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역사공부를 위해서도 정독해야 합니다.하지만 이미 옛날인데다가 지금은 바뀐 지명이 꽤 있어서 여기가 어딘가 하고 알쏭달쏭할 때가 있습니다.그런 지명을 몇 개 소개하고자 합니다.
1,봉천---"만주 봉천에서 개장수했다"는 말이 있는데 봉천은 지금의 심양(선양)입니다.중국의 군벌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장작림이 바로 봉천을 근거지로 해서 봉천 군벌이라 했습니다.봉림대군(훗날의 효종)과 소현세자가 병자호란 패전의 결과 이곳에 볼모로 잡혀가서 <심양일기>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만주사변(1931)이 일어난 도시라서 이래저래 역사에 자주 등장합니다.영어원서에서는 만주사변을 'Mukden Incident'라고도 하는데 묵덴은 만주어입니다.목단강의 목단이 만주어로 묵덴입니다.목단강도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강입니다.
2.신경---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오는 만주국(1932~1945)의 수도. 관동군의 공작으로 탄생한 만주국은 당시 일본국력이 심혈을 기울여 새로 도로와 건물을 많이 건설했고, 그래서 새로운 수도라는 뜻으로 신경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지금의 장춘(창춘)입니다.새로이 세운 나라라고 해서 일본인들이 세운 건국대학교는 조선의 엘리트들도 많이 와서 공부했습니다.유신이 무너진 직후 잠시 대통령을 지낸 최규하 씨가 이 대학 출신입니다.또 신경에는 일본군 엘리트 양성을 위한 만주군관학교도 있었는데 나중에 우리나라 군부의 엘리트들이 된 이들이 많이 들어갔습니다.박정희 씨도 이곳을 거쳐 일본육사를 갔습니다.현재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생존한 이는 백선엽 씨가 있습니다.백 씨는 한국전쟁 당시 참모총장을 지낸 4인 (채병덕, 이종찬, 정일권, 백선엽---4인 모두 일본군 출신) 중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3.하르빈---흑룡강성 하얼삔을 일본 가타카나 발음으로 하르빈이라고 합니다.일제시대에 나온 우리나라 소설엔 다 하르빈이라고 표기했으며 70~80년대 출판물에도 하르빈이라고 표기된 책들이 꽤 많았습니다.원래 러시아인들이 만주점령한 이후 많이 거주하여 러시아풍 건물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습니다.이후 일본이 점령한 후에는 그 유명한 731부대를 세워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4.북지 중지 남지---각각 북부지나, 중부지나, 남부지나의 준말입니다.이젠 화북, 화남, 화중이라고 합니다.중국인들이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이라 하여 중국이라 했지만 일본이 차츰 중국으로 팽창해가면서 일본인들은 중국을 지나로 표기했습니다.지나는 차이나 China의 소리만 빌린 표기입니다.지금도 일기예보에서 기상캐스터가 "동지나해 남지나해에서 형성된 기압골 운운" 하는 말을 하는데 이 지나라는 표기는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말까지 지리부도에서 나와있으니 지금의 30대들도 동중국해 남중국해라는 지명보다는 동지나해 남지나해라는 표기가 더 익숙할 것입니다.
5.해삼위---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톡을 이릅니다.블라디보스톡은 19세기 말부터 조선인들이 많이 이주했습니다.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평전을 보면 니콜라이 2세가 황태자 시절 블라디보스톡의 조선인 마을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독립운동가들이 연해주에서도 많이 활약했는데 블라디보스톡에서 저 위 북쪽의 하바로프스크까지를 연해주라고 하며 강이름을 따서 우수리 혹은 아무르 지방이라고도 합니다.해외에는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하지만 정작 러시아에서는 우수리 호랑이, 아무르 호랑이라고 해야 알아듣습니다.
6.중경임시정부---상해임시정부라는 단어가 워낙 굳어진 명칭이지만 만주사변과 상해사변을 거치면서 상해지방이 일본군에 점령되고 (1932) 중일전쟁으로 남경까지 점령되자(!937) 임시정부는 중국국민당을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옮겨 결국은 사천성 (쓰촨성)의 중경(충칭)에 정착했고(1940) 결국 이곳에서 해방을 맞습니다.장준하나 김준엽 등 학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가 탈출하여 찾아간 임시정부가 중경임시정부입니다.특히 광복군 창설을 비롯하여 카이로,얄타 ,포츠담 선언 등 태평양전쟁 이후 일어난 중요한 외교적 사건은 모두 중경임시정부 시절입니다.임시정부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려면 오히려 중경시절을 더 집중해서 공부해야 합니다.한편 중국국민당과 임시정부에 실망한 조선의 청년들은 임시정부를 떠나 북쪽의 연안으로 갔습니다.연안은 대장정 이후 중국공산당이 정착한 도시입니다.중국공산당과 합작한 유명한 조선의 무장단체가 조선의용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