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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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이야기에서는 모든 식물 중에서 윙가슈크라고 하는 향모가 대지에서 가장 먼저 자랐다고 한다.(018)

 

로빈 월 키머러가 속한 포타와토미족이 윙가슈크라고 부르는 향모는 벼과식물에 속한 잡초. 보리·밀 정도면 모를까, 옥수수가 벼과식물이라고만 해도 깜짝 놀라는 형편이니, 우리 이야기에서 향모를 주목한 역사는 없다. 그러나 나는 아로마 향을 처음 맡는 그 순간 향모가 벼과식물이라는 사실을 대뜸 알아차렸다. 10세 이전에 맡은 살아 있는 벼 대궁 냄새를 기억해낸 덕이다. 아니, 그 보다 훨씬 오래된 연원이 있다.

 

아기가 태어났음에도 어머니한테서는 젖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미음을 만들어 솜으로 배어들게 한 다음 내 입술에 대고 살살 눌러서 먹이셨다. 갓 태어난 아기라 수저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 맡은 냄새가 모유 아닌 쌀이었으므로 벼 대궁 냄새를 선연히 기억에 아로새길 수 있었으리라. 이렇게 내 인생 대지에서 가장 먼저 자랐다고할 수 있는 향모66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이다.

 

윙가슈크와 벼[]는 다르고도 같다. 윙가슈크 이야기와 벼[] 이야기는 다르고도 같다. 향모 드림-땋은 다발-이 로빈 윌 키머러에게 신성한 결과 미음이 강 용원에게 신성한 결은 다르고도 같다. 같아서 축복인 만큼 달라서 축복이다. 각각 이야기는 서로에게 은유가 되어 삶 모두를 풍요롭고 경이로운 풍경으로 빚어간다. 이 풍경이 이야기 본성이고 소식이며 기운이다. 향모 이야기와 벼 이야기는 함께 새 세계를 열고 있다.

 

내 이야기에서는 모든 식물 중에서 갓 태어난 나를 미음으로 살린 벼가 대지에서 가장 먼저 자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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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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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 섬(북아메리카 대륙을 가리킨다._옮긴이)(017)

 

서구 열강이 근대문명을 앞세워 제국주의를 펼치면서 지구상에 벌인 잔혹한 범죄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거니와 그 가운데 가장 무시되지만 가장 무서운 짓이 온갖 사물/사태에 자기네 [사람] 이름 뒤집어씌우기였다. 아메리카 대륙 이름은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사람 이름에서 왔다. 아메리고 베스푸치 이전 장구한 세월 동안 토박이 사람들이 살아왔다. 그들이 본성에서 우러나온 서사를 품어 어머니 대지에게 지어올린 이름은 거북 섬이었다. 거북 섬이라는 이름을 무시하고 인간 명을 뒤집어씌운 행위는 사실상 강도와 본질이 같은 범죄다. 범죄를 발견이라 미화한 수탈 역사가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우리 역사도 예외일 수 없다. 영국이 러시아 남진을 막는다며 거문도를 불법 점거하고 해밀턴이라 이름 붙인 거문도사건(1885)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어디 해밀턴뿐인가. 조선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시작해 국권 상실기에 겪은 제국주의체제, 미군정 이후 오늘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신제국주의체제는 수없이 많은 우리 이름을 강탈하고 저들의 이름을 덮어씌워온 굴레다. 이 굴레는 전방위전천후로 작동한다. 우리 땅 수수꽃다리는 저들 땅으로 끌려가 종 개량을 당한 뒤 라일락이라는 이름이 덮어씌워져 돌아왔다.

 

/풀 연구하는 학문인 식물학 자체가 아직도 식민지 시대를 헤매고 있다. 기본 용어에서 학계 헤게모니를 쥔 인맥까지 여전히 제국주의 부역 상태인 채로다. 연구비를 일본 극우세력에게서 받아쓴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한자 용어에 매우 익숙한 나조차 식물학 책에 나오는 일본식 한자 용어는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다. ‘총상화서가 무슨 소린지 사전 찾지 않고 아는 사람이 있겠나. 사전 찾아도 설명하는 용어를 다시 찾아야 할 지경이다.

 

로빈 월 키머러가 제국주의 수탈을 겪어낸 토박이 부족 후예이기에 지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한국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일제에 적극능동 부역한 매판종자 떨거지가 정치를 포함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살아 있는 권력으로 군림하는 와중 식물학자가 쓴 책을 읽으며 반 매판의 칼날을 벼리는 사람이 대체 있기는 할까?

 

항일무장투쟁 전사 후예인 내게 향모를 땋으며가 주는 울림은 사뭇 다르다. 이 땅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들이닥치는 중첩모순이 선명하게 느껴지도록 동조 음을 내준다. 메타 독서가 가능하다. 메타 독서가 다 메타 리뷰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로빈 월 키머러가 사는 자리와 내가 사는 자리는 다르다. 로빈 월 키머러 본성 과 강 용원 본성은 다르다. 그러나 이런 글을 다시 쓰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는 점에서는 같다.

 

수수꽃다리(라일락을 가리킨다._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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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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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살아 있는 존재라고 한다.......

  ......이야기꾼들에게 치메그웨츠Chi megwech(고맙습니다).(007)

 


이야기만큼 본성이다. 본성만큼 사건이다. 사건만큼 네트워킹이다. 네트워킹만큼 창조다. 창조만큼 의미/재미다. 의미/재미만큼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태초에 있었다. 태초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하기가 종말 이야기다. 종말 이야기는 회복과 치유 이야기다.

