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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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생의 마지막 공부를 한다. 영을 지득하고知靈 증득하고證靈 용득하는用靈 모든 과정의 증보판이자 결정판을 준비하는 것이다. 완공이 가능한지, 그렇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영가靈家를 건축하는 것이다. 영가는 영의 본성을 담는 그릇이다.

 

영은 신비주의, 그러니까 종교적 아라한 카르텔이 전유하는 경지가 아니다. 과학(적 합리)주의, 그러니까 수리·물리 인과율이 백안시하는 미신은 더욱 아니다. 영은 보편/전체 세계의 네트워킹이자 그것을 향해 열려 있는 특수/개체 존재의 참여 사건이다. 영은 평범하고 평등한 모든 존재가 고유한 필요에 따라 평화롭게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소식을 선물로 주고받는 소미심심小微沁心의 느낌, 알아차림, 받아들임 작용이다.

 

소미심심小微沁心의 느낌, 알아차림, 받아들임 작용이므로 영은 거대 일자의 인격적 속성일 수 없다. 영은 생사를 가로질러 종차를 넘어서서 배어들고 번져간다. 그렇게 바리와 원효의 인도를 받은 내 영은 마침내 낭·(나무와 풀을 따로 또 같이 표현하기 위해 만든 말)에 와 닿았다. ·풀에 닿은 내 영은 사람 삶과 낭·풀을 이전과 사뭇 다르게 느끼고 대한다. 물론 영 자체를 느끼고 대하는 감각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달라짐의 구체성에서 보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내 의학이다. 기존 의학 극복을 낭·풀과 숲의 영성이 향도한다.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만 상상 가능한 변화는 극적이라 할 만하다.

 

이 변화 과정 밑바탕에 5천 쪽에 달하는 책들이 깔려 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바로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의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원제는 THE LOST LANGUAGE OF PLANTS: The Ecological Importance of Plant Medicines for Life on Earth. 첫 출간한 지 거의 20년 된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상황을 살피는 일은 만시지탄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제라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눈을 더불어 뜨는 일이 불가피하다고 느껴져서 서두르는 마음결 다독이며 책상 앞에 앉는다.

 

이 서재 녹색의학 이야기에서 현대의학, 그러니까 백색의학을 비판하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는 일찌감치 문제 삼았다. 지금 쯤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졌을 테고 그만큼 낭·풀 의학 복원과 패러다임 교체 필요성은 긴급해졌으리라. 코로나19가 발목을 잡고 있는 이때 변방 임상의로서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아득하나 되작거리고 집적대고 끼적거리고 덤벼본다. 누가 알랴, 묵시록 한 바탕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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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앞마당 회화나무 아래 고요히 서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묻는다. "불교 신자이신가요?" 내가 단호히 답한다. "아닙니다." 주위 눈길이 일제히 내게 쏠린다. "저는 나무 신자입니다." 주위 눈길과 그 사람 눈길이 아연 동맹한다. 그 사람은 이내 어투를 바꾼다. "무속...?" 나는 더욱 단호히 답한다. "아닙니다. 나무 신자입니다." 그들의 당혹을 나는 단박에 부순다. "저는 죽은 부처 안 믿습니다. 산 나무를 믿습니다." 나는 그들의 눈빛을 뚫고 표표히 조계사 건너편 그들이 주목하지 않는 회화나무께로 간다. 하늘 보듬은 천수관음이 여기 계시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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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01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하늘을 보듬은 천수관음 나무가 맞네요! 정말 멋진 사진이고 메시지의 울림이 크네요! 즐거운 한주 되십시요!

bari_che 2021-02-01 11: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2-01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사진 멋져요. 조계사 여러번 갔는데 저는 왜 이런 사진이 안나오는걸까요? ㅠ.ㅠ 역시 보는 눈이 달라야 하는거라는걸 깨닫고 좀더 내공을 길러야겠구나 합니다.

bari_che 2021-02-02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립니다. 조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450년 수령의 회화나무에서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없습니다. 연등서껀 인간의 물건들을 달아 놓았기 때문이지요. 지장전을 왼쪽으로 끼고 조계사 서쪽 뒤로 나가면 목은 선생 영당 가는 길이 나옵니다. 그 길 왼쪽에 수령 300년가량의 회화나무 한 그루가 오연히 서 있습니다. 이 나무를 주의 깊게 보는 행인은 거의 전혀 없습니다. 제 사진은 바로 이 나무를 찍은 것입니다.

얄라알라 2021-04-16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나무보러라도 조계사 가고 싶어집니다.

저는 올 봄, 경주 계림 갔다가 나무에 반해서....계속 생각납니다

bari_che 2021-04-19 11:22   좋아요 0 | URL
예, 가셔서 회화나무뿐만 아니라, 백송도 보시면 좋습니다. 바로 옆 우정총국 건물 앞에도 수백 년 풍상을 견딘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답니다.
 



