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거북 섬(북아메리카 대륙을 가리킨다._옮긴이)(017)

 

서구 열강이 근대문명을 앞세워 제국주의를 펼치면서 지구상에 벌인 잔혹한 범죄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거니와 그 가운데 가장 무시되지만 가장 무서운 짓이 온갖 사물/사태에 자기네 [사람] 이름 뒤집어씌우기였다. 아메리카 대륙 이름은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사람 이름에서 왔다. 아메리고 베스푸치 이전 장구한 세월 동안 토박이 사람들이 살아왔다. 그들이 본성에서 우러나온 서사를 품어 어머니 대지에게 지어올린 이름은 거북 섬이었다. 거북 섬이라는 이름을 무시하고 인간 명을 뒤집어씌운 행위는 사실상 강도와 본질이 같은 범죄다. 범죄를 발견이라 미화한 수탈 역사가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우리 역사도 예외일 수 없다. 영국이 러시아 남진을 막는다며 거문도를 불법 점거하고 해밀턴이라 이름 붙인 거문도사건(1885)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어디 해밀턴뿐인가. 조선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시작해 국권 상실기에 겪은 제국주의체제, 미군정 이후 오늘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신제국주의체제는 수없이 많은 우리 이름을 강탈하고 저들의 이름을 덮어씌워온 굴레다. 이 굴레는 전방위전천후로 작동한다. 우리 땅 수수꽃다리는 저들 땅으로 끌려가 종 개량을 당한 뒤 라일락이라는 이름이 덮어씌워져 돌아왔다.

 

/풀 연구하는 학문인 식물학 자체가 아직도 식민지 시대를 헤매고 있다. 기본 용어에서 학계 헤게모니를 쥔 인맥까지 여전히 제국주의 부역 상태인 채로다. 연구비를 일본 극우세력에게서 받아쓴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한자 용어에 매우 익숙한 나조차 식물학 책에 나오는 일본식 한자 용어는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다. ‘총상화서가 무슨 소린지 사전 찾지 않고 아는 사람이 있겠나. 사전 찾아도 설명하는 용어를 다시 찾아야 할 지경이다.

 

로빈 월 키머러가 제국주의 수탈을 겪어낸 토박이 부족 후예이기에 지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한국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일제에 적극능동 부역한 매판종자 떨거지가 정치를 포함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살아 있는 권력으로 군림하는 와중 식물학자가 쓴 책을 읽으며 반 매판의 칼날을 벼리는 사람이 대체 있기는 할까?

 

항일무장투쟁 전사 후예인 내게 향모를 땋으며가 주는 울림은 사뭇 다르다. 이 땅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들이닥치는 중첩모순이 선명하게 느껴지도록 동조 음을 내준다. 메타 독서가 가능하다. 메타 독서가 다 메타 리뷰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로빈 월 키머러가 사는 자리와 내가 사는 자리는 다르다. 로빈 월 키머러 본성 과 강 용원 본성은 다르다. 그러나 이런 글을 다시 쓰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는 점에서는 같다.

 

수수꽃다리(라일락을 가리킨다._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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