가 있던 에세이였지만, 제목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해서 개만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작고 얇은 책인데도 정가가 14000원이다. 그래서 하나를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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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황승택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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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정말 느닷없이, 혈액암(백혈병) 진단을 받게 되면 어떨까. 일순간 멍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채 병원의 안내에 따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이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겨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항암 치료가 시작되어 있어서,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혹은 전생에 무슨 죄를 범했기에 신이 내게 이런 벌을 내린 걸까, 온갖 한탄을 쏟아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절대 맞닥뜨리고 싶지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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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황승택 기자가 실제로 그 상황을 맞게 된 전후 사정과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담히 적은 에세이다. 그저 열심히 이 사회를 살아갈 뿐이었는데 느닷없이 마주한 혈액암(백혈병)이라는 시련에 대해, 처음에는 원망과 한탄의 마음 뿐이었다. 그러나 병을 통해 저자는 다시금 본인의 삶을 돌아보며 그동안 본인이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앞으로는 어떤 것을 중요한 가치로 둘 것인지를 돌이켜보는 과정을 가진다. 그 속에서는 새롭게 알게 된 환자의 처지와 심리도 있고, 조금은 씁쓸한 유머도 있으며, 독자들에게 건네는 따듯한 충고의 한마디도 담겨 있다.

🗣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형벌은 격리일 것입니다. 암 환자들은 긴 항암 치료를 반복하면서 왜 내가 병에 걸려야 하는가 하는 우울증과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고립감으로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주치의도 “괜히 정신력으로 버티지 말고 힘들면 차라리 약을 달라고 하는 게 좋다.”라고 할 정도입니다. (22p)

🗣 백혈병으로 갑자기 쓰러지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저는 이제 이해합니다. 전에는 드라마의 극적 효과를 위해 백혈병이 진부하게 이용되는 걸로 생각했습니다만, 제가 직접 질병을 겪어보니 정말 건강한 사람을 한순간에 쓰러뜨리는 게 백혈병이더군요. 그래서 백혈병 환자가 나오는 드라마 작가들에게 함부로 막장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습니다. (37p)

