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개원 선물로 받은 동양란 철골소심(鐵骨素心), 이제 더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여태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 고맙다. 작년인가 도봉산 회룡계에서 부엽토를 담아와 조금 넣어준 적이 있다. 그 흙 속에 있던 달개비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볼수록 둘이 잘 어울린다. 묘하게도 달개비 관지에서 보면 영 둘이고, 난초 관지에서 보면 사뭇 하나다. 하여 이름을 지어주었다: 불이불일(不二不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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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가자지역 학살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시온주의가 초래한 기아와 파괴와 전치에도 불구하고, 이 행성에서 가장 강인한 사람들.”

아래 사진은 지난 6월 16〜19일 나흘간 진행된 이드 알 아드하를 준비하는 가자 여성들의 모습이다. 이드 알 아드하는 희생제를 의미하며 이슬람교에서는 이브라힘—기독교의 아브라함—의 희생 의식을 기리는 축제라고 한다. 세상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만큼 강인한 사람들이 있으랴마는 이스라엘의 만행과 학살이 횡행하는 폐허에서 기아로 내몰리는 식량 부족을 겪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나름 풍성하게 장만하며 미소 짓는 저런 여성들이야말로 참으로 숭고하게 굳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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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었으니 비는 오시기 마련이다. 기상정보를 보고 일단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여느 때보다 느지막이는 일어났으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요일 할 일을 하다가 하늘을 본다. 이슬비이긴 해도 여전히 비가 오신다. 문득 생각이 바뀐다. 비는 하늘 물이 아닌가. 하늘 물이 오신다고 물 모심 계획을 놓는 일은 당최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얼른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하늘 물맞이부터 한다. 한 생각 돌이킴에 감사하며 이내 길을 떠난다.



하늘 물맞이

 

당분간 특별한 팡이실이 소식 없으면 경강(京江), 그러니까 서울 한강으로 가련다. 가장 익숙한 진입로인 서릿개(반포천)로 향한다. 서릿개는 우면산 동쪽 끝 골짜기에서 발원해 양재동 서초동을 거치며 북으로 흐르다 급격히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도산 발치, 그러니까 서울성모병원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사이를 지나 한강과 만나서 물머리를 이룬다. 그 직전 사당천(방배천)과 만나 작은 두물머리를 이루지만 사당천이 복개 상태라 풍경이 영 사납다.



사당-반포 두물머리

 


복원 반포천 발원지


실은 반포천도 대부분 복개 상태로 숨죽여 흐르다가 서울성모병원 사거리쯤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투른 복원 행정 결과는 그대로 살풍경이다. 정화 장치가 있으나 물은 심히 아프다. 병든 냄새를 풍기고 매운 기운을 쏟아낸다. 그 자욱한 슬픔에 배어들며 연신 속죄의 말을 전한다. 제대로 흐르지 못해 신음조차 낼 수 없는 곳을 지날 때는 대신 아프다, 아프다라고 말한다. 이런 풍경 가로질러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건강할까.



멈추어 숨죽이는 반포천

 

마침내 두물머리. 드넓은 한강에 몸을 푸니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한강 본류도 아프긴 마찬가지다. 물이 너르고 깊은 만큼 병도 너르고 깊다. 강변 따라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올림픽대로 교각 아래로 걷노라면 맹렬한 분노가 솟구친다. 제국의 부역 권력이 어떻게 물을 함부로 대하고 인간과 이간시켰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물과 풀은 죽을힘 다해 자신과 이웃을 정화하며 살아가는데 인간은 거기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 소주 마신다.



반포천-경강 두물머리




낚싯대

 

허리가 또 조금씩 쑤신다. 물이 아픈데 사람-물인들 온전하랴. 가끔 쉬면서 너벌섬(여의도)에 다다른다. 샛강 따라 얼마쯤 걷다가 돌이켜 다시 큰 물가로 간다. 올림픽대로가 고래고래 내지르는 소리를 견디지 못해서다. 잘 가꾸어진 산책로를 이탈해 무조건 물 가까운 좁은 길을 따라간다. 무성한 버드나무숲 속으로 들어가 드디어 한강 물에 손을 담근다. 아프디아픈 몸을 이때만은 말갛게 드러내는 물을 모시고 나는 그 고마움이 서러워 울고 또 운다.



