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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우리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유니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말을 꺼냈다.
"다 이해했을 거예요. 실독증_失讀症인 사람들은 많아요. 사실 수천 명이나 되는걸요. 작년에 학교에서 이에 대한 공부를 좀 했어요. 미스 파치먼, 내가 글을 가르쳐 줄게요. 할 수 있어요. 재미있을 거예요. 부활절 주간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유니스는 머그컵 두 개를 가져가 식기건조대 위에 놓았다. 유니스는 여전히 그녀한테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남은 차는 싱크대에 부어 버렸다. 그러고 나서 유니스는 천천히 몸을 돌려, 겉보기에는 가슴이 빠르고 무겁게 뛰고 있다는 내색을 하지 않은 채, 한눈에 봐도 감정이 없고 집념이 서린 눈초리로 그녀를 응시했다.
- 본문 중에서.
"그는 다른 서평단의 리뷰를 확인(?)하지 않고 서평을 썼기 때문에 자신의 서평을 죽였, 아니 지웠다..."
개인적으로는 듣보잡에 가까운 작가지만 영국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뒤를 이어 미스터리의 거장 대접을 받고 있다는 여류작가 '루스 렌들_Ruth Rendell'의 미스터리 스릴러 <활자 잔혹극>!
'활자 잔혹극'이라는 독특한 제목과 '나이프, 포크, 면도칼, 식칼, 주사기, 못, 펜촉, 다트, 가위, 깨진 병' 따위가 난무하는 표지 타이포그래피가 일단 관심을 끈데다가(표지에 있는 타이틀 '활자 잔혹극'이란 활자는 사실상 활자가 아닌 것이다!) 서평을 쓰자면 어떤 식으로든 인용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첫 문장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역시 읽는 이의 호기심을 증폭시켰기에 쉽사리 활자들의 난투장 속으로 빠져들었고,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가문에 가정부로 들어가게 된 시점부터 9개월간에 걸쳐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치운(?) 끝에 결국 살인범이 되어 재판을 받게되기까지 그녀의 살인행각 전문_全文을 읽고난뒤 서평단으로서의 의무감으로 한활자/한단어/한문장씩 정성스럽게 입력하고는 '등록'하려는 순간, 이미 작성된 서평들의 첫머리를 슬쩍 살펴봤는데 헉!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서평이 이미 작성된 것이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든 서평 글들을 다 읽어봤더니, 어느 글은 서두가 (거의)같고... 어느 글은 본문 내용이 비슷한 맥락으로 흐르고... 하며 서평 글마다 어딘가 비슷해 보이는 느낌을 주는 바람에 괜한 오해를 방지하고자 부득이하게 기껏 작성해 놓은 서평을 포기하기에 이르렀으니, 서평도 활자와 활자로 구성되고 연출된 한 편의 공연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또한 활자 잔혹극이 아닐런지 하는 말장난같은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심지어 책을 읽는 도중 '서평 쓸 때에 인용해야지'했던 부분마저 발문_跋文을 쓴 '장정일'이 이미 인용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해서 서평을 완전 포기할 수도 없고 ,한번 쓴 서평을 다시 새롭게 쓰려니 추리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희생자는 누구이고, 동기는 무엇이며, 심지어 범인이 누구인지'까지 미리 알아버린 것처럼 김 빠진 노릇이 아닐 수 없는데, 어찌 생각하면 이 작품을 막 펼쳐들었을 때의 느낌과 맞아 떨어지는 구석이 없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기에(...) 다시금 서평단으로서의 의무감과 책임감을 떠올리며 한활자/한단어/한문장씩 정성스럽게 입력해 보자면,
뭐 이야기는 시작과 동시에 이미 결론이 나버렸다. 5쪽~248쪽에 이르는 본문 내용은, 첫 문장에 나와있는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를 길게, 그것도 아주 기이일게 늘어놓은 것에 불과할 뿐이었으니,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 읽을 줄도 쓸 줄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는 사실을 숨긴채 생활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일 수 있는가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게된 여러가지 사소하고 잡다한 사연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에대해 장정일은 발문에서 "문맹은 인간에게 필요한 자신감과 자긍심을 빼앗고, 정상적인 인간관계와 소통을 기피하게 만든다"고 한 바와 같이 유니스 역시 어쩌면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자존감을 잃고 타인한테 의존(!)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비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설정해 놓았고 결과적으로 읽을 줄도 쓸 줄도 아는 커버데일 집안에 취직이 되어/ 읽을 줄도 쓸 줄도 아는 커버데일 일가에 반감을 느끼고는/ 읽을 줄도 쓸 줄도 아는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했으며/ 그로인해 범인으로 체포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문맹_文盲'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력마저 떨어뜨리는지, 더불어 원활한 인간 관계에 '반드시' 지장을 주는지는 명확히 증명된 바가 없기에(사실,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보는 편이다.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층, 이른바 '문해_文解'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중에서도 자신보다 배움이 부족한 이들을 무시/조롱하는 행위를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인간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지 않은가!) 이 작품이 단지 문맹인의 뒤틀리고 비정상적인 인간관계가 부른 참극을 그렸다면 그저 흥밋거리 3류소설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사람만 문맹이 아니라는 사실을, 읽을 줄도 쓸 줄도 알고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모르는 사람 역시 '문화적 맹인'이라 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작품 속에는 '또 한 명의 유니스'가 등장한다. 원조 유니스와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대조적인 인물이지만 적당한 동기와 기회만 제공되면 언제든지/얼마든지 '유니스 화_化' 될 수 있었던 인물로, 이야기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있는듯 없는듯 때때로 등장하면서도 묘한 불안감과 긴장감을 주고 있는데 비록 작품속의 비중은 작지만 그 '의의'만큼은 거대했으니 그 인물이 있었기에 이 작품은 비로소 완성되었으며 한 편의 잔혹한 공연을 성공리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그 인물이 누구인지 일찌감치 알아챈 독자라면 이 작품을 나름 온전히 읽어냈다고 볼 수 있으리라...)
끝으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작품속에는 이 글(과 지금은 삭제되어 없어진 서평)을 비롯한 기타 여느 서평들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사연'이 존재한다. '사실'을 알고 싶은 모든 독자들을, 스탠트위치 외곽에 위치한 으리으리한 저택 '로필드 홀'로 기꺼이 초대하는 바이니, 읽을 줄도 쓸 줄도 아는 독자들이라면 기꺼이 초대에 응하리라 믿는다.
(아, 드레스 코드는 당신 옷장에서 가장 비싼 옷을 최대한 난도질해서 입고 오기를 권장함!)
덧, 이기심 :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한테 자신의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
덧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