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백색의학은 맘을 뇌라고 한다. 가소로운 무지요 가공할 범죄다. 뇌는 맘이지만 그 역은 아니다. 저들은 자기 종자 논리를 부수고도 그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그렇다 치자. 그럼, 몸은 무언가? 답이 궁하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 따르면 맘은 의당 피부다. 피부는 비대칭 대칭 구조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사건이고, 맘은 그 가운데 파동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몸은 반대로 입자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100% 맘은 없다. 있다면 유령이다. 100% 몸은 없다. 있다면 시체다. 맘을 보면 몸이 보이고, 몸을 보면 맘이 보일 때, 비로소 전체 진실에 주의할 수 있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맘 병이라 판단하면 맘만 본다. 우울장애 환자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준다. 그 화학합성물질로 소화기관을 망가뜨린 뒤 소화제 준다. 몸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몸 병이라 판단하면 몸만 본다. 아토피 환자에게는 그저 스테로이드제를 준다. 맘 문제가 불거진 뒤 정신과 보낸다. 맘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백색의학 정신과 전문의가 장내세균을 조절하는 날은 언제일까. 아토피 전문의가 우울장애를 숙의하는 날은 언제일까. 그사이 아픈 이들은 스러져간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아무래도 녹색 죽비로 처맞아야 정신이 들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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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는 육체를 이루는 한 부분이 아니다. 피부는 생명 현상을 일으키는 근원이다. 디디에 앙지외 피부자아에 단 주해(2010. 8. 23.) 일부를 불러온다.

 

자아는 피부다.”

 

이 말을 역으로 하면 피부는 자아다.”입니다. 사실 이 말만으로도 전복적입니다. 피부를 그런 맥락으로 읽어 본 예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은이는 주어와 술어 위치를 바꿈으로써 더한층 날카롭게 나아갑니다. 피부가 자아의 부분집합이 아니고, 자아가 피부의 부분집합인 상황을 만들어버립니다. 이 명제로써 한순간에 피부는 광대한 은유가 됩니다. 피부이자 피부를 넘어선, 현실과 상상을 가로지르는 절묘한 실재성을 획득합니다.

 

엄마와 아기가 살을 비비는 정밀하고 사소한 일상부터, -생태적 제국·자본주의 문명의 제약 불가능한 경계 침탈까지, 실로 엄청나게 광대한 은유가 피부라는 경계, 즉 가장자리에서 요동치는 사건입니다. 피부는 다만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며 역동적 사건 그 자체입니다. 지은이는 피부 기능 여덟 가지를 말합니다. 지탱하기, 담아주기, 항상성, 의미, 교감, 개별화, 성욕화, 에너지화.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피부 기능이라기보다 피부라는 사건이 다양하게 발현하는 양상이라 해야 하겠지요.

 

이 피부 사건에 두 가지를 더해야 한다. 하나는 호흡. 폐라는 호흡기관이 있음에도 전체 호흡 중 0.6%를 피부가 담당한다.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폐는 호흡 기능을 극대화하려고 접혀 들어간 피부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0.6% 호흡은 도리어 그 결정적 증거가 된다. 호흡을 기준으로 보면 생명은 피부라는 괄호 안에 있다.

 

다른 하나는 정보 인식. 디디에 앙지외가 적시한 교감과 다른 차원에서 피부는 소미한 정보 인식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면역체계와 직결된다. 교감 사건과 상보를 이루면서 에너지화와 대칭되기도 한다.

 

전체 맥락에서 보면, 생명은 다양한 피부 주름이다. 생명 사건은 다양하게 변주하는 피부 사건이다. 피부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감각, 의식, 자세를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피부는 개별 생명체로 일단 떼어서 생각하면 가장자리다. 다른 생명체와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생각하면 중심이다. 단독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결국 생명 중심은 피부다. ‘중심인 피부가 가장 깊다. 더 깊은 내면 따위는 없다.

 

이런 생명 이치는 어디서 발원했을까? 자크 타상은 나무처럼 생각하기에서 인간이 숲에서 태어났으며 나무 생명 이치를 몸에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은유가 아님을 안다. 나무처럼 생각하기를 주해한 <10. 껍질이다>(알라딘 서재 2021.5.3.)를 불러온다.

