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반제국주의 녹색의학·녹색의사를 깨움
『위험한 제약회사』를 덮고 다홍색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윗부분은 희고 아랫부분은 파란 캡슐 화학합성물질이 가운데 오뚝하니 자리 잡고 있다. 새삼 섬뜩한 느낌이 든다. 나는 책을 집어 들고 일어나 환자 대기실로 간다. 환자들이 앉아 기다리며 TV를 시청하거나 신문을 읽곤 하는 탁자 위에 책을 놓는다. 환자들이 이 책을 반색하며 읽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어느 신도가 자기 종교 고발 서적을 선뜻 집어 읽겠는가. 다만 환자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이 책이 반드시 있어야 하겠기에 놓을 따름이다.
사실 의료 대중은 정치 대중과 별개 존재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각성하지 못하는 대중이 의료적으로 각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윤석열과 조선일보 사주가 특권층 부역자임을 아무리 말해주어도 귓등으로 듣는 사람이 주류 양의학이 제국주의 제약회사 하수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줄 때 귀 세워 들을 리 없다. 의도적 무지를 탑재한 머리와 뽕짝에 물든 가슴이 엮여 “순종”이라는 이름을 지닌 광기에 휘말린 의료 대중은 오늘도 제국주의 제약회사 하수인이 뿌리는 백색 독극물을 한 움큼씩 먹으며 흔쾌히 죽어간다.
나는 그래서 침묵하지 않는다. 학살당하는 자를 향하는 일이 학살하는 자를 향하는 일보다 훨씬 더 현실에 핍진하기 때문이다. 영이 결핍된 학살자에게 학살당하면 영이 궁핍 상태로 틈을 낸다. 그 틈이 팡이실이 가능성을 연다. 탐욕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받은 슬프고도 기쁜 선물이다. 내가 반제국주의 녹색의학·녹색의사를 깨우는 일은 이미 있는 이론과 종사자를 흔드는 일 너머로 나아간다. 아프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생명, 심지어 물과 돌도 주체로 참여하는 온 팡이실이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