2021년 첫날 한의원, 12:07 전화벨이 울린다. 숙의치료 진행 중인 분이다. 엉엉 우는 소리부터 들린다. 너무 놀라서 "왜?"만 5번을 외친다. 그가 울면서 답한다. "넘 좋아서요!"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온 통증의 원인을 제대로 해석해주자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한다. "선생님께 감사드리려 전화했습니다." 문제 해석의 안목을 열어주는 일이야말로 누락 불가한 치료 행위다. 올 한해를 설렘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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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01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다 정말 뿌듯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네요. 올 한해 좋은일만 있을거라는 전조인듯합니다. 시작처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 근데 저 사진속 장소가 어딘지 엄청 궁금합니다.

bari_che 2021-01-02 14: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사진 속 장소는 미국 유타주에 있는 아치스 국립공원의 안경 아치 일부로 보입니다. 저도 사진으로만 몇 번 보았을 뿐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바람돌이 2021-01-02 14:59   좋아요 1 | URL
바로 인터넷 검색해봤는데 미국은 정말 자연지형이 억소리 밖에 안나오네요. ㅎㅎ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새로운 곳을 또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가리오하고 킵!!! ^^
 


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000. 끝낼 수 없는 이야기

 

아무것도 질문하지 말고 아무것도 의도하지 말고 숲으로 가서 그냥 한 시간가량 머물다 올 것.” 8년 동안 400번 상담한 어떤 사람에게 저는 지난 주 불문곡직의 숲 처방을 내렸습니다. 불가피한 불가항력이 제 과단성을 일깨우는 찰나, 불현 듯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이 결정은, 적어도 그에 관한 한, 언어적 소통과 정서적 공명과 인격적 감응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고 내린 처방입니다. 제 치료의 본성을 계의 경계 넘어 식물의 본성으로 정향하는 전향입니다. 더는 붓다와 그리스도를 꿈꾸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이후 인간 차원의 곡진·결곡한 시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푸나무 본성이 배어들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푸나무 본성은 무엇일까요? 평등·화평·평범한 전방위·전천후의 분산 시스템으로 소미한 공동체의 네트워킹을 일으켜 군집한 지성의 창발이 솟아오르게 하는 생명 실재가 푸나무 본성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용어로 표현하면, 신성이고 불성이고 영성입니다. 아니. 이것이 신성이며 불성이며 영성입니다. 인간의 숭고가 지향하는 장엄의 고향은 푸나무 본성입니다. 푸나무 고향에 복귀하여 온전히 참여하려면 인간은 인간적 편향과 오만의 분리거점을 지워야 합니다. 분리거점에는 대문자 일자the One가 좌정하고 있습니다. 대문자 일자가 허위본성의 본진입니다. 허위 신성·불성·영성을 푸나무 본성으로 정화해서 인간의 참 본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명상이든 참선이든 기도든 진화 방향의 연장선에서 초월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지은 분리문명의 산물 일부를 분리정신 안에서 분리된 정신을 고양함으로써 해결하려는 가소로운 노력, 그러니까 사실상 방어기제에 불과합니다. 문제의 해법을 문제가 야기된 그 타령으로 찾아서는 안 됩니다(앨버트 아인슈타인). 인식과 실천이 함께 파천황의 전복을 일으켜야만 합니다. 분리문명이 발달시킨 어떤 의학으로도 분리가 야기한 질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분리정신이 고안해낸 어떤 수행법으로도 분리가 야기한 윤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분리 자체를 괄호 로 묶는 단 하나의 길이 있을 뿐입니다. 그 단 하나의 길이 바로 푸나무 본성에 있습니다.

 

푸나무와 대화하는 이른바 약초치료사가 미국의 경우 수천 명에 이릅니다. 전문가 아닌 사람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생태 문화적 전통이 만든 예외일 수도 있지만 분명 경이롭고 고무적인 일입니다. 과학을 빙자해 사이비로 모는 것에 반대합니다. 제가 주의하는 바는 그들이 푸나무를 영으로 대하는 문제입니다. 영이라면 본디 식물이 영이고 그 영에 인간이 겸허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식물도 영이야!’ 수준인 한, 인간중심적 표상 방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중심적으로 표상된 푸나무 기호가 형식화한 인간의 삶은 또 하나의 방어기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건은 개별적 대화와 치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푸나무와 대화하고 그로써 치료할 수 있는가를 넘어 어떻게 하면 푸나무 본성에 깃들 수 있는가를 고민합니다. 그린세러피 이야기는 푸나무 후천개벽을 추동하는 격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푸나무 후천개벽은 인간 생명과 사회가 평등·화평·평범한 전방위·전천후의 분산 시스템으로 소미한 공동체의 네트워킹을 일으켜 군집한 지성의 창발이 솟아오르게 만드는 일입니다. 푸나무 없이는 후천개벽 아니고, 후천개벽 아니면 푸나무 참여는 없습니다. 제 이야기는 이제 막 출발했습니다. 원효와 바리를 붙들고 살아온 지난 45년의 터전 위에 푸나무 후천개벽으로 제 본성의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끝낼 수 없는 이야기는 앞으로도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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