 

  나무가 예민한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향적이지는 않다. 장기도 내면세계도 없는 나무는 철저히 외부를 향한다.

  나무를 정의하자면, ‘밖으로 드러나 많은 가지를 치고 곧게 서며, 땅과 하늘에서 자양분을 얻고 개체화한 동시에 결합한, 살아 있는 껍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껍질이라는 말의 다의적 특성을 이용한 정의다. 껍질이라는 말은 표면은 극대화하고 부피는 극소화한, 기하학적 의미를 담는다.(58)

 

살아 있는 존재가 표면을 넓히는 것은 교류 가능성, 외부와의 공유영역, 예민한 부분을 확장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감도 드높이는 것이다.(60)

 

나무는 자신에게 의지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의지할 줄 안다. 반면 인간은 세계를 복종시키고 제 입맛에 맞추려 한다···

  인간은 내면에 깊게 박힌, 거드름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정신의 유연함과 세심한 주의력을 잇는 , 시간, 공간의 특수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나무에게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세계와 영원히 합일하는 나무의 능력에서 우선 찾아보자.(62)

 

자크 타상의 나무는 껍질이다.”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디디에 앙지외의 자아는 피부다.”라는 말과 포개진다. 나무도 인간도 우주 구조와 운동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면 결국 최소 범주 공변양자장도 표면이고, 최대 범주 우주 전체도 표면이라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삼라만상의 본령이 껍질이고 피부고 표면이다. 너무 작아 볼 수 없는 세계도 너무 커서 볼 수 없는 세계도 결국은 개체화한 동시에 결합한네트워킹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킹 바깥이 존재할 수 없듯 네트워킹 안쪽, 그러니까 내면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트워킹의 중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내면 운운하고 중심 운운하는 것은 죄다 망상이다. 망상은 없음에도 있다고 우기는 정신병이지만, 있도록 만들어서 바깥과 주변으로 여기는 존재를 복종시키고 수탈, 살해한다면 범죄다. 물론 현 상황에서는 양자 구분이 무의미하다. 정신병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치료와 징벌을 결합한 처결은 필수다. 나무 앞에 무릎 꿇려 그 껍질 본질을 직면하고 그 껍질 삶, 교류 가능성, 외부와의 공유영역, 예민한 부분을 극대화하도록 엄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신의 유연함과 세심한 주의력을 잇는 , 시간, 공간의 특수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철저히 외부를 향하는 것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감도 드높이는 것임을 증명하게 된다. “세계와 영원히 합일하는 나무의 능력을 복원하게 된다. 다시 확인하거니와 인간에게는 내면이 없다. 다시 확인하거니와 인간은 중심이 아니다. 모두 평등하게 개체화한 동시에 결합한 네트워킹에 참여하는 껍질로 복귀하는 것만이 성불이며 구원이다.

 

나무는 껍질이다. 생명은 피부다. 피부가 일으키는 네트워킹, 그러니까 팡이실이, 이야말로 제국주의 반대말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 이처럼 핍진한 표현은 다시 없다. 그러면

 

껍질, 그러니까 피부를, 어떻게 결결이 겹겹이 대해야 할까? 피부는 지극한 거룩함과 질탕한 즐거움이 비대칭 대칭을 이루는 사건이며 실재다. 이 이율배반과 모호함을 흔쾌히 흠뻑 끌어안아야 한다. 정중하게 모시는 일과 까불대며 함께 노는 일에 동시 감각이 일어나야 한다. 바라보기, 닿기, 만지기, 쓰다듬기, 다독이기, 도닥이기, 문지르기, 비비기, 닦기, 씻기, 두드리기, 때리기, 긁기, 간질이기, 누르기, 주무르기, 접기, 펴기, 핥기, 빨기, 깨물기, 벌리기, 끼워 넣기, 찌르기, 짜기, 째기, 자르기, 데우기, 태우기, 식히기, 적시기, 말리기, 불기, 뿌리기, 바르기, 싸매기···수많은 접촉이 수많은 생명 사건을 일으키므로 한꺼번에 주의하고 하나하나 집중해야 한다.

