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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이야기는 살아 있는 존재라고 한다.......
......이야기꾼들에게 치메그웨츠Chi megwech(고맙습니다).(007쪽)
이야기만큼 본성이다. 본성만큼 사건이다. 사건만큼 네트워킹이다. 네트워킹만큼 창조다. 창조만큼 의미/재미다. 의미/재미만큼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태초에 있었다. 태초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하기가 종말 이야기다. 종말 이야기는 회복과 치유 이야기다.
“우리는 '다시 이야기하기re-story-ation' 없이는 회복restoration을, 의미 있는 치유를 해나갈 수 없다.......하지만 누가 이야기를 들려줄까?”(025쪽)
내가 생애 마지막 풍경화로 곡진히 낭/풀 이야기를 그려 넣는 까닭은 인류 마지막 풍경화와 포개지기 때문이며, 마지막 풍경화에 꼭 똑 필요한 이야기 색채는 회복/치유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로 반복해 강조하면, 회복/치유는 오직 낭/풀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낭/풀 이야기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 운동 원리며 지혜기에 생명이 겪는 아픔과 슬픔에서/을 회복/치유한다. 낭/풀 이야기가 이끌어 인간이 낭/풀 목숨 거둬 제 목숨 되게 하면 낭/풀은 생명 운동 구조며 에너지로 물화한다. 낭/풀 이야기가 서사 의/약학을 낳는 이치다.
서사 의/약학이 내게 올 때, 그 이름은 서사 한의/본초학이다. 서사 한의/본초학은 동아시아 의학 전승에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다. 미비·흠결된 서사, 특히 영성 서사가 내 몫이다.
백색의/약학인 현대 서구의/약학이 서사 의/약학을 구축하는 일은 아마도 불가능에 가깝지 싶다. 저들에게 이야기는 과학이 아니니까. 과학은 수식이니까. 수식은 영을 담지 못하니까. 나는 저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다. 나는 ‘성가대에게 설교’(리베카 솔닛)하고 있다.
거의 20년 전, 나는 가난한 10가족에게 매주 방문 진료 봉사를 했다. 하나둘씩 떠나가더니 이제 딱 한 가족만 남아 인연을 이어간다. 이 가족은 이야기꾼들이다. 치메그웨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