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국도는 강원도 강릉시 연곡교차로와 인천광역시 인천역을 잇는 264.6km 동서 횡단 국도다. 그 동쪽 끄트머리 가까이에 평창군 간평마을이 있다. 68년 전 내가 태어난 곳이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내 생가는 6번 국도에서 20m도 채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3번 국도는 경상남도 남해군 초전삼거리와 강원도 철원군 대마사거리를 잇는 535.4km(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까지 연장하면 더 길지만) 남북 종단 국도다. 그 남쪽 끄트머리 가까이 진주시 상봉동에 봉산사가 있다. 내 생명 뿌리인 진주 강공(姜公) 휘이식(諱以式) 장군 사당이다.
두 국도는 각기 서와 북으로 달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6번 국도)와 동일로(3번 국도)에서 만난다. 현재 3번 국도는 동일로 지하차도 형태여서 자동차끼리는 만날 일 없이 서로를 가로질러 흐른다. 나는 태어난 지 10년쯤 뒤 포장이 전혀 되지 않은 6번 국도를 따라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와 6번 국도와 3번 국도 언저리를 떠돌며 살아왔다. 14년 전 바로 이 “두길머리”에서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의원을 열어 오늘까지 진료하고 있다.
두길머리란 용어는 내가 만들었다, 물론. 다시 물론, 두물머리에서 따왔다. 두물머리와 내 인연은 숲길 걷기에서 물길 걷기로 필연 이행하는 길 따라 맺어졌다. 이 인연에서 비롯한 팡이실이 서사는 비 인과적 창발을 거치며 경이롭게 번져갔다. 이 번짐은 어떤 의도도 없이 내 걷기 제의에 스며든 한 사람의 어떤 의도도 없는 행동이 촉매로 작용함으로써 일어났다. 그는 나와 숙의 치유를 함께한 환자이자 제자다. 그가 맥락 없이 연 물길이 맥락으로 작동하였다.
처음 그가 이끈 무-맥락적 물길은 안성에 있는 두 저수지였다. 나는 그 무-맥락을 맥락으로 삼아 두물머리를 찾았다. 두물머리 오가는 길이 바로 6번 국도다. 다음 그가 이끈 무-맥락적 물길은 괴산에 있는 저수지였다. 나는 그 무-맥락을 맥락으로 삼아 두물머리 더 깊숙이 양평 수인 이슬 죽임 터를 찾았다. 양평을 안내한 길이 바로 3번 국도다. 내가 그와 해월·수인을 이야기하며 지난 좌우 2km 지점에 해월의 무덤과 비밀결사 <수왕회>를 조직한 곳이 있었다.
6번 국도와 3번 국도는 서로 교차해 제 길을 가지만 나는 여기를 물머리처럼 길머리로 여긴다. 내 생, 그 애살맞고 고단했던 두 흐름이 만나 마지막 숨을 고르며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어떤 융해를 빚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적막하지만 나는 여기를 사랑하고 거듭 사랑한다.
여기서 나는 내 삶 빈 무덤을 나왔다. 여기서 나는 슬플 때만 나를 찾는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서 나는 없다고 여겨지지만 “있는” 존재와 대화하는 세계를 열었다. 여기서 나는 궁극으로 가는 물길을 펼치고 있다. 끝이 아닐지 모르는 끝 길에서 내 끝 길을 더듬고 있다. 니마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