 너벌섬 물맞이


더는 가지 못한다.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다.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서울 산에 갖춘 예의를 물에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강 전체는 물론 지천, 그 지천의 지천까지 갈래갈래 걸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 물길을 덮어 놓았다는 데 있다. 그 물길을 어떻게 찾을까. 복원조차 이명박식 토건이 많은데 이런 가짜 복원은 진짜 복원을 영구히 가로막지 않을까. 산에서 감지할 수 없었던 아득함과 절망이 밀어닥친다. 이래서 물이 물이구나.

 

흔히 다발성 장기부전 증후군(MODS)으로 번역되는 질병이 있다. 전체 장기(기관)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기능을 상실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상황을 가리킨다. 이 치명적 생태 붕괴는 대부분 신장(kidney)에서 출발한다. 서구의학은 그 원인과 기전을 밝힐 수 없지만, 범주 인류학에서 볼 때 이치는 자명하다. 인간 생태계 근원이 물이고, 신장은 바로 그 물을 소통시키는 팡이실이 허브기 때문이다. 지구 신장은 바다다; 강이다; 시내; 샘이다.



신음하는 물

 

그렇다. 지구는 지금 MODS로 달려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이 묵시록적 카이로스에서 물 몸 아픈 냄새를 맡고 매운 죽음 기운을 느끼는 나는 어찌 살아야 하는가. 절대 근원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나서 나는 준비해 간 고운 물 한줄기를 한강에 붓는다. 또 한 번. 다시 또 한 번. 이 물머리에서 나는 내 본성 본디 물로 돌아간다. 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다. 찰나마다 범주 인류학적 인류로 체현할 따름이다. 내 글은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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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국도는 강원도 강릉시 연곡교차로와 인천광역시 인천역을 잇는 264.6km 동서 횡단 국도다. 그 동쪽 끄트머리 가까이에 평창군 간평마을이 있다. 68년 전 내가 태어난 곳이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내 생가는 6번 국도에서 20m도 채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3번 국도는 경상남도 남해군 초전삼거리와 강원도 철원군 대마사거리를 잇는 535.4km(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까지 연장하면 더 길지만) 남북 종단 국도다. 그 남쪽 끄트머리 가까이 진주시 상봉동에 봉산사가 있다. 내 생명 뿌리인 진주 강공(姜公) 휘이식(諱以式) 장군 사당이다.

 

두 국도는 각기 서와 북으로 달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6번 국도)와 동일로(3번 국도)에서 만난다. 현재 3번 국도는 동일로 지하차도 형태여서 자동차끼리는 만날 일 없이 서로를 가로질러 흐른다. 나는 태어난 지 10년쯤 뒤 포장이 전혀 되지 않은 6번 국도를 따라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와 6번 국도와 3번 국도 언저리를 떠돌며 살아왔다. 14년 전 바로 이 두길머리에서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의원을 열어 오늘까지 진료하고 있다.

 

두길머리란 용어는 내가 만들었다, 물론. 다시 물론, 두물머리에서 따왔다. 두물머리와 내 인연은 숲길 걷기에서 물길 걷기로 필연 이행하는 길 따라 맺어졌다. 이 인연에서 비롯한 팡이실이 서사는 비 인과적 창발을 거치며 경이롭게 번져갔다. 이 번짐은 어떤 의도도 없이 내 걷기 제의에 스며든 한 사람의 어떤 의도도 없는 행동이 촉매로 작용함으로써 일어났다. 그는 나와 숙의 치유를 함께한 환자이자 제자다. 그가 맥락 없이 연 물길이 맥락으로 작동하였다.

 

처음 그가 이끈 무-맥락적 물길은 안성에 있는 두 저수지였다. 나는 그 무-맥락을 맥락으로 삼아 두물머리를 찾았다. 두물머리 오가는 길이 바로 6번 국도다. 다음 그가 이끈 무-맥락적 물길은 괴산에 있는 저수지였다. 나는 그 무-맥락을 맥락으로 삼아 두물머리 더 깊숙이 양평 수인 이슬 죽임 터를 찾았다. 양평을 안내한 길이 바로 3번 국도다. 내가 그와 해월·수인을 이야기하며 지난 좌우 2km 지점에 해월의 무덤과 비밀결사 <수왕회>를 조직한 곳이 있었다.