 

우리는 '다시 이야기하기re-story-ation' 없이는 회복restoration을, 의미 있는 치유를 해나갈 수 없다.......하지만 누가 이야기를 들려줄까?”(025)

 

내가 생애 마지막 풍경화로 곡진히 낭/풀 이야기를 그려 넣는 까닭은 인류 마지막 풍경화와 포개지기 때문이며, 마지막 풍경화에 꼭 똑 필요한 이야기 색채는 회복/치유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로 반복해 강조하면, 회복/치유는 오직 낭/풀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풀 이야기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 운동 원리며 지혜기에 생명이 겪는 아픔과 슬픔에서/을 회복/치유한다. /풀 이야기가 이끌어 인간이 낭/풀 목숨 거둬 제 목숨 되게 하면 낭/풀은 생명 운동 구조며 에너지로 물화한다. /풀 이야기가 서사 의/약학을 낳는 이치다.

 

서사 의/약학이 내게 올 때, 그 이름은 서사 한의/본초학이다. 서사 한의/본초학은 동아시아 의학 전승에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다미비·흠결된 서사, 특히 영성 서사가 내 몫이다.

 

백색의/약학인 현대 서구의/약학이 서사 의/약학을 구축하는 일은 아마도 불가능에 가깝지 싶다. 저들에게 이야기는 과학이 아니니까. 과학은 수식이니까. 수식은 영을 담지 못하니까. 나는 저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다. 나는 성가대에게 설교’(리베카 솔닛)하고 있다.

 

거의 20년 전, 나는 가난한 10가족에게 매주 방문 진료 봉사를 했다. 하나둘씩 떠나가더니 이제 딱 한 가족만 남아 인연을 이어간다. 이 가족은 이야기꾼들이다. 치메그웨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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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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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노인이 압박골절 통증으로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에서 침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나흘째 되는 날 보니 제법 원기도 회복되고 눈동자가 맑아졌다. 시침 중간 뚜벅 이렇게 말한다. “수지침하고 똑 같구먼!”

 

매판 지배세력이 여전히 준동하는 세상에 길들여진 대중은 한의사를 의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침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경로당에서 경험한 수지침이나 한의사가 놓는 침이나 침이긴 매일반이라고 여길 만하다. 누구든 자기 코로 세계 냄새를 맡기 마련이다. 거기 취하는 사람이 있고, 거기서 번져 가는 사람이 있다는 차이뿐.

 

우리 낭/풀 전승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한참 뒤에도 향모를 알지 못했다. 읽어 나아가면 책 속에 그 설명이 있으리라 막연히 기대할 뿐이었다. 이 책 구성원리를 먼저 검토하고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착오였다. 이 책 구성원리가 여느 책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에야 향모를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저자는 향모에서 바닐라 향이 난다고 했지만 내가 찾은 자료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레몬그라스였다. 레몬이란 말을 이상히 여기면서 나는 레몬그라스를 구해 향을 맡아보았다. 레몬 향과 같기 때문에 레몬그라스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 코와 다른 코가 내게 있었으므로 나는 그 냄새가 살아 있는 벼 대궁에서 나는 냄새와 본질이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론 바닐라 향도 또 다른 사람 코로 맡은 향이다. 완전히 동일한 풀이 아니어서 각각 자기 코가 더 정확할 수 있다. 내 코로 맡은 향모 향은 모름지기 레몬만도 아니고 바닐라만도 아닌 경계 냄새다. 아직 미지 생명으로 내 밖에 있지만 향모, 정확히는 향모라는 생명 장은 이미 소중하고 각별한 향으로 내 안에 들어와 있다. 고마운 일이다.

 

내게는 향모를 땋는 전승이 없다. 구태여 그 형식 자체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저자 전승에서 향모를 심고, 키우고, 뽑고, 땋고, 태우는 과정이 건네는 은유를 내 전승에 맞는 생생한 물질의미로 받아들여 따르는 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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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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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문제는 인간 본성과 나무 본성 사이에 존재하는 격절이다. 본성 간 격절은 어떻게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는가?.......나무삼매경이 내 무엇을 변화시켰는지 내가 지금 아는 만큼으로서는 그다지 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닌가? 질문을 더 다지려 나무처럼 생각하기앞에 있는가?”

 

마지막 질문에 그렇다분명히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확실하고 나머지는 여전히 질문인 채로다. 이 질문들에 유효하게 답하려 애쓰는 동안 나는 로빈 월 키머러 이야기 둘을 천천히 음미했다. 향모를 땋으며. 이끼와 함께. 통렬한 자성이 일갈한다. “섣부르구나!”

 

필경 내 섣부름은 시생대 touching 누락에서 발원해 평생 글 쓰고 말하는 일을 해온 삶이 강을 이루며 야전에 서투른 인간으로 흐른 탓이리라. 몸의 오감과 제6감을 총동원해 영으로 깃들어가는 들사람이 지닌 탱맑은 살 냄새가 없어서 나무 영을 매혹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내 팔 길이 안에 있는 나무들에 여태 써온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차지게 가 닿아야 한다. 언제든 거기 있어온 나무지만 이제야 나타난 새로운 인연으로 각별히 생명을 섞어야 한다. 간절함이야 애를 녹이지만 닿고 섞는 일은 손으로 허공을 휘젓듯 잡히지 않으니 어찌 할까.

 

다시 정좌한다. 나는 누군가. 나는 경계 사람이다. 영 세계와 과학 세계 사이를 흐르며 가로지르는 사건이다. 나는 그 경계 방식으로 나무에게 다가가고 나무가 이끄는 길을 간다. 떨림 없는 감지, 그 고요함을 데면데면하게 보지 않는다. 오늘 아침 나는 버드나무를 똑 따랐다.

 

나는 사람을 사랑해 사람이 된 나무다. 그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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