🗣 전 다시 왜 신이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찾았거나 혹은 신께서 주신 답은 만약 2017년 1월에 복귀했다면 그동안의 공백을 만회하겠다는 마음이 앞서 결국 몸이 나빠졌을 가능성이 크니 이를 막으려고 호된 교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1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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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평소에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정말 잘 쓰인 에세이 한 편을 읽을 때는 소설 여러 편을 읽는 것보다 더 큰 마음의 울림을 느끼는 것 같다. 이 책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단순히 백혈병에 걸린 그 과정을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인생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백혈병 투병 과정을 보는 동안에는 마치 내 가족이 백혈병 환자인 양 마음이 너무 아팠고, 책을 덮은 뒤에는 내가 지금 살면서 무심코 놓치고 있는 게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정말 와닿는 좋은 에세이 한 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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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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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크리스티앙 보뱅’이 글을 그렇게 잘 쓴다는 말을 많이 들어와서 언젠가 한번은 꼭 보뱅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다만, 서점에 가서 <작은 파티 드레스>, <환희의 인간> 등을 살짝 읽어보니 어쩐지 나랑은 맞지 않았던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이 떠오르는 듯한 문체였다고 느꼈다. 좋게 말하자면 깊이 있고 철학적 사유, 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뭔가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내게 와닿지 않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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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리움의 정원에서>는 저자가 평소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생각들을 담았다기보다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난 뒤의 그리움과 추모의 마음을 담아 쓴 책이다. 그래서 저자의 다른 책들보다는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명문장들의 천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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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은 문장’이라 함은 공감의 여부와는 다른 차원으로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적이 아직 없기에 <그리움의 정원에서>에 온전히 공감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저자가 겪은 그 슬픔과 그리움 내지는 추모와 애도의 마음이 어땠는지가 아름답게 쓰여있어서 ‘이런 마음이구나’하며 배우는 느낌이었다. 그 문장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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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죽음은 내 안의 모든 걸 산산이 부서뜨렸다. (중략) 사랑한다. 그것 외에 무슨 말을 쓸 수 있을까. 써야 할 문장은 이뿐인데. 이 문장을 쓰도록 알려준 사람은 너였다. (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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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슬렌, 네게 감사한다. 널 잃음으로써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 상실에 감사한다. 미치광이처럼 너를 사랑하는 나는 광기에 휩싸인 채 부드러움과 빛과 사랑을 찾는다. (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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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에 대한 험담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고 참을 수 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내게 상처 주는 말, 아무리 조심스러운 비난도. 그런 말을 들으면 난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둔다. 그렇다고 앙심을 품는 건 아니지만 한 번이라도 너에 대해 의혹을 발설하는 자들과 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생긴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며,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법이다. (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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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는 눈물과 비명으로 자신의 사랑의 크기를 증명한다고 믿지만,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원초적인 편애를 표현할 뿐이다. 질투에 세 사람이 연루되는 건 아니다. 심지어 두 사람도 아니다. 불현듯 자신의 광기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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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내 불평 앞에서 네가 터뜨리던 웃음 덕분이었다. 독선적인 아이의 마음에 네 웃음의 정수가 쏜살같이 날아와 박혔고, 너의 순수한 자유가 불현듯 내게 모든 길을 열어주었다. (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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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로 인한 그리움과 공허와 고통마저도 안으로 들어와 나의 가장 기쁜이 된다. 그리움, 공허, 고통 그리고 기쁨은 네가 내게 남긴 보물이다. 이런 보물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죽음의 시간이 때까지, ‘지금에서지금으로 가는 뿐이다.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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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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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정여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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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시나 소설같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한번쯤은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 왜 읽어?’ 내지는 ‘소설은 왜 읽는거야?’ 등등. 나 역시 이런 질문들을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항상 깊은 고심에 빠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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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막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대답은 ‘재밌으니까’ 였다. 너무도 단순한 대답이지만, 그만큼 또 명료하기도 하다. 이때는 추리소설만 주구장창 읽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때의 내게 질문을 했던 사람들은 거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 ‘네가 영화나 드라마, 아니면 컴퓨터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나는 책에서 재미를 느낀다’라고만 답을 해도 충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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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독서 범위도 순문학, 고전문학, 시, 에세이 등등으로 확장되었고, 그에 따라 책에서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독서 후의 여운에 잠겨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금 깊이 고민할 필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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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에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게 되었다. 정여울 작가님의 글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읽기 전에 기대가 컸던 책이었다. 보통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이 책은 다 읽은 후에도 아주 만족스러웠다는 감상이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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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소개하자면, 정여울 작가님의 ‘독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님이 여러 책들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들을 이 책에 모았는데, 그 곳곳에 작가님이 생각하는 ‘문학이 필요한 이유’ 내지는 ‘문학을 읽는 이유’들이 담겨 있다. 몇몇은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고, 또 몇몇은 기존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이라 새로웠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 문학은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들을 바로 지금 여기로 끊임없이 불러오는 힘이 있다. 그것이 우리가 제주 4.3을, 1980년 광주를, 세월호를 문학의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30p)

🗣 나는 그 차 한잔의 여유에 가장 어울리는 파트너가 시집이나 소설책이면 좋겠다. 책을 읽는 동안만은 분노를 철퍼덕 내려놓고, 슬픔을 훌훌 벗어놓고, 이 세상 모두에 함께 있을 수 있고, 이 세상 누구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94p)