 

6번 국도와 3번 국도는 서로 교차해 제 길을 가지만 나는 여기를 물머리처럼 길머리로 여긴다. 내 생, 그 애살맞고 고단했던 두 흐름이 만나 마지막 숨을 고르며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어떤 융해를 빚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적막하지만 나는 여기를 사랑하고 거듭 사랑한다.

 

여기서 나는 내 삶 빈 무덤을 나왔다. 여기서 나는 슬플 때만 나를 찾는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서 나는 없다고 여겨지지만 있는존재와 대화하는 세계를 열었다. 여기서 나는 궁극으로 가는 물길을 펼치고 있다. 끝이 아닐지 모르는 끝 길에서 내 끝 길을 더듬고 있다. 니마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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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은 매년 보수교육을 받는다. 그 평점 없이는 면허 신고가 불가한지라 요식행위일 망정 피해 가지 못한다. 나도 내 의학적 관심사에 공감하고 뜻 나눌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 교육 일정을 눈 밖에 둔다. 최소한 요건만 갖추고 남은 시간은 걷는다. 오늘은 일찌감치 필수 절차를 마치고 삼성역으로 간다. 한양대역에서 내려 둔치로 향한다. 지난번 두물개 이야기를 중랑천, 또 중랑천과 만나는 청계천 이야기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여기 두물개에서 경강(京江)-한강 가운데 서울을 지나는 부분을 따로 일컫는 말-과 만나는 중랑천은 그런 지천 중에서 가장 크다. 양주 불곡산에서 발원해 (내 발길이 닿은 곳만 헤아려도) 회룡천, 호원천, 도봉천, 무수천, 당현천, 방학천, 우이천, 마침내 청계천과 만나며 물기운을 더해 경강으로 흘러간다. 서울 북동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평야 지대를 만들어서 중요한 교통 경로로 작용한다: 3번 국도, 동부간선도로, 지하철 7호선, 1호선.



중랑천에 이런 곳도 있다

 

가장 나중 남쪽 끄트머리에서 중랑천과 만나 또 하나 작은 두물머리를 이루는 청계천은 작지만, 한강 못지않게 중요한 지리적, 심지어 정치적 위상을 지닌다. 한강이 서울 전체를 동에서 서로 관통한다면, 청계천은 서울 핵심을 서에서 동으로 관통한다. 청계천을 따라서 종로(6번 국도)를 포함한 동서 방향 주요 간선도로 여럿이 늘어서 있다. 지하철 1, 2-크게는 3, 4, 5-호선도 거기 해당한다. 물은 길을 열고, 길은 권력을 실어 나른다.



 청계-중랑 두물머리


청계천을 따라가며 보니 잉어, 청둥오리, 남생이, 왜가리가 산다. 역한 냄새까지 풍기는 오염된 물에 산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보다 안쓰럽다. 우리야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저들은 병든 상태에서 시난고난 살아가는 거 아닐까, 걷는 내내 분노와 애통이 칠떡칠떡한다. 숲의 필연에서 물로 온 까닭 가운데 하나를 겪는 일인데 훨씬 더 맹렬해서 어렵다. 은은하게 맵고 독한 물기운이 온몸에 배어드는 현실을 정면으로 받아안고 숙의는 출발한다.


 

중랑천이든 청계천이든 우리는 지금 물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가? 인간에게 필요한 비생명 도구, 똑 그뿐이다. 인간 생명이 물에서 왔다는 진실은 아득한 그 이상으로 물색없고 의미 없는 정답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주의가 물과 물살이 생명에 가하는 학대와 학살은 식민지 인간과 동물과 숲에 가하는 학대와 학살보다 훨씬 심대하며 근원적인데 아직 관심은 거기에 닿지 못한다. 물이 구원인 꼭 만큼 물 살해는 원죄다. 어물거릴 틈이 없다.