 

한의사인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침으로 피부를 찌르는 치료를 한다. 침 찌르기는 근본적으로 피부 사건 일으키기다. 침이 찔러지는 경혈 흐름인 경락은 피부를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락이 혈관계·신경계·림프계들로 진화하기 이전 피부 미분화 정보·에너지 전달 체계였다고 본다. 물론 경락 이전 단계에서 피부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감각·기억·전달·치료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포들 사이에 원시 팡이실이도 있었다. 그 원시 팡이실이가 나중에 경락을 거쳐 혈관계·신경계·림프계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경락과 침을 발견한 일은 실로 위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침은 동종의학과 이종의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 좀 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여느 한의사와 달리, 침을 찌르기 전에 특별한 경우 말고는 반드시 침 찌를 곳에 가벼운 터치를 한다. 단순히 대기도 하고, 문지르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누르기도 한다. 대부분은 가볍게 톡톡 두드린다. 가볍게 두드리는 동작은 매우 소미한 통증 유발, 또는 정보 전달 효과를 낸다. 손가락 머리(指頭)를 모으고 세워 두드리면 생체 광자(photon)들이 다량 방출된다. 생체 광자가 정보 전달을 통한 치료 능력을 발휘한다. 이들은 동종의학이다.

 

동종의학은 소미심심(小微沁心) 의학(medicina tenuissima)이다. 소미심심 의학은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난다.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남으로써 생명이 피부임을 증언하는 서사가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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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반제국주의 녹색의학·녹색의사를 깨움

 

위험한 제약회사를 덮고 다홍색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윗부분은 희고 아랫부분은 파란 캡슐 화학합성물질이 가운데 오뚝하니 자리 잡고 있다. 새삼 섬뜩한 느낌이 든다. 나는 책을 집어 들고 일어나 환자 대기실로 간다. 환자들이 앉아 기다리며 TV를 시청하거나 신문을 읽곤 하는 탁자 위에 책을 놓는다. 환자들이 이 책을 반색하며 읽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어느 신도가 자기 종교 고발 서적을 선뜻 집어 읽겠는가. 다만 환자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이 책이 반드시 있어야 하겠기에 놓을 따름이다.

 

사실 의료 대중은 정치 대중과 별개 존재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각성하지 못하는 대중이 의료적으로 각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윤석열과 조선일보 사주가 특권층 부역자임을 아무리 말해주어도 귓등으로 듣는 사람이 주류 양의학이 제국주의 제약회사 하수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줄 때 귀 세워 들을 리 없다. 의도적 무지를 탑재한 머리와 뽕짝에 물든 가슴이 엮여 순종이라는 이름을 지닌 광기에 휘말린 의료 대중은 오늘도 제국주의 제약회사 하수인이 뿌리는 백색 독극물을 한 움큼씩 먹으며 흔쾌히 죽어간다.

 

나는 그래서 침묵하지 않는다. 학살당하는 자를 향하는 일이 학살하는 자를 향하는 일보다 훨씬 더 현실에 핍진하기 때문이다. 영이 결핍된 학살자에게 학살당하면 영이 궁핍 상태로 틈을 낸다. 그 틈이 팡이실이 가능성을 연다. 탐욕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받은 슬프고도 기쁜 선물이다. 내가 반제국주의 녹색의학·녹색의사를 깨우는 일은 이미 있는 이론과 종사자를 흔드는 일 너머로 나아간다. 아프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생명, 심지어 물과 돌도 주체로 참여하는 온 팡이실이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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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제 질병을 만들어 약을 판다-정기 건강 검진을 거부하라

 

정기 건강 검진은 전체 사망률, 암 사망, 심혈관 사망 모두에 아무런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정기 건강 검진은 질병 또는 위험인자 진단을 더 많이 끌어내고, 이는 더 많은 약 복용과 더 많은 유해 반응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린 결론은 확고했다. 정기 건강 검진을 시행하면 안 된다.(495)

 

참으로 무섭고 참담하고 절망적인 증언을 곱씹으며 마침내 책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저자는 이제, 우리에게 마지막 절규 하나를 남긴다. 이는 가장 기만적이어서 가장 근본적인 조직범죄에 대한 고발이다.

 

정기 건강 검진은 우리 경우 이른바 국가검진이다. 건강 상태를 일정 기간마다 규칙적으로 점검하여 질병을 예방 또는 조기 발견·치료함으로써 국민이 좀 더 풍요롭게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려는 국가정책이다. 국가는 국가검진을 그렇게 믿도록 선전·선동해왔다. 저자는 이를 껍데기라고 말한다. 알맹이는 그러면 무엇인가.

