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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즈
제임스 G. 발라드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크리스탈 세계>를 비롯한 지구종말 3부작의 작가 '발라드'가 그려낸 '도시재앙 3부작'의 하이라이트이자 최첨단 모델하우스 견학기, <하이라이즈>!
최첨단 시설의 거대한 고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사소한 언쟁과 짜증에서 시작된 윗층과 아랫층의 개인적인 불화가 아파트 계단을 타고 오르내리듯 점차 확산되더니 어느새 상류층과 하류층의 갈등과 대립으로 번져가고 급기야는 걷잡을 수 없이 끔찍한 폭력사태를 불러오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국지전_局地戰 성격의 종말론적 작품으로, 현 상태를 유지하며 그저 조용히 지내고 싶었던 중산층 '로버트 랭_Robert Lang(25층 거주)'과 상류사회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지만 내심 그들과 합류하기를 꿈꾸는 하류층민 '리처드 와일더_Richard Wilder(2층 거주)', 그리고 하이라이즈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며 건물을 지배하려는 최상류층 인사 '앤서니 로열_Anthony Royal(40층 펜트하우스 거주)' 등 3개의 사회집단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교차적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하이라이즈 입주민들의 생활양식을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단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대적 배경이 미래라고는 해도 사실 SF라기보다는 사회규범에서 일탈하고픈 인간의 욕망을 파헤친 일종의 심리소설이라 할만한데(이런게 urban SF?) '더 타임스_Times'에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작가"로 선정했다는 부동산중개업자(?) '발라드'의 안내를 받아 슈퍼마켓과 수영장, 은행, 그리고 초등학교까지 갖춘 40층 짜리 주상복합 건물 '하이라이즈'에 입주한 독자들은 1층 로비에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만해도 홍보 브로슈어와 동영상에서 보았던 최고급 실내 인테리어와 최첨단 자동설비, 그리고 이에 어울리는 부유하고 품위있는 입주민들로 가득찬 유토피아파트를 꿈꾸게 되지만, 막상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사방이 트여있는 전망창을 통해 하이라이즈 내부의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온갖 일탈행위와 비윤리적인 작태, 적나라하고 위선적인 삶을 한 층, 한층 올라가면서 구경하다보면 정작 40층 펜트하우스에 도착할 무렵에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적대감과 광기로 가득찬 디스토피아파트의 옥상에 도달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높은 곳에 올랐다는 정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아닌, 이제 추락할 곳 밖에 없는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는 까마득한 절망감을 맛 본 뒤에 남겨지는 것은, 자의에 의한 '항공 학교' 체험을 할 것인지, 아니면 개고기를 구워먹으며 흐뭇해 할 것인지의 선택 여부 뿐...
최후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덧, :: 스무자평::
'그날' 이후, 고층아파트에서는 무슨 일이 생겼는가?
(......기름때가 잔뜩 낀 타일에서 반사되는 누런 빛이 그들 앞에 펼쳐진 기다란 수영장을 비추었다. 그 안은 뼈 무덤이었다. 물은 오래전에 다 빠져나가고, 경사진 바닥에는 수십여 구의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해골, 뼈, 절단된 팔다리들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붐비는 해변에서 불시에 자행된 대학살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덧덧, "하층부에 사는 아이들이 두 번이나 옥상의 놀이터로 들어가려다가 저지당했다. 벽으로 둘러쳐진 놀이터는 여닫이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앤서니 로열이 입주민 자녀들을 위해 특별히 설치해 놓은 회전목마와 재미난 조각상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놀이터의 정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고, 옥상으로 올라오는 아이들은 얼씬대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랏, 이것과 비슷한 기사를 언젠가 뉴스에서 들은 것 같은데?...)