🗣 지금 당장 혁명이나 치유가 불가능할지라도 다만 아파하는 사람들 곁에 가만히 함께 있는 것. 나는 문학의 진정한 힘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종교의 힘도 가족의 힘도 사랑의 힘도 빌릴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 나는 문학이 지닌 ‘가만히 곁에 있어주기’의 힘으로 버틴 나날이 많았다.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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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생각하는 ‘문학이 필요한’ 여러 이유들을 보면서 나의 생각을 조금 정리하고 확립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결론내린, 내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바로 ‘추체험’이다. 문학은, 특히 소설은 내가 태어난 후에 한번도 겪어보지 못할 경험들, 살아보지 못할 삶들을 체험해볼 수 있게 해준다. <단순한 진심>을 읽으며 입양 가족이 되어볼 수 있었고,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으며 미지의 젤리 괴수(?)와 싸워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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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추체험’은 무슨 효용이 있을까. 이번에도 또 그저 ‘재미’로 귀결되는 것인가. 물론 재미를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가 느낀 ‘추체험’의 쓸모는 ‘공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공감’ 능력을, ‘문학’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사회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기에, 우리에게는 ‘문학’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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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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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모든 것
휘프 바위선 지음, 장혜경 옮김, 한지원 감수 / 심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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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모든 것> - 휘프 바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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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본 우리 아버지가 책 표지를 보시더니 지나가시는 듯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나는 나중에 암 걸리는 것보다 치매 걸리는 게 더 무서워.” 

그 말을 들은 직후의 나는 무어라 답을 하지 못한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우리 부모님이 암에 걸리셨다면, 혹은 치매를 앓게 되셨다면… 둘 다 절대 겪어보고 싶지 않은 미래였지만 굳이, 구태여 더 싫은 걸 꼭 하나만 꼽으라 하면, 나 역시 우리 아버지처럼 ‘치매’를 택할 것 같다. 치매에 걸리셔서 나를 알아보시지 못한다면…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도록 너무도 슬프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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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상상하기에는 치매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치매 자체가 너무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기에 의식적으로 피했던 걸까. 어쩌면 기회가 있었음에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치매 가이드북’ 이었다. 치매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는 것부터 치매 환자들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까지, 제목처럼 치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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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자체에 대해 가장 놀랐던 점은 ‘알츠하이머병’이 치매의 한 종류였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야트막한 의학 지식 때문에 나는 두 개념을 완전히 다른 별개의 질병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치매 환자의 70%가 알츠하이머병 환자라고 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신경세포의 말단이 망가져서 세포 간 소통에 필요한 화학적 과정이 손상된 질병인데, 놀랍게도 신경이 손상되는 ‘그’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당연히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치료도 못할 수밖에… 치매를 완전히 중단시키거나 인지 기능을 정상적 수준으로 회복시킬 치료법은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의학 기술이 거의 모든 질병을 정복할 수 있는 수준을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착잡해졌다. 그러나 완전한 치료법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암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기에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한 경우에는 분명히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고, 그렇게 지연된 시간은 환자 및 보호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돌봄 비용도 감소시킬 수 있으므로 치매의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는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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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치매 자체보다는 치매 환자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치매 환자가 ‘기억’을 잃게 되더라도 ‘감정’, ‘직관’, ‘욕망’ 등은 끝까지 갖고 있는다는 것이다. 즉, 치매 환자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알고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 싶어하며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이 사실을 기초로 하여 저자는 치매 환자를 대하는 여러 방법을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 중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 치매는 기억을 갉아먹지만 하나가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책에서 인용한 실제 사례를 다시 한번 인용하자면,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두 딸이 번갈아가며 모시게 되는데, 큰딸은 어머니를 데리고 백화점이나 공원 등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닌 반면, 작은 딸은 어머니에게 청소나 빨래 등의 집안일을 시키고는 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작은 딸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고 한다. 치매 이전의 삶에서도 평생 동안 해왔던 집안일이었기에 치매에 걸린 후에도 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일이 바로 집안일이었고, 그 집안일을 함으로써 어머니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치매 환자에게는 이런 점이 생각보다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참 무겁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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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이 책 사이에 꽂혀있던 편집자 편지에서 ‘읽으면서 울었다’고 하신 부분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해가 안되었는데, 완독하고 나니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치매라는 질병을 다루고 있는 딱딱한 의학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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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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