 

원전 오염수, 항생제, 플라스틱, 무기·위성 실험과 시추·탐사선과 대형 선박이 일으키는 소음···이루 다 말할 수조차 없이 뻔뻔하고 잔혹한 폭력에 살해당하는 물, 저 강과 바다로 내가 울며불며 달려가는 일은 이제 더는 어떤 묘사조차 필요하지 않은 투신이다. “숲에서 물로를 말하자 선크림 꼭으로 답하는 사람에게 유머를 던질 시각이 지나버렸다.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하염없이 물길 따라 걷고 또 걷는다. 문득 멈춘다.


 

청계천이 정릉천과 만나는 꼬마 두물머리를 지나 성북천과 만나는 또 다른 꼬마 두물머리로 가는 중간에 우뚝 선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잔해 세 개를 본다. 청계천 판자촌을 강제 철거하고 만든 복개도로 또는 그 위 고가도로를 떠받쳤던 기둥들을 일부러 남겨둔 것이리라. 복원된 청계천 푸른 아름다움과 대비하려는 뜻일 테다. 참 얄팍한 이명박스러운 협잡이다. 청계천 복원이 한낱 눈속임 토건임을 모른다면 이는 강아지 뒷다리 들 일이다.

 

나는 이 두 꼬마 두물머리를 이루는 정릉천, 성북천과 인연이 깊다. 여기서 북쪽으로 1km도 채 안 되는 지점에 두 물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6번 국도가 있다. 6번 국도 북쪽 300m 중간 지점 소재 중학교에 다녔다. 동소문동 산동네 살았으니 주로 성북천 따라 난 길을 걸어서 오갔다. 정릉천은 제기동 쪽으로 갈 일이 있을 때 가끔 지나갔다. 정릉천과 맺은 인연은 초등학교 때 더 깊었다. 청수장 쪽 상류 지점을 누비며 놀았기 때문이다.



정릉-청계 두물머리



성북-청계 두물머리

 

서울 핵심에서 청계천은 6번 국도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서울 전체에서 한강은 6번 국도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내 인생에서 6번 국도와 한강, 그 지류인 청계천·중랑천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남한강 발원지인 오대산 우통수 아래 간평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6번 국도, 그리고 한강을 따라 서울에 왔다. 서울에서 60년째 살고 있는데 거의 전 기간을 6번 국도변 또는 한강 가까운 주변에 살았다. 우연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내 진료실은 중랑천에서 300m, 6번 국도에서 1km 거리에 있다. 14년째 여기서 하루 12시간을 머문다. 내가 삶의 여정을 이렇게 길과 물로 서사화할 때 처음에는 길, 그러니까 6번 국도 중심이었다. 식물 공부 필연으로 숲에서 물로 나아가고 나서야 화들짝 깨달았다, 길은 물에서 왔다는 진실; 6번 국도가 남한강에서 발원했으며, 나는 남한강을 따라와 여기 있다는 진실. 나는 물-사람이구나, 아니. 나는 사람-물이 맞구나.

 

사람-물로서 내가 물에 드는 들머리에서 동시성으로 팡이실이 된 존재가 바로 해월 최시형과 수인(水仁) 이슬(李蝨)이다. 해월의 마지막 인생 도정은 내 인생 전체 도정과 겹친다. 그 도정이 완성되는 꿈으로 수인이 있다. 수인이 바라보는 개벽 세상은 물 모심() 팡이실이 세계다. 사상이 옹글어 가는 과정과 비전이 구체적인 면에서 같지는 않을지라도 근원에서는 온이 같다. 그들이 맞서 싸운 제국과 내가 맞서 싸우는 제국이 어찌 다르랴.

 

물론 나는 동학당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동학당이 아니라고 할 때조차도 나는 동학 하는(do) 사람이 맞다. 제국주의 서학, 특히 과학이라 이름하는 민속 인식론을 가로지르는 범주 인류학 모퉁잇돌 놓기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 또 어떤 범주 인류학을 상상할지 아직 모른다. 나는 내일 또 어떤 물 모심으로 나아갈지 아직 모른다. 비 인과적 동시성에서 해월과 수인을 만나듯 새로운 물과 만날 일을 다만 설렘으로 기다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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