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 탈출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나의 비극적인 위치에서 비롯된 공포에도 불구하고, 내가 길목에서 매복하고 있는 형체를 보았을 때 느낀 경악은 다른 모든 감정들을 압도했다. 그것은 풍채가 좋은 고릴라였다. 내가 미친 게 아닌지 아무리 되뇌어봐도 소용없었다. 그것은 분명 고릴라였다.
내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은 소로르에서 고릴라와 마주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릴라가 지구인처럼 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옷을 입은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내게는 바로 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충격이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팀 버튼_Tim Burton'이 2001년에 리메이크하기도 했으며 '찰튼 헤스톤_Charlton Heston'이 주연을 맡아 놀라운 반전으로 관객들을 충격과 혼란속에 빠뜨렸던 1968년작 [혹성 탈출_Planet of the Apes]의 원작소설 <유인원 행성>!

영화는 두 작품 모두 여러 차례 봤음에도 원작소설이 있는 줄은 몰랐기에(사실 예전에는 알았었지만 원작소설이 국내에서 출간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그후로는 잊어버렸을만큼 까마득히 오래된...) 영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_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개봉에 맞춰 이 책이 출간됐을 때는 놀라움마저 들었던 것이 사실인데, '혹성'이라는 단어에 왠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체질인지라 (혹성! 혹성! 혹성! 혹성! 혹성! 혹성! 혹성! 혹성!... 으으으, 이제 그마안...) 분명 SF출간이라는 반가운 소식임에도 일부러 외면하다시피 했던 것 역시 사실...

그러다가 작년 말에 조카녀석한테 생일선물로 받고는 할 수 없이(?) 읽어보게 되었는데...
이런! 이런이런이런!!! 놓쳤으면 두고두고두고 후회하고후회하고한번더후회한뒤에 평생을 후회했을 명작/걸작이었으니 뒤늦게라도 삼촌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준 조카녀석한테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을 해 주고 싶을 정도다. "조카야, 삼촌의 편견을 깨줘서 고맙구나!~"

우주선을 타고 유유자적하며 멋진 우주여행을 즐기는 '진'과 '필리스' 커플이 바닷가에 떠내려온 유리병 속 편지를 발견하듯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유리병을 발견하고는 그 속에 들어있던 편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제외하면 이 작품은, 영화 [혹성 탈출]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뿐 아니라 3D에 4D까지 등장하며 최첨단 영상미에 길들여진 요즘 시대에 활자로 굳이 그 영상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는데, 뭔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성급한 마음에 재촉(?)만 하지 않는다면 즉, 원작소설 자체를 이해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특별한 편지'를 끝까지 읽을 마음만 있다면,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낸다면 [혹성 탈출]이라는 위대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을 만들어낸, 영화보다 한단계 더 위대한(반전, 모험, 풍자, 해학, 서스펜스...를 뛰어넘는 통찰을 통해 인류문명에 대한 조롱의 극치를 맛 볼 수 있는!) 소설을 읽고 있다는 경이로움을 맛 볼 수 있다.

이 땅 어딘가의 동물원에 갇혀있는 원숭이 한 마리(뭐 그것이 고릴라가 되었든, 침팬지가 되었든, 오랑우탄이 되었든 암튼 유인원_類人猿 중 하나)가 지구인들, 그것도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지구인들을 바라보며 '새삼' 충격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 이후 동물원에 가게되면 반드시 유인원한테 말을 시켜보고야 말 것임을 언젠가 먼 훗날이 되면 저 우주를 떠돌게 될 윌리스 가족을 떠올리며 굳게 다짐해 본다...





덧, Planet은 '혹성_惑星'이 아닌 '행성_行星!'
이 작품의 원작은 < La Plane'te des Singes>로 우리식으로 번역하면 <유인원 행성>이건만 워낙 유명했던 영화 [혹성 탈출] 탓으로 '유인원 행성' 또는 '행성 탈출'도 아닌 [혹성 탈출]로 잘못 알려져 왔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책 본문에는 혹성이 아닌 행성이라는 올바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고(여기도 행성, 저기도 행성. 온통 행성 천지닷!) 심지어(!) 판권에는 '원제 : 유인원 행성'이라 표기되어 있을 정도다.
음, 이 정도면 책 제목을 <행성 탈출>이 아닌 <혹성 탈출>로 해야만 했을 이유가 나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덧-1, SF는 '공상과학소설'이 아닌 '과학소설!'
그러함에도 한가지 잘못 번역(?)된 것이 있는데 SF를 '공상과학소설'이라 표기한 것으로, 좋은 작품을 잘 번역해 놓고는 마지막 화룡점정_畵龍點睛을 찍다가 그만 룡의 눈을 멀게 한 꼴이 되어버렸으니 그야말로 옥에 티가 아닐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