 

정기 건강 검진은 질병 또는 위험인자 진단을 더 많이 끌어내고, 이는 더 많은 약 복용과 더 많은 유해 반응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정기 건강 검진, 즉 국가검진이란 질병을 만들어 약을 파는국가 마케팅이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사악한 장사판이다. 검진을 미끼로 약을 팔아 돈을 챙기면서 국민을 노예화하고 서서히 사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복마전이 바로 정기 건강 검진, 즉 국가검진이다. 물론 국가 뒤에는 제약회사, 병원협회, 의료기회사가 도사리고 있다. 이 짓하는 부역 허울 국가를 국가라 할 수는 도무지 없다.

 

부역 허울 국가가 알아서 이 장사판을 걷는 일은 없다. 각성한 무지렁이 부역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에 터 하여 두려움을 떨쳐내고 정기 건강 검진을 거부해야 한다. 한 사람 경험이 온 사람 경험으로 확산하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야기하고 글을 써야 한다. 팡이실이 서사를 빚어야 한다. 살길은 이뿐이다.

 

조그마한 사람들이 조금씩 나아가는 발걸음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개벽이 온다. 달리다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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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시스템 적폐를 청산하라(4)-언론인, 문제는 너야!

 

  제약회사 긴 촉수는 보건의료 분야 언론인들에게까지 뻗쳐 있다. 제약회사는 미국 대학 언론학 교수와 장학생을 지원하고, 판매 증진에 도움이 될 기사를 쓰는 기자에게 상을 준다.·······

  앞으로 나아갈 길은 간단명료하다.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은 보건의료 기업이나 제약회사에서 후원금을 받아서는 안 되며, 언론인은 자신이 다루는 분야 기업에서 선물이나 상 또는 금전적인 후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나아가 언론인은 간간이 발생하는 살인사건보다는 환자 수천 명 목숨을 앗아가는 약에 좀 더 주목해야 한다. 이 사실은 일반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제약회사 조직범죄는 실제로 전혀 알려진 바 없다.

  언론인이여, 정신 차려라!(483-484)

 

<10. 이익 상충을 먹고 사는 의학지>에서 늬우스교가 된 뉴스 이야기를 했거니와,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누리는 절대 권력은 종교 이상임이 분명하다. 권력 주구임이 틀림없는 지상파 방송은 물론 더 노골적인 특권층 부역 집단 나팔인 종편과 그 소유주 조··동 따위 가짜 신문은 조작 정보를 미끼로 청맹과니 같은 사람들을 낚아 사회 전체를 오컬트에 빠뜨린다. 이미 넌덜머리 나게 경험하고 목격한 바라, 사족 달 필요조차 없다.

 

저들이 망가뜨리는 게 정신만은 아니다. 저들은 제약회사와도 한 패거리가 되어 자기 신도들 목숨마저 팔아넘긴다. 권력에 떼돈까지 따르니 이야말로 대박이다. 물론 여기까지 오면 저들을 일러 언론이라 할 수는 도저히 없다. 거기 빌붙어 먹고사는 자를 일러 언론인이라 할 수는 당최 없다. 신도들 목숨값으로 저들은 이 순간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이 떵떵거림, 필시 영혼에 땅땅 가해지는 총소리일 테지만.

 

어디 제약회사뿐이겠는가. 우유 회사를 비롯한 각종 음료, 가공 식품회사, 주류회사 등 구린 돈 거두어 곳간 불리는 집단이면 어디든 기레기언론 엉덩짝에 파리처럼 들러붙는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경구용 흡입 물질은 죄다 백색 약물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 백색 약물은 또 대부분 기레기언론의 앵글과 마이크가 선전·선동해서 퍼지니 착취 카르텔의 포위망은 그야말로 물 샐 틈 없다.

 

언론인이여, 정신 차려라!피터 C. 괴체가 순진해서 물색없이 일갈한 거 아니다. 언론인이 결코 정신 차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야만 하는 말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한마디 한 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을 듣고 우리 자신에게 하는 말로 새겨야 한다. 우리 스스로 참 언론이 되어 진실을 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참 언론이 되어 기레기언론을 감시해야 한다. 작고 적지만 그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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